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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태진의 관세이야기] 병행수입의 대중화

작성자
큰일꾼큰두부
작성일
2017-08-30 18:55
조회
294
p1065601539937977_876_thum.png신발 브랜드 ‘나이키’는 공식 수입 업체인 ‘나이키코리아’를 통해 한국에 들어오고 있다.
그런데 ‘나이키코리아’가 아닌 전혀 상관없는 국내의 다른 업체가 해외 시장이나 할인점에서 ‘나이키’신발을 수입하여 국내에 판매할 수 있을까? 아래에서 그 해답을 찾아보자. 

1995년 4월 국내의 창고형 대형 할인점인 프라이스클럽은 미국 프라이스 코스트코로부터 Levis 청바지를 다량 수입했다. 그러자 미국 Levis의 한국 현지 법인인 리바이스코리아가 상표권 침해를 이유로 세관에 통관보류를 요청했다. 세관은 이를 받아들여 프라이스클럽의 수입 청바지 수입통관을 보류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소비자의 합리적 선택권에 대한 국내 여론이 들끓게 되었다. 병행수입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된 시점이기도 하다. 관세청은 고시를 개정하여 1995년 11월 3일부터 일정기준 하에 병행수입된 진정상품(위조, 모조상품에 대응하는 개념으로 상표가 외국에서 적법하게 사용할 권리가 있는 자에 의하여 부착되어 배포된 상품)을 통관시키기로 하였으며, 이와 관련하여 공정거래위원회도 병행수입에 관련된 고시를 개정하게 되었다. 

상기한 사례에서 살펴보았듯이 외국에서 적법하게 상표가 부착되어 유통되는 진정상품을 제3자가 국내 상표권자 또는 전용사용권자의 허락없이 이루어지는 수입을 허용하고 있는데 이러한 행위를 ‘병행수입’이라고 한다. 

상품출처의 혼동과 품질 오인이 없어야
병행수입이 가능한지 여부의 기본 원칙은 상품출처의 혼동 및 품질 오인이 없어야 하는 데에 있다. 실무적 적용으로 외국상표권자와 국내 상표권자가 동일인인 경우 원칙적으로 제3자는 수입이 가능하다. 

그러나 국내 상표권자 또는 전용사용권자가 물품을 제조, 판매만 하는 경우라면 병행수입은 제한되게 된다. 반대로 외국상표권자와 국내 상표권자가 동일인이 아닌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병행수입을 할 수 없다. 그러나 국내 상표권자 또는 전용사용권자가 진정상품을 수입, 판매만 하는 경우라면 병행수입이 가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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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정당한 지적재산권자의 허락 없이 제3자나 비정규의 루트를 통하여 외국으로부터 진정상품을 국내에 수입하는 것을 병행수입이라 하고, 이를 우리나라를 비롯해 많은 나라에서 합법화하고 있다. 

 

상표권 합의금 장사를 막는 안전장치 설계
그렇지만 자칫 병행수입제도를 악용하여 합의금 장사를 하는 사례가 나올 수 있는 문제가 있다. 다음의 사례를 살펴보자.
중국맥주가 한창 유행일 때가 있었다. 그 중 하나가 하얼빈 맥주이다. 당시 하얼빈 맥주의 중국 상표권자는 한국에 상표권을 등록하지 않은 상태여서 A, B, C, D 등의 여러 병행수입업체가 이 맥주를 수입하고 있는 상태였다. 이때 한국의 어떤 사람이 하얼빈 맥주의 상표(합이빈비주 : Haerbinmcju)를 특허청에 국내 상표권자로 선 등록하고 이 상표권을 적극적으로 보호해 달라고 세관에도 상표권 신고 등록을 하였다. 

이때부터 중국 상표권자와 한국 상표권자는 동일인 관계가 아니므로 하얼빈맥주는 병행수입이 원칙적으로 불가하게 되었다. 이것을 알지 못했던 수입업체 A는 이전과 변함없이 수입을 진행했다. 세관은 국내 상표권자에게 하얼빈 맥주가 국내에 반입되었다는 사실을 통지해 줌과 동시에 통관보류를 시켰다.  

 

수입자 A는 국내 상표권자에게 합의를 요청하였고, 상표권자는 이를 수락하여 통관이 되었다. 상표를 특허청에 선 등록만 하면 권리가 생긴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국내 상표권자는 이를 악용하여 합의금 장사를 하고자 한 것이다. 이 상표권자는 가만히 앉아 하얼빈 맥주가 수입될 때마다 세관이 알려주면 그때마다 합의금을 받아 챙길 요량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후 하얼빈 맥주가 수입될 때에도 동일하게 합의금 장사를 할 수 있었을까? 결과적으로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다. 세상은 누가 봐도 부조리한 이런 상황을 가만 놔두지는 않는다. A, B, C, D는 상표권 등록 전과 같이 자유롭게 병행수입이 가능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국내 상표권자 또는 전용 사용권자가 제3자의 병행 수입을 허락하거나 통관에 한번이라도 동의한 경우 동의한 지정 상품의 경우에는 병행수입 제한을 해제하는 규정이 있기 때문이다. 즉 상품의 출처, 품질의 동일성에 대한 신뢰 보호 이익이 없어지게 됨으로써 악의적으로 상표를 선 등록한 후 합의금 장사를 하는 사례를 방지하여 나라가 이들의 놀이터가 되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해놓은 것이다. 

 

병행수입 허용 vs 병행수입 금지
병행수입은 지재권의 원소유자 또는 원소유자의 허락을 받은 제조업자로부터 나온 제품으로서 적법한 상표를 부착한 진정상품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모조품, 불법복제품, 밀수품 등이 거래되는 암시장(Black Market)과 구별되며 동시에 통상적인 수입유통 경로를 밟아서 아무런 제한 없이 제품이 거래되는 일반시장(White Market)과도 구별된다는 점에서 미국에서는 회색시장(Gray Market)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렇지만 병행수입을 허용하게 되면 상표권자가 품질관리와 보증 기타 A/S의 유지를 위해 많은 노력과 자본을 투자하여 독자적인 영업권(good will)을 형성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품질과 서비스가 열악한 병행수입자의 수입품에 의해 그동안 노력했던 상표권자의 영업권(good will)이 크게 훼손될 우려가 있다. 

뿐만 아니라 지재권자나 독점적 사용권자의 광고, 투자에 무임승차함으로써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결과를 낳게 한다. 게다가 병행 수입품은 실제 정규상품에 비하여 품질 및 서비스가 열악할 뿐만아니라 형식승인의 차이 등 국내 상품기준에 맞지 않을 수 있고, 제조업자의 품질보증 책임에 의해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오산을 소비자에게 줄 가능성이 있다. 병행수입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리의 출발점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를 포함한 많은 국가에서 병행수입을 허용하고 있다. 이것은 지재권자의 보호와 국제적인 자유교역의 실현이라는 이념과의 상충, 각국 지재권 보유현황과 이해관계의 대립 등이 고려된 정책적 결과물의 성격이 강하다. 

즉, 병행수입을 금지하면 독점적인 공급자를 보호는 할 수 있겠으나, 이는 더 큰 대의(大義)인 자유무역원칙을 위반으로 또 다른 무역장벽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큰 문제가 발생한다. 또한 병행수입을 허용하게 되면 다국적 기업의 과대한 시장 독점을 막을 수 있고, 공정거래를 유도함으로써 결국 국내 소비자의 가격부담을 덜어주는 효과를 주게 된다. 국가 경제적으로도 독과점적 다국적 기업의 국제적 가격차별화를 방지하고 가격 경쟁을 활성화하여 물가안정 및 국민 후생증대에 기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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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태진 관세법인한림(인천)

 대표관세사

다시 말해 우리나라에서는 비싸게 판매되는 물품을 상대적으로 싸게 판매하는 나라의 시장에서 제3자가 수입하고, 이를 국내에 판매하게 된다면 소비자는 동일한 품질과 브랜드의 상품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게 된다. 독점적으로 비싸게 팔아 과대수익을 남겼던 상표권자도 경쟁을 위해서는 가격을 인하하게끔 유인하게 되어 결과적으로 소비자는 합리적인 소비를 할 수 있는 선택권이 생기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병행수입을 허용하는 것이 금지하는 것보다 전체 국가 경제의 활성화와 국민인 소비자에게 상대적으로 이로운 결과를 낳게 하여 이를 우리나라는 허용하고 있다. 더 나아가 여러 지원제도를 두어 창업의 아이템 등으로 소개하거나 관세청의 병행수입물품 통관인증제도(병행 수입된 물품이 세관을 통해 적법한 통관절차를 거친 상품임을 소비자가 쉽게 알 수 있도록 통관표지를 부착)를 운용하는 등 이를 활성화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다. 


창업 준비중에 있거나 사업 다각화를 꾀하고 있는 기업 입장에서도 소비되는 물품의 현황을 찬찬히 살펴보고 다른 나라와의 가격 차이가 나는 것은 적극적으로 병행수입을 고려해 보는 것도 새로운 비즈니스로 의미가 있을 듯하다. <글/고태진 관세법인한림(인천) 대표관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