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인3종정보

허민호 “날 찾아준 단 한 명의 취재진에 감격”

작성자
시마대리
작성일
2012-08-29 16:27
조회
2592
2009579267_X7bFJa6W_20120817070104342.jpg
2009579267_qoyk4L0a_20120817070104379.jpg
2009579267_dgyUijC8_20120817070104398.jpg
[일간스포츠 손애성]


"믹스트존을 빠져나오는데 다른 나라 선수들은 모두 인터뷰를 하더군요. 전 그냥 고개 숙이고 걸었죠. 그래도 올림픽인데 한국
취재진이 너무 없어 아쉽더라구요."

허민호(22·서울시청)는 한국 트라이애슬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무대를 밟았다. 런던올림픽에서의
결과는 1시간54분30초로 전체 55명 중 54등. 한 명이 경기 도중 기권했으니 사실상의 꼴찌다. 올림픽에 처음으로 도전하는 종목, 메달
가능성이 없는 선수. 올림픽을 향한 국민들의 뜨거운 관심도 트라이애슬론의 허민호는 비껴 갔다.


그래도 올림픽이 끝나고
한국에서 만난 그는 밝았다. 그는 런던에서 오자마자 전북 부안에서 열린 국내 대회에 참가했다.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국내 대회는 올림픽
코스의 절반이라 할 만했다"며 씩 웃었다. 수영(1.5km)과 사이클(40km), 달리기(10km)를 모두 소화하는 트라이애슬론의 또 다른 말은
'철인 3종 경기'다. 미소 짓는 허민호의 얼굴은 철인이라기 보다는 20대의 순박하고 수줍은 청년이었다.



대회를
뛰고 올 때마다 팀 동료들과 함께 찾는다는 서울 신천의 한 삼겹살 집에서 14일 그를 만났다. 한 달간의 프랑스 전지훈련을 거쳐 런던에 있는
동안, 이 삼겹살과 근처 통닭집의 치킨이 가장 많이 생각났단다. 그는 "이제 바닥 쳤으니 올라갈 일만 남지 않았나. 다음 올림픽을 기대해
달라"며 또 웃었다.

철저히 혼자였던 올림픽. 홀로 찾아온 취재진에 감격

-한국 트라이애슬론 첫 올림피언이었다.


"가기 전엔 당연히 떨리고 가슴이 벅찼다. 축하 연락도 많이 받았다. 모르는 분들에게도 '허민호 선수, 열심히 하세요'하고 문자가
왔다. 한 200통 넘게 받은 것 같다. 일일이 다 '고맙습니다'하고 답해 드렸다. 막상 런던에 가서는 일정이 빡빡해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4일에 도착해 7일에 경기를 했는데, 미리 코스를 파악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했다. 숙소 베란다에 사이클을 고정해 두고 잠깐 잠깐 훈련을
했다 "

-성적에 대한 아쉬움은.

"물론 아쉽다. 수영은 괜찮았는데, 사이클에서 욕심을 내다 페이스를 잃었다.
런던올림픽에 나간 아시아 선수 중에서 1등 하는 게 목표였는데, 예전에 이겨봤던 선수들한테도 져서 속상했다. 그래도 첫 올림픽이니 즐겼다고
생각한다. 이제 바닥 쳤으니 올라갈 일만 남지 않았나."

허민호는 국내 트라이애슬론 1인자 일 뿐 아니라 지난해 아시아선수권에서
3위를 차지한 아시아의 기대주다.


-취재진이 거의 없었다고 들었다.

"경기 끝나고 경기장을 빠져나오려면
반드시 믹스트존을 지나가야 한다. 방송 카메라 등 다른 나라에서 온 취재진이 죽 늘어서 있었다. 다들 가다 말고 서서 인터뷰를 했다. 취재진 중
한국 사람은 안 보였다. 빨리 지나가고 싶은 마음에 좁은 사이를 비집고 걷는데 그 길이 참 길게 느껴지더라. '그래도 올림픽인데 이렇게도 관심이
없나' 싶어 서글프기도 했다. 그런데 다 빠져나갈 때쯤 누군가 '허민호 선수'하고 불렀다. 딱 한 곳에서 나를 보러 왔는데 얼마나 반갑고
고마운지 안아주고 싶었다."

허민호는 올림픽 전 한 달 간의 프랑스 전지훈련부터 런던올림픽까지 쭉 혼자였다. 출전 선수가 혼자이다
보니 어쩔 수 없었지만, 그는 고된 훈련보다 외로움과 싸우는 게 더 힘들었다고 했다. 허민호는 올림픽 선수촌 방도 다른 종목 감독과 함께 썼다.


-관심을 많이 받는 다른 종목 선수들을 보며 부럽기도 했겠다.

"사실 그럴 겨를도 없었다. 워낙 짧게
다녀와서(웃음). 한국 선수들보다 미국 농구 드림팀을 보니 정말 신기했다. 코비 브라이언트, 르브론 제임스 등 그들이 선수촌 식당에 들어가면
난리가 났다. 모든 선수들이 달려가 사진 찍자고 해서 밥 먹을 새도 없더라. 그뿐 아니다. 체조나 높이뛰기 하는 러시아의 늘씬한 금발 미녀
선수들이 NBA 선수들 주변에 끊이지 않았다."

그는 "NBA선수들이 여자 선수들한텐 친절한데 남자 선수들한텐 짜증을 내더라"며
자신도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려다 그냥 뒷모습만 찍었다고 쑥스러워 했다.


손애성 기자 iveria@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