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이애슬론 대회 훑어보기 1

1.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하지 않는다.

새벽 5시, 졸음이 가시지 못한 눈을 비비며 일어난다. 매번 그렇지만 대회를 위해 전날밤 일찍 누워보지만 긴장감 때문에 쉽게 잠들 수 없다. 잠만 더 편하게 잔다면 좋은 컨디션으로 대회에 임할 수 있을텐데라는 핑계거리를 만들어본다. 창문을 열어 시원한 공기로 졸음을 몰아내고, 굳어진 몸이 조금이라도 풀어지게 스트레칭을 한다. 아침햇살이 창문을 통해 조금씩 들어오고 있었다. 초여름이라 새벽이 주는 쌀쌀함에 긴 팔 옷을 꺼내 입어야 한다.

일어나서 제일 먼저 해야되는 것은 장비점검이다. 수영에서부터 사이클, 마라톤까지 준비해야되는 장비가 제법 되다보니 세심하게 보지 않으면 놓쳐 버리기 쉽다. 경기 중 작은 장비가 없어지거나 장애가 발생하면 심리적인 긴장감이 무너져 대회를 망쳐 버리게 된다. 그래서 장비 점검은 세심하게 해주어야 한다.

장비점검과 함께 중요한 것은 바로 몸과 마음이다. 심리적으로 안정되어야 하고, 적당한 영양소로 충전되어 있어야한다. 그래서 아침은 따뜻한 국과 쌀밥으로 가볍게 먹어두어 허기를 느끼지 않도록 해준다. 보통 대회시작 3시간전에 먹어두어 충분히 소화가 되도록 한다.

대회는 신나는 문화이며 놀이공간이다. 꾸준히 준비해온 것들을 보여주고, 또 스피드와 등수에서 짜릿함을 느끼고, 고통의 순간들 속에서는 나약한 자신과의 끈임없는 싸움이 되는 그 무대가 바로 대회장이다.


출발대기장소인 해수욕장으로 가는길에 다소 구름 낀 하늘을 쳐다본다. 이렇게 바람이 많이 불고 기온이 낮은 것을 보면 수영코스가 쉽지 않을 것 같다. 대회에 대한 걱정과 여러 주위환경을 체크해가며 오늘의 전략을 머릿속에 나름대로 잘 구상해본다. 코스 하나하나 그냥 보고 지나치지 않고 세심하게 관찰하며 둘러보는 것이 안전이나 기록을 위해 중요하기 때문이다.

대회장 주변은 전국에서 모여든 철인과 그들의 장비로 가득하다. 응원나온 사람들의 함성소리와 교통 통제를 하고 있는 경찰 그리고 관계자 분들로 인해 분위기는 한껏 고조된다. 바꿈터 여기저기에서는 가볍게 몸을 풀고 있는 선수들의 모습도 보인다. 이제 대회 출발 시간이 점점 다가옴을 보여준다. 동시에 나의 심장 박동도 조금씩 빨라지며 대회에 대한 기대로인해 작은 전율이 온몸에 퍼졌나간다.




2. 철인의 세계로 빠져드는 그 순간


팔둑과 다리에 선수번호를 쓰는 바디마킹이 끝나면 대회준비는 끝이다. 몇분뒤면 바로 눈앞에 보이는 넓은 바다에 수백명의 철인들이 뛰어들어 힘찬 물보라를 일으키게 된다. 수백명의 사람들이 바다를 가르며 나아가는 모습은 보는 이로하여금 도전을 주기에 충분하다.

밀려오는 파도로부터 두 세걸음 떨어진 곳에 스타트라인이 설치되고, 그곳에서 곧 울릴 총성을 기다리며 굳어지려는 몸을 풀어준다. 이때쯤이면 근육들은 나의 통제를 벗어나기 시작하여 앞으로 시작될 험난한 여정에 적응하려고 스스로를 가다듬는 것 같다. 여기저기서 자신감을 넣어주기 위한 응원소리가 들려온다.

출발을 알리는 날카롭고 긴 혼(horn)이 울린다!!!

그 소리를 뒤로한채 세상과는 철저히 격리된 철인의 세계로 빠져든다. 시끌벅적하던 모든 소리는 차단 되어버리고 오로지 하얗게 일어나는 물보라 소리, 그리고 나 자신과 끊임없이 주고받는 대화밖에 들리지 않는다. ‘나는 왜 이 길을 선택하였는가??’




나쁜 기상상태로 인해 바다는 2미터가 넘는 높은 파도와 차가운 수온으로 우리를 삼켜 버렸다. 이런 바다는 세상과의 격리감을 더욱 절실하게 느끼도록 한다. 파도와 물보라로 인해 제한된 호흡, 한치앞도 보이지 않는 수면아래 그리고 차가운 수온은 잠깐동안 정신을 잃게 할 정도다.

3. 파도에 몸을 싣고


수영은 가장 자신있는 종목이다. 스피드를 내어 선두 그룹을 따라간다. 몇백명의 선수가 한꺼번에 뛰어든 바다는 팔다리 제대로 뻗을 곳이 없다. 자신의 공간을 확보하지 못하면 눌려지거나 발에 차여버린다. 자연에 대한 도전과 다른 선수들과의 경쟁, 그리고 편해지고자 하는 자기 욕망과의 싸움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곳 같다. 그래서 처음 참가하는 이들에게 수영은 쉽지가 않다. ‘그래 세상에 쉬운 일이 얼마나 있을까?’

코스 중반을 돌면서 중상위권 선두로 나간다. 파도에 따라 위아래로 정신없이 요동치고 발이 허공에 떠있기도 하고 손이 헛돌때도 있다. 그러나 물보라를 일으키며 부지런히 파도를 저어 나아간다. 중후반부터는 페이스를 찾아 편안하게 경기를 이끌어 나간다. 삼각형 코스를 두바퀴 도는 수영은 나갈 때는 파도로 인해 많이 힘들지만 돌아올때는 큰 벽이었던 파도가 오히려 도움이 되어 편하게 올 수 있다. 몰려오는 파도에 몸을 실은 뒤 킥과 스트록을 해주면 제법 빠른 스피드로 돌아올 수 있다.

파도가 몰려올때는 발부터 위로 치솟아 몸이 앞으로 숙여진다. 모래사장에 왔을 때 파도에 잘못 휩쓸리면 머리가 모래바닥에 묻혀버릴 수도 있다. 바다수영에서는 수영장과 달리 레인이 없어 코스를 자신이 체크해가며 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엉뚱한 곳으로 가거나 주어진 거리를 훨씬 넘게 돌아 체력손실 있다.

잠깐 취하는 호흡시간동안 내가 나가는 방향을 체크한다. 백사장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 검푸른 바다에서도 곧 벗어난다. ‘이제 하나를 끝내는 구나.’라며 모래사장에 발을 딛고 일어서려는 순간 뒤에서 몰려온 파도에 꼬꾸라진다. 이건 또 무슨 수난인가. 짜디짠 바다와 모래가 입안과 콧속으로 들어왔다.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려는데 또 파도가 밀려온다. 잔뜩 물을 먹고서야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물밖으로 나오자 부력으로 중력을 받지 않던 팔과 다리가 갑자기 무거워진다. 함께 온 반가운 이들이 큰 소리로 응원해준다. 그들에게 가볍게 웃으며 바꿈터로 뛰어가지만 속은 쓰리고 호흡은 가빠 괴롭다. 모래사장을 달리는 것은 왜 그렇게 어려운지….





4. 스피드에서 오는 짜릿함

샤워를 가볍게 할 수 있는 곳을 통과하며 정신을 차려본다. 가쁜숨을 고를새도 없이 헬맷과 번호표를 착용하고 사이클을 끌며 바꿈터 밖으러 뛰어나간다. 바꿈터를 벗어나며 사이클에 올라탄다. 그런데 사이클 화가 클립이랑 제대로 끼워지지 않아 허둥지둥 거렸다. 다행히 찰칵거리는 소리와 함께 고정된 페달에 힘이 실어짐을 느낀다.

늦게나마 물통을 꺼내 바닷물과 모래의 습격을 받은 입안과 목구멍을 헹구어 낸다. 몇번이나 물을 마시고 마시지만 목안의 따가움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 것 같다. 사이클 초반 코스가 내리막이라 스피드를 높이는데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 지는것 같다. 체내 혈액순환이 제대로 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할수없이 속도를 조금 줄이고 몸을 가다듬는다.

사이클과의 교감은 대회를 치루는데 있어 매우 중요하다. 작은 떨림 하나까지도 감지하여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체크해 주어야 한다. 근력뿐 아니라 기계 요소들과의 조화까지 필요한 부분이 바로 사이클이다.

대부분의 철인들이 사이클을 마련하는데 많은 비용과 노력을 들인다. 나에게 있어서도 사이클은 소중한 소유물중 하나이다. 첫 만남때 회색 프레임이 주는 묵직한 느낌은 생명력을 실어 스피드를 낼 때 신뢰감으로 돌아왔다. 엠티비가 남성스럽다면 사이클은 여성스러운 느낌을 많이 준다. 그러나 내 사이클은 남성다운 면모가 물씬 풍기는 것 같다.

보급소에서 바나나를 하나 받아든다. 사이클 초반에 수분과 에너지를 공급해주기로 작전을 세웠기 때문이다. 몇시간씩 걸리는 대회에서 수분과 에너지는 선수가 조절해야될 많은 요소 중 하나이다. 바나나로 허기를 채우며 잠깐 고개를 돌려 자연을 둘러본다. 대회가 치뤄지는 곳이 대부분 관광지여서 아름답고 예쁜 곳들이 많다. 촌음을 다투는 때이지만 그 속에서 잠깐씩 느끼는 여유와 자연에 대한 감상은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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