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익리포트 스포츠이벤트 '섹시女’가 점령한 프로야구, 애들은 가라?

‘섹시女’가 점령한 프로야구, 애들은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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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630. 전국 4군데 야구장에서 프로야구 경기가 시작되는 시간이다. 매일 이 시간이 되면 홈팀 선발투수보다도 먼저 마운드에 오르는 사람이 있다. 바로 그날의 시구를 맡은 인기 스타. 홈 구단 측에서 섭외한 시구자는 대개는 연예인, 그것도 십중팔구 여자 연예인이다. 홈팀의 모자와 저지에 핫팬츠를 걸친 시구자들은 시구 연습하는 과정부터 눈길을 끈다. 홈팀 투수(대부분 총각이다)에게 일대일로 투구폼을 배우는 장면, 마운드에서 보여주는 행동, 공을 잘 던졌는지 못 던졌는지, 시구하고 난 뒤 관중석에서 관전하는 모습까지 하나하나가 화보다. 때로는 마스코트와 함께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한다. 퍼포먼스는 마스코트 볼에 뽀뽀를 하거나, 포옹을 하거나, 사랑싸움을 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시구쇼가 지나가고 나면 경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제는 관중석의 치어리딩 팀이 시선을 한 몸에 받을 차례다. 치어리더 중에는 여자 연예인과 닮았다고 홍보되는 이도 있고, 그 대항마로 거론되는 또 다른 여신도 있다. 복장은 늘 몸매가 강조되는 탑과 짧은 치마, 안무는 섹시함이 돋보이는 현란한 댄스다. 스포츠 치어리딩 본연의 목적인 건강미나 즐거운 활력, 일사불란하게 잘 짜여진 응원 동작은 어디로 갔나 싶지만 아무튼 남성 관객들은 환호작약한다. 오늘은 ‘00000’ 치어리더가 포털 화면을 크게 장식했으니, 내일은 ‘00 여신이 스포츠면 메인에 뜰 차례다. 인기 좋은 치어리더의 사진은 이승엽이나 박찬호 기사보다도 더 메인에 자주 걸린다. 노출 빈도로 따지면 닮았다는 여자 연예인보다도 오히려 낫다.

응원단이 주목을 받는 사이 그라운드 위에서는 헬멧을 쓴 배트걸과 볼걸이 이리저리 바쁘게 뛴다. 주로 외모와 몸매가 특출한 젊은 여성들이 배트걸로 선발된다. 무더운 날씨 때문인지 배꼽이 훤히 드러나는 상의에 아찔한 핫팬츠 차림으로 선수들 사이를 쉴새 없이 오간다. 바닥에 떨어진 배트를 주워오는 일에 하필 왜 미모의 여성이 필요한지, 시원한 복장은 누구를 위해 필요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그 중 몇몇은 이미 스타덤에 올랐다. 어떤 매체에서는 배트걸이 경기 중 보이는 행동이나 표정 하나하나를 뒤쫓아서 기사화하기도 한다(정작 경기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관심 밖이다).

경기가 끝나고 나면 이제는 단아한 차림의 아나운서 여신들이 등장할 차례다. 먼저 나오는 여신들은 그날의 수훈선수나 이긴 팀 감독과 이야기를 나눈다. 질문의 밀도를 봐서는 스튜디오에 있는 캐스터와 해설자가 직접 인터뷰를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을 때가 많지만, ‘종범신이니 양신이니 신들이 많은 야구장이라 여신도 있어야 하는 모양이다. 인터뷰가 끝나면 화면은 스튜디오로 옮겨가고, 여신 가운데서도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여신들이 등장해 그날 벌어진 야구 경기를 총정리한다. 야구는 남자들이 하는 스포츠라지만, 경기 시작을 알리는 것은 여자 연예인이고 끝난 야구를 정리하는 것은 여성 방송인이다. 프로야구의 시작과 끝이 여성들의 손에 맡겨져 있는 셈이다.

누구의 시선인가

물론 그라운드에 부는 여풍(女風)’에는 긍정적인 측면이 많이 있다. 가령 인기 연예인의 시구는 한국 프로야구 고유의 볼거리가 된 지 오래다. 주한 외국인 중에는 한국 야구장 특유의 응원 문화가 좋아서 프로야구 경기장을 찾는다는 사람도 꽤나 된다. 그리고 스포츠 전문 여성 캐스터들은 다소 딱딱할 수 있는 프로그램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드는 것은 물론, 대중들이 야구에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게 돕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다년간의 경험을 통해 탁월한 전문성을 보여주는 여성 캐스터도 상당수다. 무엇보다 야구장에 여성 팬 비율이 급증하면서 야구장 내 폭력사태나 욕설 같은 부정적인 응원 문화가 많이 줄어들었다는 건 고무적인 변화다.

사실 야구장을 점령한 여성들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문제는 그들을 소비하는 주체가 누구인지, 그리고 야구에서 여성들이 소비되는 방식에 있다. 시구자 선정만 해도 의문이 들 때가 많다. 왜 시구자는 언제나 젊은’ ‘여성연예인이어야 하는가? 선수들이나 관중들이 좋아해서? 하지만 시구자들의 목록을 보면 누구나 알 만한 스타가 아닌, 데뷔를 앞둔 신인이나 검색해서 찾아봐야 누군지 겨우 알까말까한 이가 등장할 때도 많다. 다분히 야구 인기에 편승한 홍보용시구라고밖에는 생각되지 않는다. 게다가 그렇게 나와서 마스코트와 한다는 게 항상 뽀뽀 아니면 포옹이다. 야구장을 찾은 연예인과 마스코트가 할 수 있는 퍼포먼스라면 유사애정행각이 아니더라도 셀 수 없이 많을텐데, 굳이 낯뜨거운 장면을 연출해서 얻는 게 무엇일까?

응원단 역시 마찬가지. 물론 응원단 중에는 경기장에 활기를 불어넣고 응원을 유도하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한 이들도 많이 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응원단의 한 두 명이 스타가 되면서 묘한 방향으로 경쟁이 불이 붙었다. 누가 더 노출이 있는 의상을 입고 나오는지, 어느 팀 응원단이 더 섹시한 춤을 추는지 서로 경쟁하는 듯하다. 어떤 치어리딩 팀의 의상과 안무는 너무 수위가 높아서 여기가 야구장인지 강남 클럽인지 헷갈릴 정도다. 응원단이 존재하는 본래의 목적은 섹시댄스 경연이나 노출 경쟁이 아니다. 야하기보다는 밝고 건강하고 상큼하고 발랄하게, 개인플레이보다는 하나의 으로 호흡을 맞춰 움직이는 게 치어리딩의 본모습이다. 성인 남성은 물론 여성이나 어린이들도 전혀 거북함이나 민망함 없이 함께 즐길 수 있어야 제대로 된 치어리딩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요즘 같은 때에 그런 식의 건전한응원을 해갖고는 스포츠면의 한 귀퉁이도 장식하기 어렵다.

그 외에도 야구장에서 여성들이 소비되는 양상을 보면 하나같이 섹시미모’, ‘여신과 같은 코드에 맞춰져 있다. 그래서 야구중계 중간중간 화면에 비춰주는 관중은 거의 언제나 미모의 여성 관중이다. 배트걸은 일하기 불편한 하의실종패션으로 먼 거리를 뛰어와서 쪼그려 앉는 동작을 수십 차례 연출한다. 미국 야구에도 배트걸은 있지만, 배꼽티와 핫팬츠를 입고 눈요기를 제공하는 사례는 전혀 없다. 수수한 반바지나 츄리닝 차림으로 경기 진행을 돕는 역할에만 치중한다. 한국의 배트걸들은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경기 진행 보조가 주목적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또한 여성 아나운서들은 그들이 지닌 방송인으로서의 전문성이나 야구에 대한 애정보다는 외모와 그날의 패션에 초점이 맞춰진다. 이 때문에 정작 뛰어난 실력을 갖춘 방송인이 외모 때문에 손해를 보는 경우도 생긴다. 어떤 방송국은 아예 시작부터 야구 전문가인 스타 출신 해설위원들보다는 여신아나운서들을 전면에 내세웠다. 노골적인 여신 마케팅이다.

이런 사례들은 프로야구라는 컨텐츠가 철저하게 성인 남성을 주요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다시 말해 야구장을 찾고 야구중계와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을 보며 포털 사이트의 야구 코너를 방문하는 이들 대부분을 성인 남성으로 상정하고, 그들이 바라보는 시선을 기준으로 컨텐츠를 생산하고 있다는 얘기다. 아마도 여기에는 컨텐츠를 만드는 사람들 역시 대부분 성인 남성이라는 점도 관계가 있을 것이다. 시구하러 온 여자 연예인과 아나운서 여신에 열광하고, 치어리더와 배트걸 사진이 실린 기사를 열심히 클릭하는 건 남자들의 행동 패턴이다. 좋게 말해서 남성 대상의 컨텐츠 생산이지, 까놓고 이야기하면 성상품화라고 해도 할 말이 없는 행태다.

문제는 이런 남성 위주의 야구장 풍경 속에 날로 급증하는 여성 팬이나 미래의 고객인 어린이 팬을 위한 자리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야구장은 성인 남성들만을 위해 존재하는 공간이 아니다. 여성 관중도 이제는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 관중도 상당수다. 미국의 경우만 봐도 야구장은 철저하게 가족과 어린이 관중 위주의 건전한분위기를 지켜 나가고 있다. 거기에는 성인 남자들이나 보고 환호할 섹시 댄스나 눈요기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 여 아나운서의 볼륨감 넘치는 의상이 에이스 투수 소식보다 앞자리에 놓이는 일도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 프로야구는 반대로 가고 있다. 당장의 상업적인 이익과 클릭수를 위해 섹시를 내세운 구경거리가 끊임없이 늘어난다. 치어리더 노출과 마스코트와 시구녀의 스킨십이 야구 자체보다도 더 비중 있게 다뤄진다. ‘여성시구자와 여성아나운서 등 온통 여성을 부각하는 성차별적이고 선정적인 마케팅이 난무한다(이는 최근 언론이 보여주는 지하철 XX식의 보도행태의 연장선상에 있다). 선정성 경쟁을 부추기는 언론과, 이에 편승하는 프로야구 일부 구단들의 합작품이다. 대놓고 말로 하지 않는다 뿐이지, ‘애들은 가라고 떠미는 것이나 다름없는 행태인 셈이다.

어린이와 가족 중심의 마산야구장

1982년 출범 당시 프로야구는 어린이에게 꿈을. 젊은이에게 낭만을. 국민에겐 건전한 여가 선용을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다. 31년의 세월이 지난 현재, 애초의 목표에 가장 잘 부합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팀은 (아이러니하게도) 신생 구단인 NC 다이노스다. NC의 홈인 창원 마산구장에는 섹시한 시구녀나 몸매를 부각하는 의상을 입은 응원단, 하의실종 배트걸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 마산구장에는 경기 진행을 도와주는 창원지역 어린이들, 그리고 어린이와 가족 단위 관중을 위한 다양한 이벤트가 매주 주말마다 마련되어 있다. 치어리딩 팀이 있지만 노출이 지나친 의상이나 선정적인 안무는 피한다. 대신 누구나 쉽게 따라할 수 있는 안무와, 관중들이 다 같이 함께할 수 있는 쉽고 재미있는 응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NC어린이가족 중심전략은 주말 경기에서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다. 일단 경기 시작 전에는 그라운드에서 사전에 신청한 일반 팬들이 캐치볼을 할 기회가 주어진다. 경기 시작 선언은 미리 선정된 연고지역 초등학생이나 장애인 등이 맡아서 한다. 선수 소개 역시 주말에는 어린이 팬이 도맡는다. 심판에게 공을 가져다주는 일이나 배트보이 역시 지역 어린이 팬들의 몫이다. 클리닝 타임에는 거액을 들여 마련한 대형 공룡 인형이 등장해서 관중들을 즐겁게 하고, 어린이들과 함께 하는 율동과 응원이 거의 매 이닝이 끝날 때마다 준비된다. 그리고 경기가 다 끝나고 난 뒤에는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그라운드로 내려와 누가 빨리 베이스를 도는지 경주하는 이벤트도 있다. 경기의 시작부터 끝까지 야구장에서 벌어지는 모든 팬서비스가 아이들과 가족을 대상으로 삼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산구장 주말 경기를 앞두고 경기 시작 선언을 하고 있는 창원시 천광학교 학생들. (사진=배지헌)

야구장 방문 경험을 그린 어린이 회원들의 작품이 5회초가 끝난 뒤에 전광판을 통해 송출된다. (사진=배지헌)

어린이날을 맞아 야구장에 등장한 대형 공룡이 마산구장을 찾은 팬들을 즐겁게 했다. (사진=배지헌)

주말 경기가 끝난 뒤에는 그라운드에서 베이스 돌기 체험행사가 열린다. (사진=배지헌)

철제 난간 끝에 고무로 된 보호장치가 새롭게 추가됐다. 어린이들이 급하게 계단을 오르려다 난간 끝에 부딪혀서 다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설치됐다. 작은 시설 하나에도 어린이들을 위한 세심한 배려가 돋보인다. (사진=배지헌)

그럼 그 사이 성인 관객들은? 관중석 전체에 걸쳐 마련된 테이블에 먹을 것을 펼쳐놓고, 각자 열심히 야구 경기를 관전한다. 퓨처스리그 경기지만 게임에 대한 몰입도나 응원단의 호응은 1군 경기 못지않다. 몇몇 관중들에게 물어보니 미국 야구장 같은 분위기라서 조금 생소하지만 색다른 매력이 있다”, “아이들과 함께 주말마다 건전하게 즐길 수 있는 곳이 생겨서 좋다며 환영하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섹시 마케팅 없이도 얼마든지 야구장이 팬들의 사랑을 받는 즐거운 공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적어도 마케팅 하나만 놓고 보면, 30년 넘는 역사를 지닌 기존 팀들보다 막내 NC가 훨씬 깨끗하고 신선하며 미래 지향적이다. 지금의 어린이 팬이 자라서 장차 프로야구를 먹여 살리는 고객이 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NC는 시작부터 미래의 고객을 염두에 둔 구단 운영을 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리그 수준을 핑계로 신생구단 창단에는 몽니를 부리면서, 도 넘은 섹시 마케팅으로 프로야구 수준 저하에 앞장서는 일부 구단이 NC를 반만이라도 닮았으면 한다. 어린이와 함께 가족이 즐기기에 망설여지는 것이라면, 무엇이 되었든 이제는 야구장에서 사라져야 할 때가 되었다.

부연: 왜 꼭 야구장에 부는 여풍이 배꼽티나 핫팬츠를 입은 미모의 여신들에 국한되는지 모르겠다. 지금도 전국에는 30여개 팀에서 활동하고 있는 500여명의 여자야구 선수들이 있고, 야구 관련 단체나 프로 구단 소속으로 부지런히 일하는 직원들이 있다. 미국의 경우 다저스 단장 후보까지 거론됐던 킴 응(Kim Ng)처럼 야구계 고위층에 속한 여성들도 존재한다. 야구장에 여성이 있을 자리가 단지 응원석에만 존재한다는 생각은 편견이다.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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