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여기 웬일이냐?” “점심 먹으러 왔죠. 어머니가 해준 ‘뜨신’ 밥.” 어머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제까지 서울에 있던 아들 녀석이 자전거를 타고 강원도 둔내골에 나타난 것이다. 서울에서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까지의 거리는 125km. “아침 6시에 출발하면 고향집까지 4시간 정도 걸려요. 처음엔 어머니도 ‘아 거기가 어딘데 자전거를 타고 오냐’고 하시더니 요샌 밥상 차려준 다음에 ‘먹고 가거라’ 그러고 밭일 하러 나가세요.”매주 한 번씩 점심 한끼를 먹기 위해 서울서 횡성까지 자전거로 왕복한다는 ‘아시아의 철인’ 박병훈씨(37). 그는 한국을 대표하는 ‘철인3종(트라이애슬론)’ 선수다. 2001년 철인3종에 입문한 이후 국내외 대회에서 한국신기록 행진을 이어왔다. 철인3종엔 2가지 종류가 있다. ‘올림픽코스’와 ‘킹 코스’다. 올림픽코스는 수영 1.5km→사이클 40km→마라톤 10km 등 총 51.5km를 뛴다. 킹 코스는 수영 3.8km→사이클 180.2km→마라톤 42.195km로 총 226.195km를 달려야 한다. 박씨는 아시아에서 ‘킹 코스’의 지존으로 통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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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다녀와서 소먹이 한 지게씩 해 놔야 나가서 친구들이랑 놀 수 있었어요. 시골이다 보니까 산에서 늘 뛰어다닌 게 운동에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아요.”
대학교 1학년 때 그의 몸무게는 50kg이었다. 1m73의 키에 50kg이니 뼈만 앙상했다.
”시골에서 참 못 먹고 자랐어요. 중고등학교 땐 육상부 애들이 각자 집에서 먹을 걸 가져왔는데 가끔 서로 안 가져올 때도 있었죠. 그럼 다같이 며칠 굶는 거에요. 1990년에 대학에 입학했는데 어느날 중국집을 가더라고요. 애들이 탕수육을 시켜서 처음 먹어보고 ‘맛있네. 이게 뭐야’라고 했다가 외계인 취급을 받았어요. 에티오피아 난민이 따로 없었죠.”
졸업 때가 되서야 몸무게가 정상인 64kg이 됐다. 박씨는 지금도 고향 선후배를 만나면 이런 넋두리를 한다.
”우리가 그때 조금만 더 잘 먹고 운동을 했으면 더 좋은 기록이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황영조 이봉주랑 동갑내기인데 전문 코치 밑에서 배웠으면 어땠을까라는 상상이죠. 사실 철인 3종도 코치 밑에서 배운 게 아니라 혼자 시행착오 겪으면서 한 거니까요.”
▶해외에서 더 유명한 무쇠 다리
2001년 처음 철인3종대회를 뛸 때는 경기용 자전거도 없었다. 집에 있는 MTB용(산악용) 자전거를 타고 나갔다. 수영도 제대로 배운 게 아니었다. 뒤처진 건 마라톤에서 따라잡았다.
일본의 철인3종 팬들 사이에서 박병훈은 유명인사다. 2007년 일본에서 열린 IM 재팬 대회에서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이미 세계 정상급 선수들과 기록면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30대 후반의 나이지만 기록도 계속 향상되고 있다.
”지난해보다 기록이 15분 정도 빨라졌어요. 지난달 플로리다 아이언맨 대회에선 8시간27분이 나왔죠. 아시아기록이에요. 4년 전 이 대회에서 8시간59초를 기록했으니까, 4년 만에 30분을 단축한 겁니다.” 외국 선수들은 그를 ‘피융 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처음엔 이름 가운데 글자인 ‘병’을 영어로 ‘피융(Pyung)’이라고 읽는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하도 빨라서 같은 프로 선수인데도 박씨가 옆에서 추월하는 걸 보면 ‘피융’하고 총알처럼 지나간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다.
▶’세계 No.1’을 향한 마지막 도전
세계의 철인들이 가장 선망하는 대회가 있다. 바로 ‘하와이 대회’다. 박씨는 매년 출전 티켓을 땄지만 정작 본대회에는 참가하지 못했다. 하와이 대회 일정이 국내 전국체전과 겹쳤기 때문이다.
”체전은 안 뛸 수가 없었어요. 먹고 살기 위해 뛰는 거죠. 소속팀(지자체)에서 연봉이 나오니까. 제가 이제 한국 나이로 서른여덟이에요. 더이상 늦어지면 후회를 많이 하겠죠. 운동은 시기가 정해져 있잖아요. 하와이에서 제 기량을 마음껏 펼치고 싶습니다. 하와이 갈 경비를 모으기 위해 가게를 하나 오픈했어요. 대회 준비하려면 1년 경비가 거의 3000만원 정도 들거든요.”
하와이 대회의 최고 기록은 8시간4분대다. 벨기에 출신의 챔피언 룩벤리더가 세운 기록이다. 박씨의 최고기록과는 23분 정도 차이가 난다.
박씨는 하와이 대회를 향해 맹훈련 중이다. “철인3종은 훈련 자체가 지옥이에요. 연습 중엔 ‘내가 이걸 헉헉대면서 왜 하고 있나’ 그런 생각도 드는데, 오히려 대회 나가면 행복합니다. 그 성취감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죠.”
< 권영한 기자 scblog.chosun.com/champano >
▶1990년 강원도 둔내고등학교 졸업 ▶1994년 한국체육대 체육학과 졸업 ▶2002년 철인3종 아카데미 ‘아이언스타‘ 설립 ▶2003년 한국체육대 사회체육대학원 생활체육과 졸업 ▶2003년 아이언맨 세계선수권대회 9시간59분25초로 국내 최초 10 언더(under) 수립 ▶2006년 제22회 전일본트라이애슬론대회 종합우승 ▶2007년 아이언맨 재팬 우승. 8시간46분32초 한국최고기록 수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