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인3종대익리포트떠오르는 인간새, 임은지

떠오르는 인간새, 임은지

-

- Advertisment -spot_img


그는 지난해 10월 22일 자신의 미니홈피에 이렇게 기록했다. 내·인·생·최·고·의·날-.

그날 그는 부슬비 내리는 광주 월드컵경기장에 있었다. 그날 제1회 한국그랑프리육상대회가 열렸다. 다소 쌀쌀한 데다 트랙까지 젖어 어렵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는 가뿐히 3m90㎝를 넘었다. 한 달 전 전국체전에서 3m80㎝에 도전했다가 실격했던 그는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다. 남은 선수는 그와 최윤희(23·원광대) 둘뿐. 나란히 4m를 통과했다. 바는 다시 10㎝ 높아졌다. 최윤희가 세 번의 시기를 모두 실패, 4m의 최종 기록을 받아 들었다. 그는 편안한 마음으로 공중에 뛰어올랐다. 스스로도 도약과 공중 동작이 매끄러웠다고 느꼈다. 바 위에서 몸을 트는 순간 아무런 촉감이 없었다. 매트리스에 내려앉자 장내 아나운서의 흥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자 장대높이뛰기의 1인자가 바뀌었습니다. ‘샛별’이 ‘한국의 미녀새’를 넘어섰습니다.”

장내 아나운서가 ‘샛별’이라고 부른 그는 임은지(20·부산연제구청)다. 그가 넘어선 ‘한국의 미녀새’는 이 종목 한국기록(4m17㎝) 보유자 최윤희다.

‘마린보이’ 박태환(단국대)도, ‘피겨요정’ 김연아(군포수리고)도 처음에는 ‘샛별’이었다. 그들은 한 단계씩 진화를 거듭해 늘 빛을 잃지 않는 ‘붙박이별’이 됐다. 임은지도 이제 막 진화의 첫 단계를 밟았다. 그날 광주 하늘에 울려 퍼진 그 이름. 2009년 올해 한국 스포츠계가 주목하고 있다.

필드를 점령한 여자 장대높이뛰기
장대높이뛰기는 ‘인간의 원초적 능력’을 겨루는 육상에서 기구의 도움을 받는 유일한 종목이다. 도움닫기의 운동에너지를 봉(pole)을 통해 위치에너지로 전환, 맨몸으로는 불가능한 높이를 넘어선다. 그래서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대개의 육상 종목과 달리 장대높이뛰기를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는’ 종목이라 부른다.

남자 장대높이뛰기는 1896년 아테네 올림픽부터 정식 종목이었다. 여자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야 정식 종목이 됐다.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정식 종목이 된 것도 그보다 불과 1년 전인 99년 세비야 대회부터다. 남자보다 100년 이상 뒤늦은 것이다. 역사는 이제 10년을 갓 넘었지만 인기만큼은 남자를 능가한다.

한국 여자 장대높이뛰기는 2001년 당시 금성여중 3학년생 최윤희가 등장하면서 관심의 조명을 받았다. 최윤희는 지난해 전국체전까지 17차례나 한국기록을 갈아치웠다. 불멸일 것 같았던 최윤희의 아성도 임은지가 등장하면서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마치 ‘여자 붑카’로 불렸던 올림픽 초대 챔피언 스테이시 드래길라(미국)가 스베틀라나 페오파노바(러시아)에게 왕좌를 내줬고, 그 자리를 지금은 이신바예바가 차지하고 있는 것처럼.

174cm 최적 신체조건 갖춰
임은지는 평소 잘 웃는 ‘명랑소녀’다. 무남독녀인 그는 어려움 없이 넉넉하게 자라 구김살이 없다. 게다가 어릴 때 시작한 운동이 그를 더욱 긍정적인 성격으로 만들었다. 그가 처음 시작한 운동은 태권도. 네 살 때부터 도장에 나간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 공인 4단이었다. 게다가 키(당시 1m65㎝)도 커서 또래보다 머리 하나가 더 있었다. 평소 훈련 때도 그의 상대는 오빠들이었다. 4학년 때는 학년을 속이고 5학년 대회에 나갔지만 적수가 없을 정도였다.

태권도를 그만두고 육상에 입문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그가 다니던 초등학교(부산 연천초)에서 시 차원의 육상 신인 발굴대회가 열렸다. 반에서 좀 뛴다는 아이들이 다 나오는 자리에 그가 빠질 수 없었다. 100m 결승에서 만화 캐릭터가 그려진 운동화를 신고 뛴 그는 스파이크를 신고 뛴 육상부원을 따돌리고 1등을 했다. 시작은 높이뛰기와 100m허들이었지만 고교 시절 세단뛰기와 7종경기를 거쳐 지난해 장대높이뛰기에 입문했다.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3m를 성공한 뒤 감격했던 임은지는 8월 전국실업단대항대회에서 4m를 넘었다. 최윤희의 경우 4m를 넘기까지 6년이 걸렸지만 그에게는 5개월로 충분했다.

임은지에게 “장대높이뛰기 선수로서 자신의 장점이 뭔지” 물었다. 그는 “일단 키가 이신바예바와 같은 1m74㎝다. 장대높이뛰기에서 스피드·힘·배와 허리의 근력이 중요한데 다 자신 있다”고 대답했다. 장대높이뛰기를 전공한 유덕수 한국체대 교수는 그의 최대 장점으로 “남자 선수를 연상시키는 스피드”를 꼽았다. 12초대인 100m 실력과 7종경기 선수 출신답게 도약과 투척으로 다져진 근육까지 장대높이뛰기를 위한 모든 조건을 갖췄다.

눈은 높은 곳으로, 발은 낮은 곳에서
4m의 세상은 그전과 달랐다. 지난해 처음 국가대표로 뽑힌 임은지는 9월 대구 국제육상대회에서 이신바예바와 경기를 해 봤다. 그는 “‘코리아’라고 쓰인 유니폼을 입고 수많은 관중 앞에 서자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면서도 “이신바예바도 긴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좀 풀렸다. 또 조금 지나니까 관중이 많을 때 분위기를 타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임은지는 최근 난생처음 여권을 만들었다. 다음 달 대만으로 해외 전지훈련을 가기 위해서다. 4m대 선수가 된 뒤 대만에서 대회 초청을 받았다. 대회가 열리는 3월까지 한 달간 대만에서 훈련한다. 그는 “장대를 한 덕분에 태어나 처음으로 외국에 가게 됐다”며 좋아했다.

높이뛰기와 멀리뛰기는 ‘도약 종목’에 속하지만 성격은 정반대다. 멀리뛰기는 첫 시기에 가장 멀리 뛰면 나머지는 실패해도 이긴다. 반면 높이뛰기는 마지막에 남는 자가 승자다. 중간이 생략된 결과가 없는 게 높이뛰기다. 임은지의 연습 최고기록은 4m20㎝지만 공식 기록은 4m10㎝. 올해 상반기 목표는 8월 베를린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출전권이 주어지는 기준기록 4m35㎝다.

그 다음은 당연히 가오슈잉(중국)이 갖고 있는 아시아기록(4m64㎝)이다. 임은지는 “4m40㎝ 정도면 아시안게임에서 메달권이다. 그렇다고 목표를 그렇게 잡을 수는 없다. 당연히 가오슈잉을 넘는 게 목표”라고 당돌하게 얘기했다. 사실 기록경기 선수에게 최종 목표는 있을 수 없다. 그래도 그는 “뭔가 정해 놓지 않으면 언제든 끝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며 “일단 4m80㎝를 최종 목표로 정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제니퍼 스투친스키(미국)가 4m80㎝로 은메달을 가져갔다.

“2012년 런던 올림픽까지 세계기록(5m5㎝) 보유자인 이신바예바가 뛴다면 1등은 어렵겠다”고 임은지가 농담을 했다. 하지만 그의 손바닥은 그 말이 지나가는 농담이 아니라는 듯 이렇게 속삭이고 있었다. ‘이미 여러 번 껍질이 벗겨져 굳은살이 박인 손바닥이지만 이젠 그것마저 벗겨 버릴 준비가 되어 있다’고.

장혜수 기자 (hschang@joongang.co.kr)

회신을 남겨주세요

귀하의 의견을 입력하십시오!
여기에 이름을 입력하십시오.

13 − 12 =

Latest news

모래 사장에 빠진 차 구하기

시간 날때마다 가는 인구해변 옆, 우리 전용 낚시터에서 차가 모래에 빠져버렸다. 원래는 위 사진에서 보듯 오른쪽 부분에 자갈이 깔려있어서...

은총이네 꽃집, 릴리 리맘보

한국의 딕 호이트 부자라고 할 수 있는 은총이네가 꽃 스토어팜을 오픈하셨다. 개인적으로 열렬히 응원한다. 그 이유는 자립을 하기위해 노력하는 것으로...

주말 아침은 연희 김밥으로…

언제부터 그런 룰이 생긴지 모르겠지만 우리집은 주말 아침에 연희김밥을 먹는다. 김밥 사러가는 담당은 나다. 연희김밥은 연희동 사러가 쇼핑 주차장...

중국 공장 선택 노하우

새롭게 출시되는 존버 트레일런 베스트가 중국에서 입고된다. 작년 중순 출시예정이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지연됐다. 몇년간 웻슈트며, 안전부이며, 가방이며 각기 다른 중국...
- Advertisement -spot_imgspot_img

존버 안전부이, 어떻게 만들어졌나.

https://www.youtube.com/watch?v=OhlJodfekHk&ab_channel=JOHNBERSPORTSJOHNBERSPORTS 충분한 부력을 제공하면서 가볍고 시인성이 뛰어나 더욱 안전한 존버 안전부이는 중국 공장의 기성제품에 로고만 찍은 제품이 아니라 처음부터 목적을...

존버 아웃도어 스포츠 전문 썬스틱

실수로 잘 만들어버린, 존버 아웃도어 스포츠 전문썬스틱! 존버스포츠 초창기부터 열심히 응원해주신 썬크림 전문 브랜드 회사 대표님이 계셨습니다. 트라이애슬론이나 오픈워터수영, 사이클이나...

Must read

모래 사장에 빠진 차 구하기

시간 날때마다 가는 인구해변 옆, 우리 전용 낚시터에서 차가...

은총이네 꽃집, 릴리 리맘보

한국의 딕 호이트 부자라고 할 수 있는 은총이네가 꽃...
- Advertisement -spot_imgspot_img

You might also likeRELATED
Recommended to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