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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훈] 히딩크는 이런 지도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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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무 전 국가대표팀 감독이 신동아와 인터뷰한 내용이 많은 논란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허감독의 말을 정리하면 이 정도 입니다.

“까놓고 말해서 히딩크 감독이 한국 축구의 미래를 걱정해서 장기적 관점에서 전략을 짠 게 있느냐. 그는 철저하게 단기적인 것에만 집중했다. (히딩크는) 모든 전략과 전술을 2002년 (한-일 월드컵)에만 맞췄다. 2002년 이후를 내다보는 세대교체, 특히 취약한 수비 부문의 세대교체에는 전혀 신경을 안 썼다. 히딩크의 뒤를 이은 쿠엘류, 본프레레, 베어벡도 다 마찬가지였다. 코앞의 성적 올리기에만 몰두했지, 밑바닥에서부터 유망주들을 발굴하려는 노력은 없었다. (2002년) 그때부터 수비수 세대교체 작업을 차근차근 해왔다면 (남아공월드컵 어이없는 실점) 상황이 조금 달라지긴 했을 것이다. (수비수를) 자꾸 경쟁시키면서 키워야 하는데, 내가 팀을 맡고 나서 이 잡듯 찾아봐도 잘 안 보이더라.”

외국인 감독이든 한국인 감독이든 대표팀 감독은 성적으로 평가받습니다. 그리고 대표팀 감독의 계약기간은 대부분 2년 안팎입니다. 그가 한국인이든, 외국인이든 2년 후 재계약을 원한다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성적입니다. 만일 감독이 4년 계약을 했다면 허감독의 말처럼 그는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젊은 선수들을 많이 쓰면서 대표팀을 운영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2년 계약기간을 주고 한국축구의 미래를 위해서 세대교체를 하라고 요구하면 그건 너무 무리입니다. 세대교체도 잘 하고 성적도 잘 내기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단기간에 말이죠.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하는 게 대표팀 감독입니다. 남아공월드컵에서 8강에서 떨어진 브라질 둥가 감독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이름값을 무시하고 팀을 위한 희생정신이 있는 선수들로 대표팀을 꾸렸습니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을 위해 어린 선수들도 남아공월드컵에 출전시켜야하지 않느냐는 요구에 둥가 감독은 “그럼 내 아들도 대표팀에 넣어야하냐”며 거부했습니다. 팀을 이끄는 과정은 바람직했지만 관건은 성적이었습니다. 성적이 좋지 못하기 때문에 둥가 감독은 지휘봉을 계속 잡지 못했습니다.


신동아와의 인터뷰 때문에 논란이 되고있는 허정무 전 감독.(사진=연합)

히딩크 감독 이야기를 해보죠. 히딩크 감독은 한국축구에 많은 걸 남겨줬습니다. 비단 세계 4강이라는 성적만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선진축구 훈련법, 트레이닝 이후 회복의 중요성, 재미있고 흥미로운 체력훈련법, 학연지연에 얽매이지 않은 선수선발, 감독과 코치진과의 관계정립 등 수없이 많은 걸 보여줬습니다. 히딩크 감독은 강호에 대해 막역한 두려움을 있는 한국선수들에게, 당시 선진코칭법을 모르는 코칭스태프에게, 당시 우물안 개구리식 경험에 젖어 엉뚱한 고집만 부리는 국내 지도자들과 기자들에게 가르쳐준 것은 너무나 많았습니다.

히딩크 감독은 부임 후 체력훈련을 강조했습니다. 한국축구가 체력은 좋다는 말을 그는 정면으로 반박했죠. 한국은 기술은 좋은데 체력이 약하다고. 왜 체력훈련을 강조했을까요? 여기에는 노림수가 있었습니다. 약체에 속한 한국이 강호들을 이기려면 강호들보다 더 뛸 수 있는 체력이 필수적입니다. 한국이 그들을 기술로, 경험으로 제압하기는 힘들죠. 게다가 20세가 넘은 성인 선수들에게 기술을 더 가르친다는 것은 무리입니다. 그래서 히딩크 감독은 한국과 강호들간 격차를 극복하기 위해 체력을 무기로 키운 거죠. 그런데 체력은 단기간에 키워지지 않습니다. 엄청난 시간이 필요합니다. 히딩크 감독이 부임 초기부터 체력훈련을 한 것은 이 때문입니다.

호사가들은 한국 축구가 선진축구였다고 호들갑을 떨지만 사실 한국이 2002년 월드컵에서 보여준 축구는 결코 그렇지 못했습니다. 상대에게 볼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공을 뒤로, 옆으로 많이 돌리면서 찬스를 노렸고 상대가 공을 잡으면 강한 체력을 앞세워 계속 상대를 못살게 굴고 하는 축구였습니다. 히딩크는 그렇게 해야 한국이 강호와 맞설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이용수 교수가 히딩크 감독을 한마디로 표현해달라고 했을 때 “큰 대회를 어떻게 준비해야하는지 동물적으로 아는 감독”이라고 말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히딩크 감독 시절 많이 나온 비판 중 하나는 프리키커, 플레이메이커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이 월드컵에서 프리킥으로 골을 종종 넣었는데 프리킥 훈련을 하지 않는다, 윤정환 안정환 등을 왜 플레이메이커로 세우지 않느냐 등이 국내 축구계의 불만이었죠. 히딩크 감독은 요지부동이었습니다. 히딩크 감독은 “한국에 지단, 피구 같은 선수가 있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간단히 말했죠. 지단, 피구는 알고도 당할 수밖에 없는 세계 정상급 미드필더였습니다. 그런데 윤정환 안정환은 세계정상급은 아니죠. 윤정환 안정환을 중심으로 경기를 풀어간다고 칩시다. 그가 기량이 좋은 상대 수비수에게 막힌다면 한국은 활로를 찾지 못할 겁니다. 그리고 윤정환, 안정환이 부상 또는 컨디션 난조에 시달린다면 한국은 허둥대면서 무기력하게 무너졌을 겁니다. 히딩크 감독이 “우리팀에는 특정한 플레이메이커가 없다. 모든 선수가 플레이메이커”라고 말한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프리킥도 그렇습니다. 프리킥이 체력훈련과 다른 것은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는 겁니다. 체력은 몇 달 몇 년이 걸리지만 프리킥 훈련은 며칠이면 끝납니다. 며칠이면 끝날 수 있는 프리킥 훈련을 일찍부터 할 필요가 없다는 게 히딩크 감독 생각이었죠.  

히딩크 감독이 정말 배울 게 많은 감독이었다고 느낀 것은 2002년 월드컵 직전 평가전이었습니다. 그 때 우리는 프랑스, 잉글랜드와 했죠. 평가전에 앞서 국내 많은 지도자들은 걱정을 했습니다. 큰 대회를 앞두고 너무 강한 상대와 싸우게 되면 우리가 그동안 준비해온 플레이를 시험할 수 없다는 게 이유였죠. 또 만일 크게 패하기라도 하면 우리 선수들은 자신감을 잃게 돼 본선에서는 정작 주눅 든 플레이를 할 수밖에 없다고들 했습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우리는 프랑스와 2-3까지 선전했고 잉글랜드와는 1-1로 비겼습니다. 특히 당시 국가대표선수들은 프랑스전이 우리가 가진 걸 폭발시키는 계기가 됐다고 입을 모읍니다. 거기 히딩크 감독의 노림수가 있었습니다.  


축구의 전술에서부터 팀의 운영에 이르기까지 히딩크 감독은 우리에게 많은 걸 남겼고 우리는 많은 걸 배웠다. (사진=연합)

당시 대표팀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1년전 컨페드레이션스컵에서 0-5로 패한 프랑스와 월드컵 직전 싸워 그보다 적은 골차로 진다면 잃을 게 없다고 히딩크 감독은 판단했습니다. 만일 1년 전 대패한 팀과 엇비슷하게 싸울 수만 있다면 그건 패해도 패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었죠. 그리고 프랑스, 잉글랜드는 우승을 목표로 하는 팀입니다. 그런 팀은 팀 전체 컨디션을 8강 이후로 맞추죠. 강호들이 조별리그에서 부진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프랑스, 잉글랜드가 월드컵 조별리그도 아닌 평가전에서 올인할 이유는 전혀 없죠. 또 프랑스, 잉글랜드는 잘 알고 있습니다. 잔칫집에 와서 잔칫날을 코앞에 앞두고 있는 집주인을 대파해 망신시킬 필요가 없다는 걸 말이죠. 우리가 패해도 크게 패하지 않을 경기였고 만일 운도 따라 비기거나 혹시라도 이긴다면 한국은 엄청난 자신감을 얻게 되는 경기였죠.”  

히딩크 감독은 설사 경기에 패해도 실보다는 득이 훨씬 많다는 걸 알았고 그래서 당시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잉글랜드와 평가전을 치렀습니다. 바둑으로 말하면 꽃놀이패였죠. 그리고 히딩크 감독의 전략은 정확하게 맞아떨어졌습니다.  

히딩크 감독은 월드컵 기간 중에도 놀라운 승부수를 던졌습니다. 우리가 포르투갈을 꺾고 16강행을 확정지은 다음날. 히딩크 감독은 인천에서 회복훈련을 하고 유명한 말을 했죠. “나는 여전히 여전히 배고프다.” 그 때 현장에서 히딩크 감독을 인터뷰한 기자는 히딩크 감독이 still을 두 번이나 반복한 걸 확실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때 점심 식사 시간 히딩크 감독은 선수들에게 불호령을 내렸습니다. 식사 시간 피자를 먹으면서 다른 경기 스코어 맞히기 등을 하면서 시시덕거리는 선수들을 크게 야단친 것이죠. 황선홍 감독도 “히딩크 감독이 그렇게 화를 낸 것은 처음이었다”고 회고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더니 히딩크 감독은 선수들을 이탈리아전이 열릴 대전으로 내려 보내고 정작 본인은 수원으로 갔습니다. 선수들은 이탈리아전 바로 전날 비공개 훈련을 했습니다. 페널티킥 훈련만 했을 뿐 별다른 훈련은 없었다는 게 당시 대표선수들의 증언입니다. 그 때 히딩크 감독은 수원에서 아일랜드-스페이전을 관전했습니다. 당시 언론 기사는 대부분 “히딩크 감독이 이탈리아를 깰 비책이 있다. 그래서 8강에서 만날 아일랜드, 스페인을 분석하기 위해 수원으로 갔다”고 보도했죠. 그런데 히딩크 감독의 생각은 딴판이었습니다. 히딩크 감독이 아일랜드, 스페인 전력을 모르겠습니까? 안 봐도 훤히 꿰뚫고 있었습니다. 그가 선수들에게 비공개 훈련을 지시하고 본인은 아일랜드-스페인전을 본 것은 선수들에게 “나는 16강에 만족하지 못한다. 너희도 여기에 안주하지 말고 더 뛰어서 더 이겨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보낸 것이죠. 세계적인 명장만이 던질 수 있는 멋진 승부수였죠.  

월드컵 이후 히딩크 감독의 리더십을 배우자는 열풍이 불었습니다. 히딩크 감독을 심하게 비판하던 언론도 히딩크 감독이 보여준 기막힌 승부수, 그가 1년 6개월 동안 대표팀을 이끌면서 보여준 절묘한 대표팀 운영법을 뒤늦게 깨달았고요. 그래서 당시 학계, 언론계, 산업계 등은 히딩크 리더십에 대한 글과 책을 쏟아냈습니다. 필자도 역시 세계적인 명장은 다르다는 걸 느꼈습니다. 필자는 당시 출국을 앞둔 히딩크 감독에게 아주 짧은 말을 건넸습니다. “내가 축구 기자로서 당신으로부터 너무 많은 걸 배웠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 말이죠. 히딩크 감독은 우리에게 많은 걸 남겼고 우리는 많은 걸 배웠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도 이런 사실을 인정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허감독의 인터뷰는 너무 아쉬웠습니다. 침착하게 조목조목 따져서 외국인 감독 선임에 대한 득실을 논했어야했습니다. 그냥 조용히 말없이 묵묵히 있거나 말을 하려고 했다면 정확하게 이해득실을 따졌어야했습니다. 외국인 감독을 쓰려는 것을 사대주의로 못박는 허감독의 말은 적잖은 반감을 일으킬 뿐입니다. 가뜩이나 좋지 않았던 대중적인 선입견이 남아공월드컵 16강으로 많이 좋아졌는데 그게 순식간에 말짱 도루묵이 된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내뱉은 말 다시 주워 담지 못하니 답답할 뿐입니다.

 

 

 

김세훈

경향신문 체육부기자
前 엠파스 토털사커 축구 칼럼니스트
김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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