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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알몸을 똑바로 봐요. 내가 깨끗하다는 것을 증명할 사람이 바로 당신입니다.”
10㎡ 남짓한 화장실에 여성 둘이 들어섰다. 조촐한 변기 한 대와 벽면을 둘러싼 거울이 눈에 들어왔다. 그 중 한 명은 사만다 워리너(41)라는 뉴질랜드인이었다. 2008년 4월 경남 통영시에서 열린 트라이애슬론(철인 3종경기)월드컵 여자부 1위를 차지한 그는, 도핑검사를 위해 곧장 화장실로 향했다. 워리너가 전신 수영복을 훌렁 벗어던졌다. 싱싱한 근육의 나신(裸身). 그는 엉거주춤 앉아 소변을 받을 유리병을 변기 아래로 들이밀었다.
함께 따라온 여성은 신출내기 도핑검사관 박주희(사진)씨였다. 지금껏 바지를 무릎 아래로 내린 후 소변을 받는 것만 봐왔다.
“일체형 수영복은 소변 볼 때 다 벗어야 하죠. 저도 모르게, 눈을 슬며시 돌렸어요.” 그 순간 워리너가 말했다. “부끄러워 말아요. 우리는 프로에요. 내 우승이 정직했다는 걸 입증할 사람이 바로 당신이에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박씨는 국내 1호 국제도핑검사관(IDCO)이다. 현재 2011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조직위원회 도핑지원팀에서 ‘클린 도핑’에 힘쓰고 있다. 서른 두 살. 결혼 생각은 아직 없다.
박씨는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특수체육을 전공했다. 장애인휠체어농구협회 추천으로 2007년 12월 국내도핑검사관(DCO)프로그램을 이수한 후, 이듬해 1월 막 출범한 한국도핑방지위원회(KADA)에 공채 입사했다. 2008년 10월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추천으로 국내 최초 국제도핑검사관이 됐다.
생면부지 타인이 소변 받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이 쉬울 리 없다. “처음에는 여성의 가장 내밀한 곳을 주시할 때 부끄러웠어요. 그러나 지금은 이 일에 온전히 빠졌어요.”
도핑기술은 국제 스포츠 발전 속도와 궤를 같이한다. “약물은 선수 생명을 단축하고, 사망까지 이르게 합니다. 신성한 스포츠 정신을 훼손해요.”
그는 내로라하는 스포츠 스타의 도핑검사도 담당했다. ‘미녀새’ 옐레나 이신바예바·김연아와 아사다 마오가 대표적. “실력이 좋은 만큼 검사 경험이 많죠. 세 명 다 후다닥 끝내고 갑니다.” 근래엔 ‘양성자(兩性者)’논란이 잦아지면서 신체도 꼼꼼하게 살핀다. “남아공 육상선수 캐스터 세메냐가 대표적이죠. 바지 내릴 때 수술 자국이 있는지 확인합니다.”
대구=서지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