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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시크비라, 韓 장대높이뛰기에 창공 제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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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카디 시크비라 코치(사진=대한육상연맹)

[태릉=스포츠투데이 이종길 기자]한국 장대높이뛰기는 최근 힘찬 날갯짓을 폈다. 2년여 동안 추락을 거듭했던 최윤희(SH공사)가 지난달 10일 전국 육상선수권대회에서 4m40을 뛰어넘으며 한국 신기록을 작성했다.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는 김유석(대구시청)이 5m30을 소화하며 레오니드 안드레예프(우즈베키스탄)와 함께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성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한 육상 고위관계자는 “최근 대표팀 전체가 일보 이상의 전진을 남겼다”며 “그 어떤 종목보다 상승곡선이 가파르다”고 평했다. 선수들은 성장의 원동력으로 한 사람을 지목한다. 피노키오처럼 긴 코와 주름 잡힌 이마. 파란 눈동자로 창공을 올려다보는 그는 우크라이나 출신의 코치, 아르카디 시크비라(51)다.

시크비라는 1989년부터 장대높이뛰기 선수들을 지도한 베테랑 코치다. 특히 ‘인간 새’로 불리며 한 시대를 평정한 세르게이 부브카(우크라이나)를 최고의 선수로 키워냈다. 부브카는 세계기록만 35번 갈아치운 전설적인 선수다. 그 최고 기록은 1994년 작성한 6m14다. 시크비라는 부브카 외에도 많은 선수들을 배출했다. 이는 조국인 우크라이나에 그치지 않는다. 카타르를 거쳐 2009년 12월부터는 한국과 인연을 맺고 있다. 대표팀 코치로 발탁돼 현재 4명의 선수들을 조련하고 있다.

도입한 훈련은 체계적이면서도 혹독했다. 그는 태릉선수촌 입성과 함께 동계훈련을 진행했다. 체력 증진 뒤에는 바로 기술 연마에 돌입했다. 장대를 폴 박스에 꽂아 넣을 때나 도움닫기 시 앞으로 쏠리는 자세를 반복학습을 통해 극복하게 했다. 공중에서 쉽게 낮아지던 다리도 수차례 연습을 지시, 교정을 이끌어냈다. 시크비라는 공중동작에서의 균형을 위해 국내 처음으로 기계체조를 도입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2011 부산 국제장대높이뛰기대회에서 최윤희(왼쪽)와 이야기를 나누는 아르카디 시크비라 코치(가운데), 정범철 코치(사진=대한육상연맹)

체력과 기술훈련의 조화 속에 선수들은 자신의 기록들을 조금씩 넘어서고 있다. 시크비라는 “선수들이 밸런스를 잘 유지하고 있다”며 “계속된 점검으로 2011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그가 바라보는 한국 장대높이뛰기의 정점은 어디일까. 시크비라를 만나 대표팀의 전력을 알아보는 한편 이방인으로서의 삶을 들여다봤다.

다음은 시크비라와의 일문일답

스포츠투데이(이하 스투) 한국에서 코치직을 수행한지 1년 6개월이 넘었다.

시크비라 많이 적응됐다. 이곳에서의 생활이 즐겁다. 여유가 주어질 때마다 한국의 문화를 습득한다. 서울이 아닌 지방의 풍토에 관심이 많다. 유적지 탐방 등도 즐기고. 아내와 함께 자주 찾는 편이다.

스투 타지에서의 코치생활은 이번이 두 번째다. 앞서 둥지를 텄던 카타르는 어떠했나.

시크비라 이슬람교(무슬림)를 믿는 나라라서 신기한 점이 많았다. 선수단의 구성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여자 선수가 전무했다. 남자들만 훈련을 받을 수 있었다. 이들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상당했다. 늘 최상의 환경을 제공했다. 정작 선수들은 이를 잘 활용하지 못했다. 더운 나라여서 그런지 대체로 게을렀다. 국제대회에서 부진을 거듭한 이유다. 그래서 내 머릿속의 카타르는 ‘훈련을 열심히 하지 않는 더운 기후의 나라’로 요약된다.

스투 한국대표팀은 어떠한가.

시크비라 훌륭하다. 립 서비스가 아니다. 선수들 모두 무언가를 해내려는 의지로 가득 차 있다. 잠재능력도 높은 편이다. 2011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라는 전환점까지 마련돼 훗날 좋은 결과가 예상된다.

한국 장대높이뛰기 신기록 보유자 최윤희(사진=대한육상연맹)

스투 어떤 점에서 그런 면을 엿보았나.

시크비라 목표의식이 뚜렷하다. 대회도 적극적으로 준비하는 편이고. 사실 처음 태릉선수촌에 입소했을 때만 해도 이 같은 점을 느끼지 못했다. 선수 대부분이 수동적으로 경기를 준비했다. 하지만 함께 훈련하며 분위기는 달라졌다. 모든 선수들이 스스로 부족한 점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스투 대표팀은 미국에서 따로 훈련하는 김유석을 제외하면 3명에 불과하다. 지난해 6명에서 절반이 줄어든 까닭은 무엇인가.

시크비라 성적 향상에 대한 동기가 강한 선수들만 살아남았다고 보면 된다. 현재 남은 선수들은 집중력이 대단하다. 기록 향상에 대한 욕심도 크고. 그래서 늘 훈련에 활력이 넘친다.

스투 최근 대표팀의 성장 비결을 꼽는다면.

시크비라 크게 세 가지로 압축된다. 첫 번째는 정신력 강화다. 태릉선수촌에서 지내며 내적 성숙을 거뒀다. 두 번째는 위기감 조성이다. 국제대회를 치르며 ‘이렇게 있어서는 안 되겠구나’라는 의식이 자리를 잡았다. 세 번째는 눈으로 확인하는 가능성이다. 강훈련 뒤 얻은 향상된 기록들을 보며 선수들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스투 선수들과 자주 소통하는 편인가.

시크비라 그렇다. 코치와 선수는 가족처럼 지내야 한다. 선수의 심리를 파악할 수 있어야 좋은 교육도 가능하다. 우리 선수들은 내 의견에 모두 동의하는 것 같다. 훈련이 끝나면 늘 ‘스빠씨바(Спасибо,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며 박수를 쳐준다. 개인면담도 자주 요청하는 편이고. 나 역시 경기장 밖에서는 부드러운 아버지가 되려고 노력한다. 지난 5월 28일 최윤희의 생일 때 파티를 열어주기도 했다.

2011 부산 국제장대높이뛰기대회에서 경기를 지켜보는 아르카디 시크비라 코치(사진=대한육상연맹)

스투 우크라이나에서도 그러했나.

시크비라 물론이다. 특히 부브카와 친형제처럼 지낸다. 그가 10살이었을 때부터 함께 했다. 당시 나는 13살이었다. 10년 이상을 한 방에서 함께 생활했다. 거의 모든 부분을 파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지냈으니까. 옐레나 이신바예바(러시아)를 키워낸 비탈리 페트로프 코치도 그러하다. 나에게 아버지와 같은 존재다.

스투 한국에서의 코치생화에 어려움은 없나.

시크비라 왜 없겠나. 지난해 우크라이나에 단 한 번 다녀왔다. 3주가량 가족과 함께 지냈는데 너무 짧았다. 사실 한국의 훈련 시스템은 다소 벅차다. 거의 1년 내내 땀을 흘려야 한다. 유럽은 그렇지 않다. 출퇴근의 개념이 확실하다. 정해진 시간동안 훈련을 소화하면 자유의 시간이 주어진다.

스투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여느 때보다 짙을 것 같은데.

시크비라 물론이다. 가끔 아내가 찾아오지만 다른 식구들을 못 본지 오래됐다. 특히 어머니와 아들이 보고 싶다. 솔직히 한국 코치들을 보면 딱할 때가 많다. 나야 30년 이상 코치생활을 해서 내성이 생겼지만 그들은 어린 자녀를 키우면서도 귀가하지 못한다. 가족과 멀리할 수밖에 없는 현실만큼 안타까운 건 없다.

스투 아내와의 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지겠다.

시크비라 한국을 찾으면 함께 있으려고 애쓴다. 떨어져 지낸 시간이 많아서인지 아직도 신혼처럼 느껴진다. 젊은 시절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 못한 아쉬움 때문에라도 더 잘해주고 싶다.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김유석(사진=대한육상연맹)

스투 아들에게 장대높이뛰기를 가르친 적은 없나.

시크비라 있다. 하지만 일찍 그만두게 했다. 내 자식을 가르치기란 결코 쉽지 않더라. 지금은 우크라이나에서 은행원으로 일한다.

스투 2011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눈앞으로 다가왔다. 부담은 없나.

시크비라 크진 않다. 선수들이 구상한대로 잘 따라주고 있다. (잠시 말을 멈춘 뒤)스트레스에서 해방된 건 아니다. 최대한 감추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유는 단순하다. 선수들이 쉽게 동요할 수 있다. 물론 그 짐의 무게도 그리 무겁지 않다.

스투 선수들이 가장 성장한 부분을 꼽는다면.

시크비라 기술과 체력이다. 특히 지난해 기술 연마에 힘을 쏟아 모두 실력이 부쩍 향상됐다. 올해는 체력이다. 기계체조 등을 통해 동작을 보다 정교하게 가다듬고 있다.

스투 장대높이뛰기에 기계체조를 도입한 건 국내에서 이번이 처음인데.

시크비라 구 소련국가들은 일찍부터 기계체조를 병행했다. 몸 전체를 쓰는 운동이다 보니 공중, 도약 등에서 유용하게 사용된다. 체조 출신 선수가 많은 건 모두 이 때문이다. 이신바예바 역시 같은 절차를 밟았다. 그래서 공중에서의 동작이 누구보다 부드럽고 깨끗하다. 그는 장대높이뛰기를 연습하면서도 체조를 멀리하지 않았다. 따로 체조코치까지 뒀다.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른 건 탄탄한 준비 덕이다.

스투 코치로 일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시크비라 선수로 뛰다 29살 때 아킬레스건에 부상을 입었다. 치료에 오랜 시간이 걸려 복귀를 일찌감치 포기했다. 대신 1989년부터 학교에서 어린 선수들을 가르치며 지도자의 꿈을 키웠다. 정식으로 코치가 된 건 1991년이다. 클럽에서 선수들을 전문적으로 지도했고 1993년부터 부브카의 개인코치로 일했다.

2011 부산 국제장대높이뛰기대회에서 자신의 시기를 기다리는 최윤정(사진=대한육상연맹)

스투 최근 장대높이뛰기의 세계 흐름을 어떻게 바라보나.

시크비라 남자는 부브카의 세계기록 뒤로 두각을 나타내는 선수가 드물다. 반면 여자는 최근 많은 인기를 얻으며 실력이 부쩍 향상됐다. 최근 눈여겨보는 남자선수는 프랑스의 르노 라빌레니다. 신체조건의 불리함을 기술로 훌륭하게 메운다. 독일, 호주 선수들의 선전도 눈에 띈다. 구 소련의 스타일을 구사하는데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의 성적이 기대된다.

스투 한국에서 눈여겨보는 선수가 있다면.

시크비라 진민석이다. 유소년 선수인데 조금만 다듬으면 세계적인 선수가 될 것 같다. 장대높이뛰기는 성장에 다소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인내를 가지고 꾸준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

스투 어떤 점이 성장에 가장 큰 방해를 주나.

시크비라 기술 습득이다. 잘못된 것을 수정하는 과정이 꽤 험난하다. 처음부터 바른 교육을 받는다면 관계없지만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 자신의 기술을 만드는데 10년 이상이 걸린다. 장대높이뛰기 강국인 구 소련의 나라들도 마찬가지다.

스투 일부 육상 관계자들은 “동양인의 체격에 장대높이뛰기가 맞지 않는다”고 말하는데.

시크비라 그렇지 않다. 훈련을 열심히 받아들인다면 충분히 세계 수준의 실력을 갖출 수 있다. 그 시점은 10년 뒤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아르카디 시크비라 코치(사진=대한육상연맹)

스투 2011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의 목표는 무엇인가.

시크비라 2009년 베를린 대회에서 대표팀의 기록은 세계수준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이번에는 다르다. 선수들의 의지가 다부지다. 메달을 획득하지 못한다고 해도 그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줄 것이다.

스투 ‘장대높이뛰기 신동’ 임은지(부산 연제구청)가 도핑테스트 양성반응 뒤로 부진을 거듭한다. 대표팀에서도 끝내 탈락하고 말았는데.

시크비라 (도핑테스트 양성반응은) 코치로 일하며 처음 겪는 일이었다. 솔직히 당황스러웠다. 전문의의 말을 듣고 보다 현명하게 대처했어야 했다. 선수들은 약물 복용 등에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주위의 권유에 쉽게 흔들려서는 안 된다. 그런 측면에서 임은지는 많이 아쉬운 선수다.

스투 지난 코치생활을 통해 얻은 본인만의 철학이 있다면.

시크비라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면 안 된다. 코치가 고개를 숙이면 선수단 전체가 좌초될 수 있다. 아무리 힘들어도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그 사명감이 있어야만 좋은 선수도 양성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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