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인3종대익리포트휠체어육상 국가대표 유병훈·정동호 "실업팀 절실해요"

휠체어육상 국가대표 유병훈·정동호 “실업팀 절실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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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뉴스 문수경 기자

같은 길을 가는 두 남자가 있다.

형은 17년째, 세 살 적은 동생은 10년째 휠체어 육상선수로 활약 중이다. 서로 주종목은 다르지만 2008년 베이징 패럴림픽 400m계주 동, 2010년 광저우 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 1600m계주 동, 2011년 뉴질랜드 세계장애인육상선수권대회 1600m계주 은메달을 합작했다. 같이 트랙을 누빌 뿐아니라 휠체어·의료기기·장애인용품을 수입 판매하는 회사 (주)닛산메디컬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이기도 하다.

유병훈(39)과 정동호(36, 삼성카드) 선수 얘기다. 그런 두 선수가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는 선의의 경쟁을 펼친다. 정식경기는 아니지만 특별이벤트로 마련된 휠체어 육상 T53 남자 400m에 나란히 출전하는 것. 이 종목 세계 톱10 중 8명이 참가하는 만큼 2012년 런던 패럴림픽 전초전 성격이 강하다. 팬들로서도 휠체어 육상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는 기회다. 현재 유병훈과 정동호는 각각 세계랭킹 3위, 5위에 올라있다.

휠체어 육상은 장애유형과 등급에 따라 경기를 하는데 T53에서 T는 트랙 경기를, 53은 장애 유형과 등급을 의미한다. T53은 허리와 복근을 마음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척수장애인이 출전한다. 최고시속은 37km에 이른다.

“한국에서는 아직 생소하지만 휠체어 육상은 패럴림픽에서 인기종목이에요. 이번 대회를 계기로 (이 종목에)관심을 가져주시면 좋겠어요. 출전선수 8명 중 국내선수 2명이 포진해 있다는 건 그만큼 T53에서 우리나라가 경쟁력이 있다는 거죠.”(유병훈)

“많은 국내팬들 앞에서 경기를 치를 거라 생각하니까 긴장되고 설레여요. 처가집이 대구에 있어서 느낌이 더 남다르고요.”(정동호)

이들이 참가하는 휠체어 육상 T53 남자 400m는 9월 3일 오후 7시55분에 열린다. 기대주 강경선이 출전하는 T54 여자 800m(오후 7시45분)가 끝난 직후다. 유병훈은 “올 1월 세계장애인육상대회가 끝나고 왼쪽 어깨 수술을 했다. 재활을 거쳐 회복했지만 정상적인 훈련을 못했다. 욕심부리기 보단 개인기록 경신에 초점을 맞추겠다”고 했다. 정동호는 “개인기록을 깨고 시상대에 올라가고 싶다”고 했다.

◈ 휠체어 육상 실업팀 생겼으면…

지난 2009년 10월 이천 장애인체육종합훈련원이 개원하면서 휠체어 육상 국가대표들의 훈련환경은 훨씬 좋아졌다. 더 이상 훈련장을 찾아 떠돌이 생활을 안해도 되고, 큰 대회를 앞두고 합숙훈련을 할 수 있어 경기력을 끌어올리는데도 효과적이다. 예전보다 나아지긴 했지만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아직 운동에만 전념하기엔 여건이 불충분한 탓이다. 두 선수는 휠체어 육상 실업팀 창단이 절실하다고 한 목소리다.

“현재 실업팀에 소속되서 급여받고 운동하는 선수는 홍석만(제주도청) 선수가 유일해요. 저 같은 경우 대회 나가서 장애인 선수들에게 휠체어 장비를 판매하는 게 일이니까 회사 쪽에서 합숙훈련과 대회출전에 대해 배려해주지만 운동과 일을 병행하는 게 쉽지는 않아요. 회사를 빠질 때가 많으니까 형평성 차원에서 급여도 남들보다 적게 받고, 합숙훈련 끝나면 일상으로 돌아와야 하니까 평상시에는 훈련하는 데 제약이 많죠. 영국, 미국, 스위스 등 장애인체육 복지정책이 발달한 나라들이 휠체어 육상에서 강세를 보이는 건 어찌보면 당연해요. 훈련량은 경기력과 직결되는데 이들 나라 선수들은 훈련에만 집중할 수 있으니까요.”(유병훈)

“휠체어 육상이 좋아서 10년간 계속 해왔어요. 근데 요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은퇴할 나이가 지났는데 내가 너무 오래 하고 있는 게 아닐까’. 내년 런던 패럴림픽을 마지막 무대로 잡고 있어요. 힘들어서 이젠 은퇴하고 싶어요. 실업팀이 생긴다면 모르겠지만….”(정동호)

정동호는 생후 10개월 된 딸이 있다. 딸 ‘이레’ 얘기가 나오자 그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느끼는 삶의 무게도 큰 듯했다. 10월에 뒤늦은 결혼식을 올린다며 그는 또다시 웃었다.

이들의 뒤를 이을 선수들이 적은 것도 안타까운 부분이다. 국내 휠체어 육상선수는 남자 27명, 여자 3명 등 30명에 불과하다. 유병훈은, 경제적인 문제가 선수를 발굴하는 데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지적한다.

“레이싱 휠체어는 한 대에 800~900만원 정도 하는 고가에요. 일단 레이싱 휠체어가 있어야 선수생활을 시작하는데 자기 호주머니 털어서 구입해야 하니까 진입장벽이 높죠.” 자나깨나 후배들 걱정이다. 그러나 세계 정상급 선수인 두 선수의 사정도 썩 좋지는 않다. “국가대표 선수들도 자비로 레이싱 휠체어를 사고 있어요. 3년에 한 번씩은 교체해줘야 하는데 고가라서 쉽게 못바꿔요. 일본은 휠체어 육상선수가 400명 가량 되니까 휠체어 전문회사에서 제공해주기도 하는데, 우리는 국내수요가 많지 않아서 전량 수입하고 있죠.”(유병훈)

비장애인과 달리 올림픽 메달 외에는 연금 혜택이 없는 것도 이들이 서운함을 토로하는 부분이다. 정동호는 “2008년 베이징 패럴림픽 400m계주에서 동메달을 따서 매달 연금 30만원씩 받게 됐다. 성취감은 물론 경제적인 면에서 보탬이 되니까 선수생활 하는데 강한 동기부여가 됐다”고 했다. 유병훈은 “연금받기 위해 선수생활 하는 건 아니다. 연금은 그동안 고생한 것에 대한 최소한의 보상이다. 다만 이런 지원이 올림픽에만 편중된 것이 아쉽다”고 했다.

◈ 열악한 환경 속 10년 넘게 버틸 수 있게 한 힘은…

열악한 환경이지만 유병훈과 정동호는 10년 넘는 세월을 휠체어 육상에 바쳤다. 이들을 오랜시간 버티게 해준 힘이 뭔지 궁금했다.

“휠체어 육상은 ‘생각하는 운동’이에요. 새로 배우는 것도 많고, 끊임없이 연구해야 한다는 게 매력적이죠. 제가 운동을 질릴만큼 했다면 진즉에 그만뒀을텐데 아쉬움이 남아서 길게 온 것 같고요. 너무 오랜 시간 달려왔고 매듭지어야 할 시기가 지났다고 생각하지만 ‘힘들게 운동하는 후배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마음이 저를 여기까지 이끌어 준 것 같아요. 그리고 골인하는 순간 그 희열은 말로 표현못하죠.”(유병훈)

휠체어 농구로 선수생활을 시작한 유병훈은 휠체어 마라톤을 거쳐 지금은 트랙종목인 200, 400, 800m에서 활약하고 있다.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200, 400m 은, 2011년 뉴질랜드세계장애인육상선수권대회 400, 800m에서 동메달을 땄다. 또 올 2월 장애인 동계체전 크로스컨트리 부문(1km, 3km) 2관왕에 오른 만능 스포츠맨이다.

“운동을 워낙 좋아했는데 19살에 교통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휠체어를 타게 됐어요. 제가 다치면서 가세가 기울었죠. 10년간 직장생활 하다가 2000년 4월, 대구 국제휠체어마라톤 5km 이벤트에서 선수들이 뛰는 걸 보고 ‘이거다’ 싶었어요. 이듬해 4월 처음 마라톤 하프코스를 완주했죠. 그때 느낌이요? 처음에는 고통스러웠지만 시간이 지나고 즐거움을 찾아왔죠. 그 느낌이 생생해요.”(정동호)

그러자 옆에 있던 유병훈이 한 마디 거든다. “우리는 활동성이 떨어지잖아요. 그런데 휠체어 마라톤은 내리막에서 시속 40~50km씩 나와요. 그 속도로 바람을 맞으며 달릴 때의 느낌에 중독된 거죠. 스피드를 몸으로 느낄 수 있다는 게 최고 장점이에요.”

◈ 영원한 휠체어 육상계 ‘지킴이’

두 선수는 내년 런던 패럴림픽을 국가대표 은퇴무대로 생각하고 있다. 현재 선수 겸 국가대표 상비군 코치인 유병훈은 선수생활을 마치면 휠체어 육상 지도자로 나서 후배들을 키우고 싶어한다. 이를 위해 한체대 사회체육대학원(4학기째)에서 주경야독 중이다. “(병훈이 형은) 가르치는데 재능이 있고, 후배들에게 인간적으로 대해줘요.” 정동호는 “마라톤은 스포츠의 꽃”이라며 “은퇴하면 마라톤을 즐기면서 하고 싶다”고 했다. 두 선수 모두 영원한 휠체어 육상계 ‘지킴이’를 꿈꾸는 것이다.

같은 길을 가는 두 남자가 있다.

▷유병훈-정동호의 ‘버킷 리스트’는?
(유병훈)
1. 후배들을 위해 실업팀 만드는데 도움을 주고 싶다
2. 후배들 많이 생기게끔 노력하고
3. (장가를 갈까? 한참 망설이다가) 부자가 되고 싶다

(정동호)
1. 운동선수로서 패럴림픽, 세계선수권대회 같은 큰 대회 정상에 서보고 싶다
2. 고향집이 속리산 문장대 밑이라서 어릴적 산에 자주 갔다. 휠체어 타고 산에 올라가보고 싶다
3. 다쳐서 부모님이 상처를 많이 받으셨다. 죄송스럽다. 효도하고 싶다

moon034@cbs.co.kr/에이블뉴스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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