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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럼비아스포츠웨어코리아를 20년째 이끌어오고 있는 조성래 사장. 2001년엔 해외 우수 바이어 표창을 받기도 했다. <사진=허재성> |
컬럼비아스포츠웨어는 미국의 대표적 아웃도어 브랜드로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컬럼비아측의 자료에 따르면, 컬럼비아사의 작년 매출이 1조4천억 원으로 아웃도어업체 중 세계 최고를 기록했다. 이중에서 한국내 매출이 1,000억 원이며, 한국및 아시아 지역에서 생산한 뒤 미국 컬럼비아 본사로 납품하는 형식을 취한 수출분은 1억2천만 달러에 이른다.
컬럼비아스포츠웨어코리아를 이렇듯 급성장시킨 주역은 조성래 사장(55)이다. “여지껏 사장 시켜 줬으니 고맙지요, 뭐”라고 말하지만, 조 사장은 이미 20년 전부터 컬럼비아 한국지사장을 맡았고, 당시 40억 원에 불과했던 매출을 올해 1,400억 원대(예상액)까지 끌어올렸다.
20년 전은 컬럼비아 본사도 직원 수 40명, 연매출도 200억 원이 채 안 되던 시절이다. 당시 고어텍스사 한국 지사장으로 일하던 조 사장은 컬럼비아사 부사장이 거듭 권하는 바람에 컬럼비아로 적을 옮겼다고 한다. 창업주인 거트 보일(Gert Boyle) 여사에게 그런 의식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는 거의 ‘패밀리’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작은 나라에서 드문 성취를 이루었어도 조 사장은 “시기가 좋았을 뿐, 사장인 내가 잘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누구나 그 자리에 있으면 다 할 수 있어요. 다만 내가 사장 자리에 앉아 있었을 뿐이죠. 사장이 대표성은 있지만 기업의 힘은 팀, 다시 말하면 인적 구성에서 오는 겁니다. 사장은 다만 의견조정자로서 역할을 하는 것이죠.”
시기가 좋았던 것은 사실이다. 97년 IMF를 계기로 등산 붐이 일기 시작했고, 그후 주5일 근무제가 또한 도입되면서 등산인구가 크게 늘며 더불어 아웃도어 의류 매출도 전체적으로 급신장했다. 그러나 모든 아웃도어 브랜드가 그랬던 것은 아니기에 조 사장의 기업 리더로서 능력은 남다르다고 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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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컬럼비아 의류 소재는 최고급 수준이라고 말하는 조성래 사장. (우)컬럼비아 재킷의 후드가 가진 특장점을 설명하는 조 사장. 그는 매주 산을 찾는 등산 마니아이자 필드테스터이기도 하다. |
1조4천억 원 컬럼비아 매출에 크게 기여
그는 원칙주의자라고 스스로를 정의한다. 원칙과 질서가 없는 업무 처리를 싫어하며, 공직사회뿐 아니라 사기업에서도 공과 사는 구분지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이런 직업관을 가진 조 사장은 때문인지 “일년 365일 저녁마다 술약속이 있지만, 업무와 관련 있는 사람들과 저녁 술자리를 하는 일이 거의 없다”고 한다. 사석에서 친해지면 업무의 원칙이 흐려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마니아 수준으로 등산을 즐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산악단체들과 별 연관을 맺지 않고 있는 것도 이런 사업관 때문이 아닌가 싶다.
컬럼비아 제품을 일관되게 꿰고 있는 것은 이른바 거티즘(Gertism)이다. 창업자인 거트 보일 여사의 이름을 바탕으로 한 조어인 이 거티즘은 한 마디로 ‘어머니가 자식을 생각하는 것처럼 아웃도어 활동에 가장 필요한 기능과 편안함을 가진 의류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컬럼비아 본사가 위치한 오리건주는 자연 조건이 낚시나 등산을 하기에 좋은 한편 강우량이 많아서 기능성 의류의 필요성이 특히 높다. 때문에 아웃도어 의류ㆍ용품 제조회사가 이곳 오리건주에서 특히 많이 생겨났다. 대개 처음엔 식구들이나 주변의 친한 사람들이 모여 회사를 만들고 꾸려왔기에 분위기가 대개 가족적이며, 컬럼비아사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70년 전인 1938년 부모가 모자 회자로 시작한 컬럼비아스포츠웨어를 거트 여사는 지금과 같은 세계적 브랜드로 키웠다.
“지금은 엄청난 부자가 되었지만, 거트 여사 사무실은 지금도 제가 쓰고 있는 이 사장실만 할까. 조그만 해요. 운전도 여전히 직접 하고요. 그렇게 검소하게 지내면서 돈을 버는 대로 재투자해왔답니다. 그러니 회사가 잘 될 수밖에요. 컬럼비아만큼 세계적으로 인프라 구축이 잘 돼 있는 회사는 드물 겁니다. 거트 여사는 장애자협회 후원도 하는 등 좋은 일도 많이 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컬럼비아 광고에 항상 등장하는 미국 여성이 바로 거트 보일 여사로, 조 사장 또한 거티즘에 충실하게 제품을 내왔다.
“아웃도어의류는 착용감이 편안해야 합니다. 그럴려면 등산, 낚시, 여행, 자전거 등 각 분야마다 다양한 디자인의 복장이 필요하죠. 이런 수요에 따라 최적의 의류 조건을 갖춰주는 것이 아웃도어의류업의 존재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여기에 충실하려 했고, 매출이 남달리 늘어났다면 그 덕분이죠.”
아웃도어 의류뿐 아니라 조 사장의 기업관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그는 기업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만드는 옷이 그 분야에서 꼭 필요한 것이 되어야 하듯이, 기업은 사회에서 꼭 필요한 존재가치를 심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돈이 되고 안 되고는 다음 문제가 되어야지요. 돈만 되면 뭐든지 하려고 달려드는 기업은 종내엔 존립 자체가 문제가 됩니다. 사회 구성원들이 반드시 필요로 하는 것들을 만들어 제공해야 그 기업도 오래 존속할 수 있다는 말이죠. 사실 너무도 당연한 말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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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들과 함께 컬럼비아 제품들을 살펴보며 총평 중인 조성래 사장. 왼쪽에서 두번째의 모상현씨는 히말라야 거봉도 여러 차례 오른 전문산악인 출신 직원이다. |
모든 운동 거쳐 등산 마니아 된 조 사장
한국의 아웃도어 의류 시장의 흐름에 대해 조 사장은 이렇게 진단한다.
“한국 시장은 독특해요. 레저 형태가 다양하지 못하고 등산, 하이킹에 쏠려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류도 여전히 기능성을 중시하는 쪽으로 가지 않겠나 봅니다. 고어텍스 같은 기능성 원단에 대한 선호도가 특히 높은 나라가 우리나라죠.”
우리나라 등산 동호인들의 고기능성 소재에 대한 신뢰는 거의 맹신 수준이다. 그러나 고기능성 소재도 계절, 장소, 활동 강도 등에 따라 적절한 제품을 선택해야 한다. 고기능성 제품도 잘못 사용하면 역효과가 난다는 것을 고객들에게 알려주고 싶다고 조 사장은 말한다.
조 사장은 학창 시절부터 스포츠 마니아였다. 당구 빼고는 안 해본 운동이 없다고 한다. 테니스는 거의 프로 수준이라고 박홍근 내수본부장은 귀띔한다. 그러나 조 사장은 2004년 등산을 시작하며 골프까지 끊고 매주말 산행을 즐기고 있다.
“등산은 경쟁이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잡념도 스트레스도 없어요. 다른 스포츠는 승부가 걸린 것이 대부분이라 피곤합니다. 골프 치고 나면 만사가 귀찮아지는데, 등산은 하고 나면 기운이 솟구치죠.”
이렇듯 등산 예찬론자인 조 사장은 매주말 친구나 부인과 경기, 강원, 충청도 등지의 산을 하나씩 섭렵해가고 있다. 설악산 공룡릉을 꼭 한 번 가보았으면 하는데 아직 기회가 오지 않았다고 한다. 여러 산을 가지만 광릉 뒷산 소리봉을 특히 좋아한다. 짙은 숲의 한적함이 무엇보다 마음에 들어서다. 한적함을 사랑하는 등산꾼인 조 사장은 시끄럽고 번잡한 북한산이나 관악산 등은 거의 가지 않으며, 다소 멀더라도 조용한 산을 찾는다. 겨울 산을 좋아하는 것도 한결 짙은 정적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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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트 보일 여사의 사진 앞에 선 조성래 사장. 이미 20년 전 컬럼비아 본사도 조그마할 때 두 사람의 인연이 맺어졌다. |
등산화는 반드시 목이 긴 것을 신고, 팔이 긁히기 쉬우므로 여름이라도 긴팔 티셔츠를 입는다. 요즈음 제품은 속건성이어서 반팔 티만큼 쾌적하다고 그는 말한다.
“쾌적함은 적합한 사이즈냐에 따라서도 크게 달라집니다. 그래서 한국 내수제품은 이제는 거의가 컬럼비아스포츠웨어코리아 자체적으로 디자인해 제조하죠. 아마 소재는 우리 컬럼비아 것이 최고 수준일 거고, 들이는 정성도 저희만한 회사 드물 겁니다.”
그러면서 조 사장은 “후드 디테일이 이만한 제품은 아마 못 보셨을 것”이라며 고어텍스 재킷의 후드를 뒤집어보인다. 머리 모양에 잘 맞게끔 여러 조각으로 나누어 재단한 다음 일일이 테이핑 처리한 데서 정성을 많이 들였음을 알 수 있다.
컬럼비아사는 몇 해 전 산악전문 브랜드인 마운틴하드웨어를 인수했다. 조 사장은 이 브랜드의 이미지에 걸맞는 제품 생산을 위해 전문 산악인 출신 모상현 대리로 하여금 10여 명으로 구성된 필드테스트팀을 운영케 하고 있다. 현재 마운틴하드웨어 대리점이 40개, 컬럼비아 대리점이 110개로, 조 사장은 아직 점포를 열어야 할 곳이 많이 남아 있다고 밝힌다.
조 사장은 5회째 대한산악연맹 주최 산악스키대회를 후원하고 있다. 이 대회는 회를 거듭할 때마다 참가 열기가 높아지고 있으며, 작년 대회부터는 아시아권 대회로 영역을 넓혔다. 컬럼비아의 후원이 없었으면 어려웠을 일이다.
조 사장은 일본 락페스티발과 같은 음악 축제가 한국에서도 열렸으면 한다며 이렇게 덧붙인다.
“관련 문화가 풍성해져야 결국 그 분야 전체가 더 탄탄하고 오래 발전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런 관점에서 산악스키대회도 후원해온 것인데, 멋진 산상음악제 같은 것이 열렸으면 해요. 산중에서 야영하면서 아름다운 음악을 즐기는 일, 얼마나 멋집니까.”
<감사의 힘>, <부처님 말씀과 마음공부>는 요즈음 조 사장이 주위에도 일독을 권하는 책이다. 업무가 끝나면 철저히 자신만의 일상으로 되돌아가는 조 사장-. 그만큼 여유롭고 자신에 충실한 기업인도 보기 드물지 않나 싶다. 조 사장은 3년 전부터 불우 산악인 가족 돕기를 해왔다. 조 사장은 “앞으로도 산악운동과 산악문화 발전에 도움이 되는 이런 일들을 점차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 글 안중국 차장
사진 허재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