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열기 브랜드를 상징하는 대표
스타일을 뜻하는 `시그너처 스타일`은 지금껏 고가 명품에만 존재한다고 여겨졌다. 브랜드의 오랜 역사와 전통, 디자인의 우월성 등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도 디자인의 기본 골격은 변하지 않은 채 일반 대중에게는 `언젠가는 꼭 가져보고 싶은 물건`으로 인식된다. 샤넬의
2.55백이나 디올의 레이디백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종종 명품이 아닌 대중적인 브랜드에서도 브랜드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시그너처 스타일을
만든다. 스포츠 브랜드인 나이키의 에어포스1, 아디다스의 슈퍼스타, 리복의 퓨리 운동화 등이 대표적이다. 각각 1982년, 1969년,
1994년 탄생한 이들 운동화가 어떻게 수십 년간 비슷한 디자인을 유지하면서도 대중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는지 비결을 찾아본다.
# 에어포스1, 문화가 되다
나이키의 에어포스1은 1982년 탄생했다. 원래는 농구선수용 운동화로 기획돼 소량
생산됐다. 쉴 새 없이 점프하는 농구선수의 발을 보호하기 위해 운동화에 에어백을 넣었다. 발목을 둥글게 감싸는 스트랩, 농구 코트에서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위한 밑창 등도 선수들의 부상 위험을 줄이기 위한 아이디어였다.
그러나 뜻밖에도 일반 소비자들의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출시 당시 미국 동부 지역을 중심으로 소비자들이 기를 쓰고 운동화를 구입하려 했다. 여러 색상의 에어포스1을 생산해달라는 요청도
끊이지 않았다.
에어포스1을 수집하는 유명 수집가들도 등장했다. 음반 제작자이자 DJ로 유명한 클라크 켄트는 1000켤레 이상의
에어포스1을 소장하고 3000켤레 이상을 지인들에게 선물한 것으로 유명하다. 가수이자 NBA 구단 브루클린 네츠의 공동 구단주인
제이지(Jay-Z)도 에어포스1의 광팬이다. 힙합 뮤지션 넬리(Nelly) 역시 에어포스1의 수집가로 `에어포스1s(Air Force
Ones)`라는 노래를 불렀을 정도다. 한국에서도 힙합 뮤지션 슈프림팀의 쌈디, 가수 션 등이 에어포스1의 수집가다. 이제 에어포스1은 문화로
자리 잡았다. 더 이상 기능성 농구화로 기억되지 않는다. 디자인의 기본 골격은 유지한 채 수천 가지 스타일로 조금씩 바뀌어 온 에어포스1의
디자인을 보면 시대의 흐름을 가늠할 수 있다. 소비자들이 매일 삶에서 신고 싶어하는 운동화가 된 것이다.
# 아디다스 로고가
된`슈퍼스타`
1969년 탄생한 아디다스의 슈퍼스타 역시 당초에는 농구선수용으로 제작됐다. 나이키 `에어`가 나오기 전에는
농구선수들에게 최고의 신발이었다. 단단한 재질의 가죽을 사용해 내구성을 높였고 신발 앞코에는 발 부상을 막기 위해 두꺼운 고무로 조개껍데기
모양을 만들었다.
슈퍼스타는 1970년대 젊은이들에게 필수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농구선수들이 아닌 일반인들에게 아디다스가
사랑받는 첫 히트 아이템이 되면서 아디다스의 시그너처 스타일로 자리 잡았다. 미국의 힙합가수 런 디 엠 시(Run D M C)가 슈퍼스타를 신고
`나의 아디다스(My Addidas)`라는 노래를 부르면서 슈퍼스타는 전 세계적으로 유행했다. 아디다스코리아 관계자는 “소비자들의 머릿속에
아디다스 하면 슈퍼스타가 먼저 떠오르기 때문에 슈퍼스타는 시그너처 스타일을 넘어 로고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밝혔다.
# 퓨리,
필수 패션 아이템으로
리복 퓨리는 1994년 탄생했다. 에어포스1과 슈퍼스타에 비해 출발은 늦었지만 그만큼 혁신적이었다.
1980년대 리복은 신발의 발등에 공기를 주입하는 `펌프`를 연구했다. 대부분의 브랜드들이 발바닥에 공기를 넣는 `에어` 제품에 집중하던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시도였다.
리복이 약 10년간의 연구 끝에 개발한 `펌프 퓨리`는 디자인도 획기적이었다. 신발끈을 없애 독특한
실루엣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퓨리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여러 가지 퓨리 제품에 소비자들이 직접 이름을 지어 붙이는 `네이밍`이
크게 유행했다. 파란색과 회색이 합쳐진 퓨리는 건담을 연상시킨다고 해 `건담 퓨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홍콩 반환 시점에 출시된 퓨리는
`홍콩반환 퓨리`, 군인 장식 모양이 새겨진 퓨리는 `밀리터리 퓨리`라고 불린다. 이는 다른 어떤 브랜드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현상으로
마니아층의 퓨리에 대한 애정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오늘날 퓨리는 스포츠웨어를 넘어 패셔니스타들이 착용하는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의 패셔니스타로 알려진 공효진, 일본의 패셔니스타로 알려진 히로스에 료코 등 최고의 배우들이 퓨리를 착용하면서 퓨리의 패션
아이템화는 심화됐다. 퓨리의 기본 디자인을 유지한 채 샤넬과 겐조 등과 협업해 발전된 디자인을 내놓으면서 더욱더 패셔니스타들의 애용품으로 자리
잡았다. 리복코리아 관계자는 “실제 퓨리를 구입하는 고객은 두 부류”라며 “기존부터 퓨리를 강조하던 기존 구매자와 유행을 중시하는
패션니스타”라고 말했다. 박지혜 한국외국어대 글로벌경영대학 교수에 따르면 소비자들에게 시그너처 스타일은 브랜드를 대표하는 최고의 제품을 뜻한다.
따라서 브랜드를 처음 구입하는 소비자일수록 시그너처 제품을 선호한다. 브랜드의 정체성을 대변하기 때문이다.
시그너처(Signature) 스타일 : 브랜드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대표 스타일이다.
전체 디자인의 70%를 차지하는 기본 골격은 그대로 두고 색깔과 재질 등 나머지 30%만 바꾼다. 트렌드에 따라 매년 다른
디자인을 선보인다면 브랜드의 정체성을 상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박지혜 교수는 “시그너처 라인은 브랜드의 정체성을 유지해 주는 데 구심적인
역할을 하면서 브랜드의 가치를 한 단계 올리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많은 유명 브랜드들이 기본 골격을 흔들지 않는 범위 내에서 트렌드에 맞춰
진화된 시그너처 라인을 재출시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