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된 경쟁 대상이 창조를 만든다

어느 스포츠에서든 좋은 기록을 내기 위해선 훌륭한 경쟁자가 필요하다. 김연아 선수도 아사다 마오라는 훌륭한 경쟁자 덕에 연신 세계 신기록을 수립했고, 박태환 선수 역시 쑨양이라는 도전자가 있으므로 더욱 훈련에 매진할 수 있었을 것이다. 메시의 바르셀로나 FC와 호날두의 레알 마드리드가 선수 영입에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 붓고 있는 이유도 비슷하지 않을까?

좋은 경쟁자는 비단 스포츠뿐 아니라 산업체에도 좋은 자극제와 혁신의 필요성을 부가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삼성과 애플을 들 수 있다. 이 두 회사는 서로 으르렁대면서도 훌륭한 경쟁자이자 협력자가 되어 혁신적인 제품들을 지속적으로 쏟아내고 있다. 나이키 역시 아디다스라는 경쟁업체와 힘겨루기를 하면서 꾸준한 성장과 함께 부동의 세계 1위 스포츠용품 업체로 성장해 나갔다. 지난 1994~1995년 사이에는 5년 연속 세 배 이상의 경이적 성장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런 나이키가 1990년대 후반부터 성장률 둔화의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에 나이키 경영진은 심각한 위기의식을 가지고 즉각 경영혁신에 돌입했다. 재미있는 것은 이 당시 나이키가 제1의 경쟁상대를 아디다스 같은 스포츠용품 업체에서 전혀 다른 분야로 돌렸다는 것이다. 바로 소니, 닌텐도, 애플 등의 IT기업을 경쟁상대로 꼽은 것이다. 나이키는 운동용품이 팔리지 않는 이유를 게임기 등의 엔터테인먼트 전자기기에 정신이 팔려 야외 활동을 하지 않는 것을 이유로 꼽았다. 야외 활동이 없을수록 운동화를 신을 시간이 없고 그것은 청소년을 주 타깃으로 했던 나이키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안겨준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러한 분석은 적중했다. 

새로운 시장에 대한 적극적 구애 

나이키는 자신들의 새로운 경쟁 대상인 IT 분야를 철저하게 공부했다. 그리고 자신들이 그들과 어떻게 경쟁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게 된다. 이들은 당시 폭발적인 판매량을 누리고 있던 애플의 아이팟에 주목했다. 당시 아이팟은 애플에 복귀한 스티브 잡스가 2001년 10월에 발표한 이후 전 세계 젊은이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아이템이 되어 있었다.

 

꾸준한 성능향상과 콘텐츠를 공급하면서 연일 최고 판매기록을 갈아치우던 애플은 2005년에 새로운 아이팟인 ‘아이팟 나노’를 세상에 깜짝 발표한다. 아이팟 제품 중 처음으로 플래시메모리와 스크린을 동시에 탑재한 이 제품은 휴대기기 시장에 또 다른 변혁을 가져오게 된다. 그리고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나이키는 애플에게 손을 내밀게 된다. 사실 이전에도 나이키는 2002년 필립스와 함께 ‘PSA 시리즈’라는 MP3 상품을 발매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싸늘했고 양사는 서로의 손을 놓아 버렸다. 하지만 나이키는 한 번의 실패에 포기하지 않고 또 다른 IT업체인 애플의 손을 잡게 된 것이다. 

2005년 5월 나이키는 드디어 애플과 손을 잡고 ‘말하는 운동화’를 개발하게 된다. 바로 ‘나이키+아이팟 스포츠 키트’인데 운동화 착용자들에게 속도와 거리 등 정보를 알려주는 새로운 무선 장치를 탑재한 운동화였다. 운동화에 장착된 센서와 수신기로 아이팟 나노와 통신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이 신제품은 스포츠용품 시장을 술렁이게 했다. 이 장치를 착용하면서 달린 속도와 시간은 물론이고 거리, 칼로리 소모량 등의 정보를 아이팟 나노를 통해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지루한 운동인 조깅을 즐기는 사람들이 주로 음악을 들으면서 달린다는 것에 착안해 운동 정보는 스크린에 표시되는 것은 물론 음악과 함께 음성으로 알려줬다. 말하는 운동화가 탄생한 것이다. 

아이폰 나노와 나이키 플러스 키트

이 제품의 기능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PC를 이용해 운동결과를 다운로드하거나 웹사이트에 전송할 수도 있었다. 운동 목표를 설정, 확인하고 친구들과 비교도 가능했다. 현재는 나이키 런(Nike Running)이라는 달리기 운동을 기본으로 하는 SNS 서비스까지 운영해 전 세계 런닝맨들과 기록을 공유하거나 경쟁할 수 있도록 발전했다. 애플 역시 별도의 나이키 GPS(Nike + GPS) 서비스를 만들어 아이팟의 GPS 기능으로 달린 경로 관리까지 할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이때부터 시장에선 나이키가 운동화 판매가 부진하니 MP3같은 전자제품 시장에 진출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러한 우려에 나이키의 CEO 마크 파커는 “나이키가 MP3 시장에 직접 진출하려는 것이 아니라 시장을 주도하는 상대와 함께 기회를 확립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그러한 선을 지킴으로서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해졌다. 

혁신의 아이콘이 된 나이키! 

나이키는 이제 단순한 스포츠용품 회사가 아니다. 새로운 경쟁상대를 설정하고 자신들의 장점을 최대한 살린 신제품 개발로 인해 혁신의 아이콘이 되어가고 있다. 실제로 나이키는 미국의 테크놀로지 전문 인터넷 매체 패스트컴퍼니에서 발표한 ‘2013년 세계 50대 혁신기업’에서 애플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2008년부터 매년 발표됐던 이 순위의 왕좌는 그동안 구글, 애플, 아마존, 페이스북 같은 IT기업의 전유물이었다. 나이키가 이런 업체들가 어깨를 나란히할 수 있었던 것은 나이키 플러스가 발전한 형태인 퓨얼밴드(FuelBand)와 플라이니트 레이서(Flyknit Racer)의 성공이 크게 작용했다.

나이키 플러스의 성공으로 나이키는 전통 스포츠 브랜드 중에서 한 발자국 더 앞설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아이폰의 등장과 함께 나이키와 같은 생각을 하는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늘어나면서 잠재적 위협을 느낀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위기의식이 새로운 혁신제품들의 탄생을 이끌었다. 그 대표가 퓨얼밴드와 플라이니트 레이서다. 

퓨얼밴드는 이름 그대로 손목에 차는 팔찌로 걷기, 달리기, 농구, 테니스 등을 할 때 자신의 운동량을 측정하는 팔찌다. 미려한 디자인의 이 제품은 작동방식도 간단하다. 컴퓨터를 이용해 스스로 정한 목표치에 운동량이 미달하면 붉은색, 운동량이 달성되면 녹색 불빛이 켜진다. ‘복잡하지 않으면서 운동하는 재미를 주는 제품’에 초점을 맞춰 탄생한 제품이다. 플라이니트 레이서는 기존 방식의 운동화보다 160g이나 가벼운 운동화다. 직물을 여러 겹으로 엮는 것이 아니라 뜨개질 형식으로 제작하기 때문이다. 공법의 혁신을 가져온 것이다. 

퓨얼밴드

마크 파커는 퓨얼밴드 제작의 이유에 대해 “아디다스 등 경쟁자들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과거 영광에 안주할 수만은 없다”며 “옛 성공에 만족해 조직이 크고 느리며 관료적으로 변하는 게 두렵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후에도 나이키는 끊임없이 혁신적인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애플에서 벗어나 자신들이 직접 데이터를 관리하고자 네비게이션 제작업체 톰톰과 함께 GPS 기능의 스포츠워치를 발매하는 등 디지털 관리를 위한 기반을 마련했다. 그리고 나이키 플러스를 러닝에서 다른 운동으로 발전시킨 나이키 플러스 바스켓볼(Nike+Basketball)과 나이키 플러스 트레이닝(Nike+Training)을 연이어 출시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인터넷 분야의 약점을 보완하고자 벤처 기업 테크스타스와 손잡고 나이키 플러스 엑셀러레이터(Nike+Accelerator)를 만들어 냈다. 

나이키를 혁신기업 1위로 발표한 패스트컴퍼니는 “혁신을 위해 내부의 장벽과 제한을 없애는 조직 문화가 나이키의 성공 비결”이라고 분석했다. 바야흐로 나이키가 혁신의 아이콘이 된 것이다. 나이키가 20세기 말 최고의 판매량을 올렸을 당시 현실에 안주하고 위기를 느끼지 못했다면 여타 다른 스포츠용품 회사와 다름없이 지내왔을 것이다. 한 때 휴대폰 시장의 절대 강자로 군림했던 모토로라의 사례와 같이 다른 회사에 팔려가지 않았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었을 것이다. 

미국 작가 조지 R.R. 마틴의 판타지소설 얼음과 불의 노래를 보면 철 왕좌(Iron Throne)라는 것이 나온다. 왕의 권위와 권력을 상징하는 이 의자는 1천 개의 검으로 만들어져 편하게 앉아있기 어렵다. 왕의 권좌가 이렇게 불편하게 만들어진 이유는 ‘왕의 자리는 편해서는 안 된다’는 정복자 선왕의 지론 때문이다. 많은 기업이 정상에 오른 이후 너무 편한 왕좌에 길들어 자리 지키기에만 급급한 나머지 미래에 대해 대처 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게 노키아, 모토로라, 코닥 등이 무너졌고 앞으로도 수많은 거대 기업들이 쓰러지려 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재빠르게 위기를 파악하고 자신의 경쟁자부터 다시 설정했던 나이키의 사례는 창조경제의 가장 적합한 본보기가 아닐까 생각된다. 

나이키 플러스의 제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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