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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SC 싱가포르 마라톤 참가기…한여름의 크리스마스 분위기도 만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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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2007년 1월 2일 포커스마라톤 잡지사에 게재했던 참가기입니다.


2006 SC 싱가포르 마라톤 참가기…한여름의 크리스마스 분위기도 만끽
“맑은 공기 듬뿍 마시고온 마라톤여행”

2006 SC 싱가포르 마라톤 참가기…한여름의 크리스마스 분위기도 만끽

아무도 없는 도심의 도로를 수천명의 선수들이 달리고 있다니 재미있었다. 하프마라톤대회가 아니라 21km 싱가포르 두발 체험 투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여행을 준비하다 보면 여행 자체가 목적이 되는 경우가 있고, 어떤 목적을 위해 여행을 떠나는 경우가 있다. 지난 12월 초 싱가포르에서 개최되는 2006 SC 싱가포르 마라톤 대회 참가를 목적으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필자의 소득 수준을 기준으로 본다면 1년에 한두 번의 해외대회 참가가 사치일 수도 있다. 하지만 두 발로 전 세계 다양한 지역을 뛰어보는 즐거움이기에 사치를 부려볼 수 있는 것 같다. 전혀 알지 못했던 곳을 두 발로 디뎌본 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활동 공간을 넓혀주는 것이 아니라 생각의 공간까지 넓혀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반 관광여행 상품에서 느낄 수 없는 새로운 재미가 있다.

두 발로 떠난 마라톤 여행

일정은 12월 1일 금요일 오후 3시 30분 비행기로 출발해서 월요일인 4일 이른 아침 6시쯤에 인천공항에 도착할 수 있도록 잡았다. 금요일 오후 조퇴를 하고 공항으로 향했다. 연말 밀린 업무들로 인해 미처 싱가포르라는 나라와 그 대회에 대해 자세하게 알아볼 시간도 갖지 못한 채 떠났다.

‘가까운 동남아 여행 정도겠지’하며 나섰는데 기내 모니터를 통해 보여주는 여정을 보고서야 싱가포르가 적도 가까이에 위치한 제법 먼 거리에 위치한 나라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나마 출발 전 열대기후임을 확인하고 여름 옷들을 챙긴 것이 다행이었다.

저녁 9시쯤 싱가포르 창이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와 터미널을 연결하는 통로에 들어서는데 우리나라 초여름 밤의 후텁지근함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서울은 발가락이 시릴 정도로 추운 날씨인데…. 가방에서 얇은 반소매 옷을 꺼내 입으며 한국에서는 하지 못하는 행동을 하는 일탈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입국 심사장에 들어가서 입국 심사를 받았다. 여권에 삽입하는 종이에 빨간 글씨로 ‘Death for drug trafficker under Singapor Law’라고 굵직하게 쓰인 문구가 보였다. 사형이라니! 무시무시할 뿐이었다. 그러나 하늘을 우러러 ‘몇 점’의 부끄러움밖에 없는 아마추어 마라토너로서 그런 것들은 신기한 문화일 뿐이었다. 싱가포르는 익히 알고있는 대로 법 적용이 엄격해서 태형이 존재하고, 거리엔 쓰레기 하나 없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교칙이 엄격한 학교에 전학온 학생처럼 행동도 조심스러워졌다. 대회장인 파당(Padang) 광장에서 5분 거리인 숙소 호텔에 여정을 풀고 거리도 구경할 겸 호텔 주위를 가볍게 달린 후 잠을 청했다.

둘째 날인 토요일 오전에는 배번호와 다양한 프로모션 물품, 그리고 안내 책자가 든 가방을 받았다. 욕심은 풀코스를 뛰고 싶었으나 우선 연습량이 받쳐주지 못했고, 대회일인 일요일 밤에 출발해 월요일 새벽 도착 후 바로 출근해야 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하프코스를 신청했다.
오후에는 남는 시간을 활용해서 근처 관광지를 둘러보기로 했다. 어차피 달리기를 목적으로 떠나온 여행이기 때문에 관광은 조금 포기해야 했다. 하지만 싱가포르가 작은 도시 국가여서 가볍게 다녀도 많은 구경거리를 볼 수 있었다. 싱가포르의 상징인 머라이언 공원과 노천 카페가 늘어선 보트 키(Boat Quay),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볼 수 있는 차이나타운, 그리고 ‘쇼핑의 거리’인 오차드(Orchard) 거리를 도보로 다녔다. 그 거리들 중 일부는 다음날 마라톤 코스이기도 했다.

벌써부터 크리스마스 장식들로 난리였다. 해가 저물자 도로와 거리 위를 가득 메운 작은 전구들이 발산하는 화려한 불빛들이 주변 쇼핑 시설들과 어울려 기분을 들뜨게 만들었다. 에어컨 시설이 없는 곳은 조금만 걸어도 더워서 땀이 나는데 징글벨에 산타클로스와 장식 불빛들이라니 우스웠다. 한편으로는 눈과 추위가 있는 제대로 된 크리스마스를 즐길 수 없기 때문에 오히려 더욱 크리스마스 장식과 분위기를 과장해서 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요일 대회는 아침 6시 풀코스 시작으로 진행됐다. 평소에는 단잠에 빠져있을 새벽 5시에 일어나서 간단하게 경기복을 챙겨서 나섰다. 토요일 관광으로 좀 많이 걸어다닌데다, 늦게 잠자리에 들기는 했지만 하프코스여서 별 부담이 없었다. 출발선 근처에 태극기가 보였다. 의외로 한국 참가자들이 많았다. 유명한 배형진씨도 취재진과 함께 있었고, 회사나 동호회에서 온 참가자들도 많이 있었다.

따로 여행사를 통해서 다니지 않다보니 한국 달림이들을 대회장에서 보는 것이 반가웠다. 그러나 쑥스러움에 다가가서 인사를 나누기에는 용기가 부족했다.

첫 해외 마라톤 참가

해외 마라톤대회는 첫 참가였다. 의외로 차분하게 대회가 진행되었다. 한국 같았으면 <포커스마라톤> 기사에 나온 개그맨 배동성씨의 진행으로 함성도 지르고, 앞뒷 사람의 어깨도 주물러 주고, 몸풀기 단체 스트레칭도 했을 텐데 그저 응원 나온 가족들과 사진 찍는 정도가 전부였다.
드디어 6시, 아직까지 어둠이 낮게 깔린 대회장에서 풀코스 주자들이 출발했다. 은근히 흥분되었다. 어디나 출발선에 선다는 것은 즐거움과 함께 묘한 긴장감을 준다. 머릿속으로는 ‘어떤 즐거움을 찾고자 노력해야 될까?’라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그냥 기록이나 대회 참가를 목적으로 한다면 국내 대회에 참가해도 됐을 텐데 그런 것보다는 뭔가 다른 것을 원했기에 황금 같은 주말을 포기하고 달리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나오지 않았을까?

6시 30분, 하프코스 무리에 섞여 출발했다. 거리는 매우 조용했다. 일요일 아침 빌딩숲 사이를 뛰쳐나가는 모습은 뉴욕이나 서울이나 싱가포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조금씩 밝아지는 아무도 없는 도심의 도로를 수천명의 선수들이 달리고 있다니 재미있었다. 하프마라톤 대회가 아니라 21km 싱가포르 두 발 체험 투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싱가포르는 듣던 대로 깨끗했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건물 벽이 무너질 것처럼 달려있는 무수한 간판들이 눈을 괴롭혔을 텐데 여기는 깔끔한 빌딩들만 있었다. 그리고 정말 길바닥에 쓰레기나 담배꽁초가 없었다. 오히려 이렇게 깨끗한 환경이다 보니 실제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라 롯데월드나 에버랜드의 ‘지구마을’처럼 인공적으로 만든 도시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일요일 아침 일찍 도심에서 열리는 대회이다 보니 2006년 3월에 참가했던 동아 마라톤대회가 생각났다. 조용한 도심에 아스팔트와 수천 켤레의 마라톤화들이 부딪히며 내는 소리만 가득했다. 조금은 둔탁한 소리들이 일정한 리듬에 맞춰 들리는데, 러닝화 바닥에 맑은 소리를 내는 타악기 같은 장치를 부착한다면 어떨까 하는 엉뚱한 상상도 했다.

항상 풀코스 대회만 참가해 봤는데, 풀코스 주자 무리와 하프코스 주자 무리가 만들어 내는 분위기는 확연히 차이가 있었다. 가장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은 여유였다. 최대한 옆사람과 부딪히지 않게 달리려고 노력하고, 추월하더라도 서로 피해가 되지 않게 달리려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재미있는 복장으로 달리기를 즐기는 사람들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이곳에서도 많이 눈에 띄었다. 여기도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인지라 여기저기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통제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눈에 띄었고, 좁은 병목 코스에서는 서로 비키지 않는다며 큰 소리로 화내며 가는 사람도 있었다.

후텁지근한 날씨 탓에 5km를 지나는데 경기복은 땀에 흠뻑 젖었다. 아침도 못 먹고 출발했고, 어제부터 된장국에 쌀밥을 먹어보지 못해 진정한 헝그리 러너가 되었다. 그래도 깨끗한 공기를 마실 수 있는 것이 좋았다. 도심인데도 빼곡한 나무들과 잔디들이 잘 가꾸어져 있었다. 그나마 구름이 많이 낀 날씨라 땀도 아주 많이 나지 않았다.

낯선 풍경에 취해 어느새 골인

10km를 조금 넘어서는데 한글 동호회 이름이 쓰인 경기복을 입은 분이 편한 호흡으로 옆을 지나갔다. 숨기려 해도 보이는 달리기 내공이 3시간30분 이내는 족히 들어올 수 있을 듯 보였는데 관광 삼아 달리는지 편안한 속도로 대회를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도 그 여유로운 페이스 속에 숨겨진 스피드가 있었다. 마음은 보조를 맞춰가고 싶었지만 괜히 무리하고 싶지 않았다.
낯선 풍경들과 다양한 피부 색깔의 사람들을 구경하다 보니 금방 15km가 되었다. ‘이거 구경도 많이 못 했는데 벌써 마무리할 시간이 되다니, 좀 힘들더라도 풀코스 신청할걸 그랬나?’라는 아쉬움이 몰려왔다. 시계를 보니 오전 9시가 곧 될 것 같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호텔 조식 뷔페가 9시까지였던 것 같기도 하고, 10시까지인 것 같기도 했다. 그래 일찍 들어가서 샤워하고 조식 뷔페나 먹어야지, 하는 생각에 서둘렀다.

피니시 라인 근처에 가니 사회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중간중간 10km 주자와 하프코스 주자, 풀코스 주자를 나누는 갈림길이 있었다. 자원봉사자들은 배번호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혹시라도 자기가 가야 될 길을 찾지 못하고 엉뚱한 길로 들어서는 주자들을 찾아내어 바른 길로 보내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있을까 싶은데 여기도 정신 못 차리는 사람들은 제법 있었다.

2시간을 꽉 채워서 하프코스를 마무리했다. 좀 아쉽기는 했지만 이른 출발시간으로 인해 9시도 안 되어 대회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호텔로 돌아와서 깔끔하게 샤워를 한 후 아슬아슬하게 조식 뷔페로 허기를 달랬다. 대회를 뛰고 온 것이 아니라 일요일 새벽 합동훈련을 하고 들어와 밥을 먹고 휴식을 취하는 것 같았다.

정오가 되니 풀코스도 마무리가 되었고, 통제됐던 교통도 풀려 도시는 정상을 찾았다. 언제 대회가 있었느냐는 듯 신기루같이 정리되고, 정상으로 돌아왔다. 3일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일정이었지만 편안하게 푹 쉬었다 온 마라톤 여행이었다. 아마 풀코스를 뛰려 했다면 하루 정도는 더 잡아야 여유있게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기회가 된다면 다음에는 동호인이나 친구들과 같이 다시 한 번 오고 싶었다. 마라톤을 목적으로 떠나는 여행을 혼자만 즐기기엔 많이 아쉬웠다. 단순하게 달리는 것만이 아니라 달리면서 짧지만 그들이 달리기를 통해 느끼는 것과 보여주려 하는 것이 무엇인지 관찰하면서 뛰는 재미가 쏠쏠했다.

한편,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의 꽤 괜찮은 마라톤대회들을 이곳 사람들에게 알려서 내가 여기까지 와서 달리는 것처럼 이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뛰게 해볼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었다. 동시에 그들이 서울에서 열리는 대회를 뛰고 나서 어떤 느낌과 생각을 가질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글·김대익((주)덕화스포츠 스포츠실 근무)

2007.01.02   10:19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