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GM과 함께하는 협상스쿨 – 조선일보

[IGM과 함께하는 협상스쿨]
상대방이 만든 틀, 과감히 파괴하라 framing
의도적 스트레스, 단호하게 시정 요구 stress
착한 척하는 사람을 더 조심해야good·bad guy
막판에 끼워 넣기 시도 땐 되받아쳐야 nibbling

Case “협상하지 맙시다! 어디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십니까?”

인상도 험악한 ‘사술통신’의 김악한 상무가 핏대를 세우며 고함을 친다. 순간 협상 테이블 맞은편에 앉아 있던 나순진 사장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 경기 침체를 견디다 못해 자신이 10년 전 설립했던 벤처회사를 매각하기로 결심한 나 사장. 협상이 예상보다 쉽지 않다. 아니, 죽을 맛이다. 그도 그럴 것이 협상 상대는 벤처 기업들을 헐값에 먹기로 유명한 사술통신. 소문대로 사술통신과의 협상은 ‘고난’ 그 자체다. 협상이 시작되자마자 사술통신이 던진 첫 제안은 이랬다. “협상이 ‘한 달’ 내에 마무리되면 60억원을 드리죠. 하지만 한 달이 지나가면 저희는 50억원 이상을 드릴 수 없습니다. 시간이 많이 걸리면, 그 기간에 들어간 비용을 빼겠습니다.”

‘아니. 회계사들 말로는 회사 가치가 최소 80억원은 된다고 했는데….’갑자기 나 사장의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이거 빨리 협상을 끝내 60억원이라도 받아야 하는 거 아닐까?’

가뜩이나 골치 아픈데, 나 사장을 괴롭히는 또 하나의 적이 있다. 바로 담배 연기. 사술통신 사람들은 협상 중 돌아가면서 담배를 뿜어댔고, 비흡연자인 나 사장은 괴로워 죽을 맛이다. 사술통신의 고압적인 협상 태도에 대놓고 피우지 말라고 하기도 힘들다. 그래도 나 사장에게 한 가지 위안은 있다. 바로 사술통신의 안천사 전무. 그는 고함만 지르는 김악한 상무 옆에 앉아 때론 김 상무를 혼내고, 때론 나 사장의 얘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고 있다. 안 전무의 제안은 김 상무의 제안에 비하면 훨씬 부드럽다.

‘사술통신에도 저렇게 훌륭한 분이 있다니….’

상대편이지만 너무 고맙고 정이 간다. 나 사장은 안 전무의 ‘상냥한’ 제안을 거의 다 받아들이며 협상을 해 나갔다. 이렇게 겨우겨우 협상을 진행하며 계약서에 최종 사인만 남겨둔 상황. 갑자기 김 상무가 이런 요구를 한다. “이번 M&A를 위해 저희가 실시한 실사 비용 정도는 지불해 주실 수 있죠?” 하루 종일 지속된 마라톤협상에 지친 나 사장은 자신도 모르게 ‘예’라고 대답하고 협상을 마무리했다.

협상장을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온 나 사장. 협상이 끝났지만 뭔가 기분이 찜찜하다. 사술통신의 협상단. 그들은 도대체 나순진 사장을 상대로 무슨 짓을 한 것일까?
 



일러스트=박상훈 기자 ps@chosun.com

Answer 사술통신의 협상단은 나순진 사장의 기분을 무척 상하게 했지만, 사실 그들은 의도적으로 그렇게 한 측면이 있다. 고도의 협상 전술을 구사한 것이다. 사술통신이 구사한 전술은 아래의 4가지로 요약된다. 그런 전술에 말려들지 않기 위한 대응책도 제시해 본다.


1. 프레이밍(framing) 전술→ 대응책:상대가 만든 틀을 뒤집어라

어느 날 직장 동료와 함께 갈비탕이나 먹을까 하는 생각에 고깃집을 찾았다고 하자. 종업원이 다가와 상냥한 미소와 함께 이렇게 말한다. “아이고, 오늘 좋은 고기 들어온 거 알고 오셨군요. 안창살도 최상이고, 등심도 끝내 줍니다. 어떤 걸 드실까요?”

이 말을 들은 당신과 동료는 ‘그럼 안창살(또는 등심)이나 먹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종업원이 이미 ‘고기를 먹는다’는 것을 전제하고 ‘둘 중 무엇을 먹을지’에 대해서만 당신에게 선택권을 줬기 때문이다. 이것이 협상 고수들이 자주 쓰는 전술 중 하나인 ‘프레이밍 전술’이다. 아직 정해지지 않은 사실을 기정사실화해 놓고, 자신에게 유리한 틀 안에서 상대가 하나를 선택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앞의 사례에서 사술통신도 이 전술을 활용했다. ‘최대 60억원’이라는 금액을 이미 기정사실화해 놓고 시간이라는 요소를 선택하도록 해 나 사장의 관심을 가격이 아닌 시간으로 돌려버린 것이다.

시어도어 루스벨트(Roosevelt) 대통령이 선거에 나왔을 당시 선거본부장은 이 전술을 활용해 위기를 극복했다. 선거 운동 시작 하루 전날, 기다리던 홍보 팸플릿 300만부가 나왔다. 팸플릿을 본 참모진은 경악했다. 루스벨트 후보의 사진 아래에 있는 ‘Copyright by John’이라는 문구를 그제야 발견했기 때문이다. 존이라는 사진사가 찍은 사진을 참모진의 실수로 무단 사용한 것이다. 만약 이 팸플릿을 그대로 사용한다면 저작권법에 따라 최소 300만달러 이상의 저작권료를 지불해야 하고, 자칫 저작권 무단 사용에 따른 도덕성 시비가 터질 수도 있었다. 당신이 존이라는 사진사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하는 선거본부장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협상을 못하는 사람은 일단 “죄송합니다”라는 말로 시작한다. 그리고 저작권료를 좀 깎아줄 수 없겠냐고 할 것이다.

하지만 실제 상황은 달랐다. 협상 고수인 선거본부장은 존에게 전화해 다짜고짜 “축하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루스벨트 선거 팸플릿 300만부에 당신의 이름이 박힌 사진이 실렸습니다. 우리가 이런 호의를 베풀었으니 당신도 선거 기금으로 1000달러 정도를 후원하면 어떨까요?” 이 말을 들은 사진 작가는 실제로 250달러의 선거 자금을 후원했다. 선거 본부장이 프레이밍을 통해 존의 인식을 ‘사진 저작권’이 아닌 ‘사진 홍보’라는 틀에 가둬버렸기 때문이다.

협상장에서 프레이밍 전술에 넘어가지 않으려면 상대가 만든 틀, 대전제를 뒤집어야 한다. 앞서 나순진 사장의 경우라면 사술통신의 제안에 대해 “협상 시간은 나중에 이야기하고, 가격 이야기부터 합시다”라고 되받아쳐야 한다.

2. 스트레스(stress) 전술→ 정중하고 단호하게 중단해 달라고 요구하라

중국과 미국의 핑퐁 외교가 한창이던 1970년대, 미국 협상단은 협상이 끝날 때마다 괴로운 얼굴로 협상장을 빠져나왔다. 중국 협상단이 협상을 진행하는 내내 가래침을 뱉어댔던 것. 그것도 속이 훤히 보이는 유리컵에다 말이다. 가래침 가득한 유리컵에 질린 미국 협상단은 빨리 그 자리를 떠나고 싶었다.

이것이 협상학에서 말하는 스트레스 전술이다. 끊임없이 담배를 피워대던 사술통신의 협상단도 이 전술을 활용한 셈이다. 스트레스 전술을 사용하는 목적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상대의 평정심을 깨뜨려 이성적 판단을 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데 있다. 다른 하나는 상대가 협상장을 빨리 벗어나고 싶도록 만들어서 더 많은 양보를 얻어내기 위해서다. 무더운 여름날 협상 장소를 일부러 에어컨이 고장 난 장소로 섭외한다거나, 볼펜을 딱딱거리며 신경 쓰이게 하는 것도 스트레스 전술의 일종이다. 상대가 이러한 행동을 할 때는 당황하거나 흔들리지 말라. 그리고 그러한 행동을 중단해 달라고 요구하라. 이렇게 말해 보라. “담배 연기 때문에 협상에 방해가 됩니다. 꺼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정중하면서도 단호한 태도를 보이면 스트레스 전술을 무너뜨리고 오히려 상대의 기를 꺾을 수 있다.


3. 굿가이 배드가이 전술→ 굿가이를 더 조심하라

사사건건 핏대를 높이며 나순진 사장을 괴롭히던 인상 ‘더러운’ 김악한 상무. 그리고 그의 옆에 앉아 나 사장의 말을 잘 듣고 이해해 준 사람 좋은 안천사 전무. 누구라도 안 전무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또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싶어질 것이다. 이를 협상학에서는 ‘굿가이(good guy) 배드가이(bad guy) 전술’이라고 부른다. 이런 장면은 경찰서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먼저 험상궂은 형사가 나와 피의자를 심문하기 시작한다. 욕설을 뱉어대며 피의자를 몰아세우고 있을 때, 갑자기 마음 좋게 생긴 형사가 나타나 험상궂은 형사를 내보내고 피의자와 마주 앉는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피의자의 입에 물려주며 이렇게 말한다. “저 친구 내가 봐도 너무 하네. 많이 힘들었지? 그러지 말고 나한테 얘기해. 응?” 그러면 피의자는 담배를 한 모금 빨고 슬슬 자백을 시작한다. 이 전술이 먹히는 이유는 사람들이 ‘대조 효과’라는 착시에 넘어가기 때문이다. 아주 극단적으로 대응하는 못된 상대 옆에 자신의 말을 조금이라도 잘 들어주는 착한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착한 사람의 제안을 아주 좋은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 기존에 생각했던 것만큼 만족스러운 제안이 아닐 경우라도 말이다. 이러한 전술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서는 오히려 배드가이보다 굿가이에 조심해야 한다. 굿가이의 ‘선한’ 제안을 더 치밀하게 분석해야 한다. 판단이 어려울 때는 잠시 정회를 요구하고, 우리 편끼리 내부 회의를 하는 것도 방법이다.


4. 마지막 끼워 넣기(nibbling) 전술→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빨리 협상장을 빠져나가고만 싶은 나순진 사장의 발목을 잡은 마지막 제안은 “M&A 실사 비용 정도는 대 주실 거죠?”라는 사술통신의 요구였다.

긴 시간을 투자해 타결 직전에 있는 협상이 깨지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러한 심리를 이용한 협상 전술을 ‘니블링(nibbling) 전술’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당신이 양복 가게 주인인데, 손님 한명이 두 시간이 넘도록 몇 벌의 옷을 입어보고 아주 고가의 양복 한 벌을 골랐다고 가정하자. 그 손님은 계산을 바로 앞둔 상황에 주변에 걸려있는 넥타이를 하나 보고, “비싼 양복 한 벌 샀는데, 이거 하나 끼워 주시죠?”라고 제안한다. 당신이 양복가게 주인이라면 그의 제안을 쉽게 거절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니블링 전술을 사용하는 상대에게 넘어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이 있듯, 니블링에는 역(逆)니블링으로 대응하면 된다. 넥타이를 요구하는 손님에게 이렇게 말하면 어떨까? “역시 손님은 보는 눈이 있으십니다. 이 양복에는 이 넥타이가 딱이죠. 그렇다면 이 타이에 너무 잘 어울리는 셔츠 한 벌 더 사시죠. 그럼 제가 넥타이는 서비스로 드리죠”라고 말이다.

나순진 사장의 경우라면 이렇게 대꾸하면 어떨까? “좋습니다. M&A 실사 비용은 저희가 대죠. 대신 저와 함께 퇴임하는 임원들의 퇴직금은 충분히 보장해 주실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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