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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0일 매일경제 – HELLO CEO 외식업 토종브랜드 수출 썬앳푸드 남수정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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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봄이었다. 보스턴대 경영학과 4학년이던 여대생은 기숙사에서 중간고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한국에 있는 아버지에게서 온 전화였다. 아버지는 다짜고짜 “모레 미국에 갈 텐데 댈러스로 오라”고 했다. “어! 아빠, 모레 중간고사가 있는데요.”
다음날 아버지는 보스턴대 경영대학장에게 전화를 했다. “내 딸 중간고사 시험을 면제해 주십시오. 시험보다 더 중요한 공부를 하러 가야 합니다.”
학장에게 허락을 받은 아버지는 딸을 데리고 댈러스에 있는 글로벌 외식업체 브링커(Brinker) 본사로 갔다. 그리고 딸에게 시장조사를 맡기고 한국에 들여올 외식 브랜드를 찾아보라고 했다.

그때 그 여대생이 바로 썬앳푸드 남수정 사장이다. 이후 17년 사이 남 사장은 썬앳푸드를 메드포갈릭 등 8개 브랜드, 35개 매장을 거느린 한국의 대표적인 레스토랑 체인으로 키웠다. 특히 메드포갈릭은 외국계 패밀리레스토랑의 공격을 물리친 토종 패밀리레스토랑 브랜드가 됐고 한국 외식업계 최초로 외국에 국가 판권을 수출하는 쾌거를 거뒀다.

지난달 31일 찾은 서울 장충동 남 대표 사무실은 꼭 ‘여행자의 집’ 같았다. 언제든 쉽게 떠날 수 있을 곳처럼 간소하고, 여행 후 돌아와 휴식을 취하기 좋은 그런 공간이었다. 인터뷰는 종이컵에 타온 ‘다방식 커피’를 사이에 두고 진행됐다.

◆ 운명을 바꾼 전화 한 통
―그때 그 전화 한 통이 운명을 바꾸었군요.

▶그렇죠. 그때 댈러스에서 브링커는 물론 TGI 등 유명 외식업체들을 돌며 시장조사를 했습니다. 그때 제 입맛을 당긴 것이 바로 ‘토니로마스(Tony Roma’s)’였습니다. 손으로 잡고 뜯는 게 우리나라 갈비와 유사하고 톡 쏘는 강한 양념 역시 한국인 입맛에 맞는 것 같아 아버지를 설득했어요.

―토니로마스를 바로 한국으로 들여왔나요?
▶아뇨. 문제가 생겼어요. 한국에 들여오려고 했더니 이 브랜드 판권이 이미 20년 전에 WDI라는 일본 외식 체인에 팔린 거예요. 바로 일본으로 날아갔죠. “정말 좋은 브랜드로 키워보겠다”고 설득했습니다. 젊은 여대생이 겁도 없이 덤벼드니 판권을 넘겨줬습니다.

◆ 자체 브랜드로 승부수
그렇게 한국에 닻을 내린 ‘토니로마스’로 남 사장은 ‘작은 성공’을 이루었다. 하지만 외국 브랜드로만 승부한다는 사실이 남 사장 자존심을 건드렸다.

직접 메뉴를 개발하고 가게를 열어보고 싶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스파게티아’다. 스파게티아는 토니로마스 명동점 한구석 자투리 공간에서 처음 시작했다.

―왜 스파게티였습니까
▶그전에 우리나라 스파게티는 청담동이나 압구정동, 호텔 등에서 팔리는 부담스러운 음식 정도로 인식되었어요. 저는 그냥 청바지에 슬리퍼 신고 가서 편하게 먹을 수 있는 분식점 같은 가게를 만들고 싶었어요. 사실 스파게티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다는 자부심이 있어요.

―직접 브랜드를 개발하니까 좋던가요.

▶로열티도 안 내고 식자재나 이런 것도 우리 스스로 정하고 이러니 정말 좋더라고요. 이익률도 30% 이상 펑펑 나오고. 그래서 자체 브랜드로 계속 밀고 나가게 됐죠.

―실패를 거의 경험하지 않은 것 같네요.

▶그렇지 않습니다. 스파게티아 이후 2001년 메드포갈릭이 나오기까지 몇 개 브랜드에서는 쓴맛을 봤죠. 타율로 치면 6할 정도.

◆ ‘느림’ ‘비효율’도 경쟁력
남 사장은 외식업을 “인류가 아무리 발전해도 절대 사라지지 않을 사업”이라고 했다. 또 “잘 차려진 한 상을 대접받고 싶은 욕구가 누구에게나 있기 때문에 ‘광속 발전’ ‘효율성의 시대’에도 조금은 느리고 비효율적인 것이 경쟁력이 될 수 있는 분야”라고 했다.

―8개 브랜드에 아직 매장이 35개밖에 없습니다. 성장이 느린 것 아닌가요.

▶저는 한꺼번에 몇 십 개씩 지점을 여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어요. 메드포갈릭을 하나 오픈하려고 해도 주방장을 1년 이상 교육해야 하는데 어떻게 그게 가능하죠? 맛을 지키기 위해서는 지금 속도가 가장 적당합니다.

가게 하나에서 1년간 주방장을 키우고 그 주방장을 새로운 가게에 보내고, 그 가게에서 또 주방장을 키우고…. 이런 자연스러운 속도 이상으로 성장하고 싶지 않아요. 불가능하기도 하고요. 주방은 우리 회사 핵심 경쟁력입니다. 그 핵심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 시스템을 고수할 수밖에 없지요.

―식자재를 반가공 상태로 공급하면 가능한 일 아닌가요.

▶저희는 식자재를 공급하는 공장이 없어요. 재료만 보내 현장에서 직접 모든 것을 조리할 수 있게 합니다.

예를 들어 대파 하나라도 요리하게 좋게 잘라서 공급한다면 칼을 댄 곳에 색깔이 변하고 제 맛을 낼 수가 없지요. 우리 경영원칙 중 하나가 효율이 좀 떨어질지 몰라도 중앙공급형으로 식자재를 공급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손님이 많이 몰리는 크리스마스밸런타인데이, 어린이날 같은 때에는 본사 전 직원을 매장으로 배치해 마늘을 까게 한다.

◆ 현지화 전략이 성공 비결

썬앳푸드 브랜드들은 철저하게 전문점 형태로 운영된다. 스파게티 전문점, 피자 전문점, 마늘요리 전문점…. 지난해 시작한 레드페퍼리퍼블릭은 쓰촨 요리 전문점이다. 그렇다고 ‘본고장 전통 그대로’를 고집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 남 사장은 “인도 커리가 일본으로 가서 일본 카레가 되었듯이 현지화해야만 통할 수 있다”고 말했다.

―메뉴는 어떻게 정하나요.

▶보통 한 달에 두 번씩은 직원들을 데리고 외국에 나가요. 일정이 모두 음식 먹는 스케줄로 짜여 있죠. 직접 먹어보면서 한국에서 통할 만한 메뉴를 고르죠. 주로 도쿄, 미국, 이탈리아, 프랑스 등을 많이 다니고 요즘은 중국 쪽으로 자주 가는 편이에요.

―한 달에 두 번씩 외국 맛기행이라…. 부럽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한번 따라와 보실래요? 고역입니다. 아침은 안 먹고 오전 11시에서 11시 30분에 첫 끼를 먹고, 오후 1시에 점심을 먹고 저녁은 7시, 9시에 먹거나 5시, 7시, 9시에 나눠 먹어요. 1일 4식이나 5식은 기본이죠. 피자 브랜드를 개발할 때는 하루에 7군데씩 피자집만 다녔어요. 리서치를 위해서 나간 것인데 그냥 손가락으로 찍어 먹어보고 올 수는 없죠. 그래서 정말 다 먹습니다. 어떨 때는 같은 메뉴만 계속 먹다 토한 뒤 다시 입을 헹구고 먹은 적도 있어요. 매번 몇 ㎏이 불어서 들어오죠.”
―메드포갈릭을 열 때는 맛기행을 얼마나 다녔나요.

▶미국, 일본, 이탈리아 합쳐서 100군데 정도 갔어요. 똑같은 가게에 점심 저녁 해서 사흘 내내 가본 적도 있고요.

―그렇게 선택한 메뉴는 바로 메뉴판에 올립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게 리서치를 하고 숙소에서 같이 간 셰프와 직원들이랑 회의를 하면 그날 먹은 음식 레서피는 바로 완성됩니다. 거기에 한국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변화시켜야 되는지에 대해서도 연구를 합니다. 우리가 내놓은 피자에 젓갈이 들어가는 것도 있는데 이런 연구의 결과지요.

◆ 실패에서 건져 올린 성공의 열쇠
처음 남 사장이 ‘메드포갈릭’을 오픈할 때에는 지금 모습이 아니었다. 패밀리레스토랑이 아닌 편한 와인바를 만들자는 구상으로 시작했다. 마늘을 곁들인 음식은 사이드 메뉴였고 영업시간도 오후 5시에서 새벽 2시까지였다. 하지만 음식이 맛있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지금 모습으로 바뀌었다.

―처음 계획은 실패한 거네요.

▶그랬죠. 근데 그걸 인정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처음 몇 년간은 고집을 피웠어요. 하지만 고객들이 원하는 것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받아들였습니다.

―만약에 직원들이 내놓은 아이디어로 실패를 했다면 어떻게 했을 것 같아요?
▶저는 직원들에게 믿고 맡깁니다. 거의 전결권을 주죠. 가령 제 밑에 신 이사라는 분이 있는데 이분이 억대 단위 프로젝트를 가져오면 ‘알아서 마음대로 해. 끝!’이라고 답해요. 동기부여는 위임을 많이 해 주는 데서 오는 겁니다. 제 원칙 중에 1ㆍ2ㆍ3원칙이라는 것이 있어요. 위임은 하되 하루 동안 검토하고 두 시간 만에 결정하고 세 문장 내로 정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직원들이 더 부담스러워하겠군요.

▶그래서 실패한 사례도 많아요. 브랜드를 론칭하려다 막판에 판단이 뒤집어질 때도 부지기수고 프로모션에서도, 브랜드 론칭 과정에서도 실패를 많이 했어요. 하지만 그걸로 직원들을 질책한 적은 없습니다. 한 가지 조건이 있지요. ‘실패 리포트’를 작성하라는 거지요. 보통 실패 리포트를 작성하는 데 두 달 정도 걸려요. 실패 원인이 뭔지, 전략이 뭐가 잘못됐는지 등을 꼼꼼히 기록해야 해요. 그리고 그걸 전 직원이 공유합니다. 실패도 우리 자산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외식업체와 달리 직원 이직률이 매우 낮다고 들었습니다. 직원들을 하나로 묶는 힘이 뭔가요.

▶비전 공유입니다. 많은 급여, 승진 기회, 이런 것도 중요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이 직장에서 자신들 꿈을 펼칠 수 있는가, 재미있게 일할 수 있는가 하는 겁니다. 우리끼리 ‘우리가 하면 다르다. 우리는 썬앳푸드다’라는 말을 자주 해요. 라면이나 김밥을 팔아도 우리 회사가 하면 다르다는 자부심이 있는 거지요.

―올해 회사 비전은 뭔가요.

▶’글로벌 다이닝 리더.’ 이 쉬운 말을 뽑는 데 8개월 넘게 걸렸어요. 국내에서 얻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이제 세계 무대에서 승부를 보자는 거지요. 메드포갈릭 국가 판권을 외식업계 최초로 판 것이 그 신호탄입니다.

◆ 아직 못 이룬 꿈
남 사장은 “한국에서 밥장사로 성공한 사람들 가슴속에는 모두 다 같은 꿈이 있다”고 했다. 우리 음식을 가지고 세계시장으로 진출하는 것이다. 남 사장 역시 다르지 않다.

얼마 전 오크우드호텔에 1호점을 오픈한 한식당 ‘비스트로 서울’도 그런 꿈 때문에 시작한 일이다.

―한식 세계화가 어려운 이유가 뭔가요.

▶우리 음식이 계량화가 어렵다는 점이죠. 외국계 외식업체들은 음식 표준화가 돼 있어 어디서나 같은 맛을 낼 수 있는데 한식은 그런 게 없죠. 김치만 해도 배추 상태에 따라 조금 더 절이고 덜 절이고에 따라 맛이 달라지고. 또 한국 전통에 대한 고집도 있어요. 서양 음식이 한국에 들어와서 한국화되었듯이 한식도 세계에서 통하기 위해서는 현지화해야 됩니다.

―비스트로 서울에는 그런 전략들이 숨어 있나요.

▶비스트로 서울에서 제공되는 한식에서 국과 찌개를 뺐어요. 외국인 선호도가 떨어지니까요. 냄새 배는 것도 그렇고 직접 불판에서 고기를 구어서 자르는 것 역시 거부감이 있는 것이 사실이죠. 맛도 중요하지만 한식도 분위기 있는 집에서 근사하게 먹을 수 있는 요리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분위기에도 많은 신경을 썼어요.

―비스트로 서울 오픈식이 대단했다는 소문이 있더군요.

▶제가 알고 있는 외국 인맥들을 모두 불렀어요. 일본 최대 외식 전문기업 WDI인터내셔널 겐 시미즈 사장, 미국 로마코퍼레이션 켄 마이어스 회장, 동남아 독일 등에서 외식체인을 하는’외식업계 큰손’ 마스밀레니엄 루시 프란티노 대표를 포함한 외식업계 별 중의 별들이 모두 모였죠.

솔직히 자랑하고 싶었어요. 한식으로도 이런 근사하고 맛있는 식당을 만들 수 있다고. 또 ‘언젠가 이 브랜드를 너희들 도시에 랜딩하려 한다’는 말도 했어요.

―구체적인 외국 진출 계획이 있나요.

▶지금까지 몇몇 외식업체에서 외국에 나가기는 했는데 솔직히 얘기하면 대부분 현지 교민들을 상대로 장사를 했어요. 진정한 한식의 세계화라고 할 수 없지요. 저는 도쿄나 뉴욕 맨해튼, LA 베벌리힐스 등 메이저 시티 주류 사회를 상대로 승부를 걸어보고 싶어요. 자신도 있고요.

남 사장이 인터뷰 내내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가 ‘밥장사’였다. 그 단어가 아무리 점포가 확장되어도 본래 가치는 잊지 않겠다는 다짐처럼 들렸다.

▶사실 우리가 하는 게 밥집이잖아요.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모든 식당의 주방장이 로봇으로 변하지는 않을 거예요. 저도 그래요. 아무리 기업이 커져도 사람 냄새 나는 진짜 식당을 운영하고 싶어요. 아침에 문 열고 정성스럽게 음식 준비해서 손님들에게 내놓고 저녁에 문닫는 그런 식당으로 남아야죠.

■ 남수정 사장은…
남수정 사장(42)은 1993년 보스턴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95년 썬앳푸드를 창업한 후 현재까지 대표이사 겸 사장을 맡고 있다. 서강대학교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 전경련 국제경영원 글로벌 최고경영자과정, 서울 과학종합대학원 음식평론가 최고경영자과정, 한양대 국제관광대학원 최고엔터테인먼트과정을 수료했다.

[김기철 기자 / 이새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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