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CASE STUDY]토종캐릭터 ‘뽀로로’



《날고 싶지만 날 수 없는 펭귄. 하지만 언젠가 날 수 있을 거라 믿고 공군용 모자와 고글을 항상 쓰고 다니는 펭귄. 이 펭귄이 전 세계 아이들을 열광시키고 있다. 바로 토종 캐릭터 뽀로로다. 뽀로로는 유아용 애니메이션 ‘뽀롱뽀롱 뽀로로’에 등장하는 주인공이다. 뽀로로가 열광적인 반응을 얻은 이유를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지상파도 아닌 EBS에 불과 5분짜리 프로그램에 등장한 게 전부다. 스토리도 평범해 어른들은 십중팔구 ‘이게 뭐야’라는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뽀로로는 웬만한 기업을 능가하는 경영 성과를 내고 있다. 뽀로로가 그려진 각종 제품은 어린이날 선물 1순위다. 2003년 애니메이션 국내 첫 방영 이후 뽀로로 캐릭터 상품은 약 8300억 원(2009년까지 누적)의 매출을 올렸다.》

프리미엄 전략 유지… 캐릭터상품 가격 비싸도 불티

 

매출이 약 5배로 폭증한 2004년을 제외해도 연평균 54.0%(2005∼2009년) 성장한 셈이다. 라이선스 대상은 ‘뽀로로와 친구들 초코케익’(뚜레쥬르), ‘뽀로로 통장’(국민은행), ‘뽀로로 잉글리쉬’(대교) 등 600여 가지다. 해외 성적표도 고무적이다. 프랑스 지상파 채널인 TF1에 방영돼 47%의 시청률이 나왔고, 디즈니의 아시아채널에도 판매되는 등 해외 110여 개국에 수출됐다.

뽀로로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뽀로로의 기획 및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는 아이코닉스 엔터테인먼트와의 인터뷰 등을 통해 뽀로로의 전략을 집중 분석했다.

○ 기획 전략: 빈 시장 공략…유아에게 친근한 1.9등신 뽀로로

뽀로로의 탄생은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이코닉스 설립자인 최종일 사장은 텔레토비에 푹 빠져 있는 아들을 보고 무릎을 쳤다. 당시 인기 있던 애니메이션 ‘마시마로’ 등의 시청자층은 주로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이었다. 유아 대상 프로그램으로 텔레토비가 있었지만 인형극이어서 표현에 한계가 있었다. 최 사장은 2∼5세 대상의 ‘유아용 애니메이션’ 시장이 그야말로 무주공산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차별화된 시장을 공략하는 만큼 목표 고객에 맞는 차별화된 전략이 필요했다. 우선 유아가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시간이 기껏해야 7분이라는 연구 결과를 보고 분량을 5분으로 확 줄였다. 회당 최소 10분인 당시 애니메이션과는 완전히 다른 전략을 취했다.

분량이 짧기 때문에 캐릭터들의 동작에 신경을 많이 썼다. 짧은 순간의 동작만 보더라도 아이들이 까르르 웃도록 만들기 위해서다. 기획팀은 어떤 장면에서 유아가 좋아하는지 살피려고 이들을 바로 옆에서 관찰했다. 그 결과, 뽀로로가 구덩이에 빠져서 나오려고 하는 장면의 경우 일직선으로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또르르르 올라갔다가 잠시 멈칫한 뒤 다시 아래를 내려다보고 툭 떨어지는 느낌이 나도록 만들었다. 유아들은 이런 우스꽝스러운 슬랩스틱에 열광했다. 캐릭터 머리도 일부러 크게 했다. 뽀로로는 ‘1.9등신’이다. 미()의 기준인 7등신까지는 아니더라도 2등신도 안 되는 셈이다. 하지만 7등신은 어디까지나 어른들의 기준일 뿐이다. 머리가 크고 몸이 작은 가분수 형태는 유아와 비슷해 아이들에게 친근감을 준다.

글로벌 전략: 시작부터 해외 시장 겨냥

뽀로로는 특정 국가나 문화권에서만 통하는 콘텐츠가 아닌 보편성을 지닌 콘텐츠가 되도록 기획했다. 국내 애니메이션 시장 규모가 턱없이 작다는 점을 염두에 뒀기 때문이다. 초기부터 철저하게 해외 마케팅을 추진했다. 애니메이션은 국내에서 2003년 11월 본격 방영됐지만, 그 이전인 2003년 7월에 국제 애니메이션 축제 ‘프랑스 안시페스티벌’에 먼저 출품됐다. 캐릭터를 구상할 때에도 의도적으로 사람을 배제했다. 사람을 캐릭터로 하면 인종적인 냄새를 풍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캐릭터 이름이 특정 언어권에서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지 않을까 해서 해외 바이어들의 의견을 세심하게 청취했다. 기획 초기 단계에서 캐릭터 이름은 뽀로로가 아닌 ‘뽀로뽀로’였지만, 프랑스에서 부정적인 뜻이 있다고 해서 ‘뽀로로’로 바꿨다.

이와 함께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문자는 한글이 아닌 영문을 썼다. 뽀로로가 읽는 책은 모두 영어다. 해외로 수출하면서 그림 수정에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글로벌화된 콘텐츠라는 점은 부수적인 효과도 가져왔다. 당시 애니메이션을 방영한 하나로텔레콤의 채널인 하나TV는 뽀로로의 영어 버전을 방영했는데, 유아들에게 조기 영어 교육을 시키려고 뽀로로를 선택하는 부모가 적지 않았다. 이는 유아용 콘텐츠의 사용자(user)와 구매자(buyer)가 다르다는 점을 감안한 전략이었다. 구매하는 부모와 해당 상품을 이용할 유아의 입맛을 모두 맞춰야 하는데, 뽀로로는 이런 조건에 모두 부합했다.

뮤지컬 ‘뽀로로…’ 56만명 관람 흥행대박

○ 라이선스 전략: 품질 바탕으로 고객과의 접점 확대

 

뽀로로는 라이선스 사업의 목표를 로열티 수입 획득에만 두지 않았다.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 걸 최종 목표로 삼았다. 콘텐츠 산업에서 콘텐츠 직접 판매 수익보다는 라이선스 수익이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에 대부분의 콘텐츠 업체가 라이선스를 남발하다 품질 관리에 실패해 내리막길을 간 것과 대조적이다.

뽀로로는 로열티를 준다고 해서 무조건 라이선싱을 허락하지 않았다. 까다로운 품질 기준을 통과하지 못하면 라이선스를 주지 않았다. 일례로 틀을 만들어 플라스틱을 넣고 제품을 만드는 금형 방식을 택해 조립 제품보다 정교하고 고급스러운 상품이 되게 했다. 또 유아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라면 뽀로로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는 원칙도 고수했다. 피자나 아이스크림 업체에서 라이선스 요청이 적지 않게 밀려들어 오지만, 건강에 좋지 않다는 이유로 고사하고 있다. 품질 관리에 신경을 쓴 덕분에 이른바 ‘뽀로로 프리미엄’이라는 것도 생겨났다. 다른 제품보다는 10∼20% 비싼데도 오히려 반응이 좋기 때문이다.

라이선싱 제품이 꾸준히 성장할 수 있게 3년에 한 번꼴로 애니메이션을 개편(renewal)했다. 시즌 1은 2003년에, 시즌 2는 2006년에, 시즌 3은 2009년에 나왔다. 시즌 1에서 5명이었던 등장인물이 시즌 2에서 7명으로, 시즌 3에서는 11명으로 늘었다. 배경도 처음에는 숲 속 나라에 그쳤지만 시즌 후반에는 우주 등으로 다양화했다.

파생 콘텐츠도 늘렸다. 콘텐츠는 고객(아이와 부모)과 멀어지면 끝이기 때문이다.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 브랜드 확장(brand extension)을 한 셈. 대표적인 게 ‘뽀로로와 비밀의 방’ 등의 뮤지컬이다.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56만 명을 끌어 모았다. 국내 뮤지컬 시장에서 ‘관객 30만 명’이 ‘꿈의 숫자’인 점에 비춰 보면 고무적이다.

다만, 뽀로로가 세계 시장에서 장수 캐릭터가 되려면 넘어야 할 산도 있다. 뽀로로는 7세로 헬로 키티, 푸우, 미키 마우스 등과 같은 글로벌 캐릭터와 어깨를 견줄 만한 캐릭터로 판단하기에는 이르다. 지금의 성과를 얼마나 오랫동안 유지하느냐가 뽀로로의 성공을 가늠하는 잣대가 될 것이다. 특히 뽀로로의 캐릭터 상품 매출액 증가율이 최근 들어 둔화하고 있다. 최종일 아이코닉스 마케팅 담당 이사는 “뽀로로를 글로벌 캐릭터로 만들어 해외 라이선스 시장에서 돌파구를 찾겠다”고 말했다.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여준상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

▼ 뽀로로 마케팅전략 3 포인트 ▼

뽀로로의 성공 요인을 경영학적 관점에서 다음과 같이 분석할 수 있다.

① 미개척 시장 발굴

콘텐츠 시장을 연령과 애니메이션으로 구분해 세분하고, 미개척 영역인 ‘유아용 애니메이션’ 시장을 찾아내 집중 공략했다. 또 고객을 ‘사용자’인 유아와 ‘구매자’인 부모로 분류해 이들의 욕구를 모두 반영했고 고가 전략으로 프리미엄 이미지를 유지했다.

② 소비자 행동 철저히 분석

사용자인 동시에 목표 고객인 유아가 집중을 오래 못하기 때문에 ‘방영 시간=5분’으로 승부를 걸었다. 아기 체형과 비슷한 캐릭터를 개발해 친근감을 느끼게 해서 브랜드 충성도를 강화했다. 어릴수록 반복되는 내용에 ‘적응(adoption)-질림(wear-out)’ 현상을 보이는데, 뽀로로는 다양한 캐릭터를 투입하고 회별로 주인공을 바꿔 이를 방지했다.

③ 품질 중심의 라이선스 관리

뽀로로는 단기 수익 중심의 마케팅 요소를 배제했다. 라이선스를 무분별하게 남발하지도 않았다. 희소성 원칙(scarcity principle)을 지켜 장기적인 관점에서 브랜드 가치를 잘 관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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