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저소득층 시장에 대한 7가지 오해
제품 좋고 싸면 잘 팔린다? 유통망-서비스혁신 잊지 말라

○ 오해 1: 무조건 싸야 한다
하루 2달러 정도로 살아가는 저소득층 소비자의 구매력을 고려하면 가격은 최대한 저렴해야 한다. 하지만 품질과 기능을 희생하는 식의 가격 인하는 무의미하다.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저소득층도 생필품 등을 구매할 때 적절한 품질을 갖춘 브랜드를 선호하며 자존심, 야망, 정신적 만족 등 ‘고차원적 가치’를 추구하기 위한 소비를 위해 지갑을 연다. 정호석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식품이나 화장품의 경우 내용물의 품질은 그대로 유지하되, 용량이나 용기 품질을 조절하는 전술이 필요하다”며 “전자제품이나 자동차의 경우 품질을 과도하게 낮추거나 안전을 무시한다면 중장기적으로 득보다 실이 크다”고 말했다.
○ 오해 2: 쪼개 파는 게 항상 옳다
BOP 시장에서는 ‘상품 용량을 쪼개 가격을 낮추라’란 마케팅 전략이 통용된다. 소득이 불안정하고 일용직이 많은 저소득층의 현금 흐름을 고려해 가격을 책정하라는 것. 인도 힌두스탄유니레버(HUL)가 인도 시장에서 4센트짜리 소포장 샴푸를 내놔 성공을 거둔 게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이 전략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AC닐슨의 조사 결과 포장 규모에 따른 상품 판매량은 도시와 농촌이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샴푸나 면도기를 제외한 비스킷, 잼, 세제, 휴지의 경우 소포장 제품의 인기가 높지 않았다.
○ 오해 3: 저소득층은 지불 능력이 거의 없다
빈곤층 대상 소액대출은 과거에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일이었다. 대출을 심사하고 회수하기 쉽지 않은 데다 수익성도 낮기 때문이다. 인도나 남미의 기업들은 현지 소비자의 특성을 활용해 한국의 계와 같은 자조(自助) 집단을 구성하거나 공동부담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베네수엘라 위성방송 업체인 디렉TV도 한 달에 60달러짜리 고가의 위성방송 서비스로 빈곤층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저소득층은 여러 가구가 한 대의 수상기로 TV를 시청하기 때문에 요금 분담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 오해 4: 제품만 좋으면 무조건 잘 팔린다
인도 기업 서벌스는 저소득층을 위해 일반 석유버너보다 연료비가 30% 덜 들고 내구성도 두 배나 좋은 신제품 조리기구 ‘비너스’를 선보였다. 회사는 값은 기존 제품의 갑절에 가까웠지만 내구성과 연료비 절감 효과로 두 달이면 본전을 뽑을 수 있으니 충분히 팔릴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소비자들이 낯선 조리기구의 장점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회사는 제품을 새로 설계해 가격을 낮추고 유통 마진과 수수료를 개선해 2008년 수백만 대를 판매했다. 고중선 모니터그룹 이사는 “상품혁신 못지않게 소비자에게 다가가는 유통망과 서비스 혁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오해 5: 현지화가 성공 보증수표다

○ 오해 6: 선진국에서 개발해 신흥시장에 판다
신흥시장을 단순한 판매 기지로 봐서는 안 된다. 선진국을 능가하는 새로운 혁신의 원천이 될 수 있다.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 의료기기 사업부는 중국 시장에 연구개발센터를 설립하고 현지에 맞게 크기도 작고 기존 제품의 절반 내지 3분의 1에 불과한 1만5000달러짜리 소형 초음파 검사기를 개발했다. 영세한 중소 병원이 많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이 제품은 선진국 시장으로 역수출돼 휴대용 초음파 기기라는 틈새시장을 만들었다.
○ 오해 7: BOP 시장은 하나다
농촌, 도심 슬럼, 분쟁지역 등으로 구성된 BOP 시장을 하나의 거대한 시장으로 보거나 최저소득층에게만 집중하는 고정관념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최동석 KOTRA 뭄바이센터장은 “인도 농촌지역이 피라미드의 허리 부분으로 빠르게 이동해 밑변이 큰 피라미드 구조에서 허리가 큰 다이아몬드꼴로 바뀌고 있다”며 “현재보다 미래를 보고 전략을 짜야 한다”고 말했다. BOP 전략과 구체적인 실행 방안 및 사례는 DBR(동아비즈니스리뷰) 77호 스페셜리포트에 실려 있다.
[DBR]우지엘 액센츄어 컨설팅 COO 인터뷰
선진국서 운영하던 비즈니스 모델로는 신흥시장 백전백패 현지화 전략이 살길 ”
“1년 반 전 글로벌 화장품 회사 최고경영자에게 인도시장 진출 전략을 물었더니, ‘기존 유통망을 활용할 계획이며 조직에 부담을 주는 변화는 시도하지 않겠다’고 단언했다. 최근 인도에 갔더니 특별한 계획이 없다던 그 회사가 현지 시장에 맞는 제품과 유통체계로 무장해 있더라. 살아남으려면 현지화가 불가피했던 것이다.”
실비 우지엘 액센츄어 경영컨설팅 글로벌 COO(Chief Operation Officer·사진)는 최근 DBR와의 인터뷰에서 “다국적 기업에 신흥시장 진출은 선택이 아닌 시간의 문제”라고 말했다. 컨설팅회사인 액센츄어도 신흥시장에 맞는 현지화 전략을 새로 개발해 도입하고 있다는 것. 우지엘 COO는 17년째 경영컨설턴트로 활동하는 전문가다.
우지엘 COO는 다국적 기업들이 신흥시장에서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로 도시 부유층이나 상류층에만 집중하는 근시안적 사고와 선진국에서 운영하던 기존 비즈니스 모델을 강요하는 경직된 전략을 꼽았다.
그는 “신흥시장에선 현지에는 적합하지만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상품, 비즈니스 모델, 유통체제를 발굴하는 창의성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인도의 고드레지는 시골 저소득층 거주민을 대상으로 69달러짜리 저가 냉장고인 ‘초투쿨’을 개발해 큰 성공을 거뒀다고 한다. 이 제품은 가격이 저렴한 데다 전력 공급이 끊겨도 몇 시간 동안 냉각 상태를 유지할 수 있어 전력 사정이 나쁜 인도에서 대박을 터뜨렸다.
우지엘 COO는 최근 글로벌 기업의 신흥시장 진출 과정에서 두드러진 특징으로 비정부기구(NGO)와 영리기업의 제휴 현상을 꼽았다. 원조만으로 빈곤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한 NGO들이 기업들과 손잡기 시작했다는 것. 기업과 시민단체가 현지 농민에게 농작물 경작 교육을 하고, 이렇게 경작된 농작물을 수매해 공정 가격에 구매하는 식으로 빈곤층에게 일자리와 판로를 제공하는 식이다. 그는 “현지화 전략의 실행을 위해 현지인으로 구성된 현지 연구개발(R&D) 조직과 신속하고 지속적으로 전략을 수정하는 ‘검증과 실험(Test & Experiment) 접근 방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 기업에 대해서는 “탁월한 브랜드와 기술력을 갖추고 있고 수출 경험도 풍부하기 때문에 신흥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는 역량을 갖고 있다”면서도 “성장세가 빠른 현지 기업에 대한 철저한 대비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박용 기자 par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