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비싼 광고모델 불러 최악의 광고 하는 기업들

마케팅 부서에서 일을 하다보면 아래와 같은 일을 직간접적으로 많이 경험하게 된다. 얼마나 고민 없이 진행되는 광고들이 많은지 둘러보면 많다. 특히 돈으로 하는 광고는 낭비라는 생각이 절실히 든다.
** 23년 업데이트.
예전에는 이런 것을 낭비라 생각했다.
그러나 기업 전체 자금 운영 관점과 상장기업 그리고 국내 금융사들의 위치를 볼 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실행이라 관점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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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겨울올림픽에서 김연아(사진)는 한국 여자 피겨 스케이팅 사상 최초로 올림픽 금메달을 차지했다. 시상식에서 금메달을 목에 거는 김연아의 모습에 가슴이 뭉클했다. 아마 한국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때 김연아의 경기 장면과 시상식을 지켜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필자가 이 글을 쓴 목적은 김연아를 칭찬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당시 필자는 한낮에 열린 김연아의 경기 모습을 식당에서 대학원 학생들과 함께 지켜봤다. 김연아의 경기 직전 열렸던 아사다 마오의 경기를 보고, 잠시 광고가 방송되었다. 김연아의 경기 이후에도 다시 광고가 나왔다. 직업이 경영학 교수라 TV를 볼 때는 남들이 잘 보지 않는 광고도 유심히 보는 편이다.

이때 김연아의 경기 전과 후에 각각 방영된 광고가 12편이었다. 그중 6편에 김연아가 등장했다. 그리고 광고가 끝난 후 SBS 방송국의 자체 홍보영상이 두 편 이어졌다. 거기에도 김연아가 등장했다. 즉, 총 14편의 똑같은 광고가 김연아의 경기 전과 후에 되풀이되었는데, 그중 8편에 김연아가 등장하는 것이다. 김연아가 등장하지 않는 광고 6편 중 2편에 김태희가 등장했다.

필자는 연구실로 돌아오는 길에 동행한 학생들에게 ‘지금 본 김연아 광고 중에 무엇을 기억하는지’를 물어봤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똑같은 광고 세 편을 기억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그 세 편의 광고는 필자도 자주 봐서 어렴풋이 기억하는 현대자동차, 매일유업, KB국민은행의 광고였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12편의 광고를 본 후 똑같은 광고만 세 편을 기억한다는 것은 놀라운 우연의 일치다. 실제로 이런 일은 일어나기가 거의 불가능한 것이다. 그 세 편을 기억하는 것은, 그 세 편을 김연아의 경기 모습 직전과 직후에 봐서가 아니라 올림픽이 있기 두세 달 전부터 그 세 편의 광고가 쉴 새 없이 TV에 방영되었기 때문이다. 즉 학생들은 그 광고를 이전에 자주 본 것이었기 때문에 기억한 것이지, 그 광고가 김연아 경기 직전에 방영되었기 때문에 기억한 것이 아니다. 이 세 편 외 다른 광고들은 올림픽 전부터 계속 방송된 것이 아니라 올림픽 기간이 임박해서 광고를 시작한 것들이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왜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생각하는지 안타까운 느낌이 든다. 김연아가 들어가는 광고를 올림픽 기간에 방영할 수 있는 회사들은 상당히 큰 기업들일 것이다. 그런데 그런 대기업들이 줄 서서 거의 똑같은 모습의 광고를 동시에 방영하니 비싼 돈만 들이고, 광고 효과는 별로 없는 셈이다. 아름다운 모습으로 피겨 스케이팅을 하는 김연아가 등장하는 8개의 광고를 연속적으로 본 후, 소비자들은 공통적으로 김연아의 모습을 기억할 뿐이다. 김연아가 등장한 광고가 전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까지 기억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경영 활동에서는 역발상의 지혜가 필요하다.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행동한다고 하면 나의 행동을 조금만 바꿔도 그 효과가 크게 나타날 수 있다. 예를 들어 김연아 광고의 틈새에 어눌한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모 사장님이 나타나서 “남자한테 참 좋은데, 정말 좋은데, 뭐라고 설명할 방법이 없네, 직접 말하기도 그렇고…” 하면서 촌스럽게 이야기하는 천호식품 산수유 주스 광고가 방송된다고 가정해 보자. 필자는 한두 번밖에 보지 못한 이 광고의 모습을 확실히 기억한다. 남과 다른 광고,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광고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잘 모르지만, 해당 식품회사는 틀림없이 상당한 광고 효과를 누렸을 것이다.

과거 최고의 광고모델로 각광을 받은 배우는 이영애, 전지현, 김태희 등이었다. ‘산소 같은 여자’라는 광고 카피로 기억되는 이영애는 ‘이영애의 하루’라는 말이 등장할 정도로 다양한 제품에 광고로 출연했다. 아침부터 시작해서 이영애가 광고하는 비누로 세수하고, 화장도 하고, 다이어트 음식도 먹고, 오후에 차도 마신다는 의미에서 생긴 용어다.

올림픽 후 얼마 동안 ‘김연아의 하루’라는 말이 다시 등장할 정도로 김연아가 최고의 광고모델로 전성기를 구가했다. 김연아처럼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모델이 드물고, 소비자들이 당시 김연아에 열광했으므로 기업들 입장에서는 누구나 김연아를 모델로 삼고 싶어 했을 것이다. 2010년 광고주가 선정한 최고의 광고모델로 김연아가 뽑혔다는 뉴스도 있었다.

그렇지만 똑같은 돈을 쓰더라도 소비자들의 기억 속에 조금이라도 더 남게 하기 위해서는 남과는 다른 착상이 필요하다. 그리고 김연아나 김태희 같은 최고의 광고모델을 기용할 형편이 되지 않는 다른 회사들은 전혀 다른 방법으로 접근해야 한다. 세련된 이미지의 모델이 너무 많이 등장하는 광고의 홍수 속에서 남들과는 다른 방법으로 확실히 기억되는 광고를 만들기 위해서는 반대 방향에서 접근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투박한 산수유 주스 광고가 기억에 남는 이유다. 아기의 탄생부터 엄마가 힘들게 아이를 기르는 모습을 담은 ‘깐깐한 물’을 내세운 웅진코웨이의 정수기 광고도 필자는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 다른 광고와 확실히 다르기 때문이다.

김연아가 등장하는 광고를 만들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다. 김연아가 등장한다고 해도 얼마든지 분위기가 다른 광고를 만들 수 있다. 국민 남동생 이승기와 김연아가 함께 등장하는 광고나, 브라이언 오서 코치와 김연아가 함께 등장하는 광고가 그런 예일 것이다. 김연아가 등장하지만, 스케이팅하는 모습이 아니라 드라이빙을 즐기는 모습을 보여준 광고도 남들과 다르다. 그렇지 않다면 올림픽 때만 잠깐 광고를 내보내는 것이 아니라, 최소 몇 개월의 장기간 동안 꾸준히 같거나 유사한 종류의 광고를 내보내 소비자들이 뚜렷하게 기억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방법이다.

미국에서 최고로 광고단가가 비싼 프로그램은 매년 ‘수퍼보울’이라고 부르는 프로 미식축구(National Football League) 챔피언 결정전이다. 이 프로그램을 보면 수많은 광고가 등장하지만 하나도 비슷한 광고가 없다. 모두들 정성에 정성을 들여 남과 다른 광고를 만들려고 노력한다. 광고 내용도 철저히 보안에 부쳐져 있다가 수퍼보울 경기 때 첫 방송을 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때의 광고는 쉽게 기억되고, 수퍼보울 이후 상당기간 동안 미국 사람들의 화제가 된다.

남들과 똑같은 광고를 하고 싶은가. 그러면 최고 인기모델을 최고 비싼 모델료를 지급하고 고용하라. 그리고 남들과 똑같은 분위기의 광고를 만들어라. 회사에서 광고 시제품을 평가할 때는 여러 사람들이 회의실에 모여 제작한 광고를 돌려보며 의견을 나눈다. 그 광고를 보면 회의실에 모인 관련자들은 틀림없이 최고의 광고를 만들었다고 자평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때 반드시 다른 기업들은 어떤 광고를 만들 것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 자신들이 만든 광고 한 편 보는 것과 수많은 광고를 한꺼번에 볼 때의 효과는 분명히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시청자들은 수많은 광고를 한꺼번에 본다. 그리고 똑같은 광고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이제 제발 남들과 다르게 생각해 보자. 

최종학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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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학(44) 서울대 경영대학 학부와 석사 과정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미국 일리노이대에서 회계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홍콩과기대학 교수를 거쳐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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