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배운다정부냐 시장이냐…국가의 실패 앞에서 다시 격돌

정부냐 시장이냐…국가의 실패 앞에서 다시 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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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스토리 – 세기의 라이벌 (1) 케인스-하이에크

대공황 이후 스타 된 케인스
2008년 리먼 사태로 득세 “금융위기는 신자유주의 때문”
“정부 지출로 유효수요 창출”…정치인·관료들에게 인기

덩샤오핑도 반한 하이에크
2011년 재정위기로 다시 부각 “정부의 실패가 위기의 본질”
“시장의 자유가 富의 원천”…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 ‘해결사’

거인의 나이차는 16세였다. 서로에 대한 배려와 우정이 깊었지만 경제를 바라보는 생각은 천양지차였다. 대부분의 승리는 케인스에게 돌아갔다. 그러나 최후의 승리자는 하이에크였다.

20세기는 케인스의 시대였다. 불황은 유효수요의 부족 때문이며 정부가 재정(돈)을 풀어 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명쾌한 이론이었다. 케인스의 이 같은 주장은 전 세계로부터 정치적 동맹군을 얻으면서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자본주의 세계의 지식과 정책,정치 분야를 지배했다. 경제학자는 누구나 케인시안이 됐다. 달러의 금태환을 정지시키며 세계를 혼돈으로 몰아넣었던 1970년의 닉슨도 “이제 우리는 모두 케인시안이 됐다”고 고백했다. 천하통일이었다. 하이에크는 오랫동안 잊혀졌다. 언제나 조용했던 하이에크는 2차 대전이 끝난 1948년 스위스의 로잔 호숫가 몽페를랭에서 자유주의자들의 은밀한 첫 모임을 소집했다. 신자유주의의 서막이었다. 유명한 시카고학파의 거두 밀턴 프리드먼은 이때 말석에 앉아 있었다.

대반격의 시작이었지만 아무도 몰랐다. 1970년대 들어 석유위기가 세계 경제를 강타하고 거대한 스태그플레이션이 낯선 괴물처럼 미국과 미국이 지배하는 세계를 짓누를 때 세상을 구할 자가 누구일지를….하이에크였다. 그의 충실한 제자들,다시 말해 미국의 레이건과 영국의 대처를 투톱으로 내세워 지식 세계의 쿠데타를 만들어 냈다. 정부 아닌 시장의 자유가 경제를 구한다는 것을,대중 정치가 경제에 개입하면 인플레이션을 만들어낼 뿐이라는 것을,사유재산권과 경제적 자유만이 부와 풍요의 원천이라는 것을,정부가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치명적 자만에 불과하다는 것을 조용히 웅변했다.

한마디로 ‘정부 대 시장’의 대립이었다. 기업가 동맹군은 하이에크를, 정치가 동맹군은 케인스의 편에 섰고 이는 지금도 되풀이 되고 있다.

언제나 케인스의 승리였으나 마지막 승리는 하이에크였다. 개혁개방에 목말라하던 덩샤오핑이 노령의 하이에크를 초대한 것은 1978년이었다. 덩이 물었다. “스승이여, 중국 인민을 굶주림에서 구할 방도를 가르쳐 달라.” 하이에크가 답했다. “농민들에게 그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도록 하라.” 덩이 그렇게 농산물의 자유시장을 허용한 지 3년 만에 중국인들은 굶주림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케인스는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IMF의 설계자였지만 좌익 공산주의자로도 불렸다. 하이에크는 공산주의는 필연코 망한다는 주장을 일찍부터 펴왔다. 결국 1990년대 들어 공산주의 세계가 무너졌다. 완벽한 승리였다.

●정부 對 시장, 세기를 넘나드는 논쟁

1930년대 초 두 학자는 거의 매일 편지를 주고 받으며 의견을 나눴다. 화폐의 효과적인 유통을 논의하는 내용의 편지.

역사적 대결은 21세기로 넘어왔다. 2008년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케인시안들이 신자유주의의 종말을 알리는 깃발을 다시 치켜들었지만 2010년 정부부채 위기가 터지면서 하이에크 진영의 반격이 다시 불을 뿜고 있다. 정부 대 시장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영국 BBC는 지난달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1899~1992)와 존 메이나드 케인스(1883~1946)의 논쟁을 다루는 토론회를 열었다. ‘두 거인이 다시 맞서다’는 주제로 열린 이 토론에는 케인스 자서전을 쓴 로드 스키델스키 영국 워릭대 교수와 하이에크 학자인 조지 셀긴 미국 조지아대 교수가 양 진영을 대표해 맞붙었다. 셀긴 교수가 “금융위기는 정부 개입에 따른 정책의 실패”라고 공격하면 스키델스키 교수는 “시장 기능이 작동하지 않아 생긴 시장의 실패”라고 받아쳤다. 애덤 스미스 이후 오랜 논쟁의 재연이었다.

이렇게 케인스와 하이에크가 재격돌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정부의 부채상한선 인상을 놓고 공방전이 벌어지고 영국에서는 재정긴축을 놓고 양 진영이 부딪히고 있다. 차제에 중앙은행까지 민영화해야 한다는 하이에크파들의 소리가 들리고 다른 편에서는 자본주의 4.0 운운하며 국가 역할의 강화를 떠들고 있다.

●무엇이 다른가

하이에크와 케인스의 기본적인 차이는 바로 정부 역할에 있다. 하이에크는 시장 기능이 중요한 만큼 재정을 줄여 민간부문의 자금이 활성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간 투자가 고용을 늘리기 때문에 재정확대가 아닌 긴축이 경기 회복을 위한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이에 반해 케인스는 정부지출은 총수요를 결정하는 주요 항목이어서 정부 지출을 늘리면 비록 그것이 땅을 파거나 피임약을 무료로 나눠주는 것이라 할지라도 민간투자와 고용을 늘릴 수 있다고 보았다. 정부지출을 줄이는 것은 그만큼 총수요를 줄이고 민간 지출도 늘어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케인스의 이런 주장은 그렇지 않아도 돈 쓸 일 많은 정책 입안자에게는 아주 인기가 있는 것이었다.

금융에 대해서도 극단적인 입장 차이가 드러난다. 하이에크는 통화량을 늘리면 단기적으로는 투자나 고용이 증가하지만 이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통화량을 계속 늘려야 하기 때문에 결국 불황 속 인플레로 치닫는다고 지적했다. 경기 불황은 신용이 과잉 팽창해서 생기는 결과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고통스럽지만 시스템을 균형으로 되돌리는 적응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케인스는 “모든 자가 죽을 때까지 기다리란 말인가”라며 통화량을 늘리고 정부지출을 확대하면서 고용을 창출하고 실업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실 1930년대 대공황에 대한 분석에서부터 진단이 달랐다. 케인스는 저축이 투자보다 많다고 보았지만 하이에크는 투자가 저축보다 많았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오늘날 대부분의 진지한 경제학자들은 적어도 1929년 대공황 직전에 큰 거품이 형성됐고 미국 연방정부의 금융완화 정책이 여기에 한 몫 했다는 점을 근거로 하이에크의 분석에 손을 들어주고 있다. 그러나 케인스는 예나 지금이나 정치인과 정책가들에게 절대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루스벨트가 대표적이지만 오늘날에도 많은 정치인들이 총수요론에 집착하면서 돈을 풀고 사업을 벌이면서 정부 부채를 늘리고 인플레이션을 만들어 내고 있다. 정부가 뭔가를 한다는 발상은 고통을 참고 견디라는 논리보다 언제나 인기있는 정책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이에크 “한국,통화가치 지켜야”

케인스와 하이에크는 1928년 경제통계 학술대회에서 처음 만났다. 열기를 더해가는 나치즘을 피해 오스트리아에서 영국으로 피신한 하이에크는 이 회의를 기억하며 “금리에 대해 토론했다. 케인스는 나의 주장을 진지하게 들어주었다”고 말했다. 케인스는 하이에크를 영국 학술원 회원으로 추천하기도 했고 그의 젊은 적대자가 잠시 케임브리지에 머물렀을 때는 연구실을 제공하기도 했다. 그러나 학문적 논쟁에서는 한치도 양보하지 않았다. 하이에크는 “경제학에 대해서는 서로 동의하는 것이 거의 없었다”고 말했고 케인스는 하이에크가 쓴 ‘가격과 생산’이라는 책에 대해 “쓸만한 얘기라고는 없는 뒤죽박죽인 책”이라고 폄훼했다.

하이에크는 1978년 오일쇼크로 고통받던 조그만 개도국인 한국을 방문했다. 당신은 왜 케인스를 본격적으로 공격하지 않는가라는 한국 교수들의 질문을 받았다. 그는 “케인스가 내게 말하기를 이미 자신도 ‘화폐 및 이자에 관한 일반이론’을 믿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는 데 더 이상 무엇을 비판한다는 말인가”라는 의외의 답을 내놓았다. 물론 케인스가 이미 사망(1946년)한 다음이었다. 하이에크는 “케인스 학파는 이미 버려진 세대”라는 말도 덧붙였다. 케인스의 처방으로 초래된 대불황의 1970년대가 저물어가던 순간이었다.

그는 한국의 경제학자들에게 몇번씩 같은 말을 당부했다. “한국에는 창의적인 기업가가 많은 것이 긍정적입니다. 언제나 통화가치의 안정에 주의하길 바랍니다. ” 미국이 무제한 돈을 푼다는 양적완화에 목을 걸고 있고 한국에서는 가계부채 1000조원 시대로 접어드는 지금 하이에크의 충고를 다시 떠올려 본다.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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