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프리처드 P&G 마케팅 최고책임자

“자녀를 위해 모든 걸 바치는 엄마들에 감사인사 보냈더니 그들의 감동이 매출로 연결”

2010년 밴쿠버 동계 올림픽. 미국 대표팀 후원업체 P&G는 대회 기간 17일 동안 1억3000만달러(약 1500억원)의 추가 매출을 올렸다. 회사에 대한 소비자 선호도 10% 뛰었다.

마케팅의 힘이었다. P&G는 미국 대표선수가 아니라 그들의 엄마들에게 초점을 맞췄다. 아들·딸을 낳고 길러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희생한 엄마들. 숨은 영웅인 그들을 P&G가 포착했다. P&G 전체 고객의 80%를 차지하는 주부들을 겨냥한 전략이었다.

이명원 기자 mwlee@chosun.com

올림픽 기간에 방송된 TV 광고. “비와 바람을 뚫고 걸어라. 희망을 가슴에 안고 걷고 또 걸어라. 너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노래가 흐르며 장면이 차례로 바뀐다. 깊은 밤 딸의 곁에서 피겨 스케이트를 닦아주는 엄마. 눈 쌓인 새벽길 아이스하키 선수 아들을 데리고 연습장으로 향하는 엄마. 다 자란 아들·딸이 올림픽에 나가 최고의 경기를 펼치는 순간 엄마는 눈물을 흘린다. 잠시 후 “고마워요, 엄마(Thank you, Mom)”라는 자막이 흐른다. “P&G는 엄마들을 후원하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라는 문구가 뒤를 잇는다. 이 광고는 ‘밴쿠버올림픽 최고의 광고’라는 평가(뉴욕타임스)를 받았다.

실제로 P&G는 미국 대표선수들의 엄마 270명에게 밴쿠버행 비행기표를 보내줬다. 숙소도 제공했다. 돈이 없어 아들·딸의 경기 모습을 현장에서 지켜보지 못하는 엄마들이 없도록 해준 것이다. 현지에서 생일을 맞은 엄마, 아들·딸이 메달을 딴 엄마에겐 파티를 열어줬다. 미국 언론들은 이 이야기를 소재로 2800건의 기사를 보도했다.

밴쿠버올림픽 기간에 P&G의 ‘엄마 마케팅(Mom marketing)’이 신문·잡지, 방송, 인터넷, 트위터·페이스북, 유튜브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전달된 횟수는 60억번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마크 프리처드(Pritchard·51) P&G 글로벌 마케팅 최고책임자(CMO)는 “마케팅은 소비자를 향한 광고에 그쳐서는 안 된다. 세상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는 행동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Weekly BIZ가 서울을 방문한 프리처드 CMO를 9월 28일 한국P&G 사무실에서 만났다. “마케팅은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것이다. 누군가를 감동시키려면 그 사람을 잘 이해해야 한다. P&G는 최대고객인 주부들의 가사, 육아부터 정확하게 관찰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해외 출장 때마다 현지 가정을 방문한다. 마케팅은 여기에서 시작한다.”

마크 프리처드 P&G 글로벌 마케팅 최고책임자(CMO)는 이번 한국 출장 때도 ‘가정 방문’을 거르지 않았다. 9월 28일 오후 서울 서초구에 사는 30대 주부 2명의 집을 방문했다. 그들이 어떻게 살림을 살고 아기를 키우는지 살펴봤다. “P&G 제품을 사용할 때 가장 불편한 점은?” “경쟁사 제품 중 가장 편리한 것은?” “앞으로 어떤 제품이 나오면 생활이 더욱 편리해질 것인가?” 등의 질문도 던졌다. 예정된 2시간이 금세 지나갔다.
프리처드 CMO는 “마케팅은 소비자에게 기업이 만든 물건을 사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다.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을 찾아내는 것이다. 마케팅은 사람들의 삶을 제대로 관찰하고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P&G는 세계 1위의 생활용품 기업이다. 칫솔·치약·면도기·세제·샴푸·로션·과자·건전지·기저귀·생리대 등 300종류 이상의 생활용품을 세계 180개 국가에 판매하고 있다. 미국의 경제 주간지 포천(Fortune)은 P&G를 ‘2011년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5위’에 선정했다.

프리처드 CMO는 1982년 P&G에 입사해 30년째 같은 회사에 다니고 있다. 첫 보직은 기저귀 공장에서 원가를 분석하는 일이었다. 이후 광고, 마케팅 분야에서 주로 일했다. 2003년 화장품 부문 글로벌 사장, 2006년 전략 담당 글로벌 사장을 거쳐 2008년부터 CMO를 맡고 있다.

◆”사람들의 ‘숨기고 싶은 비밀’을 읽어내라”

2010년 7월 P&G는 남자용 샤워젤 ‘올드스파이스’ 상품 광고를 유튜브에 올렸다. 얼굴엔 수염을 기르고 근육질 상체를 드러낸 남자 모델이 나온다. “숙녀분들 안녕? 당신의 남자 친구를 봐봐. 다시 나를 봐봐. 슬프지만 그 남자 친구는 나처럼 남성답진 못하지. 하지만 방법은 있어. 이 샤워젤을 쓰게 해봐. 나처럼 남성다운 냄새가 날 거야.” 백마에 올라탄 남자 모델의 뒤편으로 광고 문구가 흐른다. “남자들이여, 남성의 냄새를 풍기자.”

유튜브에서 사람들이 이 광고를 본 횟수가 36시간 만에 2300만번을 넘겼다. P&G는 트위터·페이스북을 통해 소비자들이 원하는 후속 광고 아이디어를 모집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소재로 삼은 광고까지 등장했다.

“대통령이 여성 유권자들에게 인기가 없다고? 방법은 있지. 우선 올드스파이스 샤워젤을 쓰라고 해. 그리고 ‘친애하는 미국인들’이라고 말하지 말고, 나처럼 느끼하게 ‘숙녀분들 안녕’이라고 말하게 하는 거야.”

이 마케팅의 성공으로 올드스파이스 샤워젤은 시장점유율을 2%포인트 이상 높이며 업계 1위 상품으로 떠올랐다. 지금도 매출액이 두 자리 숫자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고 P&G는 밝혔다.

프리처드 CMO는 “이 마케팅의 핵심은 남자들의 ‘숨기고 싶은 비밀’을 정확하게 읽어낸 것”이라고 말했다. “남자들은 누구나 남성다워지려고 한다. 이것은 노골적인 희망이다. 동시에 많은 남자들은 자신이 충분히 남성답지 못한 현실이 두렵다. 숨기고 싶은 비밀이다. 마음속 불안이기도 하다. 이런 남자 소비자들에게 ‘이 샤워젤을 쓰면 다른 사람들에게 남성다운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올드스파이스를 사용하면 나도 남들 앞에서 남성다운 것처럼 행세할 수 있겠구나’라는 안도감을 가지게 된 남자들이 실제로 샤워젤을 사갔다. 애프터 셰이브 로션으로 시장에 출시된 지 70년이 넘어 늙은 브랜드 취급을 받던 올드스파이스가 단번에 되살아났다.”

◆”SNS, 8명의 불만이 회사를 망칠 수 있다”

P&G의 대표 상품 중 하나가 아기용 기저귀 팸퍼스다. 작년 3월 P&G는 신제품 ‘팸퍼스 드라이맥스’를 출시했다. 기존 제품보다 두께가 20% 얇으면서 흡수력은 훨씬 좋았다. “25년 만에 팸퍼스 기저귀에 대혁신을 이뤄냈다”고 선전했다.

어느 날 페이스북에 “팸퍼스 드라이맥스 기저귀를 썼더니 아기들 엉덩이에 발진이 생겼다. 차라리 옛날 제품이 더 좋았다”는 소비자 불만이 등장했다. 처음엔 이런 이야기를 주고 받는 페이스북 사용자는 8명뿐이었다.

프리처드 CMO는 “과거 다른 신제품을 내놓았을 때와 비교하면 전체 소비자 불만 건수가 훨씬 적었다. 우리는 ‘별 것 아니야’라고 판단하고 페이스북에 올라온 불만에 아무 대응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큰 실수였다는 사실을 곧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페이스북·트위터와 같은 SNS(소셜 네트워킹 서비스)에서는 소비자들의 부정적인 의견이 실제보다 훨씬 규모가 커지면서 훨씬 빠른 속도로 확산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미처 몰랐다. 팸퍼스 드라이맥스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는 페이스북 사용자가 금세 3000명을 넘어섰다. 리콜(recall) 요구도 터져나왔다. SNS의 세계에선 제품에 불만을 가진 소비자 8명이 회사 전체를 망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우리는 바로 전략을 바꿨다.”

마크 프리처드 P&G 글로벌 마케팅 최고책임자는“마케팅은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것이다. 사람들이 숨기고 있는 감정까지 찾아내야만 그들을 만족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 이명원 기자 mwlee@chosun.com

P&G는 페이스북에 올라온 소비자 불만을 하나하나 점검했다. 혹시 팸퍼스 드라이맥스에 문제가 없는지도 다시 확인했다. P&G에 우호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는 아기 엄마들의 페이스북을 통해 팸퍼스 드라이맥스에 관한 정보를 적극적으로 흘려보냈다.

“팸퍼스 드라이맥스 사건은 SNS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마케팅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해 좋은 교훈을 주었다. 이젠 거대 기업이라도 혼자 시장을 쥐고 흔들 수는 없다. 소비자들과 함께 브랜드를 만들어 나가야 하는 시대다. “

◆”모바일 마케팅, 1대 1 정서적 교감 쌓아야”

프리처드 CMO는 “P&G 마케팅의 강점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가장 적합한 마케팅 수단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에서 P&G는 1930년대 라디오, 1950년대 TV에서 주부들이 좋아하는 연속극에 광고를 붙였다. 당시 미국의 주부 고객을 공략하기 위한 가장 강력한 수단이었다.

“이제 마케팅의 무게중심이 온라인을 벗어나 모바일로 옮기고 있다. 모든 것이 실시간이다. 아프리카에서도 마찬가지다. 나이지리아를 보자. 이 나라는 인터넷 보급률은 낮지만 휴대전화 보급률은 높다. P&G는 나이지리아 아기 엄마들에게 휴대전화를 통해 1대 1 마케팅을 한다. 문자 메시지로 아기를 편안하게 재우는 방법, 아기와 재미있게 놀아주는 방법을 알려준다. 아기 엄마들이 P&G라는 회사와 정서적 교감을 가지게 됐다. 덕분에 팸퍼스 기저귀 판매도 늘고 있다.”

P&G 마케팅의 다음 목표는 역시 신흥시장이다. 프리처드 CMO는 “P&G는 현재 40억명인 고객 숫자를 2015년까지 50억명으로 늘릴 계획”이라며 “밴쿠버 동계 올림픽에서 성공했던 ‘엄마 마케팅(Mom marketing)’을 향후 올림픽에서도 지속적으로 활용해 신흥시장을 집중 공략할 것”이라고 말했다.

P&G는 2020년까지 5차례의 올림픽(하계·동계)에서 공식 후원업체가 되는 계약을 IOC(국제올림픽위원회)와 체결했다. 2012년 런던 하계 올림픽 때는 자메이카 육상선수 우사인 볼트의 엄마, 미국 수영선수 마이클 펠프스의 엄마를 포함한 6명의 엄마들을 광고에 등장시킬 예정이다. 이와 같은 마케팅은 2014년 소치(러시아) 동계 올림픽, 2016년 리오(브라질) 하계 올림픽, 2018년 평창(한국) 동계 올림픽에도 적용할 계획이다.

“밴쿠버 올림픽의 ‘엄마’, 올드스파이스의 ‘남성다움’은 언제, 어디서나 먹히는 마케팅 포인트다. 나는 항상 사람들 속에서 그런 요소를 찾아내려고 애쓴다”고 프리처드 CMO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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