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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철규의 소통 리더십] 부하들이 말 안 듣는가? 입아픈 소리는 그만, 게임의 룰을 바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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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후반 10분을 남기고 스코어는 1대0. 별 탈 없이 이대로만 시간이 흘러준다면 포항 스틸러스의 승리가 확실하다. 상대팀이 선수 교체에 들어간다. 교체돼 나가는 선수가 어슬렁어슬렁 운동장 밖으로 걸어가자 포항의 선수들이 소리친다. “빨리빨리 나가!” 상대 선수는 황당하다. ‘아니, 시간을 까먹을수록 자기들이 유리한데, 나보고 빨리 나가라니….’

포항 선수들의 ‘이상한 조급증’은 이것만이 아니다. 이기고 있든 비기고 있든 지고 있든, 그라운드에 쓰러진 선수는 용수철처럼 다시 튕겨 일어난다. 후배 선수가 심판 판정에 항의하려 하면 고참들이 달려와 막는다. 코너킥, 프리킥 상황에서도 공만 놓이면 바로 킥(kick)에 들어간다. 백 패스(back pass)? 후방에서 공 돌리기? 상상도 할 수 없다.

프로축구 포항 스틸러스 선수들의 플레이가 이처럼 ‘빛의 속도’로 바뀐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스틸러스 웨이(way)’라는 독특한 선수 평가 기준에 있다. 지난 2008년 부임한 김태만 스틸러스 사장은 ‘어떻게 하면 K리그가 재미있어질까?’를 화두로 잡고 고민했다. 그가 내린 답은 90분 경기 중 축구공이 정지해 있는 ‘데드 타임(dead time)’을 줄이는 것.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는 데드 타임이 평균 32분인 반면, K리그는 43분(2008년 기준)이었다. 그만큼 K리그는 불필요한 시간 끌기가 많았고, 이는 게임에 박진감이 떨어진다는 걸 의미했다.

포항 스틸러스 축구팀은 2009년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했다. 불필요한 시간 끌기를 하지 않고 속도감 있는 경기를 펼친 선수에게 인센티브를 주도록 제도를 개선한 덕분이다. / 로이터

하지만 김 사장은 선수들을 불러 ‘빨리빨리 플레이하라’고 훈시하지 않았다. 대신 제도를 살짝 바꿨다. 게임에 이겼을 때 보너스로 지급되던 ‘승리 수당’을 없앴다. 대신 빠르고 매너 있는 경기를 할 경우 ‘출전 수당’을 지급했다. ‘빠르고 매너 있는 경기’에 대한 평가는 코치·스카우터·경기지원팀장으로 구성된 ‘평가위원단’이 맡았다. 평가위원단은 경기마다 데드 타임과 반칙 수 등을 정량적으로 분석했다. 속도감 있는 플레이 덕분인지, 포항은 2009년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왕좌에 올랐다.

#2. “총장님! 학생들에게 아무리 알아듣게 얘기해도 도통 말을 듣지 않습니다. 더 이상은 말로 안 됩니다. 징계가 필요합니다.” 미국 컬럼비아대의 교무처장이 총장에게 목소리를 높인다. 문제의 발단은 잔디밭. 학생들은 ‘출입 금지’라는 팻말이 놓인 잔디밭 위를 가로질러 도서관으로 향하곤 했다. 그러지 않으면 2배에 가까운 거리를 돌아가야만 했기 때문이다. 교무처장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총장이 한마디를 건넸다. “길을 만들어 주세요. 잔디밭 한가운데를 관통하도록.” 학생들이 규칙을 어기지 않을 수 있는 제도를 만든 것이다. ‘게임의 룰’을 바꾼 이 총장은 몇 년 후 대통령이 된다. 미국 34대 대통령, 드와이트 아이젠하워(Eisenhower)다.

#3. 1993년. 모두가 “IBM은 끝났다”고 말했다. 3년간 누적 적자는 160억달러. 죽어가는 IBM을 살리기 위해 루이스 거스너(Gerstner)가 구원투수로 나섰다. CEO에 취임한 뒤 그는 황당한 광경을 목격한다. IBM의 각 사업 본부들이 자기 본부의 성과에만 관심이 있을 뿐, 회사 전체의 이익에는 무관심했던 것. 심지어 자기 성과를 위해 다른 본부의 비즈니스를 갉아먹는 ‘제살깎기’식 경쟁도 벌어지고 있었다. 이를 알게 된 거스너 CEO는 어떻게 했을까?

그는 모든 본부장들을 회식 자리에 모아놓고 ‘서로 잘해 보자’며 폭탄주를 돌리지 않았다. 사장실에 불러놓고 호통치지도, 서로 협력하라고 훈시하지도 않았다. 대신 제도만 살짝 바꿨다. 이전까지 IBM은 개인 성과를 근거로 인센티브를 지급해 왔다. 회사 전체 실적은 엉망이더라도 자기 본부만 잘 되면 본부장은 보너스를 챙겨갔다. 거스너 CEO는 보상 체계부터 뜯어고쳤다. 본부별 인센티브를 절반 이상 줄이고, 그룹 전체의 성과에 따른 인센티브를 확대했다. 직급이 높을수록 개인 성과보다는 조직 성과에 따라 보상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서로 관심 없고 반목하던 본부장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야 회사가 잘 되고 본부 간 시너지가 극대화될까? 기업 문화가 달라지니 실적이 올랐다. 취임 2년 만에 IBM은 흑자로 돌아섰다.

많은 리더들이 한탄한다. 충분히 알아듣게 말해줬는데, (부하들이) 도통 말을 듣지 않는다고. 혹시 당신은 승리 수당만을 챙겨주며 선수들에게 빠른 플레이를 요구하고 있지 않은가? 길을 만들어 줄 생각은 못한 채 잔디밭을 가로지르는 학생들에게 호통만 치고 있지 않은가? 회사 전체의 이익을 강조하면서 개인 성과만 보상하고 있지 않은가?

소통은 ‘내 생각을 따르라’고 반복, 반복, 또 반복해서 강요하는 게 아니다. 상대가 내 생각을 따를 수 있도록 환경(게임의 룰)을 만들어 주는 게 우선이다. 일요일 저녁, 소통이 안 되는 아빠는 거실에서 ‘TV 삼매경’에 빠져 있는 수험생 아들에게 ‘진심 어린’ 말을 반복한다. “이제 제발 네 방에 들어가 공부 좀 해라.” 소통이 되는 아빠는? 거실을 아예 서재로 ‘용도 변경’ 해 놓지 않았을까? 소통을 위해 ‘룰’을 바꾸는 일, 결코 거창한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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