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적 혁신은 소비자 중심 경영에서 나온다

“원장님 병원 매장은 분양 받으신 건가요, 임차하신 건가요?”

서울 마포구에서 개인병원을 운영하다 1년 전 성북구 뉴타운으로 병원을 옮긴 한 치과의사가 환자들에게 들은 질문이라며 기자에게 한 말이다. 그런 게 왜 궁금하냐고 환자들에게 되물었더니 “원장님이 여기서 병원을 오래하셔야 원장님을 믿고 오랫동안 꾸준히 치료를 받을 수 있겠지요”라는 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현명한 소비자’의 시대다. 똑똑한 소비의 대상은 온라인에서 쉽게 검색하고 비교할 수 있는 일상적 소비재에 그치지 않는다. 병원 등 전문 서비스, 자동차 같은 내구재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2011년 상반기 전체 수입차 판매량 중 2000cc 미만 자동차 판매 비중이 40%를 넘어섰다.

소비자들은 가격 대비 성능을 따지면서 비용 측면에서도 현명한 의사 결정을 한다. 위 치과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소비자들은 구매 비용(구입, 설치, 사용 관련 비용)뿐 아니라 유지보수 비용과 변경 비용, 정보조사 비용까지 포함한 ‘총 보유 비용’을 고려한다.

현재 기업이 보유한 기술 역량에 기반해 고객에게 상품, 서비스를 만들어 푸시(push)하는 방식은 이제 잘 통하지 않는다. 먼저 고객이 원하는 새로운 가치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이를 제공하기 위해 필요한 기술과 역량을 확보해야 성공할 수 있다.

신기술의 경연장인 정보기술(IT) 산업에서도 이런 경향은 나타난다. 혁신 그 자체라 불리는 아이폰에서 애플의 자체 기술로 개발한 부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10%도 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경쟁 기업이 최신 기술을 이용한 고사양 게임기를 고집할 때 닌텐도는 저가 저사양 부품을 이용해 가격을 낮춘 게임기 위(Wii)를 내놓아 경쟁에서 승리했다. 여전히 공급자 중심의 시각에 머무르는 기업은 더는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

 

정부의 산업 정책도 ‘소비자’로 무게중심이 더 이동해야 한다. 태동기 산업, 1차 산업, 지역 밀착형 산업 등을 제외하면 이제 정부 주도의 산업 육성, 보호는 큰 의미가 없다. 진입 규제와 관세 장벽은 기업을 안주하게 하며 독과점 구조를 고착화해 소비자 후생을 희생시키는 부작용만 낼 수 있다. 고환율 정책이 당장 수출을 늘릴 수는 있어도 기업이 근본 체질을 바꿔 글로벌 시장에서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추도록 ‘육성’할 수는 없다. 자국에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소비자의 선택을 받은 기업이 글로벌 시장도 주도할 수 있다.

세계 경제에서 미국이 누려온 절대적 지위는 흔들려도 애플 구글 페이스북 등 당대의 혁신 기업들은 대부분 미국에서 나오고 있다. 미국은 가장 친소비자적인 반독점, 개방 정책을 펴는 나라 중 하나다. 미국 소비자들은 혁신 제품을 가장 먼저 접하면서도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이라는 혜택을 누리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선진 8개국 29개 산업의 물가 수준을 비교해 2004년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소비자 물가 수준은 영국 독일 일본 등 다른 선진국보다 평균 20% 이상 낮았다.
 

창조적 혁신과 미래 성장동력 확보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하지만 한국 기업이 고객의 숨겨진 니즈를 간파하고 혁신적인 제품을 내놓아 글로벌 시장을 뒤흔든 사례는 별로 많지 않다. 한국 소비자들은 한국 기업들의 변신에 호응할 준비가 돼 있다. 이제 기업과 정부가 박자를 맞춰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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