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Story] 로버트 누킨 하버드大로스쿨 교수

삼성 vs. 애플 70조원 특허전쟁 악마와도 협상할 방법은 있다

삼성과 애플 사이에서 벌어지는 특허 관련 소송을 두고 세상은 ‘전쟁’이라 부른다. 최소 70조원이 걸려 있는 사상 최대의 특허전쟁. 법정 소송의 결과로 승패가 갈리고 양측은 “왜 내 걸 베꼈느냐” “우리의 이익을 침해하는 것은 좌시할 수 없다”며 맞서고 있다.

“25년간 수많은 상사분쟁에 참여해봤다. 기업들이 가장 많이 저지르는 실수가 악마화(化)다. 상대가 내게 심각한 위해를 가했고, 그렇기 때문에 영원히 신뢰할 수 없는 악마라 단정짓는 것이다. 이 경우 기업들은 협상보다 소송·계약 파기 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기업 내에 즉각적·감정적인 반응을 일으키는 ‘직관적 추론’이 발동하기 때문이다.”

하버드대 로스쿨에서 협상 프로그램을 이끌고 있는 로버트 누킨(Robert Mnookin·69) 교수는 “애플과 삼성 두 거대기업도 같은 실수를 범하려 하고 있다”고 했다. 그 역시 1980년대 IBM-후지쓰 간 벌어진 사상 최대 지적재산권 분쟁을 해결한 경험이 있다. IBM과 후지쓰의 분쟁이 길어졌던 가장 큰 이유도 양측이 “내 기술을 도둑질해갔다”(IBM) “우리의 명예를 더렵혔다”(후지쓰)며 대화를 거부한 데 있다는 것이다.

“애플이 소송이라는 방법을 통해 먼저 공격적으로 나갔다. 삼성도 강력히 맞대응을 했다. 대부분의 기업이 결국엔 중재자를 찾아 특허공동소유(크로스 라이선스·cross license) 등을 통해 해결점을 찾아간다. 문제는 시간이다. 분쟁이 길어질수록 해결 비용은 상승하고 시장에 기업 정보와 약점이 노출된다.”

과거 협상의 주 영역은 국제·안보 분야였지만 그 중심축은 산업현장으로 옮아가고 있다. 기술이 복잡해지고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지적재산권을 둘러싼 기업 간 갈등이 심해지면서다. 누킨 교수는 분쟁해결을 요청해오는 기업들에 다음 다섯 가지 과정을 밟을 것을 조언한다고 했다.

①관심사(interest)를 파악하라. 기업들은 자신의 입장이나 요구가 아닌 근본적인 목표·이득에 집중해야 한다. ②협상 외의 대안은 무엇인가. 그중 ‘최선의 대안’(BATNA·Best Alternative To a Negotiated Agreement)을 찾아 협상의 카드로 준비하라. ③예상 가능한 협상의 결과는 무엇인가. 양측의 목표를 모두 충족시킬 협상은 가능한가? ④협상 과정에서 비용은 얼마나 들 것인가. 돈·인력·시간 같은 직접적 비용뿐 아니라 평판이나 선례와 같은 파급 비용도 따져보라. ⑤협상 이후 새로운 거래를 체결한다고 치자. 그걸 과연 실행할 수 있겠는가?

“지루하게 들리는가? 그러나 놀랍게도 나를 찾아온 많은 기업들이 제1단계에서부터 막혔다. 자신의 목표가 무엇이고 그걸 왜 원하는지도 구체적으로 표현하지 못한 채 상대에 대한 전의(戰意)만 불태웠다.”

누킨 교수는 자신의 25년 협상 경험을 ‘하버드 협상의 기술’(원제 Bargaining with the Devil)이라는 책으로 펴냈다. Weekly BIZ가 그를 하버드대 교정에서 만났다.

분쟁이 터지면 왜 기업들은 구체적인 목표조차 설정하지 못할까? 누킨 교수는 이를 ‘기본귀인오류'(fundamental attribution error) 때문이라고 했다.

“기업들은 상대를 적도 모자라 일종의 ‘악마’로 규정해버린다. 상대의 행동을 평가할 때 개인 성향(비겁하다, 배신했다 등)만 과장해 받아들이고, 분쟁의 ‘상황’은 과소평가해 자신의 장기 이익을 간과하기 때문이다. 내가 협상에 들어가기 전 ‘5단계를 밟으라’ 제안하는 것은 기업들의 화를 가라앉히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감정적·즉각적 반응을 진정시키고 의식적·이성적 사고체계를 가동시키기 위한 프로세스다.”

누킨 교수를 하버드대 로스쿨 건물에서 만났다. 그는“기업 간 분쟁에서는 상호 간의 악마화를 통제하고 양측의 최종 목표가 무엇인지 집중해야 한다”고 했다. / 보스턴=김남인 기자 kni@chosun.com

그는 1980년대 IBM과 후지쓰 사이에 벌어진 지적재산권 분쟁을 소개했다. 누킨 교수는 중재자 역할을 맡아 1987년 무려 5년간 이어진 양사의 분쟁을 해결했다. 그는 “IBM·후지쓰 대결은 여러 면에서 지금의 삼성·애플 간 특허전쟁과 닮았다”고 했다.

◇후지쓰·IBM의 전쟁

‘후지쓰는 원래 IBM에서 쓰이던 운영체제(컴퓨터의 메인프레임)를 그대로 옮겨 쓸 수 있는 컴퓨터를 만들어냈다. 우리의 프로그래밍 기술을 베낀 거나 다름없다. 후지쓰는 당장 이런 위반 행위를 중단하라.’

1982년 IBM 회장은 후지쓰 회장에게 직접 이런 내용의 요구서를 전달했다. 후지쓰는 분노해 되받아쳤다.

“일본의 특허권 법률은 운영체제 소프트웨어에 적용되지 않는다. IBM의 메인프레임 시장점유율은 너무나 높아서 사실상 표준이라고 할 수 있다.”

두 기업 간 분쟁은 국가 대리전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우리 미국은 일본 놈들에게 누가 갑인지 똑똑히 알려주겠다. 전쟁은 시작됐다.” 일본 신문들은 익명의 IBM 직원들의 말을 인용해 여론을 들끓게 했다. 미국 언론도 이 분쟁을 두고 ‘일본의 기습이 시작된 것’이라 표현했다. 1985년 IBM은 후지쓰에 “후지쓰가 위반한 모든 프로그램을 회수하고 막대한 보상금을 지급하지 않으면 배상을 중재재판소에 넘기겠다”는 최후통첩을 날렸다. 전쟁이 선포된 것이다. 누킨 교수가 중재자로 참여한 것은 이때였다.

―분쟁 해결을 위해 당신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무엇인가?

“상호 간의 악마화를 엄격하게 통제하고 분쟁이 법적 소송으로 가지 않도록 했다. 당시 컴퓨터 프로그램 기술은 생소한 것이어서 배심원이 기술이나 특허문제에 대해 판결을 내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양사가 법정 판결을 받아들일지도 의문이었다. 미국 법정이라면 후지쓰가 거부할 수 있고, 일본 법정이라면 IBM이 거부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강제력을 지닌 제3자의 개입이 필수적이다. 양측 모두 전쟁을 선포한 상태에서 한발 물러나는 것은 심리적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중재위원회가 결정한 대로 따를 수밖에 없다’는 말은 심리적 위안과 동시에 내부(기업, 여론)적 반발을 줄일 수 있다. 특히 ‘외부의 압력이나 지시'(外壓·일본어로 가이아쓰)라는 말이 지배적인 일본 문화에 적합했다.”

◇분쟁이 가열되면 원래 목적을 돌아보라

―분쟁 해결 과정은 어땠나?

“불신이 너무 깊어 양사는 사사건건 싸웠다. 이슈 자체도 어려웠다. 기술의 어느 범위까지 특허권을 보호해야 할지, 미국·일본 중 어느 나라의 법률을 적용해야 할지도 명확하지 않았다. IBM은 양사 프로그램 간 ‘상당한 유사성’을 근거로 후지쓰의 복제행위를 주장했는데 이게 애매했다. 후지쓰가 IBM의 프로그램 중 특정 부분을 그대로 따와 쓴 것이 아니라 IBM 프로그램의 ‘구조, 순차, 구성'(프로그램의 전체 흐름, 아이디어)을 복제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특허권 법률에 등장하는 가장 난해한 학술적 이야기다. 보호를 받지 못하는 ‘아이디어’와 보호되는 ‘표현’의 차이점 말이다.”

―해결의 실마리를 어떻게 찾은 것인가?

“다시 기본으로 돌아갔다. 양측의 궁극적인 관심사를 돌아봤다. IBM의 원래 관심사는 자사의 지적 자산 보호였다. 후지쓰가 IBM 기술을 사용하는 한 합리적인 사용료를 받는 것이 목적이었다. 나는 IBM에 후지쓰로부터 (특허 사용에 따른) 일시불 지급을 받고 후지쓰가 메인프레임 프로그램을 사용하게 할 것을 제안했다. 당시 IBM은 후지쓰의 사업을 망가뜨리기 위해 지속적인 특허권 사용료를 주장하고 있었다. 나는 또 향후 후지쓰가 이용할 수 있는 IBM의 기술 범위에 대해 엄격한 기준을 세워 후지쓰가 내야 할 금액을 정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결과만 놓고 보면 너무나 쉬운 듯 들린다. 양사는 왜 그런 결정을 미리 내리지 못한 건가?

“불확실성 때문이었다. 서로 극도의 경쟁관계에 있었고 신뢰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제3자가 개입한 간접적인 협상은 도움이 될 수 있다. 가열된 분쟁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는 상태라면 당사자끼리의 직접 협상은 더 위험할 수 있다. 실제로 국가 간 협상의 경우 대부분 중재자에게 간접 협상을 허용한다. 2003년 스위스는 미국과 이란 사이를 중재했고, 터키는 2008년 시리아와 이스라엘 사이에서 그런 역할을 했다.”

◇파업 대부분은 ‘관계’ 때문

‘악마’는 우리 편에도 있다. 경영진 입장에서는 강성 노조, 노조 입장에서는 사측 요구만을 강요하는 경영진이 악마가 된다.

1997년 누킨 교수는 샌프란시스코 교향악단의 잇단 파업사태를 해결해달라는 미션을 받았다. 파업은 겉으로 드러난 상처였고 조직 안은 심하게 곪아 있었다. 연주자의 10%에 해당하는 강성 노조 때문에 대다수 연주자들은 서로 대화도 하지 않을 정도로 관계가 망가졌다. 파업 때문에 두 달치 임금도 받지 못한 상태였다. 노조는 문제의 원인을 총감독(경영자)인 페터 파스트라이히의 독단적인 성품에 돌렸다. 노조는 그를 무너뜨리겠다는 목표로 65가지의 요구사항을 내걸었다. 연간 10만달러 이상의 급여, 10주간의 유급 휴가, 리허설·연주시간은 주 20시간 이하, 관대한 복지·은퇴 혜택…. 저돌적인 성격의 파스트라이히는 65개에 달하는 사측 요구항목을 담은 반대 제안을 제출했다.

“노사 협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음 세 가지다. 첫째 조직이 성장하면서 직원들에게 적절한 부가 돌아갔는지 살펴봐야 한다. 자신의 요구를 정확히 전달하면서도 상대의 입장에 공감을 보내야 한다. 마지막으로 내부의 합의를 얻은 후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는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교향악단 노조와 경영진은 감정싸움에 몰입해 이 세 가지 중 어느 것도 고려하지 않았다.”

누킨 교수가 시도한 것은 ‘관계 회복’이었다. 그는 먼저 연주자들끼리 두 명씩 짝을 이루게 했다. 둘 중 하나는 파업 같은 문제에 대한 자기 생각을 말하고, 다른 한쪽은 그에 반대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들은 내용을 정확하게 말한다. 그리고 “내가 한 말이 맞는가?” 상대에게 확인을 받는다. 몇 분 뒤 둘은 역할을 바꾼다.

“나는 이 방법을 ‘루프'(Loop·고리)라 부른다. 루프를 시도하자 연주자들 중에는 눈물을 흘리는 이도 있었고, 2년간 대화를 하지 않은 동료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후 노조와 총감독, 이사회 모두를 모아놓고 루프를 시도했다. 그런 후 나는 노조와 경영진으로 구성된 합동대책위원회를 만들었다. 양쪽이 사실에 입각한 기본 정보를 취합·정리하고 문제가 무엇인지 함께 정의한 후 선택안을 만든 것이다. 내가 한 일? 서로가 악마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 것밖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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