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의 과학은 매장의 경향을 찾는 것… 인터넷·여성이 키워드”

[interview] ‘쇼핑의 과학’ 저자 언더힐 인바이로셀 CEO
상점에 트는 음악 하나도 고객 통계 데이터와 맞춰라… 돈 한푼 안들고 매출 늘어

“지금 나오는 피아노 음악 들리시죠? 저기 보이는 30대 점원이 고른 것 같군요. 평균 40대 이상인 이 호텔 손님들과 잘 어울릴지 의문입니다. 게다가 지금이 오후 5시 30분. 저 피아노 소리는 아침에 더 어울려요. 귀에 거슬리네요. 적절하지 않은 음악(wrong music)입니다.”

서울 강남의 한 호텔 커피숍. 컨설팅업체 인바이로셀(Envirosell)의 파코 언더힐(Underhill·60) CEO는 습관처럼 주위를 훑고 있었다. 그는 “음악은 어느 공간에서든 그 안의 인구통계학적 데이터와 잘 어울려야 합니다. 대형마트도 마찬가지죠”라고 했다.

“월요일 오전에 마트에 오는 사람들과 같은 날 밤에 오는 이들은 분명 다른 특성을 보일 겁니다. 그걸 분석하면 어느 가수, 어떤 비트(beat)의 노래를 틀지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되죠. 이 모든 게 돈 많이 안 들이고 활용할 수 있는 마케팅 수단입니다.” 그는 못 참겠다는 듯 한마디 덧붙였다. “여긴 천장도 높군요. 천장이 낮을수록 함께 앉은 사람들끼리 더 친밀감이 생기죠. 그래야 술이나 음료를 한 잔이라도 더 마시게 하는데….”

피아노 음악이 흐르던 호텔 커피숍이 조금 어둡다고 하자, 그는 로비에 있는 기념품 가게에 성큼 들어가“여기서 (사진) 찍자”며 기자를 불렀다.“ 39년 전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처음 왔습 니다. 사회학을 공부하는 대학생이었죠. 전국을 돌며 한국 문화를 공부했습니다.” / 이명원 기자 mwlee@chosun.com

지난 30여년간 언더힐 CEO가 한 일을 요약하면 이렇다. ‘어떻게 하면 소비자를 매장에 오래 붙잡아 놓고 물건 하나라도 더 팔 수 있을까에 대한 행동학적 고찰’. 쇼핑하는 동물인 인간이 각종 매장에서 하는 행동을 경험적·과학적으로 관찰하고 분석해 온 그는 저서 ‘Why We Buy:The Science of Shopping'(1999년)의 한글개정판을 최근 발간했다. 한국어판 제목은 ‘쇼핑의 과학’.

언더힐 CEO는 2000년대 진행된 쇼핑 세계의 변화 키워드를 ‘인터넷 쇼핑’과 ‘여성’으로 정리했다. 그는 “인터넷 쇼핑은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했다.

“쇼핑 사이트를 보면 가장 인기있는 제품 리스트가 항상 있죠. 하지만 ‘가장 인기있는 것’과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은 다릅니다. 인터넷 덕분에 원할 땐 언제든 필요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지만, 오히려 넘쳐나는 정보 가운데 무엇을 믿어야 하고, 어떤 정보가 나에게 적합한지 구분하는 것은 더 어려워졌어요. 소비자 개인, 환경, 지역 등을 고려한 맞춤형 쇼핑까진 이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는 “여성들이 ‘클릭(click)’에 열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그동안 쇼핑의 세계에서 확대돼 온 여성의 파워가 점점 커지고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여성의 쇼핑에는 심리적, 감정적인 면이 존재합니다. 구매한 물건을 통해 새로운 자아를 욕망하죠. 새로 산 립스틱을 들고 키스를 부르는 입술을 가진 자기 모습을 상상합니다. 스마트폰 살 때 통화하는 것처럼 포즈를 취하고 거울을 봤었나요? 남성은 스마트폰의 기술적, 기능적 요소를 주로 보지만, 여성들은 스마트폰을 하나의 기기가 아닌 패션 액세서리로 받아들이지요.”

맥도날드·스타벅스·씨티뱅크·블루밍데일즈 등 다양한 매장 운영에 조언해 온 언더힐 CEO를 지난달 24일 Weekly BIZ가 만났다. 60대 아저씨 입에서 쇼핑 이야기가 술술 흘러나왔다.

파코 언더힐 CEO는 인터뷰 전날 서울 삼성동 코엑스몰에 다녀왔다고 했다. 그는 “세계 여러 나라의 쇼핑몰, 쇼핑거리를 다녀봤다. 1시간이라도 여유가 있으면 어디든 꼭 들러본다”고 말했다.

“매우 헷갈리는 곳(confusing place)이더군요. 바깥에서 어떻게 들어가는지 알기가 어려웠습니다. 몰(mall) 전체가 지하에 있는데, 요즘 쇼핑몰들은 대부분 바깥에서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비주얼에 신경을 씁니다. 랜드마크(landmark)가 되려고 하죠. 코엑스몰이 문을 열었을 때(2000년)는 최상의 선택이었겠지만, 처음 간 사람에겐 너무 힘든 곳입니다. 몰 안에서도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 알기 어렵고 길을 잃기 십상이에요.”

경향성의 발견

모든 장소와 물건에 호기심을 갖고 쳐다보는 언더힐 CEO는 “쇼핑의 과학은 ‘관찰’에서 출발한다”고 말했다. 그가 설립한 인바이로셀은 기업의 의뢰를 받은 매장에 ‘추적자(tracker)’라고 부르는 현장조사원들을 배치한다. 이들은 특정 쇼핑객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스파이처럼 미행한다. 알아채지 못하게, 하지만 작은 행동도 놓치지 않도록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 매장을 어느 경로로 돌아다니고 어떤 제품에 관심을 보이는지, 집어든 제품의 정보(디자인·가격·성분·유통기한 등) 가운데 무엇을 눈여겨보는지, 얼마나 오래 매장에 머무는지 등을 세밀하게 기록한다.

필요하면 비디오를 설치하거나, 매장을 나서는 쇼핑객을 붙잡고 행동의 의미를 묻기도 한다. ‘쇼핑의 과학’은 철저하게 현장중심적인 지식이면서, 불변의 진리나 완벽함이 아닌 하나의 경향성을 발견하는 과정이다.

―책에서 ‘쇼핑의 과학’이 보편적인 동시에 일시적이라고 했습니다. 무슨 의미인가요?

“보편적이라는 것은, 인간이 가진 공통된 신체적 특징과 능력, 한계, 욕구가 있기 때문에 매장 환경을 여기에 맞춰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을 ‘생물학적 상수(biological constants)’라고 부르죠. 간단한 것들입니다. 팔이 2개라는 사실부터, 가만히 서 있을 때 손이 90㎝ 정도 높이에 머문다든지, 노인은 허리를 굽히기가 힘들다든지, 인간은 물건보다는 사람에 시선을 더 두는 경향을 보인다든지 하는 것들이죠. 이런 상수가 있지만, 쇼퍼들의 취향과 성향은 끊임없이 변합니다. 과거엔 광고나 브랜드가 주는 메시지가 강력한 힘을 발휘했지만, 이제 승부는 매장 바깥이 아닌 매장 안에서 결정납니다. 매장의 위치, 광고판과 선반의 위치, 진열 방식 같은 매장 내 정보나 인상(印象)에 소비자들이 더 민감해진 것이죠.”

―’쇼핑의 과학’이 힘을 발휘한 구체적인 예를 들어주십시오.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상품 배치를 예로 들어보죠. 직원 식당 두 곳에서 감자튀김이 팔리는 과정을 살핀 적이 있습니다. A식당은 직원들이 접시를 집어드는 곳과 가까운 쪽에 감자튀김을 놓았고, B식당은 계산대와 가까운 쪽에 배치하고 있었죠. 어느 식당의 감자튀김 매출이 높았을까요? B식당입니다. A식당에 들어선 사람들은 메인 메뉴인 샌드위치를 고르기 전에 감자튀김 종류를 선택해야 했는데, 고민하다가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았어요. 출입구 근처에 있던 포장지 코너를 출구 쪽으로 옮겼더니 매출이 오른 경우도 있습니다. 프린터 매장에서 고객의 구매 행태를 관찰했더니, HP나 엡손 같은 브랜드별로 진열하기보다 가격대별로 모아놓는 것에 고객 반응이 더 좋았어요.”

인터넷 쇼핑의 과제

12년 전 출간한 ‘쇼핑의 과학’에서 언더힐 CEO는 인터넷 쇼핑의 잠재력에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인터넷은 실리콘밸리의 컴퓨터광들이 만든 특별하지 않은 것” “인터넷 쇼핑은 건물로 지어진 매장을 결코 대체하지 못할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인터넷 쇼핑은 2000년대 들어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미국의 경우 2000~2009년 인터넷 쇼핑 시장 매출이 5배 이상 증가했다. 미국 시장조사기관인 포레스터 리서치는 2010년부터 2015년까지 미국·유럽의 온라인 쇼핑 매출(온라인 여행 상품과 자동차 부문 제외)이 연평균 10%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의 사이버쇼핑몰 거래액도 2001년 3조원대에서 2009년 20조원을 돌파했고, 지난해엔 25조원을 넘어섰다.

―’쇼핑의 과학’을 창시한 사람으로서, 왜 인터넷 쇼핑에 관심을 두지 않았나요?

“당시 인터넷 세계는 매우 작았죠. 치켜세우지 않은 것뿐입니다. 당시 많은 이들이 ‘새로운 디지털 세계를 받아들이지 못했다’고 저를 비난했죠. 물론 닷컴 버블 이후 인터넷 쇼핑은 엄청나게 성장했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하지만 인터넷 쇼핑의 성공은 그 자체가 훌륭해서가 아니라 기존 쇼핑 방식이 거추장스럽고, 비싸고, 비효율적이기 때문입니다. 인터넷 쇼핑의 세계는 갈 길이 아직 멀다고 봅니다. 불완전한 어린이 같은 상태죠.”

―어떤 한계가 있는 것이죠?

“일종의 딜레마에 빠져 있습니다. 인터넷의 가장 큰 단점은 무차별적으로 정보에 노출된다는 것입니다. 웹에서 유통되는 정보량은 엄청납니다. 쇼퍼(shopper)들은 제품 정보를 풍부하게 얻을 수 있죠. 하지만 많은 정보 가운데 무엇이 정확하고 틀린 것인지 판별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사실과 소문, 오류나 가설이 공존하지요. 인터넷은 그 자체로 어떤 정보가 믿을 수 있는지 알려주지 않습니다. 이런 특성은 인터넷 쇼핑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쇼퍼들 스스로 유용한 쇼핑 사이트나 신뢰할 만한 정보를 선택하고, 결국 그런 사이트들이 살아남지 않을까요?

“문제는 정보량은 많지만 정작 나에게 중요하고 유용한 정보는 제공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세계 어디서나 원하는 제품 정보를 얻고 구매할 수 있지만 맞춤형이나 지역화에는 실패하고 있습니다. 미국 뉴욕에 사는 30대 여성과 로스앤젤레스, 텍사스에 거주하는 30대 여성이 옷을 입는 방식엔 차이가 있겠죠. 메이시스(Macy’s) 백화점의 웹사이트가 제공하는 인기 순위나 추천 아이템에 미국 전역이 열광하는 것도 아닙니다. 맞춤형 정보를 제공하려는 시도가 없진 않습니다. 가령 ‘데일리캔디(dailycandy)’라는 사이트에선 애틀랜타·보스턴·시카고·뉴욕·댈러스 등 10여 곳을 지정할 수 있습니다. 그 지역에서 쇼핑할 만한 곳과 식당을 소개하고, 예정된 문화행사도 알려줍니다. DVD 대여업체인 넷플릭스(Netflix)의 경우 회원의 우편번호 범위 내의 인기 영화 목록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도들이 더 많이 나와야 합니다.”

“여성의 욕망 앞에 겸손하라”

지난 2009년 발표된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의 ‘Women Want More(여성은 더 많은 것을 원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은 18조4000억달러 규모의 글로벌 소비시장에서 약 12조달러를 주무르고 있다. 65%의 소비력이 여성의 선택에 달려 있는 셈이다. BCG는 “직장 여성이 증가하고 동등한 임금에 대한 요구가 거세지면서 향후 5년간 여성 소득은 계속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언더힐 CEO는 “남자들이 옛날에 비해 쇼핑을 좋아하긴 하지만, 그 변화도 여자들의 은근한 자극 때문”이라며 “여성의 지갑을 여는 매장이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과거에도 여성들은 쇼핑을 했지요. 지금 여성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뭔가요?

“여성이 옷이나 음식만 사는 시대는 지났어요. 여성들은 직접 차를 사고 부동산을 매매하는 것 같은 (과거 남자의 몫이던) 의사결정과정에 적극 참여하고 있습니다. 불경기를 거치면서 여성보다 남성이 일자리를 더 많이 잃었습니다. 부인이 더 많이 벌거나 가장(家長) 역할을 하는 경우도 늘고 있어요. 서구 사회에선 여성의 경제적 힘이 10년 전보다 확실히 커졌어요. 하지만 불행히도 우리는 아직 남성이 디자인하고 소유하는 매장, 남성이 경영하는 곳이 더 많은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일본 백화점 이사회에 가보면 죄다 남자들이에요. 이들의 소비자 베이스는 여성이 대다수죠.”

―여성의 쇼핑은 어떻게 다른가요?

“남성보다 감정적이고 심리적입니다. 쇼핑으로 얻은 물건을 통해 자아를 변화시키고 싶어하죠. 실내용 램프를 하나 샀다고 칩시다. 여성에게 이 램프는 불을 밝히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집안을 더 우아한 곳으로 만들어 주는 것으로 인식하는 거죠. 공간도 중요합니다. 백화점에 있는 화장품 매장을 유심히 살펴봤더니, 자기 몸을 감출 수 있는 공간에 서 있던 여성들이 매장 중앙의 개방된 곳에 서 있던 여성보다 제품 구입 확률이 더 높았어요.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고 편한 마음으로 화장품을 둘러본 여성들이 실제 지갑을 여는 경우가 많았던 겁니다. 혼자 패스트푸드점에 갈 때도 마찬가지예요. 남성들은 거리낌 없이 들어가서 햄버거를 받아들고 앉아버리죠. 하지만 여성들은 한참을 두리번거리거나, 차라리 드라이브 인(drive-in) 매장을 이용해요. 여성을 잠시라도 더 매장에 머물게 만드는 여유 공간이 필요합니다.”

언더힐 CEO는 “물론 할인행사장 같은 곳에서는 여유 공간이 없어도 오래 머물 수 있다”며 “저렴한 가격을 원하는 욕구가 낯선 이들과의 접촉이 주는 거리낌보다 크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국인 주부에게 TV를 판다고 가정해 보죠. 신제품이고 디자인도 훌륭하다고 얘기할 수 있겠죠. 하지만 저라면 남편 이야기를 꺼내볼 겁니다. ‘이 TV가 남편이 집에서 보내는 시간을 늘려줄 것’이라고 말이죠. 아이와 보내는 시간도 늘 것이고, 더 다이내믹한 가정생활이 가능하다는 걸 강조하는 겁니다. TV의 기술력이 그 여성의 가정에 미칠 영향을 상상하게 만드는 것이죠. 이제 여자의 욕망 앞에 겸손해야 합니다. 쇼핑의 과학은 커다란 혁신을 말하지 않아요. 미세한 변화가 극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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