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가 상품 대신 고품질로 승부 ‘PB(Private Brand·유통업체 자체 상품) 2.0시대’ 열린다

[감속시대 생존전략] [9] 유통업체 브랜드 개발
PB 1.0 시대엔 싼 가격으로 어필, 저성장 시기엔 싸다고 소비 안해… 합리적 가격·고품질 상품 선택적 구매
건강정보 잡지 제공하며 이미지 쌓고 상품 개발에 소비자 참여하는 마케팅까지… 쇼핑의 즐거움을 주는 전략도 효과적

미국의 대형 수퍼마켓인 세이프웨이는 2005년 자체 브랜드인 유기농 프리미엄(고가) 상품 ‘제로(O)’를 만들고, 300여종의 유기농 제품을 출시했다.

과일·야채·계란·유제품·고기 등 신선 식품뿐만 아니라 각종 음료·빵·과자·냉동 식품 등 가공식품까지 다양한 상품을 내놨다. 일반 제품보다 30% 비싸지만 건강에 좋은 유기농 식품이란 점을 집중 홍보했다.

또 분유·기저귀·영양식품 등 유아용 고가(高價) 브랜드인 ‘맘 투 맘(Mom to Mom)’을 내놓으며 ‘어머니들이 직접 개발에 참여한 상품’ ‘아기들에게 최고를 주고 싶어 하는 어머니들을 위한 상품’이라는 광고 문구를 내걸어 마케팅을 펼쳤다. 미국의 경기 침체 속에서도 세이프웨이의 프리미엄급 자체 브랜드는 해마다 연평균 30% 이상씩 매출이 늘고 있다.

미국의 또 다른 대형 수퍼마켓인 퍼블릭스도 그린와이스(GreenWise)라는 ‘건강, 자연, 유기농’ 콘셉트의 브랜드를 도입해 연 1조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이 회사는 ‘그린와이스 매거진’이란 건강 정보 잡지를 고객들에게 건넨다. 건강 상품을 파는 수퍼마켓이란 이미지로 소비자들에게 다가서는 것이다.

영국의 대형마트 업체인 세인스베리(Sainsbury’s)는 자사의 식료품 브랜드 홍보를 위해 유명 요리사인 제이미 올리버(Jamie Oliver)를 모델로 기용했다. 자사 제품이 직접 주방에서 만든 따뜻한 음식 같다는 느낌을 소비자들에게 주기 위해서다.

유통업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흔히 ‘PB(Private Brand) 상품’이라 불리는 자체 기획 상품으로 돌파구를 찾는 유통업체들이 크게 늘고 있다. PB 상품도 시대의 변화에 맞춰 진화하고 있다.

‘PB 1.0’ 시대라고 할 수 있는 과거엔 저(低)가격대 위주의 자체 상품을 내놓아 싼 가격만을 무기로 소비자에게 다가섰다. 그러나 요즘 같은 ‘감속(減速)시대’엔 고(高)품질에 적정 가격의 자체 상품으로 승부하는 ‘PB 2.0’이 대세다. 세계 경제가 저성장기로 접어들면서 소비자들이 싼 제품이라고 마구잡이로 구입하지 않고, 합리적인 가격대의 상품을 선택적으로 구매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 업체 브랜드 파워 약한 상품을 집중 공략

미국 최대 전자제품 전문 유통업체인 베스트바이(Best Buy)는 치밀한 전략을 세워 자체 브랜드의 전자제품으로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다. 베스트바이는 처음에는 다이넥스(Dynex)라는 자체 브랜드를 도입해 컴퓨터, 전원 케이블 등 일부 전자제품만 싼값에 내놨다. 이런 PB 제품이 잘 팔리자 이 회사는 TV, 모니터와 홈시어터, 카스테레오, 각종 액세서리 등으로 상품 영역을 확대하고 가격대도 종전보다 높여 나갔다.

베스트바이는 PB 상품을 내놓는 원칙도 나름대로 정했다. ①매출에 비해 이익이 덜 나면서 ②기술 혁신이 잘되지 않고 ③기존 업체의 브랜드 파워가 약한 제품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미국의 전자제품 전문 유통업체인 베스트바이는 기존 제조업체의 브랜드 파워가 약하거나 기술 혁신에 시간이 많이 필요한 제품 등을 자체 상품으로 만들어 팔아 최근 5년간 연평균 10% 가까이 성장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한 베스트바이 매장에서 쇼핑을 마친 고객들이 계산대 앞에 줄지어 서 있다. /AFP

예를 들어 기존 업체의 브랜드 파워가 약하고 이익률이 낮은 컴퓨터 가방, TV스탠드와 같은 제품군은 ‘인잇(Init)’이라는 브랜드로 출시했다. 또 기술 혁신에 시간이 많이 필요한 중저가의 노트북 컴퓨터와 TV, 모니터, 홈시어터를 묶어서 ‘인시그니아(Insignia)’라는 브랜드를 내놨다. 이런 상품일수록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쉽고 차별화된 브랜드 구축이 수월하기 때문이었다.

베스트바이의 전략은 적중했고, 자체 상품 판매 비중이 2004년부터 4년간 5배로 급증했다. 경쟁사인 서킷시티(Circuit City)가 파산한 데 비해 베스트바이는 지난 5년간 연평균 10% 가까이 성장하고 있다.

베스트바이·트레이드 조 성공사례

미국 전역에 350여개 매장을 보유한 수퍼마켓 체인인 트레이더 조(Trader Joe’s)는 전체 취급 상품 2000여 개 가운데 80%가 자체 브랜드 상품이다. 미국 수퍼마켓의 자체 브랜드 상품이 평균 16%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매우 높은 비율이다.

이 회사는 품질 향상과 비용 절감에 주력했다. 우수한 자체 상품을 납품하는 협력업체엔 업계 최고 수준의 거래조건을 내걸었다. 물품 대금을 제때 지급해주고, 업계 관행처럼 돼 있는 광고비나 매장관리비 부담도 주지 않았다.

미국 수퍼마켓 체인인 트레이더 조는 품질 좋은 자체 상품을 싼 가격에 내놓으면서, 매장을 열대풍으로 꾸며 고객들이 마치 휴가를 나와 쇼핑하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쉬루스베리의 트레이더 조 매장에 온 고객들이 하와이풍의 꽃 목걸이를 목에 건 채 직원들의 박수를 받으며 입구에 들어서고 있다. /베인앤컴퍼니 제공

대신 판촉 비용을 최소화하고 매장 내 시설 투자비용을 줄여나갔다. 트레이더 조가 직접 운영하는 물류센터에서 포장과 라벨링을 한 후 매장에 공급해 비용을 절감했다. 비용을 줄인 만큼 질 좋은 자체 상품을 낮은 가격에 매장에 내놨다.

트레이더 조는 또 매장을 열대풍으로 꾸며 고객들이 휴가를 나와 쇼핑하는 듯한 느낌을 줬다. 직원들은 하와이풍의 셔츠를 입고 입구에서 밝은 표정으로 고객을 맞았고, 카트에서 상품을 계산대로 옮기는 일도 직원들이 직접 도왔다. 고객들이 실속 있는 소비와 함께 쇼핑 경험도 중시한다는 점을 간파한 것이다.

소비자들은 열광했고, 자발적으로 온라인 팬 클럽까지 만들며 트레이더 조 상품을 스스로 홍보했다. 이 회사는 지난 10년간 연평균 20% 이상씩 성장했다. 트레이더 조는 미국 유통업계가 포화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20개 이상씩 점포를 오픈하며 고객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 프라이빗 브랜드(private brand) 상품

유통업체가 제조업체에 위탁해 제품을 생산한 뒤 유통업체 브랜드로 내놓는 상품을 말한다. 종전에는 값싼 제품만으로 승부하는 유통업체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품질도 좋으면서 가격도 적정한 제품을 출시해 성공하는 유통업체가 늘고 있다.

☞ 감속시대

대한민국 경제 전반의 발전 속도가 둔화된 현상을 말한다. 감속시대를 초래한 원인으로는 글로벌 금융위기와 급격한 노령화, 산업구조의 재편 등 세 가지 요인이 거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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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업체 자체 브랜드 성공하려면 기존 브랜드 약한 상품 공략을

 

제조와 유통의 통합 트렌드는 이제 대세(大勢)다. 유통업계가 이를 기회로 살리기 위해서는 명확한 대응 전략이 필요하다.

첫째, 기존 제조업체의 브랜드 파워가 약한 상품을 자체 브랜드 상품(PB 상품)으로 개발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기존 업체의 브랜드 파워가 약할수록 브랜드 구축을 위한 시간과 노력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브랜드 전략을 수립하고 이를 관리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 유통업체 고유의 강력한 브랜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유통업체는 돈을 들여 브랜드를 구축하는 일보다 상품 개발에만 치중하기 쉽다. 그러나 자체 상품이 경쟁 유통업체나 기존 제조업체보다 경쟁력을 갖기 위해선 브랜드에 대한 투자가 반드시 필요하다.

셋째, 규모가 작은 후발 유통업체일수록 자체 상품으로 차별화하는 전략이 더욱 필요하다. 규모가 작을수록 제품 구입 단가가 비싸고, 물량 확보가 어렵기 때문에 경쟁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다. 자체 상품은 이런 약점을 극복하고 기존 유통업체와 차별화해 성공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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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체도 자체 유통망 늘린다.
유통업체가 자체 상품으로 제조업체를 위협하자 제조업체가 자체 유통망을 강화해 유통시장 공략에 나서는 경우도 있다. 유통과 제조의 무한 경쟁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레고 블록으로 유명한 덴마크의 완구업체 레고는 지난 2005년 기존 유통업체들이 싼값의 경쟁 상품을 쏟아내는 바람에 수익성이 나빠지자 어린이들의 브랜드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미국 시장에 레고 전문점을 크게 늘렸다. 레고는 매장에서 어린이 고객의 생일 파티를 열어주기도 하고, 레고 블록 전문가들이 강습을 하기도 하면서 브랜드 이미지를 끌어올렸다. 2010년 레고의 매출과 이익은 2005년 대비 2.3배, 7.4배씩 성장했다.

IT업체인 애플은 상권에 따라 차별화된 유통망을 구축해 성공한 사례다. 애플은 대도시의 핵심 상권에는 대형 매장을 열어 다양한 상품으로 고객들을 공략했고, 지역민이 주요 고객인 소도시엔 중소형 매장을 열어 잘 팔리는 주요 상품만을 내놓았다. 애플이 2001년부터 2010년까지 매출을 13배로 늘릴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는 이런 자체 유통망 구축이 손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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