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우 교수의 경영 수필] 내가 파는 게 건어물이냐 생선이냐… ‘업(業)’의 개념부터 파악해야

[1] 건어물과 생선
‘업’ 개념 강조한 이건희 회장… “가전제품 맡았던 사람이 컴퓨터 잘 팔 수 있겠나”
책임자 교체 하려다가 건어물·생선 비유한 답변에 “감 잡았으니 계속하라” 지시

이명우 교수

1990년 여름, 필자는 삼성전자 영국법인에서 가전제품 위주로 영업하다가 독일로 옮겨 컴퓨터·정보통신 제품의 유럽 판매를 책임지게 되었다. 당시 삼성전자는 이건희 회장이 취임한 지 3년째로 컴퓨터사업을 새로운 성장 엔진으로 키우기 위해 주력하고 있었다. 컴퓨터사업부문 사장까지 외부에서 영입하며 의욕을 보였는데, 그에 비해 해외 사업은 아직 준비 단계였다. 필자는 유럽 총괄 법인 설립과 유통 채널 확보에 여념이 없었다.

그해 겨울 이건희 회장이 해외 사업장 순방을 하며, 필자가 맡고 있는 유럽사업장을 방문했다. 이 회장은 직전에 방문했던 지역의 컴퓨터 사업 책임자가 컴퓨터 분야 전문가가 아니라는 이유로 바꾸라는 지시를 하고 온 참이었다. 그런데 유럽에 와보니 역시 가전 영업 하던 사람(필자)이 역시 컴퓨터부문 책임자임을 알고 실망하면서, 회의석상에서 이렇게 말했다. “가전 잘하고 있는 사람을 컴퓨터에 데려다가 바보 만드는 것 아닌가?” 이 회장은 곧이어 “당장 다시 돌려보내라. 그리고 외부에서 최고의 전문가를 데려와라”라고 지시했다.

이 회장은 다음 안건으로 넘어가려다가 문득 필자를 보고 물었다.

“마지막으로 자네 생각은 어떤가?”

만약 이 회장이 그 마지막 질문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 필자의 운명은 완전히 달라져 있을 수도 있다.

“회장님 말씀대로 세상에는 훌륭한 컴퓨터 전문가들이 많이 있고 삼성이 원한다면 얼마든지 영입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새로 사람이 오게 되면 새로운 조직 문화를 익히는 데 시간도 많이 걸리고, 기존에 있던 사람들과 일하는 데 문제가 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차선으로 제가 이 자리에 오게 된 것 같습니다.”

필자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르는 최후 진술을 이어갔다.

“그런데 제가 한 6개월 정도 이 일을 하다 보니 제가 이전에 하던 가전제품 영업이 건어물 장수라면, 새로 시작한 컴퓨터 영업은 생선장수쯤 된다는 감을 익힌 것같습니다. 저에게 기회를 주신다면 생선장수 제대로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

그 당시 새롭게 태동하는 컴퓨터 시장은 기존의 다른 어떤 제품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무서운 속도로 급속히 변화하고 있었다. 당시 유럽법인이 설립됨과 동시에 286컴퓨터의 판매 목표가 할당되었는데, 생산에 6주, 최종 창고로 입고되기까지 6주, 총 12주가 소요된 후 유럽에 있는 창고에 도착했을 때 유럽 각지의 거래선들은 더 이상 286을 판매할 수 없고 386SX를 달라고 했다. 본사에 이야기했더니 그렇다면 즉시 다시 보내주겠다 했고, 다시 12주 후에 386SX가 도착했지만, 그때는 또다시 시장이 바뀌어 있었다. 이제 시장은 386SX보다 성능이 좋은 386DX가 표준이 되어가고 있었다.

필자가 건어물과 생선 이야기를 꺼낸 것은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제품 특성에 따라 판매 방식이 달라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반성도 포함돼 있었다. 건어물은 유통기간이 비교적 길어서 가격이 낮을 때 보관했다가 명절 전이나 성수기에 높은 가격에 출하를 해도 되지만, 생선은 싱싱할 때 바로 팔지 않으면 제값 받기가 불가능하다. 생선을 싱싱하게 유통하려면 운송 방법과 보관 방법도 달라져야 한다.

컴퓨터사업을 미래 성장 엔진으로 주력하면서도 컴퓨터사업이 기존 가전제품과는 ‘업(業)의 개념’이 다르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않은 데 대해 못마땅했던 마당에 필자의 건어물과 생선 비유가 가슴에 와 닿았던 것 같다.

“그 정도라도 감을 잡았다니 다행이네. 그럼 자네가 한번 잘해보게. 전문가는 외부에서 데리고 와서 자네 밑에다가 쓰게.”

필자의 새로운 도전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이십여년 전 그때보다 세상은 더욱 빨리 변해 건어물로 생각되던 가전제품도 무섭게 변화하는 ‘생선’이 되었고, 싱싱한 생선을 뛰어넘어 살아있는 생선으로 팔 수 있는 역량을 가진 기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 국내 전자회사들이 후발 주자로 시작했지만 세계 TV 시장과 휴대폰 시장을 석권한 것은 이런 업의 개념에 충실하여 경쟁업체들이 따라올 수 없는 공급망사슬(Supply Chain Management)의 혁신을 이루어 냄으로써 살아있는 생선을 제때에 전 세계로 공급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 데 기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진정한 업의 개념은 기업이나 시대와 환경의 변화에 따라서 달라진다. 이는 정확한 목적의식에 기반해 핵심역량을 개발하는 데뿐만 아니라 미래의 성장을 위한 가치를 창출하는 데도 매우 중요하다. 제록스의 경우 진정한 업의 개념을 ‘좋은 복사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무실의 효율을 올리는 것’으로 정의함으로써 사무기기 종합업체로 성장했다. 앰트랙(Amtrak)은 과거 미국에서 번성한 철도회사였으나, 업의 개념을 ‘철도사업’으로 좁게 정의한 탓에 경쟁사인 항공회사와의 차별화를 위해 가능한 한 비행장을 멀리 피해 철도를 깔았다. 그리고 앰트랙은 지금 항공산업의 발전으로 고전하고 있다. 앰트랙이 업의 개념을 ‘빠르고 편리한 운송수단을 제공하는 사업’으로 정의했더라면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당신이 현재 팔고 있는 것은 건어물인가, 생선인가? 업의 개념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에 맞는 핵심전략을 확보하고 있는지 생각해 볼 때이다.

☞이명우 교수는

부산고와 서울대 문리대를 졸업하고미국 와튼스쿨 경영대학원에서 MBA(경영학석사), 한양대학교에서 경영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977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24년간 근무하면서 주로 해외 영업을 담당한 마케팅 전문가이다. 삼성전자유럽컴퓨터 판매 법인장, 본사 해외본부 마케팅팀장을 거쳐 미국의 가전사업을 총괄하는 부문장으로 활약했다. 2001년 말 삼성전자의 경쟁사인 일본 소니로 스카우트돼 소니코리아 사장이 됐다. 당시 아시아·태평양 지역 최초의 현지인 출신 소니 최고 경영자가 돼 화제가 됐다. 2006년에는 미국 제조업체인 한국코카콜라보틀링의 회장을 역임했고, 2007년에는 국내 제조업체 레인콤으로 옮겨 대표이사와 부회장을 지냈다. 2010년 가을 학기부터 한양대 경영대학 특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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