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성 앞세워 시장개척하고 잘되는 분야부터 집중…육성사업 실패 따른 비용 최소화
◆ 급성장 동력은M&A와 사모펀드
멀린의 역사를 얘기할 때 인수합병을 빼놓을 수 없다. 지금의 회사 이름이 만들어진 것도 불과 14년 전이다.
멀린의 전신은 바르돈 어트랙션(Vardon Attractions)이다. 이곳에 근무하던 경영진들이 1998년 12월 MBO(Management Buyout, 경영진이 회사를 인수)를 통해 멀린을 만들었다. MBO 당시 재무적 투자자로 에이팩스 파트너(Apax Partners)라는 사모펀드가 참여했는데, 에이팩스는 자신의 지분을 2003년 또 다른 사모펀드인 헤르메스(Hermes)에 매각했다.
중대한 변화는 별개 회사였던 테마파크 레고랜드가 2005년 시장에 매물로 나왔을 때 일어났다. 멀린 경영진은 사업 확장의 기회로 보고 레고랜드를 인수하고자 했다. 곧바로 대주주인 헤르메스에 레고랜드 인수 의사를 타진했다. 그러나 헤르메스는 인수에 동의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지분을 블랙스톤 그룹(Blackstone Group)에 매각했다. 이후 블랙스톤은 레고랜드를 2억5000만파운드에 인수한 뒤 이를 멀린과 합병시켰다.
블랙스톤이 경영을 주도하면서 멀린은 본격적으로 몸집을 불리기 시작했다. 블랙스톤은 이탈리아 최대의 놀이동산인 가르다랜드(Gardaland)와 밀랍 인형 박물관으로 유명한 투소 그룹을 연이어 인수했다. 이후에도 인수 합병 행진은 계속돼 2010년 플로리다의 테마파크인 사이프레스 가든즈(Cypress Gardens)를 사들였다. 2011년 3월에는 시드니 수족관 등 호주와 뉴질랜드에 있는 테마파크와 여가시설을 잇따라 흡수했다.
블랙스톤은 2010년 멀린 지분 20%를 CVC 캐피털 파트너즈에 매각해 현재 지분은 34%로 줄어든 상태다. CVC가 지분 매입에 들인 금액은 22억5000만파운드. 이는 블랙스톤이 5년 전 멀린과 레고랜드를 인수할 당시의 금액보다 6배나 많은 액수였다. 여기서 다시 관심은 멀린이 단기간 내 기업가치를 급격히 상승시킬 수 있었던 비결에 모아진다.
◆ 성공 공식을 반복적으로 사용
멀린의 공격적이면서도 성공적이었던 해외 개척 뒤에는 블랙스톤의 글로벌 네트워크와 투자 의사 결정에 대한 전문성이 있었다. 투자자인 사모펀드와의 공조를 통해 멀린은 디즈니나 유니버설스튜디오 등 기존 테마파크 강자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성장을 도모했다. 디즈니가 파리와 홍콩에만 소규모로 신규 진출한 것과는 전혀 다르게, 멀린은 보다 광범위한 지역에서 M&A를 통한 빠른 확장을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멀린은 규모를 키운 뒤에 인수한 테마파크들의 상품력을 획기적으로 개선해 나갔다. 멀린이 인수한 테마파크들은 대부분 규모가 크지 않은 파크들이다. 관객수가 줄고 인기가 떨어진 시설도 다수 있었다. 이런 시설들은 방문객의 체류시간이 짧은 단점이 있다. 테마파크 사업에서 고객의 체류시간은 수익과 직결되는 중요 지표 중 하나다.
멀린은 인수한 테마파크에 매력적인 놀이기구와 쇼, 이벤트 등을 결합시키는 꾸준한 업그레이드를 통해 방문객의 체류시간을 늘리고 방문객이 파크 안의 식당과 상점을 통해 더 많이 지출할 수 있도록 했다. 나아가 방문객이 하루에 파크를 다 들러 볼 수 없을 정도로 파크의 규모가 커지면 주변에 숙박시설을 짓고 수족관 등의 작은 테마파크(일명 2차 게이트 파크)를 기존 파크 옆에 붙여 나가는 식으로 집중력 있는 투자를 진행했다. 이러한 확장을 통해 기존에 인기 없던 파크는 멀리 사는 고객까지 유인할 수 있는 유명 관광지로 변모했고 파크 입장권 가격도 올릴 수 있었다.
멀린은 보유한 테마파크와 여가시설들 간의 시너지를 차근차근 현실화해 나갔다. 멀린의 도심형 여가시설이 밀집해 있는 런던 베를린 암스테르담 등에서는 통합 마케팅을 실시해 홍보 비용을 절감했다. 2008년에는 영국에서 12개월 동안 멀린의 모든 시설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연간 회원권을 도입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또한 각 여가시설을 확장하고 리뉴얼할 때도 다른 시설에서 집객력이 검증된 놀이기구, 쇼, 체험 프로그램 등을 우선 적용함으로써 실패에 따른 비용을 최소화했다.
성장 전략을 고민하는 기업이라면 자신의 성장 전략을 멀린이 가졌던 것과 유사한 `반복 가능한 성공 공식`으로 치환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 좋은 성장 전략은 단순하고 반복 가능한 핵심 공식으로 표현이 가능하다. 이후 성공 공식의 첫 번째 적용을 기필코 성공으로 만들어 내고, 성공 과정에서 얻은 교훈을 가지고 공식을 발전시켜 다시 적용해 나간다면, 국내 기업들도 멀린과 같이 견실한 성장을 이룰 수 있다.
[김경훈 베인&컴퍼니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