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 추락의 비밀…’내부의 적’ 있었다

‘평판학의 대가’ 로사 전 IMD 교수

내부 평판을 올려라, 직원 평가 나쁘면 매출 하락으로 연결
기업 비전 함께 나누며 직원들 자긍심 키워줘야

영원한 1등은 없어…
애플, 종업원·고객 모두 광신도로 만들지만
요즘의 교만한 모습은 毒, 자비 보여야 살아남을 것

한국은 ‘흥’에 반응… 과거는 강한 리더의 시대
차기 대통령의 자질은 혁신과 진실성이 중요

전도유망하던 회사의 매출액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다. 주요 임원이 모여 비상대책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오갈 내용은 무엇일까. 최고경영자(CEO)를 포함해서 열에 아홉은 소비자에게 매혹적으로 보이는 마케팅 방안을 쥐어짤 것이다.

하지만 로사 전(Chun)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 경영대학원 교수의 생각은 다르다. 세계적 명문인 IMD에서 최초이자 유일한 한국인 교수인 그가 제시한 현안은 ‘내부 직원들의 평판(internal reputation)’을 끌어올리는 일이다. 그의 글이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2009년)’ ‘스트래티직 매니지먼트 저널(2010년)’ 같은 경영 학술지에 비중 있게 실리자 산업계와 경영학계가 크게 주목하고 있다.

로사 전 IMD 교수가 Weekly BIZ 인터뷰에서“현대사회에서 평판 경영의 출발은 내부 직원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 채승우 기자 rainman@chosun.com

전 교수는 “영국 등 63개 기업의 소비자와 종업원을 상대로 조사를 해보면, 직원 내부 평판이 소비자 평판보다 좋은 기업이 매출 성장세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반대로 직원 내부 평판은 형편없는데, 소비자 평판이 좋은 기업은 대부분 매출 하락으로 이어진다. 직원들의 낮은 자긍심과 빈약한 자신감이 소비자들에게 전달돼 매출 하락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의 연구 방법은 기업 평판을 측정하면서 의인(擬人)화 기법을 동원하는 등 매우 독특하다. 선(善·agreeableness), 흥(興·enterprise), 격(格·chic), 능(能·competence), 권(權·ruthlessness) 등 5가지로 나눴다. 이 중 권은 나쁜 의미이며, 나머지 선·흥·격·능은 좋은 평판을 말한다.

Weekly BIZ가 아시안 리더십 콘퍼런스에 참가한 ‘평판학’의 대가 전 교수를 만났다. 전 교수는 “한때 카리스마 리더형이 히트를 친 적이 있지만 지금은 내부 종업원들과 공감(empathy)하고 이를 바탕으로 비전을 제시하는 ‘변혁형 리더(transformational leader)’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변혁형 리더’는 선과 흥이 결합한 모습이다. 회사 종업원들의 자긍심과 자신감을 얻기 위해 현대 기업이 요구하는 보스의 성격이 바뀐 셈이다. 전 교수에게 내부 평판을 올릴 수 있는 방책을 물었다.

-내부 평판이 관건이라는 지적에 많은 경영자가 ‘아차’할 것 같은데, 당장 내부 평판을 올리기 위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저한테 문의해 오는 기업 임원들은 ‘진짜 적(敵)은 내부의 종업원들’이라고 솔직하게 말하기도 합니다. 그들을 설득하지 않고는 소비자들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의미지요. 물론 월급만 많이 준다고 종업원이 회사에 만족하진 않습니다. 또 종업원들과 공유할 기업의 비전을 찾을 때 무조건 착한(善) 기업 이미지를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 기업에 맞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이를 이끌어내는 방식은 위에서 주입하는 톱다운(top-down) 방식이 아니라 아래로부터 위로 올라가는 바텀업(bottom-up)이어야 합니다. 특히 소비자와 대면하는 말단 직원들 아이디어가 가장 중요합니다.”

-그렇게 내부 평판이 중요한가.

“2005년 소니의 내부 평판과 외부 평판을 비교해본 적이 있습니다. 이상하게 외부 소비자가 매긴 평판에 비해 내부 평판 결과가 형편없이 나쁘게 나왔습니다. 소니 임원들의 회사에 대한 자부심이 크게 떨어지게 나타난 거지요. 그땐 의외라고 봤는데, 이후 소니는 삼성에 추월당했습니다. 소니의 추락 원인은 비전을 직원들과 공유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반해 삼성은 종업원들과 일치단결한 열정으로 소니와 경쟁했습니다.”

-요즘 가장 뜨는 기업은 애플인데 어떤가.

“애플은 워낙 특이한 회사입니다. 삼성전자가 전자제품을 판다면 애플은 창업자였던 스티브 잡스의 비전을 팔고 있다고 봅니다. 소비자든 직원이든 광신자로 만들어버리는 신명남의 흥이 애플에는 있습니다. 애플스토어에서 스티브 잡스를 위해 일한다고 자부하는 직원들과 신제품 출시 때면 밤을 꼬박 새워 행복하게 줄을 서는 충성 팬이 대표적입니다. 이 느낌은 모방이 불가능합니다. 모든 기업이 애플식으로 해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애플에도 과제가 있습니다.”

-과제가 무엇인가.

“애플과 삼성이 전 세계 9개국에서 특허 소송 30여건을 벌이고 있는 것을 보세요. 이번 특허 전쟁의 진정한 승자는 역설적으로 특허법원에서 패하는 기업이 될 것입니다. 만약 애플이 이번 특허전에서 이긴다면 소비자들은 애플에서 거만한 권(權)의 느낌을 받을 겁니다. 애플 입장에서 보면 다른 회사들이 자기들 아이디어를 훔쳤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소비자는 한 기업의 독주를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경쟁사에 대한 태도가 일관되게 공격적이라면 교만하게(arrogant) 보입니다. 애플은 그런 점이 점점 부각되고 있어요. 애플은 지금보다 자비스러운 모습(善)으로 더 많은 평판을 쌓아야 살 길이 열립니다.”

-내부 평판이 좋더라도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는 얘기인가.

“중요한 문제입니다. 선, 흥, 격과 같은 분야에서 쌓은 내부 평판이 권으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영국의 유통업체인 테스코도 그랬고, 막스앤스펜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창업자의 선의 철학이 내부 파벌이나 매너리즘에 빠져 권으로 변질되는 상황이 옵니다. 그런 조사 결과가 나온 기업은 틀림없이 매출이 떨어지고 내리막길로 접어듭니다. 지금 현재 직원들의 충성심이나 비전 공유로 매출 성과를 올리는 곳이라도 그런 직장 문화가 권으로 넘어가는 것이 아닌지 경계해야 합니다. 어느 것도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소니도 그랬고, 애플도 항상 1등 자리에 있지 않을 겁니다.”

-요즘 기업 경영에서 평판이 중요해진 이유는 무엇인가.

“1990년대만 해도 평판은 그리 중요한 분야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기업에 내·외부 평판은 돈을 버는 일만큼이나 중요해졌습니다. 무엇보다 기업 바깥의 사회·국가에서 기업을 바라보는 기대 수준이 높아졌습니다. 특히 중소기업보다는 대기업, 글로벌 기업에 해당 사회에서 요구하는 잣대가 올라간 것이지요.”

전 교수의 평판 경영학은 벤담(Jeremy Bentham)의 공리주의(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추구)가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의 미덕(virtue) 윤리학에 맥락이 닿아 있다. 소비자·구성원의 효용을 따져 돈을 버는 것이 최고가 아니라, 구성원들이 사회에서 요구하는 ‘공동선(共同善)’을 중시하는 것을 말한다.

-교수님은 대한민국 차기 대통령의 자질로 흥과 선을 꼽았는데요.

“세계적인 트렌드이기도 합니다. 과거에는 강하고 추진력 있는 평판(능·能)이 성패를 갈랐다면 요즘엔 혁신·신명남을 뜻하는 흥과 진실성의 선이 중요해졌습니다. 하지만 다정함·진실함을 의미하는 선에서 정치인들은 차별화를 하기 어렵습니다. 한국 사람들을 보면 흥에 더 잘 반응합니다.”

기업평판 가늠하는 다섯 가지 척도

선(善, 다정·공감·진실함)

1998년 한국에 외환위기가 발발했을 때 유한킴벌리는 감원하지 않은 대신 3교대 업무를 4교대로 바꾸고 주당 평균 56시간에서 42시간으로 근무시간을 조정했다. 이듬해 유한킴벌리는 생리대 부문 경쟁사였던 P&G를 처음으로 따돌리고 시장점유율 선두로 올라섰다. 이 회사는 다정·다감·진실함을 뜻하는 선을 소비자에게 전달했다.

흥(興, 모던함·신명남·대담함)

애플은 단순한 제품 나열과 전시에만 국한하지 않고 소비자들이 즐길 수 있는 전시장인 애플스토어를 선보여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신명남의 흥이다. 모던함의 흥에는 스페인의 중저가 패션 브랜드 자라(ZARA)가 대표적이다. 최신 유행을 즉각 반영한 디자인과 비교적 저렴한 가격, 빠른 상품 회전율로 승부하는 것이 대표적.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제품들을 선보이면서 소비자에게 늘 신선한 이미지를 선사한다.

격(格, 세련미·품위·특권층)

주로 명품업체에 해당한다. 하지만 아무나 추구하기 어렵다. 농심이 모던함과 품위를 강조하기 위해 ‘신라면 블랙’을 내놓을 때, 소비자들은 정체성의 혼돈을 느꼈다. 농심 특유의 형제애, 가족애와 같은 서민적이며 정겹다는 느낌에 익숙해 있던 소비자들은 ‘신라면 블랙’에 낯선 거리감을 느꼈다.

능(能, 근면성실·추진력)·5권(權, 자기 중심·강압성)

수십년에 걸쳐 쌓아온 평판은 일순간 꺼질 수 있다. 추진력을 상징하는 능(能)이 오만함의 권(權)으로 변질되는 경우다. 2007년 애플이 아이폰을 출시했을 때 노키아는 콧방귀를 뀌었다. 그들은 “우리도 터치스크린을 시도해봤지만 소비자들은 그런 걸 좋아하지 않아”라고 반응했다. 이후 노키아는 지난해 15년 만에 적자를 냈다. 로사 전 교수에 따르면 노키아는 정상에 오른 후 안이함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 2010년 노키아 CEO에 부임한 스티븐 엘롭(Elop)은 첫 출근 날 모든 직원에게 이메일을 보내 회사 내에 어떤 것들이 바뀌어야 할지를 물었다. 직원들이 회신한 2000여개의 대답 중 상당 내용은 ‘노키아에선 아무도, 아무것에 대해서도 책임감을 느끼지 않는다’였다고 한다. 직원들 중 아이폰이나 안드로이드폰을 갖고 있는 경우는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노키아는 자신이 싸우고 있는 상대가 누군인지를 알려고 하는 직원조차 별로 없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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