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직원 휴게실에 숨겨진 엄청난 비밀은?

기업 문화가 바로 경쟁력
“우린 창의적인 사람들” 현대카드의 신념 알리려
임원실 작고 투명하게 사무실부터 리모델링

정태영 현대카드·캐피탈 사장

TV 오디션 프로그램인 K-Pop 스타에서 박진영은 ‘가수가 평소 말하는 투로 노래하는 것이 가장 무섭다’는 심사평을 했다. 만들어 내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자기가 투사될 때 가장 감동적이라는 뜻이다. 기업문화도 같은 이치라고 생각한다. 어느 산업에 있건 무엇을 이루고 싶은지, 이상(理想)은 무엇인지, 막연하게나마 고민하고 신념을 만들어가는 회사들이 있다. 이 신념이 구성원들 사이에서 공유되고 투사될 때 기업문화는 비로소 강력한 의미를 갖는다. 그런 기업문화는 숨길 수도 없으며 외부에 브랜드라는 이름으로 나타나게 된다.

‘신념’을 기업문화로 투사하고 다시 DNA化

기업문화가 회사의 경쟁력이란 말을 듣는 경우는 드물다.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 공감대 없이 단순히 시장점유율이나 이익만이 목표인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 ‘신념’이란 좋은 단어들을 모아놓은 사훈(社訓)이나 벽에 붙여놓은 슬로건과 다르다. 사업을 통해 무엇을 주장하고 왜 이 세상은 우리를 필요로 하는지에 관한 질문에 집착하고 대답하는 것이 기업의 ‘신념’이다. 노래로 무엇을 표현하고 싶은지는 모르고 음원차트 순위만이 목표인 가수에게서 향취를 느낄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래서 기업의 ‘신념’은 기업문화의 근원이다. 현대카드와 캐피탈에서는 ‘금융사업을 새롭게 재정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일종의 ‘신념’이다. 은행 위주의 시각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준다거나 실용성이 권위주의를 이길 때, 단단한 질서 위에 다양함과 자유분방함이 얹힐 때 가장 강하다는 믿음도 있다. 최근 보험업에 진출하면서도 직원들에게 ‘업계 순위보다는 이미 많은 보험사가 있는 시장이 왜 우리를 필요로 하는가만 고민하자’고 선언했다.

그래픽=정민성 기자

신념을 기업문화로 투사해 DNA화하려면 크고 작은 작업들이 필요하다. 가장 우선적인 일은 지루한 교육이 아니라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행동으로 체험시키는 것이다. 회사가 아직 어려울 때도 오피스에 투자해 회사의 이상을 직원들 눈에 가시화했다. 사장실을 포함한 임원 방을 최대한 작고 투명하게 만들고 심지어 책상을 실용적으로 자체 설계하였다. 소파는 걷어내고 직원들을 위한 편의는 최대화해 ‘우리는 열심히 일하는 창의적인 사람’들이란 메시지가 시설에서 우러나오게 했다.

직원들이 불필요한 대면 결재를 받으러 오면 일부러 돌려보내고 전화하도록 하고 굳이 올 때는 상의를 못 입도록 아예 금지했다. 회의나 회식에서 사장은 의도적으로 구석에 앉았고 회의에서 자유토론을 유도하기 위해 발언이 없는 사람은 참가시키지 않고 윗사람 말을 노트에 적는 일은 금지했다. 기업문화의 틀은 이런 소소한 것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믿었다. 사소한 것들을 바꿔야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고, 그것이 한 기업의 색깔을 드러내는 문화가 된다.

이를 위해 총무는 기업문화팀으로, 관재는 인프라서비스팀으로 이름을 바꾸고, 그곳에 회사의 이상을 가장 잘 이해하는 직원들을 배치해 수평적 수직적 기업문화를 CEO와 직접 의논토록 했다. 매년 신입사원만큼이나 많은 경력직원을 뽑아 다양한 산업의 관점이 축적되도록 했다. 회의에서는 어떤 다른 구상을 해보았는지, 다음의 로드맵(road map)은 무엇인지를 말하도록 했다. 창의력을 배가하기 위해 KPI(핵심성과지표) 같은 지수를 없애고 대신 수시로 기획과 방향성을 평가하고 있다.

기업이 추구하는 가치와 기업문화의 조화가 관건

기업문화는 부수적인 일이 아니라 회사의 핵심 경쟁 역량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래서 지금도 우리 회사의 방향과 생각을 ‘직원들에게 보내는 보고서’, ‘타운홀 미팅’ 등을 통해 직원들과 부단히 공유하고 있다. 이런 과정을 거쳐 형성된 기업문화는 자연스럽게 사업을 하는 모습에서 외부에 표출된다. 현대카드가 창의적이라고 한다면, 억지로 만든 것이 아니라 기업문화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것이다.

이는 애플(Apple)의 군더더기 없는 제품과 명확한 메시지는 스티브 잡스를 중심으로 정제된 기업문화가 있었기에 가능하고, 사우스웨스트항공의 재기 발랄한 서비스는 CEO와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로 유연한 분위기에서만 가능한 것과 마찬가지다. 만약 할리 데이비드슨이 말끔한 수트와 미니멀하게 디자인된 사무실을 추구한다면 이해가 되는가? 기업이 추구하는 바와 기업문화의 조화가 왜 중요한지는 세계적인 기업이 이미 증명해 주고 있다.

서울 여의도 본사 로비에는 직원들도 모르는 작은 비밀이 하나 있다. 유학 시절, 밤이 깊으면 도서관 매점에서 틀어주던 스타트렉이라는 SF 드라마를 멍청하게 반복해서 보며 졸음을 떨친 적이 있다. 유치하기도 한 드라마이지만 당시 학생들에겐 미래를 꿈꾸게 하는 상징물이었다. 미래를 꿈꾸는 사람만이 창의성을 발휘하고 도전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기업문화도 그런 것이다. 몇십년이 지난 지금도 로비에 있는 스크린 8대 중 맨 뒷줄 왼쪽은 항상 스타트렉이 돈다. 직원들에게 던지는 미래의 꿈에 대한 질문이다.

▶정태영 사장은

서울대 불어불문학과(학사)와 미국 MIT대(MBA)를 졸업했다. 2003년 현대카드 사장 취임 후 성공적인 조직문화 혁신을 추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최근 ‘PRIDE-현대카드가 일하는 방식50’이란 책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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