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세계화의 환상을 깨는 게마와트 교수

세계가 하나? 헛소리다
세계가 평평하다고 주장한 프리드먼의 세계화론 정면 반박
데이터로 교류의 미미함 보여줘
문화적·행정적·경제적 거리 따져 차이에 적응하는 ‘월드 3.0’ 주장

“세계화 환상에 빠져 무작정 해외진출 시도했다간 쓴맛 볼 것”

토머스 프리드만은
확실한 근거가 되는 단 하나의 통계도 없이 일방적인 세계화 주창

지금의 세계화 수준
25% 정도만 진행돼… 지리적 원근 요소가 훨씬 큰 영향 미친다

10년 뒤 기업 활동
신흥국이 메인 시장 돼… IBM·GE 등 글로벌기업 이미 거점에 자리 잡아

‘세계는 평평하다. 투자엔 국경이 없다. 우리는 모두 평등하게 연결돼 있다.’

2005년 뉴욕타임스(NYT) 칼럼니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먼이 낸 ‘세계는 평평하다'(The World is Flat)에 나오는 구절이다. 베스트셀러가 된 이 책은 세계 각국에 ‘세계화 열풍’을 촉발시켰다. 인터넷 발전에 따른 광속(光速) 커뮤니케이션, 각각 13억명과 12억명 인구를 지닌 중국인도 경제의 개방, 기업들의 적극적인 해외 아웃소싱….

프리드먼은 이런 세계화의 10가지 이유를 내세우며 “자유로운 시장을 기반으로 모두가 이웃처럼 가까워졌고, 국경은 소멸했다”고 단언했다.

Getty Images / 멀티비츠

그로부터 2년 후인 2007년부터 40대의 한 인도 출신 대학교수가 프리드먼의 아성에 도전장을 냈다. “세계화는 헛소리다(globalization is globaloney)!” “프리드먼의 조사엔 아무런 팩트(fact)가 없다”면서.

그는 우편·전화·유학생·해외직접투자·주식 등 14가지 항목에 걸쳐 ‘세계화 정도(程度)’를 조사해 ‘글로벌 전략의 재정의(Redefining Global Strategy)’란 책에서 충격적인 결과를 공개했다.

‘전 세계에서 오가는 서신 가운데 국경을 넘는 비율 : 1%’

‘국경을 넘나드는 인터넷 통신 전송량 : 17~18%’

‘전 세계 고정투자에서 외국인직접투자(FDI) 비중 : 10%’

‘1세대 이민자가 세계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 3%’

세계가 평평해졌고 시장이 100% 통합됐기 때문에 물적·인적 교류가 물밀듯이 일어날 것이라는 프리드먼의 주장이 신기루였음이 판명난 것이다. 그러자 파이낸셜 타임스(FT)·월스트리트저널(WSJ)·NYT 같은 세계적 매체들이 앞다퉈 그를 찾아갔고 마이클 포터 하버드대 교수는 “그는 세계화와 깊이 있는 비즈니스 지식을 결합시킨 세계적 학자”라고 극찬했다.

주인공은 판카즈 게마와트(Ghemawat·53) 스페인 IESE 경영대학원 교수다. 하버드대에서 22세에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하버드 경영대학원 역사상 최연소 정교수(32세)로 부임했으며 ‘세계에서 가장 명성이 높은 글로벌 전략가’로 꼽힌다.

스페인·인도 등 각국 정부와 인도 최대 IT기업인 인포시스, 타타 컨설팅 서비스(TCS)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그에게서 세계화 시대의 경영·생존전략을 배우고 있다. ‘세계 최고의 경영 사상가 50인'(영국 이코노미스트誌·2008년)’에도 선정됐다. 그는 당시 50명의 경영 구루(guru) 가운데 가장 젊었다.

그는 세계화를 3단계, 즉 시장 규제만 존재하는 시기인 ‘월드 1.0’과 20세기 후반의 시장 자유화 시기에 해당하는 ‘월드 2.0’, 시장 자유화와 규제가 공존하는 현재의 ‘월드 3.0’으로 구분했다. 특히 “‘월드 3.0’ 시대에서 세계는 부분적으로만 통합됐으며 기업과 정부는 국경과 거리를 엄밀하게 따져 경쟁하는 게 효과적이다”고 주장한다.

“세계화 시대에 해외 진출만 하면 성공한다는 환상 때문에 많은 유명 기업들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어요. 과거 휴대폰의 시장 장벽이 높은 일본에서 철수한 뒤 최근 몰락하고 있는 노키아, ‘세계 어디서나 똑같은 모델의 냉장고와 세탁기를 좋아한다’며 자만하다 중국 시장에서 실패한 월풀, 해외 사업에서 실패한 월마트·까르푸·소니….”

게마와트 교수는 “지금 세계 각국 정부와 대기업 CEO들은 무작정 ‘해외로 나가자’고 신발끈부터 매는데 ‘월드 3.0’ 시대에는 문화적·행정적·지역적·경제적 거리(CAGE)를 냉정하게 인식하는 게 첫 번째이며 이를 잘 극복하고 활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 정부의 적절한 시장 개입과 자유경쟁적인 시장이 조화를 이룰 때 균형잡힌 발전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의 세계화론은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으며 한국 경제에 어떤 돌파구를 줄 수 있는 걸까? 이런 궁금증을 풀기 위해 Weekly BIZ는 이달 초 스페인 IESE 경영대학원에서 게마와트 교수를 만났다.

게마와트 교수는 요즘 전 세계에서 가장 잘나가고 바쁜 ‘글로벌 전략가’ 중 한 명이다. 인터뷰하기 위해 기자가 이달 3일 바르셀로나 시내의 대학 연구실을 찾아갔을 때 그는 “대형 캐리어를 끌고 시카고·뉴욕·보고타 등의 2주간 출장에서 금방 돌아왔다”고 했다.

그는 멕시코 푸에르토발라타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중남미 행사에서 마리아노 라호이(Rajoy) 스페인 총리를 만나 “스페인의 높은 실업률을 해소하려면 노동개혁보다 내수 시장의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게리 하멜(Hamel) 런던비즈니스스쿨 교수 등 경영 대가들로 구성된 전략연구소사이어티(SRF) 미팅에도 참석했다. 하지만 그는 피곤한 기색 없이 활기차게 ‘월드 3.0’론을 펼쳤다.

“세계화 환상 깨고 국경과 거리에 민감해져라”

―‘월드 3.0’을 주장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토머스 프리드먼의 세계화 환상이 주는 악영향이 너무 컸다. 그는 확실한 근거가 되는 단 한 가지 통계도 제시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세계화를 주창해 사람들을 혼란에 빠트렸다. 반대로 나는 구체적인 자료를 갖고 국경과 거리의 중요성을 잘 따져 나라와 기업이 적정한 발전과 성장을 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당신이 보는 현재 세계화 진행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내 연구결과에 따르면 25% 정도만 세계화됐을 뿐이다. 중국·미국·유럽 간 활발한 채권시장의 세계화 비율이 35%로 가장 높다. 미국은 국내총생산(GDP)에서 수출·수입 등 무역이 차지하는 비율이 20%에 불과한 비(非)세계화된 나라다. 세계 섭취 열량의 60%를 차지하는 밀·쌀·사료용 곡물들이 세계 총 상품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8.5% 남짓하다. 1980년부터 20년 동안 쌀의 교역 성장률은 3%였고, 2004년 미국의 모든 기업 가운데 단 1%만 해외에서 활동할 정도로 해외 시장을 기피한다. 인터넷도 마찬가지다. 페이스북의 86~88%, 트위터의 70% 이상은 전부 자국(自國) 안에서만 활동이 이뤄진다.”

―‘국경과 거리의 중요성을 잘 따지라’고 했는데, 무슨 뜻인가?

“두 지역 간 지리적 거리가 멀어질수록 교역이 감소하고 가까울수록 늘어나는 것으로 확인됐다. 공통 언어를 사용하는 양국 간 교역은 그렇지 않은 두 나라보다 평균 교역량이 42% 더 많다. 미국과 캐나다(교역량이 125% 더 높음)가 그렇다. 또 한 나라가 다른 나라의 식민지였다면 두 나라의 교역량은 평균보다 188% 더 많았다. 이런 지리적·문화적 원근(遠近) 요소가 지금 시대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게마와트 교수가 최근 정립한 ‘글로벌 전략 커리큘럼’은 국제경영대학발전협의회(AACBS)의 인증을 받아 조만간 전 세계 주요 경영대학원에 도입될 예정이다. 게마와트 교수는 “세계가 평평하다는 착각에서 각 나라와 기업뿐만 아니라 대중들이 깨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 바르셀로나=이신영 기자

―가까운 나라끼리만 교역을 하라는 얘기인가?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가령 멕시코는 총수출량의 80%를 접경국인 미국에 수출한다. 그러나 나를 포함한 상당수 경제학자는 멕시코 정부 당국자들에게 전체의 17~18% 정도만 미국에 수출하고, 수출국을 다변화하라고 충고한다. 장기 생존을 위해 다양한 나라와 교역의 균형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문화·행정·경제적 차이점을 분석하고 개선해야 한다.”

“기업들, ‘AAA전략’으로 갈아타라!”

게마와트 교수는 글로벌 기업들이 세계화의 환상에 사로잡혀 무작정 해외 진출을 시도했다가 상당수 쓴맛을 봤다고 지적했다. 세계화를 맹신해 표준화(standardization) 오류에 빠져 낭패를 볼 수 있다고도 했다. “코카콜라의 슬로건인 ‘생각은 글로벌하게, 행동은 현지에 맞게’(Think Global, Act local)를 대다수 기업이 별 검토 없이 도입한 게 그렇습니다. ‘생각과 행동을 모두 현지에 맞게’(Think local, Act local)란 표어를 채택할 수 있는데도 말입니다.”

―기업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AAA전략, 즉 현지 적응(adaptation), 거점화(aggregation), 차익거래(arbitrage)다. 현지화의 경우 닭고기는 물론 국수·죽순 등을 적용한 중국식 식단인 염(Yum) 브랜드를 내놓아 1998년 263개이던 중국 내 매장 수를 2010년 3000개로 늘린 KFC가 대표적이다. 터키공항공사는 거점화 전략으로 이스탄불공항을 허브로 활용하면서 입·출국 승객보다 환승객 유치에 집중해 성공을 거뒀다. 차익거래의 경우 인도 최대 아웃소싱 서비스 기업인 타타 컨설팅 서비스(TCS)는 선진국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 인건비의 60%만 지출함으로써 시가총액 500억달러 회사로 컸다.”

―10년 뒤 기업들의 활동 무대는 어떻게 바뀔까?

“신흥국 시장이 본 무대가 될 것이다. IBM·GE 등 여러 기업이 이미 핵심 임원을 중국 상하이 같은 신흥국 거점에 배치 중이다. 이런 현상이 앞으로 메가 트렌드가 될 것이다. 신흥국 시장은 이미 글로벌 기업들의 전쟁터가 됐다. 여기서 어떻게 조직을 꾸리고 효율적으로 경쟁할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판카즈 게마와트(Pankaj Ghemawat) 교수는

▲출생:1959년 인도

▲학력:1982년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졸업

▲경력:1983년 컨설팅회사 맥킨지 근무(영국)
1984~2006년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
2006년 스페인 IESE 경영대학원 정교수

▲저서 : ‘글로벌 전략의 재정의’(Redefining Global Strategy), ‘월드 3.0’(World 3.0) 등 다수

▲사회활동 : 전략연구재단(SRF)·매니지먼트소사이어티(SMS) 회원, 국제비즈니스아카데미(ARB) 회원

한국, 막연한 ‘중국 우선주의’ 버려야

“한국은 외국인 직접투자(FDI)를 적극 활성화하고 극소수 대기업 의존 경제구조를 탈피하며 중국 시장에 대한 전략적 접근과 대비 등으로 월드 3.0시대를 개척해 나가야 합니다.”

게마와트 교수는 Weekly BIZ와의 인터뷰에서 “FDI가 연간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봤을 때, 한국은 125개국 가운데 110위였다”며 “이런 취약한 부분을 보완해야 한국 경제가 활력을 회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한국이 수출은 잘해도 외국의 돈과 제조공장을 국내로 끌어오는 데는 매우 서툴다는 증거입니다. 더 많은 해외투자를 유치해 국내를 튼튼하게 해 경제성장의 내실을 높여야 합니다.”

1960년대 이래 50년 넘게 계속된 아웃바운드(outbound) 일변도에서 벗어나 외국 자본·기업을 국내로 유치하는 인바운드(inbound)형 전략으로 보완·성숙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는 “한국 경제는 삼성전자·현대차 등 대형기업에 의존하는 경제구조에 사로잡혀서는 안 된다”고 했다. 최근 핀란드 경제가 노키아의 실적 부진에 따라 일부 쇠락 조짐을 보이는 것처럼, 몇몇 대기업에 지나치게 의존했다가는 한국 경제 전체가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이 미래 세계 경제성장의 중핵인 동아시아에 위치한 것은 일종의 ‘특권’이지만,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가 필요 이상으로 높아지는 것은 우려됩니다.”

게마와트 교수는 “10~20년 뒤에는 중국이 세계 최대 경제국이 될 것”이라며 “한국이 ‘위대한 중국’ 실현에 일조만 하는 주변국으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중국 의존적인 경제구조를 다변화시키는 노력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막연한 ‘중국 우선주의’를 버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예를 들어 초콜릿의 세계 최대시장은 중국이 아닌 러시아인데, 이는 초콜릿 제조회사들이 ‘초콜릿은 불이 잘 옮아붙는 식품이며 아동들의 건강을 해친다’는 중국인들의 편견을 극복하지 못한 결과라는 것이다.

“한국·중국·일본 3개국의 공동통화제 창설이 유로존 못지않은 경제 효과를 낼 것”이라는 일부 제안에 대해, 게마와트 교수는 “이를 구축하려면 문화·행정·경제·역사적 배경 등이 같아야 하는데 지금으로선 현실성 없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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