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 감정 읽을 때 서양인은 입, 동양인은 눈을 본다

[英 글래스고대 연구진 실험]
서양인, 입 덜 벌리는 쪽을 분노로… 동양인, 눈 더 크게 뜬 표정이 분노
서양 이모티콘 입모양으로 표현… 입 없는 헬로키티 캐릭터가 서양서 성공 못한 것도 같은 맥락

“눈으로 말해요. 살짜기 말해요. 남들이 알지 못하도록 눈으로 말해요.”

1976년 김태수가 발표한 가요 ‘눈으로 말해요’의 첫 부분이다. 연인이 남들 몰래 사랑을 표현하는 감정을 잘 나타낸 노래로, 이듬해 남자 가수 신인상을 받을 정도로 큰 인기를 얻었다.

만약 미국에서 이런 느낌의 노래가 발표됐다면 제목이 ‘입으로 말해요’였을지 모른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동양인이 상대방 감정을 읽을 때 얼굴에서도 특히 눈에 주목하지만, 서양인은 입에 더 집중하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동양인은 눈, 서양인은 입 보고 감정 읽는다

영국 글래스고대의 레이철 잭(Jack) 박사 연구진은 서양인과 동아시아인을 15명씩 뽑아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든 다양한 표정을 보여주며 어떤 감정을 표현한 것으로 느끼는지 설명하게 했다. 실험 결과 서양인은 표정을 보고 6가지 보편적 감정 언어를 정확히 구분하지만, 동양인은 놀라움·공포·혐오·분노를 뭉뚱그려 비슷한 감정으로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그래픽 뉴스로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조선닷컴

감정을 읽는 방법도 달랐다. 동양인은 얼굴에서 특히 눈을 보고 감정을 판단하지만, 서양인은 입에 집중했다. 서양인들에게 ‘분노’와 ‘혐오’는 눈 모양은 같지만 입을 좀 더 벌리는 쪽이 혐오로 인지됐다. 반면 동양인은 ‘혐오’보다 눈을 더 크게 뜬 표정을 ‘분노’라고 파악했다. 연구 논문은 ‘미국립과학원회보(PNAS)’ 인터넷판 16일치에 실렸다.

정재승 KAIST 교수(바이오 및 뇌공학)는 “동양인과 서양인이 얼굴에서 서로 다른 곳을 보며 감정을 읽는 것은 동서양의 이모티콘 사용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서구에서 나온 이모티콘(emoticon)은 눈은 변화가 없고 입 모양만 바뀌면서 여러 감정을 표현한다. 예를 들어 웃는 모습은 ‘:)’, 언짢은 모습은 ‘:(‘로 표시한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 이모티콘은 입은 변화 없고 눈에 하트(♥)나 골뱅이(@) 기호를 그려 감정을 나타낸다.

아시아에서 인기를 끈 헬로키티가 미국이나 유럽에서 성공을 거두지 못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고양이 캐릭터인 헬로키티는 눈은 있지만 입은 없다. 정재승 교수는 “헬로키티엔 서양인이 감정을 읽거나 감정을 이입할 단서가 부족한 것”이라고 말했다.

◇’본능 대 교육’ 논쟁은 아직 진행 중

지금까지 표정과 감정에 대한 연구에서 정설(定說)은 ‘본능론’이었다. 다윈은 1872년 발표한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에서 “표정이 나타내는 감정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똑같이 인지하며, 이는 천적을 피하기 위해서와 같은 생물학적 목적에 따라 얼굴의 감정 표현이 진화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모티콘은 ‘:)’과 ‘:(’에서 보듯 눈은 그대로 두고 입 모양만 바꿔도 행복과 불행이라는 정반대 감정을 충분히 표현한다. 서구에서는 감정을 읽을 때 입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아시아 캐릭터인 헬로키티(오른 쪽)가 미국과 유럽에서 성공하지 못한 것은 서구인이 감정이입을 할 수단인 입이 없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1960년대 미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의 폴 에크먼(Ekman) 교수 등은 다윈의 주장을 발전시켜 행복·놀람·공포·혐오·분노·슬픔을 나타내는 6가지 표정은 ‘보편적 감정 언어(universal language of emotion)’라고 주장했다. 에크먼 교수는 파푸아 뉴기니와 같이 외부와 단절된 곳에 사는 사람도 서양인의 얼굴에 나타난 감정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을 근거로 들었다.

그러나 최근 이를 반박하는 연구가 잇따르고 있다. 미 노스이스턴대의 리사 바렛(Barrett) 교수는 감정을 읽는 데는 표정뿐 아니라 언어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캐나다 앨버타대의 마쓰다 다카히코(Takahiko) 교수는 일본인은 상대의 감정을 해석할 때 미국인보다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표현에 더 의지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감정을 읽는 데 문화적 영향이 크다는 말이다.

‘본능론’을 지지하는 연구도 계속 나오고 있다. 지난해 미국 오리건대의 아짐 샤리프(Shariff) 교수는 다윈의 주장을 좀 더 구체적으로 뒷받침했다. 그는 위협적인 상황에서 시야를 넓게 확보하려는 행동이 눈을 크게 뜨는 ‘공포’ 표정으로 진화했으며, 역겨운 냄새가 나는 나쁜 물질을 덜 들이마시려는 행동이 코와 입을 찡그리는 ‘혐오’의 표정을 낳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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