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세상의 난제, 디자인적 사고로 푼다

한 회사에서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를 내기 위해 부장급 이상 간부를 모아놓고 회의를 열었다.

CEO가 각자 창의적인 의견을 내보라고 했지만 10분이 지나도록 아무런 의견도 나오지 않았다. CEO가 “왜 다들 아무 말이 없느냐.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전혀 없느냐”고 묻자 회의실 구석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창의적이고 아이디어가 많은 사람들은 과장, 차장 시절에 다 잘렸는데요….”

기업이 창의적인 인재를 육성하고 관리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보여주는 농담이다.

매일경제 MBA팀은 이처럼 모든 기업이 원하지만 쉽게 하지 못하는 창조적 혁신과 ‘디자인 싱킹’으로 이제 그 조직문화까지 전 세계 기업으로 퍼뜨리고 있는 세계 최고 디자인컨설팅회사 아이디오(IDEO)를 취재했다.

아이디오 창립 후 현재는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는 마이크 넛톨, 아이디오의 대표 격인 톰 켈리를 각각 직접 만났고, 아이디오의 현 상황에 대한 객관적 시각을 얻기 위해 디자인 구루 로저 피티오 교수를 인터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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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산업디자인의 아버지라 불리는 레이먼드 로위(Raymond Loewy)는 마야(MAYA)를 주창했다. `Most Advance Yet Acceptable`이라는 뜻의 마야는 원래 있던 디자인의 외형을 새롭게 재해석하는 것을 뜻한다. 로위는 1940년대 미국 디자인을 휩쓸었다. 이렇듯 40~50년대 유행하던 마야 방식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기업들이 허다하다. 애플과 삼성의 디자인 싸움도 항상 누가 누구의 마야인가를 다룬다. 21세기에 사는 소비자들은 더 이상 마야에 감동받지 않는다. 이제껏 보지 못했던 창조적이며 기발한 무엇인가에 감동한다. 1999년 7월 13일 미국 ABC방송의 나이트라인 심층분석을 보고 전 세계가 열광했다. 독보적인 창조성을 보여주는 기업이란 어떤 것인지를 직접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 주인공은 바로 아이디오(IDEO)다. ABC 방송사는 방송 이후 아이디오에 대해 전세계에서 들어오는 문의 때문에 업무가 마비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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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로 13년이 지난 지금도 아이디오는 세계에서 가장 창조적인 기업으로 살아남아 있다. 아이디오의 창조적 원천은 어디서 나오기에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것일까. 창조성을 찾기 위해 골머리를 앓는 다른 기업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는 것을 아이디오는 어떻게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일까. 사실 아이디오는 ABC 방송 이후 비즈니스위크ㆍ포천ㆍBBCㆍCNNㆍ패스트컴퍼니ㆍ월스트리트저널 등 수도 없이 다양한 언론들에서 다뤄졌다. 디자인이나 창조성에 관한 상을 휩쓸며 많은 노출이 된 아이디오는 그 이름만 검색창에 쳐보면 엄청난 양의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창립자와 현 대표를 비롯해 아이디오의 다방면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보기 위해 디자이너이자 여러 디자인 회사의 사장인 프랑스인 로저 피티오까지 인터뷰 한 언론사는 없었다.

매일경제 MBA팀은 디자이너를 대표해 객관적인 이야기를 들려준 로저 피티오, 아이디오 창립 후 현재는 프리랜서로 일하며 아이디오에 대해 다소 비판적인 시선을 갖고 있는 마이크 넛톨, 아이디오의 대표로 아이디오의 강점을 잘 부각시켜 준 톰 켈리를 각각 직접 만나봤다. 그리고 이들의 이야기를 좀 더 생생하고 효율적으로 풀어 나가기 위해 `가상 대담`을 시도했다.

◆ 아이디오의 최강점-`디자인 싱킹(Design Thinking)`을 통한 창조적 혁신

-아이디오는 매우 흥미로운 기업이다. 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 사실상 디자인 업계 주류를 이끌어가던 모델은 바로 아이디오 모델이다. 대중이 아이디오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원하는 것은 바로 디자인 싱킹에 대한 견해가 아닐까 싶다. 특히 아이디오의 디자인 싱킹은 사람 중심의 혁신 활동을 고취하는 방법으로 유명하다. 이를 통해 창조적 혁신을 하고 있다고 주창하는데 어떻게 보나.

▶톰 켈리=말콤 글래드웰의 책을 보면 한 사람이 어떤 분야에 정통하려면 1만시간 이상을 투자해야 한다고 말한다. 전문가라면 최소한 한 곳에 1만시간을 쏟아부어야 한다는 것이다. IDEO는 창조적 혁신을 하는 것에 1만시간 이상을 투자했다. 그래서 아마 IDEO가 창조적 혁신의 전문가가 아닐까 생각한다. 우선 이렇다. 우리의 아이디어는 일반적인 인간 관찰에서 시작한다.

다른 말로는 공감대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그게 무슨 일이건 상관없다. 제품의 디자인이건, 운영에 있어서 다른 컨설팅이건, 경영 전략을 위한 혁신이건 상관없이 우리는 `공감대`를 중요시한다. 인간 관찰을 하면서 어디에 문제가 있는가를 찾기 시작하는 것이다. 무엇이 문제고 어디가 문제인지를 인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역할이다.

IDEO의 직원들은 창조적 혁신을 하는 법은 정통했으나 모든 고객들의 주요 분야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관찰을 통한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애쓴다. 이 단계를 넘지 못하면 그 어떤 일도 시작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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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넛톨 : IDEO(아이디오)의 방법론을 존중하지만 나의 방법과는 다르다. 디자인 싱킹이 만능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이디오는 혁신을 위한 방법론을 컨설팅하기도 하지만 혁신은 배운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혁신이 이뤄지는 어떤 정형화된 절차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령 아이디오는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소비자들의 행동을 자세히 관찰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스티브 잡스가 소비자들을 관찰해가며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생각하나? 아니다. 스티브 잡스의 아이디어는 그만의 직관에서 나온 것이다.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영감을 얻을 필요는 있지만, 대형마트에서 소비자들을 따라다니며 행동패턴을 파악하는 것은 시간 낭비다.

▶로저 피티오 : 나는 사실 두 사람의 입장을 모두 이해할 것 같다. 디자이너로서 디자인 싱킹의 중요성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이를 절대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디자인 싱킹의 한계는 이것이다. 가령 천장에서 물이 떨어지는 환경을 관찰했다고 치자.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컵을 이용해 떨어지는 물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컵이 꽉 찰 때마다 물을 비운다. 물을 너무 자주 비우다 보니 불편함을 느낀다. 이것을 관찰하던 아이디오의 디자이너가 사람의 불편함을 해소시키기 위해 자주 비울 필요가 없는 커다란 컵을 디자인했다고 하자.

하지만 중요한 본질은 천장 물을 안 새게 해야 한다는 것 아닌가. 즉 아무리 관찰을 해도 진짜 본질을 놓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아이디오의 사람중심 디자인이 얼마만큼 효율적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톰 켈리 :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사례를 들어보겠다. BOA는 북미에서 가장 큰 은행 중에 하나로 아이디오와 함께 새로운 은행 플랜을 하나 만들어보자는 제의를 해왔다. 당연히 우린 관찰로 시작했다. 관찰을 할 때는 타깃 고객을 정하는 것이 좋다. 특별히 꼭 필요한 고객층을 분류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고객이든 좋다. 한 분류를 정해서 관찰을 하다 보면 더 넓은 층의 고객이 필요한 것도 이해하게 된다는 생각이다. 물론 깊이 들여다봐야 한다. BOA의 의뢰에 우리는 베이비붐 세대 중년 여성들을 관찰하기로 결정했다. 50대 여성들이다. 인터뷰를 할 때는 그들이 불편해할 수도 있기 때문에 그들의 집에 가서 편안한 상태에서 공감대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이들을 조금씩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하다가 재미있는 두 가지 사실을 알아냈다. 첫 번째는 베이비붐 세대 여성들은 그들의 노후에 대한 걱정이 많다는 것이다. 더 많이 저축을 해야 하는 것을 알지만 실제로 그렇지 못하는 것이다. 두 번째 더 재미있는 일은 미국에서는 여전히 개인 수표를 써서 세금 계산을 많이 하는데, 그 계산을 희한한 방식으로 하는 여성들이 많다는 것이다. 이들은 세금계산서에 29.12달러라고 찍히면 30달러짜리 수표를 써서 보내는 것이다. 그래서 물어봤다. 왜 세금을 더 내냐고. 사실 더 내는 것은 아니다. 바로 다음달 세금계산서에서 지난달 더 낸 금액은 빠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굳이 그렇게 하는 이유가 납득이 가지 않았다. 여성들과 조금 더 친해지고 나니 이유를 알아냈다. 바로 그들은 심플한 가계부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29.12달러보다는 30달러라고 쓰인 가계부가 읽기도 쉽고 이해하기도 쉽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디오는 새로운 은행 플랜 `잔돈을 가져라(Keep the change)` 직불카드를 디자인하게 되었다. 이 카드는 베이비붐 세대 여성들이 원하는 것들을 조합해서 만든 것이다. 직불카드로 계산하면 그 무엇이든 딱 떨어지는 정수에 맞춰서 계산이 된 것으로 나온다. 그리고 나머지 남는 센트들은 자동으로 저축된다. 나중에 조금씩 모이다 보면 노후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말이다. 이 시스템에는 1년 사이에 120만명이 가입했고 매년 그 가입자 수가 기하학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아이디오의 디자인 싱킹은 사람들의 행동을 직접 관찰해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제품 생산, 포장, 마케팅, 판매, 지원 등과 관련해 어떤 특성을 좋아하고 어떤 특성을 싫어하는지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혁신을 추구하는 것이다.

◆ 창조적 디자인 인재

-그렇다면 창조적 디자인 인재는 어떻게 만들어지고 찾아낼 수 있나.

▶넛톨 : 켈리가 설명하는 아이디오의 디자인 싱킹이 지금 내가 아이디오를 나와 프리랜서로 일하는 이유다. 아이디오는 설립 초기와 달리 비(非)디자인 영역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했다. 현재 600명의 아이디오 직원 중 상당수가 디자이너가 아니다. 인류학, 조직학 전공자도 있고, 의사ㆍ순수과학자ㆍMBA 출신도 섞여 있다. 다양한 관점에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아이디오는 극단적으로 `T자형` 인재를 지향한다. T자의 가로획은 폭넓은 지식과 경험을, 세로획은 특정 분야의 깊이 있는 지식을 상징한다.

최근 시대 상황에 맞는 좋은 접근이기는 하지만, 아이디오가 지금 비디자인 영역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것은 일종의 외도라고 생각한다. 디자인 업체들이 많아지면서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이들과 차별화된 접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디자인 방법론을 이용한 컨설팅 업체의 수가 늘어나면 다시 본업에 충실해야 할 때가 올 것이다. 나는 전통적인 제품 디자인을 좋아하기 때문에 비디자인 영역에 대한 컨설팅은 하지 않는다. 나는 뼛속까지 디자이너다. 디자인을 위해 컨설팅을 하거나 마케팅에 신경 쓰고 싶지 않다. 디자이너는 디자인을 잘하면 그것으로 책임이 완성된다고 생각한다.

▶피티오 : 무슨 이야기인지 절대적으로 공감이 간다. 나는 솔직히 디자이너 DNA라는 것이 있다고 믿는다. 특별히 나의 직업이 교수이기 때문에 학생들을 항상 가르치지만, 디자인 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스티브 잡스가 디자이너로서 뛰어날 수 있었던 이유를 남들이 찾지 못하는 연관성을 사물과 사물 사이에서 찾아내는 눈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켈리도 디자인 싱킹의 마지막 단계에는 결국 디자이너의 감각이 있어야 한다고 표현했지만 아이디오가 지향하고 있는 `T자형` 인재는 굳이 디자인 인재의 필요사항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아이디오가 그 영역을 비디자인 영역으로 확장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누구나 그렇듯이 그 덩치가 커지고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면 시대의 흐름에 맞춰 변화하는 것이 옳은 일이다. 우리는 산업시대를 지나 포스트산업 시대, 그리고 지금은 포스트 디지털 산업시대를 향해 가고 있다. 인터넷에 몇 가지 키워드만 넣어도 재미있는 디자인 수천 개를 볼 수 있다. 사실상 아무나 디자이너가 될 수 있는 세상이 도래하고 있다. 아무나 디자이너가 될 수 있는 시대에서 디자이너들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아이디오의 새로운 T자형 인재는 분명 의미 있다고 볼 수 있다.

▶켈리 : 사실 디자인 업계에서 아이디오만큼 다양한 인재를 확보하고 있는 곳은 없었다. 피티오의 말대로 모두가 디자이너가 될 수 있는 세상에서 디자인만 고집하면 살아남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인류학, 조직학, 과학자는 물론 경영자들과 심지어 철학자와 심리학자들까지도 아이디오의 인재로 뽑고 있다. 넛톨이 중요시하는 디자인적 성향은 물론 아이디오의 가장 중요한 요소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더 이상 아이디오가 원하는 인재는 디자인만 잘하는 좁은 시야를 가진 천재는 아니다. 아이디오의 인재상은 아이디오의 기업문화와 맞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아이디오는 직원을 뽑으면 `아이디오 기초`라는 `IDEO 101 Class`를 진행한다. 이것은 아이디오의 문화를 구축하기 위한 기초학습 정도라고 이해하면 쉽다.

특별히 직원들을 교육하기 위한 프로그램도 아니고 101 클래스 안에서 디자인을 가르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창의적인 아이디오의 문화를 가르치고 그 문화가 잘 보존될 수 있게 알려주는 계기가 된다. 3~4일 정도 짧게 진행하면서 나도 조직원 한 명, 한 명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을 알게 되는 계기가 된다. 다양한 사람들이 아이디오의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아이디오의 디자인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다양한 경험에 바탕을 둔 인재들은 아이디오엔 꼭 필요한 존재다. 디자인에 모든 열정을 쏟는 디자이너도 중요하지만 아이디오 안에서는 다양한 인재들이 디자인이라는 이름으로 다 같이 생각할 수 있는 곳이다.

◆ 창조적인 문화

-아이디오의 문화에 대해 켈리가 언급했다.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마법 같은 문화가 아이디오에 있을 것 같다는 것이 대중의 생각이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켈리 : 마법은 없지만 확실히 아이디오의 문화는 창조적인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요소가 있다. 우리는 서로를 존중하고 브레인스토밍을 게을리하지 않으며 `다름을 틀림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유연한 문화를 갖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 단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틀리다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아이디오에서는 이런 일이 없다. 설령 진짜 틀린 아이디어일지라도 우선 모두 그저 다름으로 받아들인다. 오픈 마인드로 서로의 아이디어를 주고받다가 갑자기 스파크가 일어나면 거기서부터 창조가 시작된다.

사실 아이디오의 문화를 배우고자 처음으로 시도했던 기업은 바로 일본 기업이었다. 이 기업은 20년 전 처음으로 우리에게 제품디자인이 아닌 문화를 가르쳐 달라고 의뢰했다. 실제로 우리에게 지불한 돈도 `디자인 비용`이 아니라 `트레이닝비`로 본사에 청구했다. 당시에 나는 정말 웃기는 기업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선견지명이 있던 그룹이라고 생각한다.

▶넛톨 : 아이디오는 브레인스토밍을 강조하지만, 나는 이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브레인스토밍은 어떤 의견도 되도록이면 배제시키지 않고 발전시키려 하기 때문에 비효율적이다. 다양한 의견이 적힌 포스트잇들을 벽에 붙여 놓았다고 치자. 수많은 포스트잇 중에서 어떤 의견을 채택할 것인가?

이 점에 대해 아이디오는 뚜렷한 결정 기준을 제시하지 못한다. 반면 내가 애용하는 `비판적인 토론`은 일단 상대방의 의견을 부정한다. `No, because…`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현실성 없는 아이디어가 제한되기 때문에 시간과 에너지를 아낄 수 있다. 아이디어 제안자가 자신의 의견을 방어하는 과정에서 체계적이고 현실성 있는 아이디어가 도출된다.

스티브 잡스도 비판적인 토론을 즐겨 했다. 브레인스토밍처럼 다수의 참여자들을 모은 것이 아니라 소수의 경영진만을 조용한 방에 불렀다. 그리고 매우 혹독하게 아이디어 회의를 했다. 허점이 있는 아이디어는 치열하게 비판 받았다. 그렇기에 아이폰처럼 완성도 높은 제품이 나올 수 있었다. 잡스는 포커스 그룹이나 브레인스토밍을 이용하지 않았다. 잡스의 뛰어난 점은 완벽에 대한 열정이다. 대충 처리하는 법이 없었다. 그 결과 계속해서 개선이 이뤄졌다. 애플의 현재 하드웨어 제품들을 봐라. 5년 전 제품보다 모든 점에서 낫다.

▶피티오 : 창조적인 문화 코드에 대한 두 사람의 의견은 매우 다르다. 하지만 이는 내가 보기에 다른 종류의 방법론일 뿐이다. 켈리가 말했던 것처럼 옳고 그름의 문제라기보다는 선호도의 문제인 것 같다. 사실 인재에 대한 시각도 그렇고 문화 코드에 관한 것도 그렇고 넛톨의 시각은 조금 구시대적이다. 효율성만 따진다면 넛톨의 말이 맞다. 뛰어난 천재가 브레인스토밍을 필요로 하지 않고 바로바로 혼자 결정한다면 효율성 측면에서는 최고일 수 있다. 하지만 독단적인 성향이나 문화는 현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전에 말했듯이 우리는 산업시대를 지나 포스트 산업, 현재는 포스트 디지털 산업시대를 살고 있다. 이런 시대는 소통을 중요시한다. 면대면 소통뿐 아니라 전 세계에 있는 사람들과 동시접속을 통해 디지털적인 소통까지 할 텐데 비판적인 토론이 과연 얼마만큼 효과를 보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호기심이 창조의 원천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충분히 호기심을 발동시킬 수 있는 문화 코드를 갖고 있는 기업이라면 창조적일 것이라고 믿는다.

▶켈리 : 아이디오의 디자인 싱킹이 바로 그런 호기심을 발동시키는 촉매제가 된다. 우리 기업문화에서는 조금 돌아가는 듯해도 엉뚱함이 창조적인 결과를 가져다줄 수 있다고 생각하고 받아들이기 때문에 디자인 싱킹을 주창하는 것이다. 관찰을 하다 보면 그 안에 의문점이 생기고 의문점은 호기심을 발동시킨다. 그리고 그 호기심은 여러 가지 엉뚱한 생각을 이끌어내고 각기 다른 사람들의 엉뚱한 생각으로 브레인스토밍을 하고 일반인이 보기 어려운 디자이너들만의 감각으로 새로운 창조물이 태어난다. 그리고 아이디오의 문화는 새로운 변화를 발 빠르게 받아들인다. 그래서 딱히 이것이 아이디오의 문화 코드라고 이야기하기 어렵다. 다만 오픈 마인드로 계속해서 시대에 발 맞춘 문화 코드를 만들어가고 있을 뿐이다.

◆ 아이디오의 위기를 얘기한다면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사실 내가 보기에 아이디오는 지금 정점에 와 있다. 가장 잘나가는 시점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아이디오엔 앞으로 정점에서 내려갈 방향밖에 없다는 다소 위험성 있는 발언이기도 하다. 하지만 켈리의 말처럼 아이디오가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지속적으로 변신할 수 있는 기업이라면 지속적인 성장도 가능할지 모르겠다.

▶넛톨 : 나는 아이디오가 한계점에 다다랐다고 생각한다. 내가 아이디오를 떠났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 아니라 점차 아이디오의 방법론이 갖고 있는 단점들이 드러날 것이고 그러면 아이디오는 지금 대형 기업처럼 행동하던 것을 접고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아이디오가 변화해야 할 방향은 작은 기업처럼 움직여야 한다.

▶켈리 : 아이디오는 변화에 대해 발 빠르게 움직이며 잘 받아들이는 기업이지만 몸집을 키우는 데 매우 조심스러운 기업이다. 우리는 3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꽤나 성공적으로 성장하면서도 전 세계 아홉 군데 오피스밖에 두지 않았다. 어쩌면 발 빠른 변화를 하기 위해서 최대한 몸집을 불리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넛톨이 이야기하는 독자적인 권한을 개개인에게 주지 않지만 또 나름 개개인에게 주어진 권한은 대단하다. 아이디오는 개개인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조이기 때문이다. 사실 아이디오의 위기에 대한 우려 목소리는 많이 들려오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아이디오는 매우 미래지향적인 회사다. 시대 흐름에 맞추기 위해 우리는 남들이 보기에 위험해 보이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우리가 벌써 몇 년째 하고 있는 `오픈 아이디오(Open IDEO)`만 해도 그렇다. 앞으로 미래는 모든 것이 오픈된 플랫폼에서 이뤄질 것이다. 이미 이것을 감지한 우리는 `더 좋은 디자인을 위해 다같이`를 외친다. 어쩌면 디자인 회사로서 모든 것을 공개하고 정보를 교환하는 것이 어려운 것일 수 있으나 우리는 이것을 미래로 보고 실천하고 있다.

▶피티오 : 나는 아이디오가 정점의 상태로 하향조정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지만 아이디오가 미래지향적인 면을 유지할 수 있다면 지속적인 성장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오픈 아이디오는 시도하기 어렵지만 시도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픈 이노베이션이 전 산업으로 퍼지고 있다. 오픈에 대한 개념을 이해하지 못해 갈피를 잡지 못했던 음악산업을 보라. 음악산업을 영위한 기업들은 모두 망할 뻔했다.

그때 애플이 구세주로 등장했다. 음악산업 내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답을 내놓은 것이 아이튠스를 이용한 애플의 새로운 음악산업이었으니까. 디자인업계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3D 프린터까지 나온 세상이다. 저작권은 이젠 무용지물이다. 지구 반대편 아주 작은 기업에서 모방하는 것을 아무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로운 개념이기 때문에 모두가 두려워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디오가 이를 시도하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아직 그 미래는 밝아 보인다.

■ He is…

▷ 톰 켈리는 아이디오 창업자인 데이비드 켈리의 동생이며, 아이디오 CEO를 역임했다. 지금은 총괄이사로 있으면서 전 세계에 아이디오를 알리고 있다. 형을 도와 아이디오를 20명의 디자이너가 일하는 곳에서 500여 명의 스태프가 일하는 곳으로 성장시켰다. 매경 MBA팀은 포럼 참석차 한국을 방문한 톰 켈리를 단독 인터뷰했다.

▷ 마이크 넛톨은 1991년 아이디오를 공동 설립한 후 여러 유명 회사와 컴퓨터, 소비재, 의료제품 관련 프로젝트를 수행해왔다. 2000년대 중반에는 아이디오를 나와 디자인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다. 매경MBA팀은 지난 4월 초 삼성디자인학교(SADI) 제품디자인학과 초청으로 방한해 브랜드 관련 워크숍을 진행한 마이크 넛톨을 직접 만나서 인터뷰했다.

▷ 로저 피티오 교수는 홍익대 국제디자인전문대학원에서 디자인 관리를 담당하고 있다. 프랑스 ENSAD(Ecole Nationale Superienure des Arts Decoratifs)에서 제품 디자인을 전공했고 강연도 했다. 유럽에서 디자인회사 3곳(Design Conseil, Design and Partners, Cube)을 창립해서 운영하고 있다. 한국에 3개월간 머무르면서 강의하고 있는 피티오 교수를 직접 만났다.

 
[커버스토리] 아이디오 창조성의 비결은?

혁신의 대명사 `아이디오` 노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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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이 활발한 조직은 시끄럽고 피곤하다. 하지만 그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근본적인 혁신과 경쟁 우위 획득이 불가능하다.

앤디 그로브 전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회사 운영에 대한 쟁점이 있을 때 이를 덮어두지 않고 적극적인 토론을 통해 발전적으로 해소하도록 한 `건설적인 대결` 문화가 인텔 성공의 가장 큰 원동력”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일체감과 동질성을 지나치게 강조할 경우 `집단적 사고(group thinking)`에 빠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문제의 다양한 측면을 고려하지 않고 의사결정이 한쪽 방향으로 치우치는 경향이 커지는 것이다.

2008년 미국의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한 것도 이사회와 구성원의 맹목적인 로열티 우선 풍조 때문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렇다고 모든 갈등이 건설적인 것은 아니다. 의사결정에 참여한 구성원 간의 관점, 아이디어나 의견 차이에서 비롯되는 `과업 갈등(task conflict)`은 장려할 필요가 있지만, 대인 관계에서 발생하는 긴장, 짜증, 적대감을 말하는 `감정적 갈등(emotional conflict)`은 최소화해야 한다.

과업 갈등은 토론 주제에 대한 이해를 촉진하고 집단 의사결정에 대한 수용도를 높이는 데 탁월한 효과를 보인다. 반면 감정적 갈등은 구성원 간의 반목을 낳고 일체감과 협력을 훼손해 기업의 생산성과 구성원의 만족도를 저해시킨다. 창조적인 성과를 창출하려면 갈등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

이상우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이 제시한 세 가지 방안은 아이디오의 관리시스템과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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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인적 속성뿐 아니라 가치관, 지식, 경험이 다양한 인재들을 확보해야 한다. 조직 다양성을 높이면 아이디어 창출, 사업 기회 발굴뿐 아니라 창조적 조직문화 구축에도 도움이 된다.

디자인 기업 아이디오가 디자이너뿐 아니라 다방면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이유도 창조적인 성과를 내놓기 위해서다.

둘째, 감정적 갈등을 제거해야 한다. 감정적 갈등이 발생하면 구성원들은 일 자체보다 상대방 기분을 살피는 데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하게 된다.

아이디오 구성원들이 회의 중에 지켜야 할 원칙은 `판단을 미룰 것` `거친 아이디어를 장려할 것`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발전시킬 것` 등이다. 회의에 참여한 모든 사람의 의견은 일단 존중되기 때문에 감정이 상하는 일을 최소화할 수 있다.

셋째, 도전적 시도를 장려해야 한다. 경영 구루인 톰 피터스는 “멋진 실패에 상을 주고 평범한 성공을 벌하라”고 말한 바 있다. 조직 구성원이 때로 덜 숙성된 주장이나 반론을 제기하더라도 리더가 이를 경청하고 도전적 시도에 따른 실패를 용인할 때 창조적 갈등과 도전이 마침내 결론을 맺을 수 있다.

팀 브라운 아이디오 CEO도 직원들에게 “빨리 실패하고 자주 실패하라”고 강조한다.

[용환진 기자]

 

[커버스토리] 세상의 난제, 디자인적 사고로 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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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아이디오가 제작한 전기자전거, 하이브리드전기자동차계기판, 당뇨측정 USB.

“편안하고 익숙하게 일을 해오던 안전지대의 바깥으로 떠밀린 기업.”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잡은 디자인 기업.”

세계 최고의 디자인기업 아이디오(IDEO)를 바라보는 시선들이다. “디자인회사로서의 본업에서 벗어나 외도를 하고 있는 이단아”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디자인 기업들 간의 경쟁이 치열해지자 블루오션을 찾아 새로운 분야로 사업 영역을 넓혔다는 것이다.

아이디오는 `디자인`에 대한 개념을 새롭게 정의한 회사로 유명하다.

지금은 많이 대중화된 용어인 `디자인적 사고(design thinking)`를 처음 만들어낸 사람이 바로 아이디오 최고경영자(CEO) 팀 브라운이다. 아이디오의 컨설턴트들은 이미 나와 있는 아이디어를 포장하는 일에 국한하지 않고 기획 단계부터 참여해 참신한 아이디어를 개진한다. 기존의 판을 바꾸고 고정관념을 붕괴시키는 역할을 한다. 디자인의 기존 역할이 `전술`이었다면 아이디오가 말하는 디자인은 `전략`이다.

아이디오는 다방면의 전문가들이 뭉친 팀이다. 아이디오의 창업자인 마이크 넛톨처럼 단순히 `다양한 경험을 해본 디자인 전문가`가 할 수 있는 일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어려운 일을 해낼 수 있다. 그들이 하는 일은 단순히 `럭셔리 잡지에 실릴 만한 탐나는 물건`을 디자인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소아 비만, 범죄 예방, 기후 변화 등 각종 사회 문제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 그들은 기존의 방법론으로 해결되지 않던 문제들도 디자인적 사고를 적용하면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디자인적 사고 만능주의`라고 부를 만하다.

아이디오의 독특한 방법론은 일반 기업들에도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아이디오의 사옥에는 브레인스토밍 세션을 위한 전용실이 따로 마련돼 있으며 벽에는 브레인스토밍 원칙이 적혀 있다. `타인의 발상을 참조하라`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장려하라` `주제에 계속 집중하라` 등이다.

아이디오의 브레인스토밍은 모든 참가자가 아이디어의 생산에 참여하게끔 하는 것이 특징이다. 보다 많은 아이디어를 끌어내기 위해서다.

아이디오는 포스트잇을 잘 활용하기로 유명하다. 아이디오에서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공간에 가면 벽을 온통 도배한 포스트잇을 쉽게 볼 수 있다. 아이디오 구성원들이 머릿속 아이디어를 시각화해 일정한 양식으로 정리한 것이다. 수많은 포스트잇 중 구성원들에게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아이디어가 채택된다.

또 한 가지 아이디오의 특징은 사옥 안에 컨설턴트들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의 프로젝트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세상 사람들과 어울리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소비한다. 식품점 쇼핑객, 사무직 근로자 등은 빈번하게 아이디오 컨설턴트의 관찰 대상이 된다.

아이디오가 애플의 최초 마우스와 자전거 정수기 아쿠아덕트 등 수많은 혁신적인 제품들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독특한 방법론 덕분이다.

[용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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