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리티쇼, 한국은 ‘편해야’ 뜨고 미국은 ‘불편해야’ 뜬다

 박유희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HK교수팀 분석

‘대한민국 평균 이하’를 자처하는 연예인들이 웃음을 자아내는 리얼 버라이어티 쇼 ‘무한도전’. MBC 화면 촬영

‘영미권 시청자는 평범한 사람들이 비장한 경쟁을 벌이는 리얼리티 쇼에 환호한다. 반면 한국에서는 캐릭터가 선명한 연예인들이 웃음을 주는 리얼 버라이어티 쇼를 좋아한다.’

박유희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팀이 영미권과 한국 시청자들이 리얼리티 쇼에서 기대하는 ‘리얼리티’의 차이를 연구한 결과 내린 결론이다. 이 연구팀은 이 같은 결과를 담은 주제문 ‘리얼과 웃음: 리얼 버라이어티쇼를 중심으로’를 최근 개최된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HK 기획연구 학술 심포지엄에서 발표했다.

논문에 따르면 서양의 리얼리티 쇼는 일반인들이 등장해 질투와 견제를 하고 술수를 써가며 경쟁해야 인기를 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질투나 견제 같은 불편한 감정의 기제들을 제거하고 현실을 반영한 캐릭터와 가족처럼 ‘협동하는 경쟁’의 요소를 갖춰야 주목을 받을 수 있다는 것.

한 예로 미국 CBS가 방송한 ‘서바이버’는 무인도에서 단 한 명의 생존자만 남을 때까지 계속 생존경쟁을 벌이는 프로그램인데 첫 시즌에 2007만 명의 시청자를 확보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출연자들 간 동맹을 맺거나 배신하는 장면, 상대방에게 욕하며 화내는 ‘리얼한’ 모습이 인기 요인으로 꼽혔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이기려는 출연자들은 ‘비호감’으로 찍혀 지탄의 대상이 되기 쉽다. 2010년 방송된 Mnet의 ‘슈퍼스타K 2’에서 승부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팀워크보다 자신의 생존을 최우선시했던 참가자는 생방송 첫 번째 무대에서 탈락했다. 2011년 ‘슈퍼스타K 3’에서 1, 2등을 차지한 ‘울랄라세션’과 ‘버스커버스커’도 경연 내내 다른 팀을 배려하고 양보하는 미덕을 보여 박수를 받았다. 연구팀은 “MBC ‘무한도전’에서 호통 치는 악역을 맡고 있는 박명수가 인기를 끄는 이유도 ‘쭈구리’와 ‘늙고 체력도 약한 아버지’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영미권의 리얼리티 쇼가 기승전결 구조를 갖는 드라마라면, 한국의 쇼는 에피소드 중심의 시트콤에 가깝다. 출연자들의 캐릭터를 극대화해 회마다 완결성을 지니는 에피소드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KBS2 ‘1박2일’의 이수근은 위키피디아에 정리된 별명만도 15개다. MBC ‘라디오 스타’의 진행자 김국진은 ‘이혼의 아이콘’ ‘90년대 스타’라는 캐릭터로 정형화돼 있다.

무인도에 모인 사람들이 경쟁을 통해 유일한 승자를 가리는 리얼리티 쇼 ‘서바이버’. 미국 CBS 화면 촬영

국내 리얼리티 프로만의 또 다른 특징은 ‘가족’을 표상으로 내세우는 점. ‘무한도전’은 정준하와 ‘니모’의 결혼 발표에 ‘니모도 이제 무한도전의 가족입니다’라는 자막을 내보냈다. KBS ‘남자의 자격’, ‘슈퍼스타K’는 고정 출연자 이외의 등장인물을 ‘손님’으로 소개한다. SBS ‘패밀리가 떴다’는 제목부터 ‘가족’을 강조했다.

2000년대 영미권을 중심으로 180개 이상 제작된 리얼리티 쇼가 곧바로 국내 TV 시장에 안착하지 못한 이유도 이 같은 문화 차이 때문으로 분석됐다. 2001년 영국 ITV가 방영한 가수 오디션 프로 ‘팝 아이돌’의 포맷은 2009년에야 ‘슈퍼스타K’로 방송됐다.

연구팀의 이정안 연구원은 “유교 문화의 영향으로 예의나 체면을 중시하는 한국에서는 생존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출연자들의 모습이 여과 없이 수용되기 힘든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송금한 기자 emai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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