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 MBA] 불황을 이기는 구매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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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실패 = 두부는 식품회사의 자존심이다. 공장에서 만들어내는 가공식품이면서도 신선도를 유지해야 하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부동의 업계 1위 풀무원 `찬마루 두부`를 넘어서기 위해 경쟁사들은 온갖 기술개발과 마케팅에 전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좀처럼 격차가 줄지 않는다. 이는 단순히 풀무원이 더 맛있는 두부를 만들고 마케팅을 잘했기 때문이 아니다. 비밀은 바로 `구매`에 있다. `화학응고제`가 아닌 `천연응고제`를 만들 수 있는 국내 유일의 회사가 오직 풀무원하고만 거래를 한다. 오랜 기술개발 기간을 풀무원이 기다려줬고 개발비용이 충분히 회수될 수 있도록 약속한 가격 수준에서 구매에 나섰다. 갑과 을의 일방적인 관계에서 하도급을 받은 게 아니라 함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스마트 구매`에 나섰던 풀무원이 결국 시장에서 승리한 셈이다.# 왜 성공 = 최근 뼈아픈 구조조정을 거치며 겨우 살아난 미국의 한 자동차 업체. 이 회사가 어려움을 겪은 이유는 다양하지만 전문가들은 “품질이 떨어져 소비자의 신뢰를 잃은 게 가장 큰 문제였다”고 입을 모은다. 세계에서 가장 잘나가던 자동차 회사가 왜 어느 순간 `질이 안 좋은 자동차`를 만드는 회사로 전락했을까. 역시 비밀은 `구매`에 있었다. 오랜 기간 이 회사는 협력업체들에 `슈퍼 갑`으로 군림했다. 불황이 찾아오면 곧바로 부품 단가를 낮추라고 요구했다. 한계에 부딪힌 협력사들은 5년 내구성을 가진 제품을 3년짜리로 바꾸면서 단가를 맞췄다. 당장 품질에는 전혀 문제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3년 뒤 `예상보다 너무 빨리 고장 난 자동차`에 소비자들은 분노했다. 분노하는 마음을 되돌리기는 정말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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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기일수록 기업에 `저가 구매`는 `뿌리칠 수 없는 유혹`으로 다가온다. 부품 등을 싸게 사면 그만큼 당장의 이익으로 연결돼 실적이 확 좋아지기 때문이다. 늘 실적 압박에 시달리는 최고경영자(CEO)나 임원은 그 유혹에 대부분 넘어간다.품질 저하도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게 아니라면 `모른 척`하고 싶은 욕망에 빠질 수밖에 없다. 어차피 자신의 임기는 길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쟁력 약화와 품질 저하`라는 기업의 암세포는 바로 거기에서부터 자라난다. 물론 불황은 기업의 구매전략을 점검하고 강화할 수 있는 적기이기도 하다. 다른 기업이 근시안적인 `단가 후려치기`를 하고 있을 때 경쟁력 있는 협력사를 찾아내 신뢰를 쌓고 장기적인 `윈윈(win-win)` 관계를 형성한다면 돌아온 호황기에 시장의 새로운 지배자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구매전략의 가장 좋은 친구는 불경기(The best friend of purchasing is hard time)`라는 말이 널리 퍼진 이유이기도 하다.

매일경제 MBA팀은 불황기 기업의 `스마트 구매전략`을 알아보기 위해 국내외 석학과 전문가들을 만났다.

먼저 `전략구매` 컨설팅의 원조 격인 AT커니의 구매 부문 대표 존 블라스코비치를 인터뷰하고, AT커니 코리아의 봉찬식 파트너로부터 구체적인 설명을 들었다. 이론적인 뒷받침을 위해 경영학계에서 구매를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최정욱 국민대 교수, 김대기 고려대 교수를 만났다.

국내외 전문가와 석학들은 “스마트 구매의 핵심은 거래가 아니라 `관계`”라고 입을 모았다.

블라스코비치 대표는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관계를 맺지 않고 만약 단순 거래만 하는 경우라면 `신뢰 관계` `장기적 협력`이 별로 중요하지 않게 느껴질 수 있다”고 전제했다. 그러면서도 “만약 협력사ㆍ공급사가 새롭고 혁신적인 제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했을 때, 혹은 비용 절감 방법을 생각해냈을 때를 생각해 보라. 이때에는 장기적인 `협력 관계`를 맺고 있지 않은 구매자에게 먼저 협력사가 다가올 일은 없다”고 말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신뢰와 협력 관계`를 맺지 않는 것이 당장에 큰 피해는 없어 보이지만,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기업이 도약해야 할 시기에는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얘기다.

최정욱 교수는 “구매를 단순한 조달이나 거래로만 생각하면서 `상대방 물건이나 서비스를 사오는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그러나 구매자 입장에서 실제 협력사나 공급사로부터 사오는 건 그 물건이나 서비스가 아닌 그들의 `경쟁력`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급사의 경쟁력을 사오는 개념으로 생각하면 구매를 단순한 거래가 아닌 `지속적인 관계`로 달리 볼 수밖에 없게 된다는 얘기다.

최 교수는 또 “`경쟁력`을 사오기 위해서는 협력사와 그 협력사가 만드는 제품에 대한 이해가 아주 높아야 한다. 이러한 이해는 장기적인 관계 형성과 관심에서 나오고, 이를 바탕으로 함께 비용도 절감하고 제품 혁신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덧붙였다.

풀무원의 찬마루 두부 성공 사례가 바로 이러한 스마트 구매의 전형이라는 것이다. 최 교수는 휴렛패커드(HP)를 `스마트 구매전략`을 잘 쓰는 또 다른 사례로 제시하며 “공급자들에게 `가장 독하지만 놀라울 정도로 공정한 구매자`라는 얘기를 듣는 게 바로 HP”라며 “공정한 보상과 신뢰감을 주는 HP에 혁신을 안겨주는 주인공이 바로 공급사와 협력사들이다. 그로 인해 선순환 구조가 형성된다”고 설명했다.

김대기 교수는 구매를 결혼에 비유했다. 역시 `관계` 중심으로 구매를 보는 관점이다. 김 교수는 “서로 좋은 파트너를 만나는 순간 `구매 행위` 자체는 사실상 끝나는 것”이라며 “누가 가장 좋은 결혼 상대인지 나름의 기준을 갖고 찾아보듯이 각 회사가 자기의 이상형(공급자)을 정확한 지표로 찾아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이어 “하지만 더 중요한 건 그 다음이다. 결혼한 상대방에 대해 잘 대해주지 않거나 소홀히 하면 파탄으로 치닫듯이, 부족하거나 개선해야 할 부분에 대해 구매자가 공급자에게 피드백을 해주지 않으면 신뢰도 쌓이지 않고 늘 똑같은 얘기만 반복하다가 결별하게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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