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소싱 시대… 모든 협력사가 정보공유 못 하면 재앙 닥쳐”

제품 수명주기 관리 솔루션 1위 美 PTC社 제임스 헤플만 CEO
에어버스 380의 교훈_16국이 부품 나눠서 생산 설계기준 달라 조립 실패…
의사소통 돕는 솔루션_기업의 의사소통 비용은 직원 수의 제곱에 비례…
출시 기간 줄여야 성공_아무리 혁신 제품이라도 타이밍 놓치면 못 팔아…

#사례 1

지난 6월 초 삼성전자는 신형 스마트폰 ‘갤럭시S 3’ 뒷면 커버 50만개를 폐기 처분했다. 제품 출시를 불과 2주 앞둔 시점이었다. 이 커버는 ‘헤어라인(hair line)’이라 불리는 가느다란 은색 줄을 넣었는데, 제조 과정에서 당초 구상한 품질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삼성전자 대표이사였던 최지성 부회장은 “디자인 콘셉트가 완벽히 구현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며 전량 폐기 후 새로 만들라고 지시했다. 재생산 비용만 50억원. 돈보다 더 큰 문제는 지적 사항을 10여일 만에 개선해 28개국으로 보내는 것이었다. 각국 판매망과 2·3차 부품공급업체에 변동 사항을 전달하는 데만 해도 며칠이 걸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10일도 안 돼 모든 커버를 교체했고 전 세계에 문제점을 완벽하게 해결한 제품을 공급했다.

#사례 2

2006년 7월 여객기 제조 업체인 에어버스의 최고경영자(CEO)인 노엘 포르자르(Forgeard)와 그 모(母)회사인 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EADS)의 CEO 구스타프 훔베르트(Humbert)가 동시에 사임했다. 초대형 여객기 A380의 인도가 늦어지는 바람에 주가(株價)가 같은 해 3월, 35유로에서 6월 20유로까지 50% 정도 폭락한 탓이다. A380의 인도가 지체된 가장 큰 이유는 설계 오류. 에어버스는 유럽 전역의 16개 지역에서 부품을 나눠 생산한다. 그런데 프랑스독일에서 쓴 설계 기준이 서로 달랐다. 두 곳에서 온 부품은 배선이 맞지 않아 조립할 수 없었다. 결국 부품 수정을 위해 A380의 인도는 1년 넘게 늦어졌고, 생산이 본격화된 2010년까지 EADS에 48억유로(약 6조8600억원)의 막대한 손실을 안겼다.

두 사례 모두 설계 및 제조 문제가 회사에 큰 위기를 불러왔다. 하지만 한쪽은 빠르게 문제를 수정해 피해를 최소화했고, 다른 쪽은 끝까지 문제를 모르다가 심각한 손해를 입었다. 어째서 두 회사의 대응 과정은 이렇게 달랐을까?

제품 수명주기 관리(PLM·Product Life cycle Management) 솔루션 소프트웨어 전문기업인 PTC의 CEO 제임스 헤플만(Heppelmann)은 Weekly BIZ와의 최근 인터뷰에서 “소비자 요구가 다양해지고 글로벌 아웃소싱을 통해 부품 공급망 관리와 애프터서비스(AS) 등이 복잡해지는 상황에서 회사 내 임직원은 물론 협력사·판매 업체 등과 정확한 정보를 공유하는 여부가 기업의 사활을 가르는 관건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제품 관련 정보를 직원 및 협력사에 한꺼번에 전달해 성공했지만, EADS는 그러지 못해 실패했다는 것이다.

헤플만이 이끄는 PTC는 도요타·삼성전자·월풀 등 세계 2만5000여개 기업에 정보 공유 및 분석 소프트웨어를 공급한다. 지난해 매출은 12억달러(약 1조3612억원). 세계 시장 점유율 약 30%로 이 분야 세계 1위이다. 뉴욕타임스(NYT)의 자매지인 ‘보스턴 글로브’가 꼽은 ‘보스턴 지역 최고 IT 회사’이기도 하다.

엔지니어 출신인 헤플만 CEO는 ‘윈칠 테크놀로지’라는 벤처 기업을 세워 PLM을 직접 개발했다. 이 회사가 PTC에 인수된 후 최고기술책임자(CTO)·최고운영책임자(COO)를 거쳐 2010년 CEO를 맡았다. 피(被)인수 기업의 창업자가 인수한 기업의 최고 경영자 자리를 꿰찬 것이다. 미국 보스턴 PTC 본사에서 헤플만 CEO를 만났다.

최근 미국 보스턴 인근 PTC 본사에서 만난 제임스 헤플만 CEO는“소비자의 다양한 욕구를 빠르게 맞춰주는 것이 제조업체의 최고 과제”라며“모든 공정에서 시간을 최소화해 제품 출시 시간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사진작가 대니얼 위드로 제공

“의사소통 비용은 직원 수 제곱에 비례”

―PLM이란 무엇인가? PLM의 정수(精髓)를 한 문장으로 얘기한다면?

“개인적으로 ‘헤플만의 법칙’이라 부르는 것이 있다. 의사소통 비용은 직원 수가 아니라 직원 수의 제곱에 비례한다는 법칙이다. 5명짜리 회사에 직원을 2명 추가했다고 가정하자. 보통은 5에서 7로 기존의 40%만큼 의사소통에 시간을 더 들이면 된다고 생각할 거다. 그러나 실제로는 5²(=25)에서 7²(=49)으로 96%나 소통 비용이 늘어난다. 사내 의사소통이 안 되면 기업 경쟁력에 치명타가 생긴다. 에어버스 A380 출시 지연과 같은 극단적인 사태도 일어날 수 있다. 중요한 건 얼마나 정보를 효율적으로 공유하느냐에 달렸고, PLM은 이걸 돕는 도구다.”

―PLM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경영자를 돕는가?

“PLM은 일단 모든 데이터를 한데 모은다. 데이터를 한데 모으면 처리가 편해지는 것 이외에 많은 가치가 생긴다. 제품 기획 과정에서 병목현상이 일어나는 곳을 찾는다든지, 세계적인 트렌드를 읽는다든지 할 수 있다. 일종의 ‘빅 데이터 분석’이다. 이를 통해 뛰어난 경영자가 직관(直觀)에 의존해서 파악하던 문제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수 있다. 좋은 경영인은 문제가 발생하면 단순히 문제 해결에서 멈추지 않는다. 원인을 추적해 비슷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곳까지 추적한다. 하지만 이건 뛰어난 사람이 집중력을 발휘할 때만 가능한 일이다. PLM은 소프트웨어로 이런 훌륭한 경영인을 흉내냈다고 보면 된다.”

―이런 식의 솔루션이 왜 필요한가. 모든 기업이 이미 각자 회사 문화에 맞춰 데이터를 분석하고 정보를 공유하지 않나.

“시장과 기업의 규모가 적다면 그런 식으로 운영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많은 기업들은 전 세계에서 부품을 공급받고 전 세계에 제품을 판다. 자동차 한 대에만 수만 개의 부품이 들어간다. 만약 소비자 불만 접수·디자인 개선·부품 호환성 검사·부품 교체 등을 모두 일반 문서로 만든다면, 서로 주고받는 과정에 빠지는 정보가 생길 것이다. 언어 문제로 인해 이해할 수 없는 사람도 생기고, 꼭 받아야 하는 정보를 못 받는 사람도 발생한다. PLM은 말단 직원에서부터 최고위 임원까지 하나의 시스템으로 정보를 공유하는 구조다. 각자의 위치에 맞춰 필요한 정보를 각자에게 맞는 형태로 보여준다. 이미 전 세계 2만5000여개 기업이 PTC 솔루션을 쓴다. PLM을 쓰는 업체를 모두 더하면 7만개가 넘는다. 규모가 있는 제조업체는 거의 다 PLM을 도입한 셈이다.”

―임원이나 직원이 조금만 더 꼼꼼하면 해결 가능하지 않을까?

“아니다. PLM을 쓰면 사람의 눈과 생각으로는 좇기 어려운 문제를 추적할 수 있다. 예컨대 우리 고객사인 현대자동차가 새로운 엔진을 개발한다고 가정하자. 현대차는 미국·유럽·중국·한국 등 전 세계에 차를 팔기에 세계 각국의 규제를 맞춰야 한다. 여기에 들어갈 부품 역시 각국에서 최고의 품질·최저의 가격으로 구해야 한다. 사람이 이걸 일일이 서류를 뒤져가며 해서는 시간이 너무나 걸린다.”

“제조는 공공재…출시 기간 단축해 시장 타이밍 맞추는 게 중요”

―왜 시간을 단축해야 하나?

“현대 사회에서 제조(manufacturing) 그 자체는 공공재(公共材)와 비슷한 것이 됐다. 세계 어디에서 만들어도 크게 품질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한 회사가 아무리 뛰어난 제품을 만들어도, 순식간에 복제품이 나온다. 이 때문에 글로벌 시장 경쟁에서 승리하려면 ‘출시 기간(time to market)’을 줄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아무리 혁신적인 제품이라고 해도 출시 타이밍을 놓치면 팔 수 없는 구형 제품이 되거나 판매량이 예상보다 훨씬 미미해진다.”

―최근 중국 등에 갔던 제조업이 미국으로 돌아오는 데도 PLM과 같은 첨단 소프트웨어의 영향이 있는가?

“공장이 미국으로 돌아오는 데는 몇 가지 원인이 있지만, 이런 현상은 천천히 일어나는 일이다. 공장이 돌아오는 가장 큰 이유는 공장 자동화다. 미국에 컴퓨터로 운영되는 첨단 공장을 설치하면 중국에서 보다 더 싸게 만들 수 있다. 중국 인건비 상승도 이유다. 다른 측면은 품질 관리다. 복잡한 제품일수록 의사결정권자 가까이에 공장을 두는 게 유리하다. 장기적으로 보면 컴퓨터로 디자인한 물건을 입체로 찍어내는 3D프린터와 같은 생산 방식이 주류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경영인의 기능을 소프트웨어로 대체할 수 있을까?

“아니다. 경영은 어려운 기술이다. PLM은 빠르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 경영자가 최선의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지원한다. 많은 서류를 일일이 챙겨보고, 정보를 뽑아내는 데 드는 수고를 줄여준다는 것이다. PLM은 하버드경영대학원(HBS)의 마이클 포터(Porter) 교수의 이론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는 우리 이사회 멤버이다. 우리는 포터 교수를 비롯한 많은 경영학자로부터 도움을 받아 제품의 품질 향상에 도움을 주는 전략 기획 과정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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