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Inside] 외부지식 잘 가져다 쓰는 게 진짜 R&D 역량

R&D는 비용의 블랙홀 – 동일한 연구개발 위해
시간과 돈 쓰는 건 낭비 남의 아이디어 활용하라
전동칫솔 개발의 교훈 – 벤처의 전동칫솔 기술
재빨리 사들인 P&G 1억5000만불 시장 선점

이성용 베인앤컴퍼니 서울사무소 대표

연구를 많이 한다고 해서 반드시 비즈니스상의 호(好)실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연구개발(R&D)과 상업적 성과 간에는 뚜렷한 상관성이 없다. 그래서 R&D는 종종 ‘비용의 블랙홀’로도 불린다. 그렇다고 R&D를 아예 무시할 수 없다. 관건은 R&D 생산성을 높이는 방안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새로운 R&D 현상으로 ‘외부시장 혁신'(open market innovation·이하 OMI)이 주목받고 있다. OMI는 쉽게 말하면 남이 만든 연구와 지식을 거래하거나 공유해 사용하는 것이다.

우리는 과거의 경험이나 이전 직장에서의 프로젝트를 토대로 위대한 아이디어들이 나오는 경우를 종종 접한다. 전체 R&D 가운데 70~80%가 여기에 속한다는 조사도 있다. 즉 아무리 독창적으로 보여도 결국 누군가의 아이디어를 약간만 개선하는 경우가 제법 된다는 의미이다. OMI는 이런 과정에 투명성을 보장하며 회사의 R&D 진행 상황을 타사와 비교 평가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누군가 동일한 연구개발을 진행한 바 있는데 굳이 시간과 돈을 들여 동일한 경험 곡선을 반복한다면 낭비일지 모른다. 따라서 OMI는 전체 비용을 절약할 뿐 아니라 업계와 비교해 R&D 진행 상황을 점검해보고 균형을 찾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R&D 분야에서 진정한 전문가는 회사의 CTO(최고기술책임자)가 아니라, 밤낮으로 R&D를 평가하는 벤처 캐피털리스트다. 이들은 다양한 R&D 프로그램을 비교 분석할 수 있는 안목을 갖고 있다. OMI를 잘 활용하면 첨단 기술에 투자해 수익을 내는 전문가들로부터 실질적이면서도 솔직한 의견을 얻을 수 있다. 우수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면 자체적으로 자금을 조달할 필요도 없다. 이들의 투자를 받아 서로 ‘윈-윈’하는 상황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일러스트= 정인성 기자 1008is@chosun.com

과거에는 모든 기능을 회사 자체적으로 수행하는 게 당연시됐으나 지금은 달라졌다. 일례로 자동차를 만들 때 가장 우선시되는 자산인 디자인의 경우, 지금은 대부분의 디자인을 외부와의 협업으로 처리한다. OMI는 이런 상황에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훌륭한 방법이다. 이는 특히 이종(異種)산업 간의 협력이 필요한 상황에서 빛을 발휘한다. 특정 산업에서 진행된 연구조사가 성공적으로 상업화되려면 다른 산업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예컨대 어떤 회사에서 컴퓨팅과 위성 기술을 개발했다고 치자. 그러나 해당 업계에서는 이미 유사한 기술이 나와 있는 상태로 일부 발전은 있었지만 상업화 기회가 많지 않은 상황이다. 그런데 이를 자동차 업계에 접목시켜 보니 상황이 달라졌다. 자동차의 전장(電裝)시스템을 확대해 더욱 편리한 운전 경험을 선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라면 불가능했던 다양한 산업 간의 R&D 협력을 가능케 한다는 점이 외부시장 혁신(OMI)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다.

하지만 성공적으로 OMI를 달성하고 그 효과를 지속적으로 극대화하려면 몇 가지 해결해야 할 조건이 있다.

먼저 가장 우수한 아이디어를 취사선택하는 수준을 넘어 자신이 갖고 있는 아이디어와 R&D 프로그램을 적극 공유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수요와 공급이 맞물려야 시장이 형성될 수 있다. 이는 곧 회사의 R&D 프로세스가 외부에 개방되고 유연성까지 갖추어야 함을 의미한다. 그런 만큼 기밀로 숨겨놨던 자사의 R&D 업무도 몽땅 공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기존의 폐쇄적인 사고방식이 R&D 효율화의 가장 큰 장애물이기 때문이다.

글로벌 기업인 3M의 경우, 사업 현장 부서와 동떨어진 R&D가 가장 큰 장애물이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3M은 R&D 조직에 대한 구조조정을 단행해 인력 전원을 최소 2개 부서로 순환보직을 시켜 부서에 국한된 시각이 아닌 회사 전체를 바라보는 시야를 기르도록 했다. 그 결과 3M은 수십억 달러의 가치를 가진 새로운 플라스틱 기술개발에 성공했고, 이는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사무용품에 널리 쓰이고 있다.

둘째, R&D 확보에서 더욱 창의성을 갖고 상업적 마인드로 접근해야 한다.

최초에 전동칫솔을 개발한 것은 한 작은 벤처기업이었다. 그러나 이 제품은 오랄 B의 막강한 시장력에 눌려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한 채 사장되고 있었다. 이런 마당에 P&G의 일부 젊은 엔지니어들이 이 사실에 주목해 당시 P&G가 주력하던 저가 칫솔과 치약에 전동칫솔을 적용했다. 그 결과 시장에서 곧 히트를 쳤고 1년도 안 돼 1억5000만달러짜리 사업을 창출하게 됐다. 그전까지만 해도 칫솔에 전자 기술을 접목시킨다는 생각은 P&G의 플라스틱 칫솔 엔지니어 중 어느 누구도 한 적이 없었다.

이 간단한 융합 기술은 P&G의 R&D 활동에 전환점이 됐다. P&G는 전동 브러시처럼 기존 제품과 전자 기술이 접목된 신제품 개발을 시도하고 있다.

셋째, 고도의 전문성과 도덕성을 갖춰야 한다.

아이디어를 어디에선가 차용(借用)했다면,이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물물교환식의 외부시장 혁신을 추진한다면, 거래의 기본적인 규칙을 정의하고 준수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체계 전체가 와해되기 십상이다. 한국 기업은 특히 이 부분이 취약하다.

Related Posts

Comments

LEAVE A REPLY

Please enter your comment!
Please enter your name here

10 − 5 =

Stay Connected

spot_img

Recent Stor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