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배운다'에어아시아' 페르난데스 회장_"비행기 요금, 버스 요금보다 낮췄더니 승객 몰리더라"

‘에어아시아’ 페르난데스 회장_”비행기 요금, 버스 요금보다 낮췄더니 승객 몰리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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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만달러 달라던 비행기 격납고, 우린 50만달러에 만들었다”
공중서 감속하고 착륙그래야 기름도 아끼고타이어 마모도 줄여…
비용 절감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지 찾아낸다
사스가 터졌을 때 홍보비 3배 늘리고 요금은 추가 할인…
브랜드 알리는 데 돈을 아끼지 마라

사진=김용우 기자 yw-kim@chosun.com

그는 12세가 되던 1976년 말레이시아에서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방학 때도 그는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의사인 아버지, 사업가인 어머니를 둔 그에게도 비행기 티켓은 너무 비쌌다. 거의 매일 런던 히스로 공항에 나가 뜨고 내리는 비행기를 바라보며 향수를 달랬다. 그 무렵 영국의 한 ‘저비용 항공사(서비스를 최소로 줄이고 비용 절감을 통해 낮은 요금을 받는 항공사)’가 런던~뉴욕 노선을 기존 항공사 요금의 약 3분의 1 수준으로 운항하기 시작했다. 그는 다짐했다. “누구든, 어디든 값싸게 비행기로 다니게 해주는 항공사를 말레이시아에 세워야지….”

그의 이름은 토니 페르난데스(Tony Fernandes·47·사진). 아시아 최초의 저비용 항공사 ‘에어아시아(Air Asia)’의 회장이다.

히스로 공항의 다짐이 에어아시아 창업으로 결실을 맺은 것은 25년 뒤인 2001년 12월. 쉽지 않았다. 항공 산업의 규제 벽은 높았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새로운 항공사 인가를 내주지 않았다. 빚 1100만달러를 떠안는 조건으로 낡은 비행기 2대뿐인 국영 항공사를 사야만 했다.

사진=김용우 기자 yw-kim@chosun.com

‘이제 누구나 비행기를 탈 수 있다(Now everyone can fly)’를 슬로건으로 비행기를 띄웠다. 쿠알라룸푸르~페낭 구간 요금이 최저 39링깃(ringgit·말레이시아 화폐단위). 버스(40링깃)보다 쌌다. 버스·기차·보트를 타던 사람들이 비행기로 바꿔 탔다. 9·11테러, 사스(SARS), 조류인플루엔자(AI)라는 악재가 있었지만 운항 1년 만에 승객 100만명을 돌파했다. 이어 태국·인도네시아·베트남·필리핀으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지금은 영국·프랑스·오스트레일리아·한국·일본·중국을 포함한 140개 노선에 100대의 비행기를 띄우고 있다.

에어아시아는 ‘아시아 최대의 저비용 항공사’로 성장했다(국제항공운송협회 발표 국제선 승객 수 기준). 또 ‘세계에서 가장 좋은 저비용 항공사’ 순위에서도 2009년, 2010년에 이어 올해까지 연속 3회 1등을 차지했다(항공업계 조사 기업 스카이트랙스 발표). 토니 페르난데스 회장은 경제주간지 포브스의 ‘2010년 아시아 최고의 기업인’에 선정됐다.

창업 10주년을 앞둔 토니 페르난데스 에어아시아 회장을 Weekly BIZ가 만났다. 페르난데스 회장은 “나는 항공업계의 고정관념에 항상 도전했다. 남들이 생각도 못하던 방식으로 일해왔다. 안 되는 일은 없다(Anything is possible)”고 말했다.

토니 페르난데스 에어아시아 회장의 트레이드마크는 빨간색 야구 모자다. 회사의 영문 로고 ‘Air Asia’가 흰 글씨로 큼직하게 새겨져 있다. 멀리서 봐도 눈에 확 들어올 정도다.

페르난데스 회장은 항상 이 모자를 쓰고 다닌다. 자신에게 인사를 건네는 사람이 있으면 모자에 서명을 해서 준다. 그래서 가방 속에 모자를 여분으로 가지고 다닌다.

인터뷰를 하기 위해 18일 부산 해운대의 한 호텔에서 만났을 때에도 페르난데스 회장은 빨간색 야구 모자를 쓰고 있었다.

“말레이시아의 작은 항공사가 어떻게 여기까지 올라올 수 있었겠어요? 브랜드 마케팅이 비결 중 하나였죠. 내가 앞장서서 빨간색 야구 모자를 쓰고 ‘걸어 다니는 광고판’이 됐어요. 에어아시아를 알리기 위해서 무슨 일이든 다했죠.”

◆”안 되는 일은 없다. 언제나 방법은 있다”

에어아시아가 설립된 2001년 당시 말레이시아 전체 인구 중 비행기를 타본 사람의 비율은 6%에 불과했다. 요금이 비쌌기 때문이다. 에어아시아는 ‘이제 누구나 비행기를 탈 수 있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기존 항공사 요금의 50% 수준으로 값을 내렸다. 일부 구간은 버스요금보다 쌌다.

항공업계에서는 “에어아시아는 망할 것”이라는 전망이 강했다. 그해 9·11 테러의 영향으로 항공 수요가 크게 줄었고, 이어 사스(SARS)와 조류인플루엔자(AI)가 아시아 시장을 강타한 탓이다.

하지만 에어아시아는 취항 1년 만에 승객 100만명을 돌파하며 흑자 경영을 달성했다. 페르난데스 회장은 “위기 때에도 비즈니스 원리는 똑같다. 비용은 줄이고 매출은 늘려라. 그러면 이익이 남는다”고 말했다. “에어아시아 노선의 46%는 다른 항공사가 취항한 적이 없는 곳이다. 우리는 남들과 다르게 일한다”고도 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스냅샷으로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조선닷컴

사스가 터지자 에어아시아는 홍보비용은 세 배로 늘리고 요금은 추가 할인했다. 비행편을 취소하는 일은 전혀 없었다. 다른 항공사와는 정반대였다. 올 3월 일본 대지진이 났을 때도 똑같은 방식으로 대응했다. “시장은 언제, 어디에나 있다. 그 시장을 매출로 연결시키는 마케팅이 핵심이다”라고 페르난데스 회장은 말했다.

―당신의 마케팅 원칙은.

“첫째, 브랜드를 알리는 데 돈을 아끼지 마라. 말레이시아의 작은 항공사인 에어아시아를 온 세상에 알리는 데 당연히 돈이 많이 들었다. 둘째, 광고는 단순하게 하라. 에어아시아는 ‘값이 싸다. 취항지가 많다’는 광고만 한다. 복잡한 광고는 소비자에게 전달이 안 된다. 셋째, 언론과 항상 긴밀하게 접촉하라. 나는 가능한 한 많은 언론의 질문에 응한다. 내 휴대폰 번호도 기자들에게 알려준다. 외부 마케팅뿐 아니라 내부 마케팅도 중요하다. 에어아시아는 조종사들에게도 마케팅 교육을 시킨다. 기내 방송을 할 때 ‘몇 시에 어디에 도착한다’는 이야기와 함께 ‘새로운 노선이 어디에 생겼다. 그곳에 어떤 관광지가 있다’는 마케팅도 한다.”

―비용 절감은 어떻게 했나.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쿠알라룸푸르공항에 격납고를 지으려고 전문 건설업자에게 부탁했더니 ‘2000만달러를 내라’고 하더라. 나는 ‘비행기 넣는 창고에 그렇게 많은 돈을 쓰는 건 미친 짓’이라고 했다. 우리 집을 지어준 건설업자에게 시켰더니 50만달러에 해내더라. 무려 40배나 차이가 난 것이다. 심지어 그 설계와 공법은 특허까지 받았다. 다른 항공사 두 곳이 우리에게 특허료를 내고 똑같은 격납고를 지은 일도 있다. 우리는 비용을 아낄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이 있다면 무엇이든 찾아낸다. 에어아시아 비행기는 공중에서 가능한 한 충분히 감속한 뒤에 착륙한다. 기름도 아끼고 타이어 마모도 줄인다.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비용 절감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항공업계의 고정관념을 깨뜨려라”

에어아시아를 창업할 때까지 페르난데스 회장은 항공업계에서 일해본 적이 없었다. 영국의 명문인 엡솜 칼리지(Epsom College)와 런던정경대(LSE)를 졸업한 그는 음반업계에서만 14년 동안 일했다.

1987년 입사한 첫 직장은 영국의 음반회사 버진 레코드. 이곳에서 재무 담당으로 2년을 일한 뒤 미국의 음반회사 워너뮤직으로 옮겼다. 피아노와 기타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음악적 재능 그리고 공인회계사 자격증은 그를 탄탄대로에 올려놓았다. 워너뮤직에선 재무 담당으로 시작해 말레이시아 법인 임원을 거쳐 동남아 법인 부회장까지 올랐다. 2001년 1월 워너뮤직의 모회사인 타임워너가 AOL에 합병되자 그는 자신의 스톡옵션을 처분하고 퇴직했다. 같은 해 12월 에어아시아를 창업했다.

페르난데스 회장은 취항 첫해부터 흑자를 냈다. 이후 10년 동안 순수입이 연평균 57% 증가할 정도로 고속 성장을 거듭했다. 그는 자신의 성공 비결에 대해 “나는 업계의 고정관념에 항상 도전했다. 그들이 ‘이렇게 해야 한다’고 말하면 나는 ‘왜 꼭 그렇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고 했다. 또 “기존 항공사와 다르게 사업을 하려고 했기 때문에 항공업계가 아닌 분야에서 성공한 비즈니스맨을 많이 데려왔다. 자회사 사장 중에는 가수 출신도 있다. 한 분야에서 잘하는 사람은 다른 분야에서도 잘한다”고 했다.

―에어아시아를 창업한 직접적인 계기는.

“음반회사를 그만둔 뒤 우연히 영국의 저비용 항공사 이지제트의 창업자 스텔리오스 하지-라오누의 TV 인터뷰를 봤다. ‘이지제트가 영국에서 스페인까지 1인당 8파운드 요금으로 운항할 수 있다면 말레이시아에서도 똑같이 해낼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어린 시절 히스로공항에서 다짐했던 꿈을 이루기로 결심했다.”

―항공 분야는 규제 산업이라 창업이 쉽지 않았을 텐데.

“말레이시아 정부가 항공사 승인을 내주지 않았다. 음반회사에서 일할 때 친분을 쌓았던 고위 공직자를 통해 마하티르 수상과 만날 기회를 잡았다. 마하티르 수상도 신규 승인을 주지는 않았다. 오래된 비행기 2대와 빚 1100만달러가 있는 국영 항공사를 25센트에 사게만 해줬다. 당시 마하티르 수상의 이야기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당신은 항공사업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성공할 것이다’라고 그가 말했다. 결국 그 이야기가 맞았다.”

―’항공사업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성공할 것’이 어떤 의미였나.

“당시 항공업계는 거품이 잔뜩 있었다. 그들은 단순한 일도 복잡한 일로 만들고, 값싸게 처리할 수 있는 일도 비싸게 해내는 사람들이었다. 항공업계 출신들과 함께 했다면 나는 아무 일도 못했을 것이다.”

창업 10주년을 앞둔 에어아시아는 국제선 승객 수 기준으로 세계 주요 항공사 중 11위(1425만명·2009년 기준)로 평가된다. 이 순위에는 저비용 항공사와 일반 항공사가 함께 들어 있다. 저비용 항공사만 떼어내서 보면 라이언에어(아일랜드), 이지제트(영국)에 이어 세계 3위가 에어아시아(말레이시아)다. 그래서 에어아시아를 아시아 최대의 저비용 항공사라고 부른다.

에어아시아의 작년 매출은 12억2700만달러, 재작년(8억8900만달러)보다 35% 신장됐다. 같은 기간 순수입은 1억4300만달러에서 3억3000만달러로 2.3배 이상으로 확대됐다. 에어아시아 주가는 올해에만 30% 상승했다.

◆”저비용 항공이 수많은 것을 변화시킨다”

페르난데스 회장은 Weekly BIZ 인터뷰 사흘 뒤인 21일 “에어아시아와 전일본공수(ANA)가 합작 투자방식으로 저비용 항공사 ‘에어아시아 재팬’을 설립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에어아시아는 그동안 말레이시아에 본사를 두고 태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필리핀에 합작 투자법인을 세우는 방식으로 사업을 확장해 왔다. 페르난데스 회장은 “이르면 내년 한국에도 합작 투자법인 ‘에어아시아 코리아’를 설립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일 양국에 합작 투자법인을 모두 설립한 뒤 에어아시아는 한·일 왕복 노선을 신설할 계획이다. 페르난데스 회장은 “한국과 일본은 아직도 저비용 항공편이 부족하다. 저비용 항공은 수많은 것을 변화시켜 왔다. 한국과 일본에도 변화의 가능성이 엄청나다”고 했다.

―저비용 항공이 가져온 변화는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한번도 비행기를 타보지 못했던 사람들이 비행기를 자주 타게 됐다. 당일치기 해외 골프투어가 등장했다. 여행·관광업계 이외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새로운 개념들이 만들어졌다. 의료관광을 보라. 치과 진료를 위해 말레이시아로, 성형 수술을 위해 태국으로 간다. 심지어 성전환 수술을 하러 저비용 항공을 탄다. 한류(韓流)를 보라. 한국 음악(K-pop), 한국 영화를 통해 문화적 관심을 가지게 된 동남아시아 사람들이 한국을 얼마나 많이 방문하고 있나. 저비용 항공이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10년 전 에어아시아를 시작했을 때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에어아시아는 운항노선을 계속 늘리고 있다. 그만큼 새 비행기도 많이 산다. 올 6월 파리에어쇼에서 프랑스 항공기 제조업체 에어버스사(社)에 A320 Neo 기종 200대(180억달러)를 한꺼번에 주문했다. 이 주문은 이번 파리에어쇼 최대 규모이며 에어버스 역사상 세 번째 규모다.

페르난데스 회장의 별명은 ‘칭기즈칸’이다. 그는 전진을 멈출 생각이 없었다.

“새 비행기 200대로도 부족합니다. 새 항로는 얼마든지 있거든요. 한국·일본·중국·인도 시장에는 아직도 개척할 곳이 많아요. 앞으로 비행기 500대가 필요할지도 몰라요. 에어아시아는 계속 공격적으로 성장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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