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e Study] 결렬 대비한 `똘똘한 플랜B` 세운다

외교관이 기업협상에 나선다면?…대사들의 협상전략
윈-윈 상황 연출하려면 서로 밀고 당기는
댄스처럼
협상가는 타고난다기보다 체계적인 시스템속에서 커

 

지난달 31일 서울 장충동 IGM에서 열린
협상세미나에서 외교관들이 모의협상에 필요한 배트나(BATNAㆍ협상이 결렬됐을 때 사용할 수 있는 대안)를 준비하고 있다. 왼쪽부터 개발담당
이사역을 맡은 라젤 토마스 주한도미니카공화국 대사관 참사관, CFO 역의 아델 보우다 주한알제리대사관 일등서기관, 컨설턴트 역의 무함마드
알하르시 주한오만 대사, 줄리 김 IGM 연구원, 변호사 역의 프란체스코 칸니토 주한이탈리아대사관 정치담당 일등서기관. <이승환
기자>
★ 생각열기

“국제
문제에는 그 어떤 도덕성이나 이상이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이익만이 존재할 뿐이다.”

`세기의 협상가`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의 지론이다. 키신저 전 장관은 자신만의 화려한 협상기술로 국제사회를 지휘했다. 1971년 죽의 장막을 뚫고 저우언라이 당시 중국 총리를
만나 `핑퐁 외교`란 역사적인 장면을 만들어냈는가 하면 1972년 중동전쟁과 1973년 베트남전쟁에서 평화협정을 이끌어냈다. 특히 키신저 전
장관은 협상을 자기 페이스로 끌어가는 데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다. 오죽하면 국제정세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다음주엔 (국제)위기가 생겨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미 내 스케줄이 꽉 차있기 때문”이라고 답했을까.

그러나 만약 키신저 전 장관이 외교관이 아니라 기업가였으면
어땠을까. 외교관과 기업가 모두 각각 국익과 사익을 위한 각종 협상들을 펼친다. 키신저 전 장관이 외교관이 아닌 기업가였다면 특유의 협상능력을
잘살려 세계 최고의 M&A 전문가가 됐을까. 이에 대한 해답을 엿볼 수 있는 모의 협상이 최근 서울에서 열렸다.

세계경영연구원(IGM)은 최근 르완다, 아프가니스탄, 에콰도르, 오만, 온두라스, 코스타리카 등 각국의 주한 대사와 외교관들을
초청해 협상 교육을 실시했다. 외교관들에게 주어진 모의 협상 주제는 다름아닌 부동산 개발업체와 유통업체가 벌이는 임대계약 협상. 키신저 전
장관의 협상 사례들을 공부하며 친선, 영토, 교역 등 국제 협상을 주로 접했던 외교관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주제다.

그러나
외교관들은 각각 A개발, B마트 2개 업체로 나뉘어 협상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두 곳 모두 임대료, 임대기간, 전대(Sub
Leaseㆍ임차인이 제3자에게 다시 임대하는 것) 조항, 중도해지권을 두고 각사의 이익을 위한 협상에 나서야 한다.


배트나(BATNA)를 준비하라

협상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준비다. 그중 특히 중요한 개념이 바로 배트나(BATNAㆍBest
Alternative To Negotiated Agreement)다. 배트나는 협상 결렬 시 취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대안을 뜻한다. 협상
주체는 배트나를 정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강점과 약점을 동시에 파악할 수 있게 된다.

A개발은 자신들의 쇼핑몰에 대형할인점 업계
1위 B마트가 25년 이상 입점하길 원했다. B마트가 입점하면 A개발의 쇼핑몰이 초기에 정착하는데 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쇼핑몰의 인지도가
자연스레 올라갈 것이다. 그러나 A개발은 B마트와의 협상이 결렬될 것에 대비해 배트나를 준비해야 했다. A개발은 B마트 대신 F유통이라는
배트나를 갖고 있다.

업계 1위 B마트는 현재 2위 경쟁업체에게 강력한 도전을 받고 있다. B마트는 A개발 쇼핑몰에 입점해야
수도권 지역의 시장 점유율을 회복할 수 있다. 향후 5년간 수도권에서 A개발의 쇼핑몰만큼 좋은 입지 조건을 찾기 힘든 상황이다. 특히 B마트의
회장은 협상팀에게 이번 협상을 꼭 성사시키라고 특별 주문한 상황이다.

A개발은 F유통이란 배트나가 존재한다. 그러나 B마트는
`입점` 아니면 `입점 실패`의 2가지 결과만 있을 뿐 마땅한 배트나가 없는 상황이다.

전한석 IGM 협상스쿨 강사는 “강력한
배트나가 있다면 협상 상대방에게 은근히 알리는 것이 좋다”며 “반면 배트나가 약하거나 없다면 협상을 빠른 속도로 진행하거나 아니면 상대방의
배트나를 공격해 약화시키는 전략을 구사하라”고 말했다.

A개발의 개발담당 이사역을 맡은 라젤 토마스 주한 도미니카공화국 대사관
참사관은 배트나를 적극 활용했다. 토마스 참사관은 B마트를 향해 “B마트가 쇼핑몰에 들어오는 것은 B마트에게 아주 큰 기회”라며 “B마트가
들어오면 해당 지역의 상권과 함께 유통업계 1위 자릴 굳힐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별다른 배트나가 없는 B마트는 A개발 배트나의 약점을
파고 들었다. B마트의 협상책임자인 부사장 역을 맡은 유사나 베라난다 주한 태국대사관 공사참사관은 “쇼핑몰이 입점한 상권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S자동차가 중국으로 이전한다는 뉴스를 봤다”며 “S자동차가 이전하게 되면 A개발 쇼핑몰도 별 매력이 없다”고 지적했다.

◆ 협상에는 패자가 없다

흔히 협상을 두고 `샅바 싸움`을 한다는 표현을 쓴다. 그러나 이것은 협상의 본질을 간과한
표현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권상술 IGM 교수는 “협상을 승자와 패자가 갈리는 싸움으로 생각한다면 상호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윈윈(win-win) 결과를 얻어내기 어렵다”며 “협상은 서로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 서로 밀고 당기는 댄스에 가깝다”고 말했다.

외교관들의 모의 협상은 일반인들의 모의 협상과 사뭇 다른 모습을 연출했다. 협상 상대방이 강의실에 도착하기 전 엘리베이터 앞까지
마중을 나간 것. 이에 대해 권상술 교수는 “작은 차이지만 이런 행동이 긍정적인 협상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며 “협상은 싸움이
아니라 `인간관계를 맺어가는 과정`이며 이런 과정 속에서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윈윈 상황이 연출된다”고 말했다.

A개발의
CFO(최고재무책임자) 역을 맡은 아델 보우다 주한 알제리대사관 일등서기관은 `윈윈(win-win)`과 `상호적(mutualize)`이란 단어를
수차례 반복해 사용했다. 이번 협상이 한쪽이 득을 보면 다른 쪽이 손해를 보는 제로섬(zero-sum) 게임이 아니란 점을 A개발과 B마트
양쪽에 꾸준히 암시한 셈이다.

◆ 협상은 매우 체계적인 프로세스다

A개발과 B마트 양사는 1시간이란 제한된 시간
속에서 매달 고정임대료 61달러, 임대기간은 15년을 기본 계약으로 맺고 추가로 5년간 계약 기간을 연장하는 것으로 협상을 마쳤다.

B마트가 전대조항을 쓸 수 있지만 쇼핑몰 전체 임대지역의 50%까지만 가능토록 제한했다.

S자동차가 이전할 때를 대비한 중도해지권 포함 여부는 양사의 의견 대립 속에 결국 마무리짓지 못했다.

A개발
CFO역을 맡았던 보우다 주한 알제리대사관 일등서기관은 “협상 결과에 만족한다”면서 “외교 협상과 주제는 달랐지만 협상이 매우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프로세스를 수반해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B마트 CFO역을 맡은 니콜라스 트루히요 주한 에콰도르 대사도
“협상 결과에 대해 만족하는 편”이라며 “좋은 협상가는 체계적인 시스템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지 타고나는 것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차윤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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