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심사숙고형 賢者의 시대 갔다… 지금 필요한 CEO는 소통의 달인”

헤드헌팅 기업 ‘러셀 레이놀즈’ 클락 머피 회장 인터뷰
요즘 CEO에겐 복합능력 필요 – 시장 급변, 소통도 빨라야
최고 디지털 책임자 ‘CDO’ 도입하는 기업도 늘어
CEO 승계 계획 세워야 – 시장이 워낙 거칠어져서
새 사장 찾는 기간 길면 불안… 무계획 기업, 투자자도 외면
한국 임원들 충성심 높지만… 글로벌 관점 부족하고
사원·주주와 소통 잘 못해… 빠른 실행 능력은 강점

“지금 같은 변혁기에 유능한 최고 경영자(CEO)와 고위 리더의 자질은 뭘까요? 인터넷 거품 시대에서는 ‘비전’ 있는 리더를 원했고, 버블 이후에는 비용 절감과 생산 거점 이전(移轉)에 능한 사람이면 됐지요. 그러나 지금은 훨씬 더 다양한 복합 능력이 요구됩니다.”

세계적 헤드헌팅 기업인 러셀 레이놀즈(Russell Reynolds Associates Inc.)의 클락 머피(Murphy) 회장의 진단이다. 20여년간 헤드헌팅 업계에 몸담고 있는 그는 웰스파고·마스터카드·할리 데이비슨·월그린(Walgreens) 등 수십개의 상장 기업과 칼라일 그룹(Carlyle Group)·워버그 핀커스(Warburg Pincus) 같은 비(非)상장 기업의 최고 경영진 구성에 참여했다.

올 4월 러셀 레이놀즈의 회장 겸 CEO로 승진한 머피 회장은 지난달 취임 후 처음 한국을 찾았다. Weekly BIZ는 수십명의 글로벌 대기업 임원을 선발하는 과정에 직접 참여한 그를 최근 서울에서 만나 요즘 주목받는 CEO의 자질과 특성 등을 물었다.

지난달 서울 을지로 한국 지사 사무실에서 러셀 레이놀즈의 클락 머피 회장이 거울 속의 자신을 지목하고 있다. 그는 “지금 글로벌 기업은 시장 상황에 맞춰 당장 변화를 일으키고 이를 임직원과 소비자들에 전달할 수 있는 인재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1984년 미국 버지니아대학 사학과를 졸업한 머피 회장은 1988년 러셀 레이놀즈에 입사해 미주 지역 대표 등을 역임했다. / 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디지털 등 기술 이해능력과 회사 성장 경험이 가장 주목받는 CEO 요건”

―요즘 글로벌 기업 고위 임원의 필수 역량을 꼽는다면 무엇인가?

“먼저 회사를 성장시킨 경험이다. 기업의 지속적인 성장 속에서 자신을 키워온 사람은 예나 지금이나 공통적으로 선호되는 인재다. 요즘 특히 강조되는 것은 기술을 이해하는 능력과 세상의 지속적인 변화를 따라잡는 능력이다. 국제 경험도 강조된다. 이는 전 세계에서 사업을 벌이는 글로벌 기업에서는 더욱 강조된다. 여러 나라의 상황과 문화를 이해하는 능력은 이제 거의 모든 기업에 필수적인 요소가 됐다.”

―반대로 과거에는 중요했지만, 지금 덜 중시되는 자질이나 요소가 있다면?

“오랜 시간을 두고 생각하는 ‘현자(wise man)’는 요즘 시대에 환영받지 못한다.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듣고, 많은 분석을 해서, 심사숙고해서 전략을 세우는 시대는 갔다. 단언하지만 이런 사람들의 시대는 이제 갔다. 지금 필요한 인재는 적절한 때에 정확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사람이다. 과거에는 최고의 선택을 하기 위해 충분한 시간을 갖는 사람이 훌륭한 사람으로 평가됐지만, 지금 그런 사람들은 직원·시장·이사회를 불안하게 만드는 나쁜 경영자다. 변화의 파도가 밀려오는데 아무 말 없이 꼼짝하지 않고 앉아있기 때문이다.”

―기업의 리더와 인재에 대한 관점이 이렇게 바뀐 이유는 무엇인가?

“시대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모든 시장이 너무나 빠르게 바뀐다. 5개년 계획은 무의미한 시대가 됐다. 연간 계획조차 무의미해졌다. 특히 스마트폰 같은 소비자 가전제품 시장에서는 반년 계획을 세우기조차 어렵다. 이런 변화 속에서 조직을 꾸려나가려면 탁월한 운영 능력만이 아니라 ‘유연한 사고방식’이 필요하다.”

―운영능력과 유연성 이외에 최근 중시되고 있는 요소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다. 이 시대의 최고 경영자에게는 ‘어마어마하게 뛰어난 커뮤니케이션 능력(beyond extraordinary communication skill)’이 필요하다. 세상이 너무나 빠르게 바뀌고, 그에 따라 비즈니스 모델, 조직 운영 역시 빠르게 바뀐다. CEO는 이를 이사회·주주·직원·고객에게 설명해야 한다. 블랙베리로 유명한 캐나다 스마트폰 제조업체 리서치인모션(RIM)의 CEO는 여기서 실패했다. 블랙베리가 왜 애플의 아이폰이나 삼성의 갤럭시보다 좋은지 설명하지 못한 것이다. 소비자와 개발자가 왜 차세대 블랙베리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설득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RIM은 침몰하기 시작했고, CEO가 교체됐다.”

―요즘 같은 시기에 CEO에게 특별히 더 요구되는 자질이 있다면.

“온 세상이 디지털(digital)로 탈바꿈한다는 현실을 감당하고 능숙하게 대응할 수 있는 게 매우 중요하다. 몇 년 전만 해도 ‘디지털화(digitalization)’는 인터넷기업·영화·음반사·전자제품 회사만의 문제였다. 하지만 이제는 소비재 기업·증권·보험사·언론사 등 디지털과 무관할 거 같은 조직들까지 강력한 이 파도에 휩쓸리고 있다. 디지털은 모든 생산공정을 바꾸고 고객 응대 과정과 존립 기반을 뒤흔들고 있다. 이 때문에 최근 미국에서는 ‘최고 디지털 책임자(CDO·Chief Digital Officer)’ 제도를 도입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CDO의 특화된 업무는 무엇인가?

“‘최고 디지털 책임자’들은 회사 안의 디지털화 관련 업무를 담당할 뿐만 아니라 이사회 의사 결정 과정에도 참여한다. 이들은 보수적이고 기술에 무지한 이사들에게 디지털과 인터넷을 가르친다. 세상의 디지털 전환이 무척 빠르게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이를 수용해 창조적으로 변용하기 위한 조치다. 예전에는 일반 회사 이사회에 디지털 담당 이사가 있었다면 놀라운 일이었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매우 당연한 일이 됐다.”

“내부 고위직 승진 컨설팅도 유행, ‘승계 계획’ 마련은 이제 필수 업무”

머피 회장은 글로벌 헤드헌팅 업계의 최근 흐름으로 두 가지를 꼽았다. 외부에서 CEO 등 최고위 임원 영입이 늘어나는 게 첫째이고, 내부 고위 임원 승진·육성 관련 컨설팅 증가가 둘째라는 것이다. 과거에는 권력 누수를 우려해 CEO가 퇴직을 공식 발표하기 직전까지 차기 CEO를 비밀로 했다면, 후계자를 미리 정해놓고 능력을 키우는 ‘승계 계획(succession plan)’이 필수 업무로 정착되고 있다는 것이다.

―왜 ‘승계 계획’의 중요성이 커졌는가?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이 그만큼 높아졌기 때문이다. 2009년만 해도 미국 내 500대 기업 중 14%만 CEO 승계 계획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보다 훨씬 많은 기업이 CEO 승계 계획을 마련해 놓고 있다. 이런 변화의 가장 큰 이유는 시장이 그만큼 ‘거칠어(tough)’졌기 때문이다. 이제 기업들은 한 CEO가 물러나고 다음 CEO를 찾는 기간의 불안정한 상황을 버틸 여유가 없어졌다. 전임 CEO가 물러나면 다음 CEO가 곧장 본궤도에 올라야 한다. 또 다른 이유는 연금이나 펀드 같은 장기 투자자들 때문이다. 이들은 많은 돈을 투자하는 만큼, 최대한 위험(risk)을 줄이고자 한다. CEO 승계 계획이 없는 회사에는 ‘CEO 위험 요소’가 있다. ‘이 회사 주식을 사도 될까’ 하는 의구심을 해결하기 위해 승계 계획을 마련해 공개하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승계 계획에 따른 내부 승진이 많아지면 러셀레이놀즈 같은 헤드헌팅 기업의 비즈니스는 타격받지 않나?

“아니다. 최근 5년 동안 우리가 외부 인사 영입만큼 많이 한 일이 ‘내부 CEO 후보 유출 방지’였다. 우리는 무조건 외부 인사를 데려다가 앉히려고 하지 않는다. 내·외부를 모두 둘러보고 그 회사에 최적합한 인물을 찾는다. 어떤 CEO 후보를 추천할 때도 ‘무조건 이 사람을 쓰라’고 하지 않는다. ‘이 사람은 이런 장단점이 있으니 이 부분은 살리고 이 부분은 이렇게 보완하라’고 충고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 사업을 ‘영입(recruit)’이 아니라 ‘리더십 및 후계(leadership & succession) 비즈니스’라고 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식으로 인력 유출을 막고, 어떻게 승계 계획을 짜는가?

“실제 승계 상황에서는 무척 많은 시나리오를 준비해야 한다. 예컨대 CEO 후보군(群)이 너무 젊은 경우에는 ‘징검다리 CEO’를 두는 방법도 있다. 55~59세의 CEO를 뽑는데, 이 사람의 임무는 당장 신사업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다. 다음 CEO를 준비시키는 것이다. 이 회사에 5~10년 안에 CEO가 될 만한 인재가 10명이 있다고 가정하면, 이 CEO가 물러날 즈음에는 5~7명쯤 후보가 남는다. 이 가운데 진짜 CEO를 뽑는 식이다. 또 다른 방법은 최고 운영책임자(COO), 즉 2인자를 뽑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결정은 CEO가 내리더라도, 주요 M&A·전략 변화 등을 2인자가 주도하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방법의 단점은 2인자가 되지 못한 주요 인재들이 ‘나는 CEO가 못 되겠구나’ 하고 회사를 떠나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모든 후보가 ‘나도 CEO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도록 한다. 인재 유지에 매우 중요한 전략이다.”

러셀레이놀즈의 헤드헌팅은 고객사의 요청 이전부터 시작한다. 머피 회장은 “최고위 임원 역시 개인사나 건강 문제로 급격히 바뀔 수 있기 때문에 미리 인재풀(pool)을 만들어 둔다”고 했다. 특정 회사의 장단점과 조직 문화, 미래 사업 계획 등을 고려해 회사의 특정 포지션에 맞을 만한 인물을 미리 파악해 둔다는 것이다.

“한국 임원들, 충성심은 높지만 원활한 소통에는 한계점”

머피 회장은 그가 접해본 한국 국적의 고위 임원들에 대해 “전반적으로 회사에 대해 매우 충성심이 깊고 장기적으로 조직의 이익을 따질 줄 안다”고 평가했다. 이직(離職)이 잦고 분기 단위로 평가받는 서구권에서는 찾기 어려운 장점이란 것이다.

―왜 한국 임원들이 이런 장점을 갖고 있는가?

“조직 문화의 차이다. 한국인들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업을 판단한다. 그리고 한번 결정이 내려지면 최단 기간 내 실행하도록 훈련받았다. 조직에 대한 충성심은 글로벌 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고용 문화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 물론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글로벌 관점이 부족하다든지, 사원이나 주주와 커뮤니케이션을 잘 하지 않으려 하는 문제점도 있다.”

―글로벌 기업에 도전하고자 하는 한국 고위 임원들에게 충고한다면?

“한국인 임원들의 가장 중요한 자산은 충성심(loyalty)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보상으로 회사가 제공하는 것은 안정성이다. 이는 동전의 양면이다. 글로벌 기업으로 옮긴다면 다시는 한국과 같은 안정적인 직장을 갖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기회가 열린다. 더 큰 시장을 상대로 사업을 할 수 있고 다양한 문화를 경험할 수 있다. 금전적인 보상은 물론이고 기업가로서 더 큰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된다. 스스로 모험을 짊어질 각오가 됐다면, 한국 바깥에서 기회를 찾아보기를 권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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