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의 8대 딜레마’ 대충 넘기면 망한다

10년간 창업기업 3600개 연구… 와서만 하버드대 교수
“가족·친구와 창업하는 건 불장난… 최적의 파트너는 옛 직장동료”
권력 틀어쥐려 할수록 성장은 더 느려지고 부자 되는 길 멀어져
불황기는 창업의 기회… 투자자 기대 높지 않고 고급 인력 구하기 쉬워
왜 옛 직장동료가 좋은가- 적당한 위계질서 있어 안정적 관계
장단점 잘 알고 열정 공유도 쉬워
그래도 가족·친구와 하겠다면- 문제 만들면 불이익 주기로 계약을
객관적인 중간 책임자 두는 방법도
지분 나누고 지배력 약화 감수하라- 일정 규모 성장 땐 CEO서 물러나야
너무 일찍 투자 유치하면 조건 나빠

“불황기는 창업에 좋은 기회이다. 창업가는 위기의식으로 무장해 있고 투자자들의 기대수준은 높지 않고 우수한 인력도 저렴하게 구할 수 있다.”

소비가 급감하고 기업들이 투자를 망설이며 경제 전반이 꽁꽁 얼어붙은 요즘 창업은 확실히 큰 도전이다. 하지만 잘만 하면 성공의 열매를 맛볼 수도 있다. 내로라하는 상당수 글로벌 기업들도 어려운 시기에 잉태했다.

2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이어진 대공황 때 창업한 모건스탠리·휴렛팻커드(HP)·버거킹·크리스피크림 도넛 등과 1973~75년 오일쇼크로 인한 경기 침체기에 탄생한 마이크로소프트(MS)·페덱스·사우스웨스트항공 등이 대표적이다.

글로벌 창업 열기가 다시 뜨겁다. 미국의 경우 지난해 총 경제활동 인구 중 12%가 신규 창업해 2005년 이후 가장 높았다. 한국에서도 올해 10월 말까지 신설 법인이 6만2000개로 2004년(4만8000개) 이후 꾸준히 늘었다. 지난해 20개 선진국 가운데 창업자 수는 16개국에서 증가했다(미국 기업가 조사기관 ‘GEM’).

성공률은 그러나 ‘낙타의 바늘구멍 통과’와 비슷하다. 미국 창업 기업의 25%는 1년 내 사라지고 5년 후에는 45%만 생존한다. 한국에서도 10년을 버티는 기업은 30% 남짓하다.

무엇이 창업가들의 발목을 잡는 걸까? 많은 전문가가 이런 의문을 품었지만 대부분 개별 사례나 에피소드 연구에 머물렀다. 노암 와서만(Noam Wasserman·43) 하버드대 경영대학원(HBS) 교수는 더 실증적이고 체계적으로 접근한 ‘기업가학(企業家學)’의 세계적인 권위자이다.

그는 IT·생명과학 분야를 중심으로 2000년부터 2009년까지 10년간 창업한 3600개 기업(start-up)의 창업가 1만9000명에 관한 자료를 모으고 이 중 300명을 만났다. 트위터의 창업자인 에번 윌리엄스(Williams) 같은 중요 창업가 36명은 심층 인터뷰했다. 이런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창업가의 딜레마(Founder’s Dilemmas)’라는 MBA 과목을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에 개설해 놓고 있는 그는 2010년 이 강좌로 HBS 우수 교수상(Faculty Teaching Award)을 받았다.

와서만 교수는 창업가와 벤처캐피털리스트로도 직접 활동해 실전 감각을 겸비한 현장형(現場型) 전문가다. 대학 졸업 후 소프트웨어 기업을 세워서 3년 6개월 동안 운영했다. 그는 당시 직원을 19명으로 늘릴 때까지 인사·재무권 등을 모두 장악하고 중앙집권적 경영을 했다. 그가 학업을 위해 회사를 떠나자 핵심 인력들의 대거 이탈로 기업은 반년 만에 와해됐다.

“회사를 ‘내가 꼭 장악하겠다’는 ‘열정’이 화근이었어요. 창업가가 권력의 고삐를 잡으려 할수록 성장은 느려지고 부자가 되는 길은 멀어진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위기의식이나 열정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 오히려 자신의 지나친 열정을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 노암 와서만 교수의 지론은 “창업가는 자기가 세운 회사라고 해도 그 안에서 권력을 독점하지 않고 분산해야 기업을 더 크게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최고의 ‘기업가학’ 강좌인 ‘창업가의 딜레마’를 진행하고 있는 그는 펜실베이니아대 컴퓨터공학과 졸업 후 창업가와 벤처캐피털리스트로 현장에서 활동하다가 하버드대에서 MBA와 박사학위를 받았다./보스턴=류정 기자

와서만 교수는 “창업은 100m 달리기를 반복하는 마라톤 경주와 같다”고 말한다. 전환점마다 숨을 고르며 새로운 시작을 반복해야 하지만, 모든 과정을 전속력으로 달려야 하는 피 말리는 게임이라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창업가의 8가지 딜레마’는 언제 누구와 창업을 하느냐부터 직원을 채용과 보상, CEO 퇴진 시점까지 단계별로 창업가가 선택에 갈림길에 서게 되는 8차례의 변곡점을 일컫는다.

“한 예로 가족이나 예전 직장동료, 외부 전문가 중 누구와 창업하느냐에 회사의 미래 모습과 성장 가능성이 크게 달라집니다. 저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가족이나 친구들과 창업했다가는 소중한 사람과 회사를 모두 잃을 위험이 훨씬 높아요.”

8개의 딜레마적 상황을 해결하는 열쇠는 결국 ‘부’와 ‘권력’ 두 개를 모두 창업자가 손에 넣을 수 없으며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것이라고 와서만 교수는 말한다.

“창업가가 가진 자원의 한계가 너무 분명하기 때문에 창업가는 하나를 포기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버틴다면 그 기업은 반드시 정체되거나 쇠락할 것입니다.”

‘글로벌 창업 시대’에 성공적인 안착과 번영을 위해 기업가는 언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나?

Weekly BIZ가 지난달 와서만 교수를 하버드대 연구실에서 만났다.

“가족이나 친구와 창업하는 것은 불장난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소중한 사람들과 회사, 모두 잃고 싶지 않다면 다시 생각해 보세요.”

트위터 창업자인 에번 윌리엄스는 1990년대 중반 여자 친구와 함께 블로거(blogger)를 창업했다. 그러나 그와 경영권 갈등을 겪으며 여자 친구는 물론 여자 친구가 영입한 직원들까지 모두 잃었다. 존 록펠러는 “사업 위에 세워진 우정은 찬란할 수 있지만, 우정 위에 세워진 사업은 흉기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노암 와서만(Wasserman) 교수가 13년 동안 3600여개의 창업 기업을 연구한 다음 내린 결론도 똑같았다.

“가족과의 창업은 회사 지배권을 사적(私的)으로 통제하고 싶어하는 선택이죠. 그런데 한 가문에서 훌륭한 기업가가 몇명씩이나 나올 확률이 얼마나 될까요? 외부 전문가와 창업하는 것에 비해 회사 가치가 높아질 가능성이 작을 수밖에 없습니다.”

창업가는 ‘누구와 창업하느냐’부터 현명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창업 무대가 전쟁터라면, 대다수의 부상자나 사망자는 아군(我軍)이 야기했다”며 “창업기업이 맞닥뜨리는 미래의 불행은 대부분 창업 초기, 창업팀 내부에 내재돼 있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최적의 창업 동지는 예전 직장동료이다”

―창업가가 회사를 차릴 때, 최적의 타이밍을 어떻게 알 수 있나?

“창업 시기에 고려할 것은 크게 3가지다. 첫째, 인맥·경험·투자금 같은 내 자본이 얼마나 쌓였느냐, 둘째, 내 아이디어에 시장이 호응할 것인가, 셋째 가족 부양 같은 개인적 걸림돌은 없느냐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디어와 타이밍이다. 부족한 자본은 동업자나 투자자를 통해 메울 수 있다. 창업 성공에 대한 의지가 있다면 때를 놓쳐선 안 된다. 회사에서 지위가 크게 올라 고액연봉을 받는 ‘황금 수갑’을 차게 되면, 창업 의지가 사라질 수 있다. 창업을 하려면 수갑을 차기 전에 해야 한다.”

―가족이나 친구는 신뢰가 돈독하고 창업에 강한 열정을 보일 수 있다. 왜 가족과의 창업을 극구 말리는가?

“음식점이나 카페 같은 소규모 창업이라면 말리지 않는다. 하지만 벤처 창업, 기술 창업에선 얘기가 다르다. 가족이나 친구에겐 민감한 얘기를 잘 못해 회사를 곤경에 빠뜨릴 가능성이 크다. 동생에게 회사 재무를 맡겼는데 생각보다 성과를 잘 내지 못한다고 치자. 더 잘하라고 말하기 껄끄러울 수 있다. 나중에 해고하고 싶어도 못한다. 중요한 결정을 방치할 수도 있다. 가족과 회사 모두 잃는 ‘재앙’이 될 수 있다.”

―가족이나 친구와 뜻이 워낙 잘 맞아 굳이 창업하겠다면?

“불장난이 재앙이 되지 않게 방화벽을 쌓아라. 그리고 방 안의 코끼리(누구나 볼 수 있는데도 모른 척하는 문제들)를 방치하지 마라. 창업팀 중 누군가 어떤 문제를 야기했을 때 징벌할 수 있다든지, 지분을 조정할 수 있다든지 하는 조건을 마련해야 한다. 민감한 문제라도 공론화시켜 토론하고 해결하라. 가족에게 직접 보고를 받지 않고, 객관적인 중간 책임자를 두는 것도 방법이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과 창업해야 하나?

“과거 직장동료와 창업하는 것이 가장 안정적이다. 그들은 서로 장단점을 잘 알고, 적당한 위계질서가 있으며, 공동의 목표를 향한 열정도 공유하기 쉽다. 잘 모르던 사람도 창업에 필요한 전문가라면 가족이나 친구보다 낫다. 이들은 회사를 냉철하게 이끌 가능성이 크다.”

☞창업가의 8대 딜레마

▲ ‘기업가학’의 권위자 노암 와서만 하버드경영대학원 교수는 “창업가가 회사를 크게 키우고 싶다면, 지나친 낙관이나 본능, 열정에 의존해 큰 고민 없이 내리는 결정을 가장 경계해야 한다”며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서 미래의 청사진을 그려보면서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자료=The Founder’s Dilemmas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그래픽 뉴스로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조선닷컴

◇“섣부른 주식 배분이 팀 해체를 부른다”

와서만 교수는 창업 초기, 멤버들과의 역할 조정과 주식 배분 방법이 성공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의 연구 결과 3600개의 창업 기업 가운데 73%가 창업 한달 안에 주식 배분을 끝낸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지분을 그렇게 서둘러 단순하게 나눠버리면 나중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했다.

―창업 초기에 멤버들과 지분을 비슷하게 나누는 게 일반적이지 않나?

“대부분 50대50, 아니면 3분의 1씩 균등 분배한다. 문제는 시간이 갈수록 창업 멤버들 간 성과와 기여도에 차이가 생긴다는 것이다. 불평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든다면?

“2007년 가상 주식투자 사이트인 업다운(UpDown)을 창업한 라이히는 공동창업자들과 주식을 동등하게 나눴다. 그러나 갈수록 그는 혼자 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인은 휴가도 포기하고 회사 일에 전력투구했지만, 다른 창업자들은 휴가를 즐기며 사업을 부업처럼 여겼다. 결국 이들은 주식을 다시 분배했다. 대부분의 경우 이 과정에서 갈등을 겪으며 팀 해체까지 이를 수 있다.”

―외부에서 자금을 조달하면 주식을 투자자와 나눠야 한다. 이때 지배력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투자도 잘 유치하는 방법은?

“투자자를 끌어들이는 타이밍이 핵심이다. 협상에서 최대한 유리한 위치에 있어야 한다. 갓 창업했을 때는 가시적인 성과가 나올지 불확실하므로 불리하다. 기술력과 판매망, 고객을 확보해놓고 꾸준한 현금흐름 창출이 가능한 기반을 어느 정도 마련해 놓은 다음이 유리하다. 회사 가치를 높이려면 지배력이 일정 부분 약화되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지배력을 유지하려고 이해관계가 없는 가족에게 손을 벌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돈은 경영 긴장감을 떨어뜨리고 그들과의 관계에도 해가 된다.”

◇“박수 칠 때 CEO 자리에서 물러나라”

―당신은 회사가 성장한 뒤에도 창업가가 CEO를 계속 맡는 데 대해 부정적이다. 왜 그런가?

“완벽한 창업가는 없다. 회사가 일정 규모 이상 성장하면 창업가가 가진 자원은 한계에 달한다. 투자자, 외부 전문가 등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창업가가 완벽한 CEO 자질을 갖춘 경우도 드물다.”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는 대기업의 인수 제안을 거절하고 페이스북을 더 크게 키웠고, 억만장자가 된 뒤에도 CEO를 계속 맡고 있지 않나?

“저커버그의 성과는 뛰어났다. 그러나 IPO(주식상장) 이후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그가 왕좌 자리를 계속 지키는 것을 투자자들이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거 야후도 비슷한 과정을 겪었다. 창업자인 제리 양이 회사의 모든 역할을 장악하려 하자, 주가는 내리막길을 걸었다. 그가 물러나자 주가가 6개월만에 50% 상승했다. 이는 분명 창업가들이 의미 있게 새겨야 하는 부분이다.”

―한국은 회사가 성장하면 매각해 차익을 남기는 창업가를 ‘기업가 정신이 부족하다’고 매도하는 경향이 있다. 끝까지 기업을 지키는 창업가를 더 높게 평가한다.

“창업가에 따라 창업 당시의 비전과 그에 대한 헌신이 더 중요하다고 여길 수 있다. 그러나 내 연구 결과는 그럴 경우 회사 성장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회사를 크게 키워 매각이나 IPO로 이익을 낸 다음, 또 다른 창업으로 혁신을 일으키거나 다른 청년 창업가들에게 투자하는 것도 매력적이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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