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 놓친 제록스 – 획기적 PC 개발했지만 상용화엔 관심없어… 스티브 잡스에 아이디어 뺏겨
소비자가 원하는 기술에 투자를 – 단순히 기술 개발에만 몰두… 수익 떨어지는 경우 많아
디지털 인재확보가 우선 – 개미형 인재는 아날로그 시대, 거미줄 쳐놓고 먹이 기다리는 창의적인 거미형 인재가 중요
복사기 회사로 유명한 제록스는 1970년대에 미국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 중 하나였다. 특히 제록스가 자랑하는 팔로알토연구소(PARC)는 최고의 엔지니어와 프로그래머가 모인 기술력의 상징이었다. 키보드가 아닌 마우스로 조작하는 획기적인 개인용 컴퓨터(PC) ‘알토’ 역시 이 연구소에서 탄생했다. 하지만 프린터를 주력제품으로 삼고 있던 제록스는 PC의 상용화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당시 이 기술을 눈여겨본 사람이 있었다. 바로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였다. 며칠간 제록스의 연구소를 꼼꼼히 견학한 잡스는 애플로 돌아와 알토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얻어 매킨토시 컴퓨터를 세상에 내놨다. 나중에 잡스는 “기회가 왔음을 알고 있었다면 제록스는 IBM에 마이크로소프트를 합친 회사가 됐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세계 최고의 하이테크 기업이 될 수도 있었던 제록스에게 부족했던 것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기술경영(man- agement of technology)이었다. 기술경영이란 어떤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 어떻게 시장에 내놓을 것인지, 그와 관련한 기술은 어떻게 개발하거나 확보할 것인지 등을 종합적으로 결정하는 기업 경영상의 의사결정 과정을 말한다.
기술경영은 때로는 기업의 존폐를 결정하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아날로그 필름 시대의 최강자였던 코닥은 1970년대에 세계 최초로 디지털 카메라를 만들고 디지털 이미지 처리와 관련한 핵심 특허를 잇따라 개발했다. 기술력은 충분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코닥은 디지털 카메라가 기존의 주력산업이던 아날로그 필름 시장을 잠식할 수 있다는 공포감에 상업화에 미온적이었고, 이는 결국 디지털 시대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도태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러한 기술경영의 중요성은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비즈니스 환경이 복잡해지면서 더욱 커지고 있다.
◇돈 되는 기술에 투자하라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제대로 된 기술경영을 할 수 있을까. 가장 중요한 것은 ‘돈 되는 연구개발에 투자하라’는 것이다. 연구 현장에서는 소비자가 원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게 아니라 단순히 기술을 개발하는 데에만 몰두해 투자한 것에 비해 수익을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또는 연구과제들을 백화점식으로 나열한 나머지 선택과 집중이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결국 기업차원에서 무엇을 연구개발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단계에서 많은 시간을 들여 깊이 고민하며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
연구소에서 기술을 개발하는 연구원들 역시 ‘내 돈이라면 지금 하고 있는 과제에 투자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져볼 필요가 있다. 내 돈이라고 생각하면 과연 시장성이 있을지, 어떻게 하면 더 빠르고 더 좋게 만들 수 있을지 좀 더 적극적이고 창의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지금 당장 실행해보면 다소 의외의, 놀라운 결과들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거미형 인재를 확보하라
제대로 된 기술경영을 하려면 ‘열심히 하는’ 연구개발이 아니라 ‘경쟁에서 이기는’ 연구개발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제대로 된 인적자원을 보유하고 연구개발 조직을 재구성하는 것이 필수다. 이는 열 명이 한 달을 해도 못 푸는 문제를 한 사람이 일주일 만에 해결할 수 있는 연구개발의 특성 때문이다.
또 제대로 된 인적자원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개방적인 혁신(open innovation) 관점에서 내부 인력 활용은 물론 국내외 연구기관, 국내외 기업과의 제휴, 더 나아가 인수·합병 등 포괄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 우리 기업에 부족한 연구개발역량이 어느 부분인지를 명확히 따져보는 절차가 선행돼야 한다.
인적자원 확보에서 유념해야 할 또 한가지는 개미형 인재보다는 거미형 인재를 확보하라는 것이다. 근면과 성실로 무장한 ‘아날로그형’ 개미형 인재는 근대 산업사회의 상징이었다. 반면, 개성·창의력·스피드로 무장한 거미형 인재는 미리 거미줄을 쳐놓고 먹이를 기다리는 디지털 인재다. 우수한 핵심 연구개발 인력을 충분히 확보하고 기업의 비전을 이끌 전략적인 연구개발에 집중한다면 기업의 미래 먹거리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