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 MBA] 수치심이 혁신을 죽인다

사랑을 잘 하는 사람과 혁신적인 기업가의 본질은 똑같다. 이 말에 당신은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는 반응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브리네 브라운 미국 휴스턴대학교 연구교수의 생각은 다르다. 그에게 사랑과 혁신의 본질은 같다. 브라운 교수의 속 깊은 얘기를 듣기에 앞서 서툰 사랑과 서툰 혁신의 사례를 들여다보자.

# 프랑스 영화 ‘사랑한다면 이들처럼’의 결말은 이렇다. 폭우가 치던 날, 여주인공 마틸드는 남편과 격렬한 사랑을 나눈다. 그 직후 마틸드는 강으로 내달린다. 강물 아래로 몸을 던져 자살한다. 그녀가 남편에게 남긴 유서의 내용은 이랬다. ‘사랑하는 이에게. 불행이 오기 전에 갑니다. 당신이 선물한 내 삶의 절정에서 떠납니다.’ 마틸드에게 불행은 남편과의 이별이다. 미래에 이별할지 모른다는 불확실성과 위험 때문에 불안해 한다. 이별로 상처받을까 겁을 낸다. 그래서 사랑의 절정에서 죽음을 선택한다. 죽는다면 불안해하거나 상처받을 일도 없다.

# 만화 ‘미생’에 나오는 한 에피소드다. 종합상사에는 기획단계에서 보류된 사업 아이디어들이 많다. 신입사원 안영이는 이 중에서 혁신적이거나 쓸 만한 아이디어들을 발견한다. ‘그런데도 보류된 이유가 무엇일까’ 안영이는 그 까닭을 탐문한다. 그녀가 내린 결론은 이랬다. “(사업 아이디어를 담은) 기획서는 쓰지만 (채택이) 되면 어떡하지? 실패한다면 그 책임을 내가 져야 하는데…기획서를 충실히 쓰는 데서 만족하고 그 이상의 노력을 안 하는 ‘사업놀이’를 하고 있더라고요.” 기획서를 쓰는 직원들의 심리 상태는 마틸드와 매우 흡사하다. 마틸드가 이별이라는 불확실성과 위험을 두려워하듯이 직원들은 자신의 아디디어가 실패할 수 있다는 불확실성과 위험이 두렵다. 실패로 마음에 상처를 입을까 겁이 난다.

이에 대한 마틸드와 상사 직원들의 대처 방식은 사실상 똑같다. 마틸드는 자살을 선택해 더 이상의 사랑을 포기한다. 직원들은 기획서만 쓸 뿐 자신의 아이디어가 채택되는 것을 포기한다. 덕분에 마틸드와 상사 직원들은 미래의 불확실성과 위험에 상처를 받지 않게 됐다.

그러나 그 결과는 참담하다. 사랑은 자살로 끝났고 아이디어는 휴지조각이 됐다. 그 이유는 마틸드와 상사 직원들이 마음에 상처를 입고 싶어하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인간이 마음에 상처를 입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브라운 교수는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는 매일경제 MBA팀과의 인터뷰에서 “‘상처 입기 쉬운 마음(vulnerability)’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감정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인간은 상처를 입지 않기 위해 마음에 갑옷을 걸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과 사랑을 이어가지 못하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내놓지 못하게 되는 것이죠.” 마틸드와 종합상사 직원들이 딱 그런 모습이다.

그렇다면 사랑과 혁신에 능한 사람들은 상처 입기 쉬운 마음을 어떻게 다룰까.
“그 마음을 온전히 포용합니다. 마음에 상처를 줄 수 있는 요인(불확실성ㆍ위험)들이 그들의 삶을 아름답게 만든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먼저 용기를 냅니다. 사랑하는 이에게 다가가 먼저 ‘당신을 사랑해요’라고 말합니다. (대가에 대해) 아무런 보장이 없는 일도 기꺼히 합니다. 실패할 수 있는 관계에도 기꺼히 투자를 하죠.”(브라운 교수의 TED 강연에서) 브라운 교수는 “상처 입기 쉬운 마음을 회피하지 않고 포용한다면 기꺼이 새로운 것들을 시도하고 실패의 위험을 질 것이며, 속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를 통해 인간은 사랑과 소속감을 바탕으로 타인과 연결될 수 있으며 창조와 혁신을 추구할 수 있게 된다. 상처 입기 쉬운 마음이야말로 창조와 혁신, 기쁨ㆍ사랑ㆍ소속감ㆍ신뢰의 발생지”라고 지적한다.

다음은 브라운 교수와의 일문일답이다.
-당신은 상처 입기 쉬운 마음으로 행동하라고 말한다. 무슨 뜻인가.
“더욱 뜻깊은 관계를 경험하려면 상처 입기 쉬운 마음을 바탕으로 관계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려면 상처 입기 쉬운 마음을 나약함으로 인식하는 신화에서 벗어나야 한다. 상처 입기 쉬운 마음은 약점이 아니라 용기다.” -상처 입기 쉬운 마음의 뜻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육체적ㆍ정서적으로 상처 입기 쉽다는 뜻이다. 그러나 당신은 불확실성, 위험, 감정의 노출이라고 정의한다. 사전의 정의와 달라 보인다.

“두 가지 정의는 매우 비슷하다. 불확실성 등에 직면하면 우리의 마음은 불안을 느낀다. 그 결과, 상처 입기 쉬운 상태가 된다. 누군가로부터 평가나 조롱을 받을 때가 그런 경우다.(평가 결과의 불확실성에 우리는 불안감을 느끼고 마음이 취약해진다) 우리는 상처를 입지 않기 위해 상황을 통제하려 들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스스로를 격리시킨다.”

#불안감은 피할 수 없어…용기가 필요 -상처 입기 쉬운 마음의 3요소인 불확실성ㆍ위험ㆍ감정의 노출 상황에서 불안감(discomfort)은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렇다. 상처 입기 쉬운 마음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그 마음을 온전히 포용하는 사람들도 편하다고 얘기하지 않는다. 불안하지만 필요한 감정이다.” -불안감을 피할 수 없다면 그 느낌을 이겨내는 용기는 꼭 필요할 것 같다. 사랑 고백에는 거절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이겨내는 용기가 필요하듯이 말이다. 상처 입기 쉬운 마음의 힘을 다룬 당신의 책 제목이 ‘위대하게 맞서는 용기'(Daring Greatly)인 것도 용기를 강조하기 위해서인가.

“내 책 제목은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이 1910년 프랑스 소르본느 대학교에서 했던 연설에서 따왔다. 그의 연설 내용은 이렇다.

“비평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강한 사람이 어떻게 비틀거렸는지, 일을 마무리한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잘할 수 있었는지 지적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모든 칭찬은 실제 경기장에 서 있는 사람이 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는 먼지와 피땀으로 얼굴이 범벅된 사람입니다. (중략) 그는 위대한 열정으로 대의를 위해 몸을 바칩니다. 잘 되면 승리를 맛보겠지만, 실패한다 해도 ‘위대하게 맞서는 용기’를 내며 실패할 것입니다.” 이 구절은 상처 입기 쉬운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 내가 지난 10년간 ‘상처 입기 쉬운 마음’을 연구해 배운 교훈을 정확하게 집어내고 있다. 상처 입기 쉬운 마음은 승리나 실패를 얘기하는 게 아니다. (실패한다고 해도) 전심을 다해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용기, 업무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용기에 대한 얘기다.

#”나는 충분해” 마인드 가져야 상처 입기 쉬운 마음에 필요한 용기를 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나는 부족하다’는 마인드에 바탕을 둔 수치심 때문이라는 게 브라운 교수의 설명이다.

나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내놓기에는 충분하지 않아, 나는 누군가의 사랑을 받기에는 충분치 않아 등의 생각 때문에 용기를 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당신은 ‘나는 충분해’라는 마인드를 가지라고 말한다.
“우리는 결핍(scarcity)의 문화에 살고 있다. 사람들은 ‘결코 충분하지 않다'(never-enough)는 잘못된 생각 속에 빠져 살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풍요’나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더욱 많이 가지는 것’이 답이 될 수는 없다. 정답은 ‘나는 충분해’라는 마인드다. 그래야만 ‘나는 (사랑을 받을 가치가 있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추진할)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믿게 된다. 덕분에 불확실성과 위험, 감정적 노출을 포용하는 용기를 낼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나는 부족해’라는 생각에 시달린다.

“그렇게 믿게 되면 우리는 두려움 속에서 살게 된다. 상처 입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보호하려고 한다. 루스벨트 대통령이 말한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려고 한다. 물론 경기장 안에서 우리는 관계를 맺는데 실패할 수도 있고, 혁신의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 그러나 실패는 얼마든지 회복할 수 있다. 두려움 속에 갇혀 당신의 시간과 재능을 낭비하지 말라.”

#수치심은 비밀스러운 살인자 -수치심은 혁신을 죽이는 비밀스러운 살인자라고 당신은 말하는데 왜 그런가.

“실패와 위험은 혁신의 동반자다. 실패를 너무 두려워하게 되면 혁신을 멈출 수밖에 없다. 수치심은 두려움으로 연결되고 두려움은 위험 회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위험회피는 혁신을 죽인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험하려고 할 때 우리 머릿속에는 이런 생각들이 떠오른다.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나는 어떻게 평가될까’ ‘그들은 나를 저평가할 것 같아’ ‘나는 비웃음을 살 수도 있어’ 등이다. 수치심을 낳는 이런 생각들은 우리를 마비시켜 새로운 아이디어를 시도하지 못하게 한다.

-상처 입기 쉬운 마음은 혁신에 어떤 역할을 하나.
“상처 입기 쉬운 마음을 포용하면 우리는 용기를 낼 수 있다. 덕분에 이런 마인드를 가질 수 있다. ‘이 일은 실패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시도해볼 거야. 실패한다고 해도 실수로부터 배울 수 있잖아. 덕분에 나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어. 사업이나 아이디어가 실패한다고 해서 내가 실패자라는 뜻은 아니야. 왜냐하면 나는 혁신가니까.'” -기업가 정신에도 상처 입기 쉬운 마음이 필요한가.

“그렇다. 위험ㆍ불확실성 없이 성공적인 기업가가 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수치심을 경영에 활용 말아야 브라운 교수는 “많은 기업과 관리자들이 직원들을 관리하는 데 수치심을 활용하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고 강조한다. 부하 직원을 괴롭히거나, 동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모욕을 주는 행위, 소수 직원에게 과도한 보너스를 지급해 대부분의 직원들이 모욕감을 느끼는 경우 등이 대표적이다.

-수치심을 관리 도구로 활용해서는 직원들의 업무 몰입도를 높일 수 없다고 말한다. 이유는 무엇인가.

“직원들은 마음에 상처를 입지 않기 위해 스스로 보호책을 강구한다. 아예 업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게 대표적이다. 아이디어를 내지도 않고, 새로운 사업도 추진하지 않게 된다. 그렇게 되면 (아이디어와 신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여러 문제점과 갈등으로) 마음에 상처를 입을 일도 없어진다. 이런 불참 행위(disengagement)는 거짓말, 훔치기, 속이기 등 모든 비윤리적인 행동을 합리화한다.

-수치심을 활용하는 회사에는 어떤 징후가 나타나는가.
“남들을 탓하고 손가락질을 하는 증상이 대표적이다. 문제의 잘못을 내가 아닌 남으로 돌리면 나는 고통과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을 탓하는 것은 전혀 생산적이지 못하다. 이 같은 증상이 당신의 기업문화에서 자주 보인다면 수치심을 중요한 이슈로서 다루어야 한다.” -보너스와 인센티브도 수치심을 관리도구로 활용한 사례가 아닌가. 인센티브를 받지 못한 직원은 수치심에 빠질 수 있다.

“꼭 그렇다고 볼 수는 없다. 인센티브 제도가 어떻게 운영되는가에 달려 있다. 위험을 감수하는 혁신에 보상이 주어진다면, 직원들이 각자의 다양한 재능에 대해 보상을 받을 수 있다면 인센티브는 수치심과는 상관이 없다.” -리더에게 하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팀원들이 ‘상처 입기 쉬운 마음’을 받아들이는 문화를 만들라는 말을 하고 싶다. 리더 스스로 먼저 자신들이 상처 입기 쉬운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 브리네 브라운… 브리네 브라운(Brene Brown)은 미국 휴스턴대 연구교수다. 지난 10년 동안 줄곧 수치심과 상처 입기 쉬운 마음을 연구했다. 상처 입기 쉬운 마음의 힘에 대한 TED 강연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의 TED 강연은 최근까지 무려 796만회의 시청 횟수를 기록했다. 그녀의 책 ‘위대하게 맞서는 용기’는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으며 패스트컴퍼니로부터 ‘2012년 올해 최고 경영도서’로 꼽혔다. 이 밖에 ‘불완전이라는 선물'(2010년), ‘연결'(2009년)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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