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 만든 현대카드 L-TFT 4인방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 북촌 한옥마을로 유명한 서울 종로 가회동에 명물이 등장해 눈길을 끌고 있다. 바로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다. 지난 2월12일 오픈한 이후 한 달 만에 방문자수가 5000명을 넘는 등 국내 최고 디자인 전문 도서관으로 자리매김했다. 이곳을 만든 주역인 현대카드 L-TFT 3인을 만나 그 뒷이야기를 들었다.

 

 

책을 분류하고 서가에 꽂는 일은 수작업으로 진행된다. 서가에 꽂기 전 책들이 쌓여 있다.

 

지난해 1월, 슈퍼 콘서트 등을 기획했던 류수진 컬처 마케팅팀장, 브랜드기획팀의 이효은 과장, 프리비아팀의 김양현 대리, 프리미엄 마케팅팀의 김나영 대리 등 4명이 새로운 팀으로 발령났다. 팀명은 ‘L-TFT’. 이들에게 1년 안에 디자인 라이브러리를 만들라는 특명이 떨어졌다.

 

디자인 라이브러리는 속도를 최고로 여기는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적인 삶의 가치를 회복하고 지적인 영감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주자는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의 화두에서 출발했다.

 

그동안 현대카드는 자신들을 카드회사나 금융회사로 규정하지 않았다. 스스로를 ‘고객에게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기업’으로 규정했다. 세계적인 스포츠 선수들의 경기와 팝 스타의 공연을 선보이며 국내 스포츠·문화 마케팅의 지형을 바꾸는 등 기존 금융회사들이 못했던 일을 주저없이 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또 디자인 경영을 선도하며 ‘현대카드=모던’이라는 이미지를 강조해 왔다.

 

디자인 라이브러리는 지금까지의 엔터테인먼트적인 마케팅의 한계를 뛰어넘어 지적인 영감을 통해 감동을 주자는 차원에서 시도됐다. 크게 보면 라이프스타일 디자이너인 현대카드가 해왔던 마케팅의 연장선상이라고 볼 수 있다.

 

정 사장이 그린 큰 그림을 구체화하는 것이 L-TFT의 임무였다. 프로젝트를 총괄했던 류수진 과장은 “책이나 디자인에는 문외한이어서 처음에는 너무 막막했다”면서도 “흔히 하는 말로 맨땅에 헤딩하는 식이었지만 새로운 도전에 설레었다”고 말했다.

 

프로젝트는 극비리에 진행됐다. 불가피한 사내회의에선 참석자들에게 비밀유지 동의서를 받고 회의를 할 정도였다. 외부에서 책을 구입할 땐 정보자료실을 리뉴얼 한다거나, 직원도서관을 만든다거나, 시장 조사 차원에서 한다는 등 각종 핑계를 대야 했다.

 

이효은 과장은 “동료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물어보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며 “팀원끼리 일하고, 밥을 먹고 하다 보니 다른 동료들과 소원해질 정도였다”고 말했다.

 

디자인 라이브러리 건립은 실체를 알 수 없는 프로젝트였다. 하나하나 그림을 그려가며 만들 수밖에 없었다. 라이브러리의 터로는 일찌감치 가회동이 물망에 올랐다.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고 디자인 라이브러리가 필요로 하는 아날로그적인 감성이 넘치는 최적의 장소였기 때문이다.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를 만든 이효은 과장, 김양현 대리, 류수진 과장(왼쪽부터). 팀원 중 한명인 김나영 대리는 출산휴가 중이다.

 

도서 선정에 큐레이팅 개념 도입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가 보유한 책은 1만1498권. 전체 장서의 70%는 국내에 들어오지 않은 서적으로 구성돼 있다. 3135권은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치가 입증되는 희귀본이다. 불과 4명이 1년 넘게(383일) 전 세계를 발로 뛰며 모은 결과물이다. 류수진 과장의 말이다. “세계적인 디자인 도서관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에 어떤 책을 꽂을 것인지가 가장 중요했어요. 디자인 전문가가 보더라도 고개를 끄덕이고, 디자인 문외한도 공감할 수 있는 책을 찾아야 했어요.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작업이었죠.”

 

도서관을 보유하고 있는 대부분의 기업들은 책 선정에서부터 유지관리를 대형 서점에 위탁하는 게 일반적인 관행이다. 하지만 L-TFT는 이런 과정을 모두 직접 하기로 했다. 국내 도서관은 물론 일본을 비롯해 독일, 영국 등 유럽, 미국 내 주요 도서관의 소장 도서 선정절차를 광범위하게 조사했다. 2000여개에 달하는 세계적인 디자인 전문 출판사의 출판 목록까지 면밀히 분석했다.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해 건축·산업 디자인과 비주얼 디자인 영역에서 2명의 해외 전문가를 북 큐레이터로 영입했다. 이들 북 큐레이터와 현대카드의 디자인 파트너인 뉴욕현대미술관(MoMA)의 수석 큐레이터인 파올라 안토넬리, 현대카드의 디자인 연구소 인력들이 모여 7가지 도서 선정기준을 확립했다.

 

선정기준은 이렇다. 영감을 주거나(Inspiring), 문제의 답을 제시하고(Useful), 다양한 범위를 포괄해야(Wide-ranging) 한다. 또 해당 분야에서 영향력을 지니고 있어야 하며(Influential), 그 한 권으로 충실한 콘텐츠를 담고(Through) 있어야 한다. 더불어 심미적인 가치를 지닌(Aesthetic) 시대를 초월한(Timeless) 책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준을 통해 선정된 도서는 4만3246권. 도서 선정에만 5개월여가 걸렸다. 북 큐레이팅을 위해 전 세계 36개국의 1678개 출판사를 넘나들었다. 4만여권을 1만권 수준으로 압축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한 명이 1만권 이상을 검토한 셈이다.

 

선정된 책을 찾아내 국내로 들여오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아마존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책이 있는 반면 이미 품절되거나 절판된 책이 수두룩했다. 온갖 중고서점과 중고서적 유통딜러, 수집상까지 다 뒤져야 했다.

 

그래도 책은 손에 쉽게 들어오지 않았다. 지난해 9월까지 확보한 책은 3000여권에 불과했다. 목표였던 1만권을 어쩌면 채울 수 없다는 불안감이 밀려왔다. 류 과장의 말이다.

 

“사실 목표를 5000권으로 낮출 각오까지 했어요. 하지만 도서관을 오픈했는데 서가가 비어 있으면 자존심이 상할 것 같았어요. 오기가 생기더군요. 팀원들과 어떻게 해서든 다 채우자고 마음을 모았죠. 결국 해냈어요. 해외 출판사나 중고서점과 직접 연락해 유통단계를 최소화하는 덕분에 예상했던 비용보다 30%를 절감했어요.”

 

하루에 100~200권씩 배송돼 들어오는 책을 일일이 검수하고, 분류해 청구기호와 라벨을 붙이고 데이터베이스(DB)화하는 작업도 쉽지 않았다. 특히 디자인 분류에 따른 청구기호별로 책을 서가에 꽂는 배가작업은 그야말로 육체노동이었다. 책의 평균 두께와 크기를 미리 조사해 시뮬레이션을 했지만 책이 모자라거나 남는 일이 다반사였다. 서가를 다시 배치하고 책을 빼고 꽂기를 수십 차례 한 경우도 있었다. 이효은 과장은 “수백권의 책을 한번 뺏다 꽂으면 진이 다 빠졌다”고 말했다.

 

책뿐만 아니라 서가를 포함한 가구, 집기, 운영시스템, 직원들의 복장까지 현대카드 특유의 정제된 감성을 느낄 수 있도록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썼다. 김양현 대리는 “1층 북 카페의 머그컵은 100여개의 서로 다른 브랜드 중에서 고른 것”이라고 말했다.

 

“일당백의 팀원과 최고 팀워크가 큰 힘”

 

지난 2월12일 라이브러리를 공식 오픈하는 날 류 팀장과 팀원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다. 지난 1년여가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프로젝트 기간 동안 정시퇴근한 날을 전부 모아도 한 달이 채 되지 않는다. 새벽까지 야근을 한 날이 부지기수였다. 새벽 3시까지 야근을 하고 바로 그날 해외 출장을 가기도 했다. 여름휴가와 추석 연휴도 반납할 정도로 강행군이었다.

 

이효은 과장은 “새벽까지 회의실에서 일하면서 왜 이렇게 힘들게 일하나 하는 생각에 눈물을 흘린 적도 많았다”며 “라이브러리를 오픈한 이후 동료직원들이 ‘네가 한 일이 이거였구나’ 하는 말을 들었을 때 감격스러웠다”고 회상했다.

 

이 과장의 말에 류 과장의 눈시울이 금세 붉어졌다. 그는 “1년 동안 팀원들과 회의실에서 동고동락한거나 마찬가지”라며 “이처럼 어려운 일을 해낼 수 있었던 것은 일당백의 팀원과 최고의 팀워크 때문”이라며 팀원들에게 공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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