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는 외로운 존재… 누군가 자기 의견에 반대해 주길 원해”

베스트셀러 ‘스마트한 생각들’ 저자 롤프 도벨리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도 사람이 실수 하는 까닭은 아직 우리의 두뇌가
인류 역사의 99% 차지했던 수렵·채집 단계에 있기 때문

큰 권력 가진 리더일수록 몇차례 옳은 결정 내렸다고 자기 판단 과신하기 쉬워
직언을 하는 참모가 반드시 2~3명은 있어야

나쁜 리더들 대부분은 마이크로 매니저이다
회사의 사소한 일이나 직원의 일거수일투족까지 관리·감독하려 들어

‘스마트한 생각들’시리즈의 저자 롤프 도벨리씨
‘스마트한 생각들’시리즈의 저자 롤프 도벨리씨는“탁월한 선택을 하는 노하우는 잘못된 선택을 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롤프 도벨리 제공

“리더가 되려면 핵심 지지그룹을 만들라.”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선 꿈을 꾸고 도전하라.”

세상은 늘 충고로 넘쳐난다. 사람들은 늘 당신에게 무언가 더 하라고 부추긴다. 조선일보 5월 30일자에서 충고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베스트셀러 ‘스마트한 생각들’과 ‘스마트한 선택들’ 시리즈의 저자 롤프 도벨리씨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바쁜 현대인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첨가’가 아니라 ‘삭감’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탁월한 선택을 하는 노하우는 잘못된 선택을 피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교황이 미켈란젤로에게 물었다고 한다. “당신은 어떻게 ‘다비드 상’ 같은 훌륭한 작품을 만들 수 있었습니까?”

미켈란젤로가 대답했다. “아주 간단합니다. 다비드와 관련 없는 것은 다 버렸습니다.”

도벨리는 1억 독어권에서 요즘 가장 유명한 작가다. ‘스마트’ 시리즈는 그의 모국 스위스와 독일·오스트리아 등지에서 80만부 이상 팔렸고 국내에서도 5만부 가까이 팔렸다. 책은 현대인이 일상적으로 흔히 저지르는 생각, 행동, 습관의 오류 104가지를 집대성했다.

지난 14일 독일 베를린의 한 카페에서 도벨리를 만났다. 원래 스위스 취리히에 살지만, 자신이 설립한 싱크탱크 ‘취리히 마인즈’의 베를린 지부 활동을 위해 독일에 머물고 있었다. 스위스 항공 계열사 CEO를 역임한 도벨리는 지난 2002년 직장을 그만두고 작가로 전향했다.

수렵 채집민에서 벗어나지 못한 인간의 사고체계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도 실수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간단하다. 우리의 뇌가 아직 수렵 채집민 단계에 최적화돼 있기 때문이다. 인류가 지상에 존재한 10만여년 중 99%는 수렵 채집민 상태로 살았다. 문명이란 것은 이제 약간 체감했을 뿐이다. 우리의 뇌는 애초에 도시, 공업, 세계화, 금융시장 따위의 개념을 이해할 수 있도록 설계된 것이 아니다. 여러 사람이 하는 행동을 무조건 따라 하는 ‘사회적 검증(social proof)’ 행태가 현대 금융시장에서 자주 나타나는데, 이는 대표적인 수렵 채집민의 행동이다.

세렝게티 초원에서 주변 사람들이 갑자기 당신과 반대 방향으로 도망치듯 뛰어간다면 당신은 어떻게 행동할까. 가만히 서서 왜 모두 뛰는지 알아볼 것인가, 아니면 일단 죽어라 내뺄 것인가. 우리는 모두 남들을 따라 함께 뛰어간 사람들의 후손이다. 가만히 서 있던 사람들은 사자 밥이 됐고 인류의 유전자 풀에서 사라졌다. 사회적 검증은 그렇게 우리 뇌리에 깊이 뿌리 박혔다. 현대 문명사회와는 맞지 않는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린 그 틀에 갇혀 있다. 단지 양복을 입은 수렵 채집민이다.”

입찰 경쟁이 뜨거울수록 낙찰 가격은 높아지고 누가 입찰을 따내든 분명히 돈을 잃고 만다.
<승자의 저주>입찰 경쟁이 뜨거울수록 낙찰 가격은 높아지고 누가 입찰을 따내든 분명히 돈을 잃고 만다.

―시간이 없는 독자들을 위해 104가지 사고(思考)의 오류 중에서 가장 큰 오류 몇 가지만 골라 달라.

“우선 모든 오류의 어머니로 ‘확증 편향’을 들 수 있다. 사람은 자신이 확신하는 일에 대해 그것이 옳다고 증명해 주는 증거들만 철석같이 믿는다. 둘째로 앞서 말한 ‘사회적 검증’도 대단히 안 좋고 위험한 행동 오류다. 권력이나 권위 있는 사람의 말을 무조건 믿는 ‘권위자 편향’ 또한 위험하다. 전 세계적으로 경제학자 수는 100만명이 넘지만 단 한 명도 2008년 금융 위기를 정확히 예측한 사람은 없었다.”

그는 마치 강의를 하듯 대답을 이어갔다.

“당장 눈앞에 펼쳐진 자료들을 과신하는 ‘가용성 편향’은 아주 교활하다. 기업에서 큰 문제다. 실적이니 통계니 그래프도 중요하지만 소비자의 생각, 근로 현장 분위기 등 큰 그림을 놓치게 한다. ‘대안 편향’은 이것 아니면 저것밖에 대안이 없다는 일종의 협박이다. 정치인들이 자주 사용한다. 정보가 더 많을수록 옳은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정보 오류’에 빠진 것이다. 금융 트레이더들을 보면 방대한 금융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그런데 1950년대 트레이더들보다 높은 수익을 올리고 있나? 아니다. 옛날 트레이더들은 신문 몇 개에만 의존하고도 높은 수익을 올리곤 했다. 편을 가르게 하는 ‘내집단·외집단 편향’은 정말 사악한 오류다. 민족주의·종파주의, 전쟁이 모두 그 산물이다.”

―그중에 특히 비즈니스 리더들이 경계해야 할 오류는 무엇인가.

“사회적 검증과 가용성 편향의 오류이다. 일분일초가 아까운 CEO들은 모든 결정을 빨리빨리 내려야 하기 때문에 이 두 가지 오류에 가장 쉽게 걸려든다. 남들이 해서 안전한 것, 지금 당장 눈앞에 있어서 의지할 수 있는 것들로 마음이 가기 십상이다. 하지만 큰 그림을 보는 CEO라면 이 오류들을 피할 줄 알아야 한다.”

재벌 오너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확증 편향’

―한국 기업들은 강력한 오너의 원맨 결정으로 굴러가는 경우가 많다. 여기엔 어떤 오류의 여지가 있나.

“한국 상황을 잘 알고 있다. ‘재벌’이라 부르지 않나. 강력한 오너가 있으면 개인으로서보다 팀으로서 결정을 내릴 때 더 모험적인 결정을 내린다는 ‘모험 이행’으로부터는 좀 더 안전한 이점이 있다.

그러나 확증 편향에 빠지는 것은 경계하라. 몇 차례 옳은 결정을 내렸다고 해서 차츰 자기 결정을 과신하는 확증 편향에 빠지기 쉽다. 큰 권력을 가진 리더일수록 직언을 하는 참모가 반드시 2~3명은 있어야 한다. 결정을 내리기 전 이 사람들에게 의견을 묻고 일부러 반대 의견을 내달라고 하라. 그들과 논의를 거친 후엔 일방향 톱다운으로 가도 좋다. 오히려 그게 글로벌 무대에서 경쟁력이 될 수도 있다. 우린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는데, CEO들은 사실 매우 외롭다! 누군가 자기 의견에 반대해 주길 바란다. 자기 관점과 다른 관점에서 의견을 듣고 싶어 한다.”

은행·우체국·마트도 특별히 붐비는 시간대가 있다. 당신이 그 시간대에 들어갔을 뿐. 불운이 당신만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자기 선택적 편향>은행·우체국·마트도 특별히 붐비는 시간대가 있다. 당신이 그 시간대에 들어갔을 뿐. 불운이 당신만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기업인 상대로 강연도 많이 하던데, 성공한 CEO들은 어떤 스마트한 특징을 공유하던가?

“이 질문에 답하면 ‘결과 편향’의 오류에 빠지는 것이다. 성공한 사람들의 케이스만 모아 놓고 어떤 공통점이 있는지 사후에 맞춰보는 것은 전형적인 결과 편향의 오류다. 솔직한 얘기로, 성공한 CEO들이 공유하는 한 가지 특징이 ‘행운’뿐일 수도 있다. 남들이 해서 잘된 온갖 사례를 모아 놓았다고 해서 그게 각각의 독자에게 효과가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런 조언을 따르면 누군가는 성공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못 할 것이다.

하지만 ‘무엇이 성공을 가로막는가’를 살펴보면 대부분 사례가 비슷하다.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없는지 우린 비교적 잘 안다. 나쁜 리더의 가장 흔한 공통점은 ‘사회적 검증’ 오류를 자주 범한다는 것이다. 경쟁사의 특정 제품이 성공을 거두면 나쁜 리더들은 자기 부하들에게 ‘왜 저런 걸 못 만드느냐’고 질책한다. 그 원인이 자신한테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러다가 결국 복제 제품을 내놓는다. 이는 곧 업계에서 한 걸음 뒤처지는 것을 의미한다.

또 다른 공통점은 나쁜 리더 대부분이 마이크로 매니저라는 점이다. 회사의 사소한 일이나 직원 개개인의 일거수일투족까지 관리·감독하려 든다. 그러나 돌아보면, 한 회사가 성공을 거두려면 올바른 산업에 진출했는가가 더 결정적이다. 즉 당신이 노를 잘 젓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애당초 좋은 배에 타는 게 훨씬 낫다. 이건 워런 버핏이 했던 말이다. 산업 자체가 호기를 맞으면 실력 없는 리더도 그럭저럭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반면 하락하는 산업에서는 모든 걸 제대로 해도 리더의 평가가 함께 하락하는 것을 막기 어렵다.

사실 이것은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기도 하다. 취업을 앞둔 젊은이들은 ‘난 어느 기업에 취직해서 무슨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회사의 네임밸류와 연봉이 1순위 고려 대상이다. 정작 장래에 유망한 직종과 산업이 뭔지 따지는 이들은 별로 없다. 직업을 선택할 때 향후 30년간 업계 동향이 어떻게 될지가 가장 중요한데 말이다.”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가 암살됐을 때 누구도 전쟁이 일어나리라 예측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이제는 그 사건 때문에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고 믿는다.
<사후 확신 편향>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가 암살됐을 때 누구도 전쟁이 일어나리라 예측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이제는 그 사건 때문에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고 믿는다.

‘이렇게 하면 성공한다’보다 ‘이렇게 하면 망한다’를 파악하는 게 훨씬 효과적

―제1차 세계대전의 원인을 ‘사라예보 총격 사건’이라고 가르치는 것은 대표적인 ‘사후 확신 편향’이라고 소개했는데 2013년의 사라예보는 뭐가 있을까.

“하하하. 지금까지 들어본 최고로 스마트한 질문 중 하나다. 그건 정말 곰곰이 생각해 봐야겠다. 이메일 주소를 알려주면 며칠간 답을 생각해 보고 알려주겠다. 하여튼 ‘사후 확신 편향’은 가장 완고한 생각의 오류 중 하나다. 사건이 터진 후에 돌이켜보면 마치 모든 것이 분명한 개연성에 따라 일어난 것처럼 보일 뿐이다.”

―당신은 TV나 신문 뉴스를 소비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데.

“그렇다. 3년 넘게 뉴스를 보지 않았다. 뉴스 과잉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현대인이 뉴스에 얽매여 사는 것은 ‘정보 오류’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 뇌에 주입되는 정보의 양이 어떤 임계점을 넘으면 실제 결정의 질이 떨어진다는 연구도 발표됐다. 다른 인터뷰에서 언급했지만, 뉴스가 정신에 미치는 영향은 설탕이 몸에 미치는 것과 같다. 자극적이지만 건강을 해친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나쁜 뉴스’는 짤막하게 보도되는 속보성 뉴스를 말한다. 베이루트에서 무슨 폭발이 일어났고 러시아에서 어떤 비행기가 추락했다는 등의 단발성 이벤트 뉴스 말이다. 단발성 속보는 관능을 자극할 뿐이며 세상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심어준다. 이런 수박 겉핥기는 우리 인생에 하등 도움이 안 된다. 뉴스를 끊은 지 3년이 지난 지금 난 전혀 뒤처지지 않았고, 글을 쓸 때 더 명확한 사고를 한다.

우리가 읽어야 할 좋은 뉴스는 단발성 사건에 대한 것이 아니라 사건을 유발하는 원인을 고찰한 것이다. 내용이 좀 더 길고 통찰력 있는 심층 보도 같은 것이다. 특종 같은 게 요즘 시대 무슨 의미가 있나. 무슨 큰일이 터지면 30분 안에 트위터에 다 퍼질 텐데. 내가 편집국장이 되면 사건을 보도하는 일간지가 아니라, 사건을 유발한 배후 요인들을 파헤치는 주간지로 만들겠다.”

“내가 말하는 오류와 편향은 큰 결정 앞두고 따져보는 체크리스트… 사이다냐 콜라냐 고민하자는 게 아니야”

생각의 오류를 안 뒤에는 ‘감정 조절’이 중요

―생각의 오류들을 짚어낸 다음 단계는 무엇인가.

“감정 조절이다. 감정은 성공과 실패를 좌지우지하는 매우 중요한 요인이다. 감정은 우리의 모든 결정에 엄청난 역할을 차지한다. ‘질투’를 예로 들어보자. 다른 사람의 성공을 시기하고 질투에 눈이 멀면, 그를 따라잡기 위해 무리하다가 멍청한 결정을 내린다. 중요하지만 배경을 잘 모르는 일에 대해 결정을 내릴 땐 단지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 감정에 따라 결정을 내린다. 감정은 애초에 사고(思考)를 초월하도록 설계된 것이기 때문에 매우 강력하다. 사고와 행동을 통제하는 것보다 감정을 통제하기가 훨씬 어렵다는 것은 이미 여러 연구 결과를 통해 지적된 바 있다.”

―책을 읽고 나서, 어떤 결정을 할 때마다 내가 오류나 편향에 빠진 게 아닌가 하는 강박관념도 든다. ‘편향의 편향’인가.

“하하. 그런 얘길 하는 독자가 많다. ‘점심때 뭘 먹을까’, ‘여기 앉을까, 저기 앉을까’ 등을 결정할 때 어떤 결정이 가장 오류가 없는지 고민한다고 한다. 그런 건 걱정 마라. 내 책에서 말하는 사고의 오류와 편향은 인생의 큰 결정을 앞두고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체크리스트일 뿐이다. 집을 사거나 창업을 할 때, 직장이나 주식시장에서 대담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오류를 최소화하자는 것이다. 콜라냐 사이다냐 이런 걸 따질 땐 그냥 충동적으로 행동하라. 그런 시시콜콜한 데까지 잣대를 들이댄다면 인생이 황폐해질 것이다. 단, 책을 읽고 나서 그런 생각이 든다는 것 자체가 깊이 생각한다는 것으로, 좋은 반응 같다.”

―삶의 여러 가지 오류를 진단해서 뭘 얻었나. 한 발짝 더 행복에 접근했나.

“행복과 불행이 동일한 스펙트럼에 있다고 보지 않는다. 순간순간 행복하면서 전체적인 인생에선 얼마든지 불행할 수 있다. 여기서도 삭감형 접근을 시도 중이다. 즉, 행복해지려고 인위적으로 노력하기보다 삶을 불행하게 만드는 요소를 줄여나가고 있다.

2500년 전 그리스인들도 불행을 최대한 피하면 행복은 알아서 찾아온다고 믿었다. 행복과 기쁨은 아주 짧은 시간 지속하는 감정이다. 심리적으로 그 어떤 황홀한 행복감도 최장 1시간이다. 인간은 그 시간만 지나면 또 다른 고민거리를 생각해내기 때문이다.

행복은 잠깐의 분출이다. 장기간 불행을 느끼지 않는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 진정 행복해지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사고의 실수와 오류를 줄이고 감정을 적절히 통제할 줄 알게 되면 그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본다. ‘만족’이라고 표현하는 게 낫겠다. 영원한 행복이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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