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쩍하지 않던 공룡, 살아 움직이게 한 ‘아메바 경영’

구조조정 진두지휘했던 이나모리 前회장과 오니시 現회장의 ‘부문별 독립채산제’

이나모리 전(前) 일본항공(JAL) 회장은 올 들어 한 일본 주간지 인터뷰에서 “JAL은 과거 일본 국영 항공사였다는 엘리트 의식이 아주 강했고, 관료의 낙하산 인사가 많았다. 도산했을 때도 사원들은 ‘우리 잘못이 아니라 경영진 책임이다. 국가가 잘못했다’는 의식이 강했다”고 술회했다.

JAL은 1987년 완전 민영화됐지만 2000년대 들어 경영 악화가 지속되면서 매번 정부에 자금 지원을 요청하는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계속된 실적 악화로 2010년 파산 직전엔 빚이 30조원에 달했지만, ‘정부가 계속 뒤를 봐줄 것’이라는 의식이 조직 내에 팽배했다. 2008년에 직원들 퇴직금을 주기 위해 쌓아둔 비용이 10조원에 이를 만큼 강성 노조 천국이기도 했다. 그러나 2009년 말 당시 하토야마 정부가 더 이상 ‘대마불사’를 용납하지 않겠다며 JAL을 파산시키는 쪽으로 방침을 바꾸면서 결국 2010년 1월 19일 파산에 이른다. JAL 파산은 ‘잃어버린 20년’이라는 일본 경제 위기의 상징이 됐다.

이나모리 회장은 지금 와서는 골칫덩이 JAL을 정상화한 경영의 달인으로 칭송받고 있지만, 팔순 노인인 그는 끊었던 담배를 다시 찾았을 만큼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파산 초기만 하더라도 회생보다 완전 청산(淸算·자산을 전부 매각해 빚을 갚고 사업을 아예 접는 것)으로 갈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았다.

JAL은 파산과 더불어 수많은 굴욕을 겪는다. 직원 대량 해고와 주주·고객의 피해로 여론은 분노했다. 2010년 말 JAL 여성 승무원들은 용역 직원을 대신해 기내 청소까지 맡게 된다. 해고된 여성 승무원의 제복이 일본 성(性) 상품 시장에서 비싸게 팔리기도 했다.

이나모리 회장은 평소 ‘회계장부를 볼 줄 모르는 경영자는 경영할 자격이 없다’고 할 만큼 경영에서 숫자의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JAL은 딴판이었다. 월말 결산 집계도 2~3개월 걸려서야 겨우 받을 정도였다.

이나모리 회장은 취임 1개월 반 뒤 한 기자회견에서 “JAL은 매일 적자를 내면서도 책임 의식이 명확하지 않다. JAL 임원들은 야채 가게 하나도 경영할 능력이 없다”고 혹평했다. 이후 JAL에는 이나모리 회장의 전매특허인 ‘아메바 경영(부문별 독립채산제)’이 도입됐고, 2~3개월 걸리던 월말 결산은 3일 후 잠정 집계해 곧바로 다음 달 영업 계획에 반영할 수 있도록 뜯어고쳤다.

달라진 JAL의 모습은 2011년 3월 11일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 때 드러난다.

대지진 이후 초기 대응에 실패해 우왕좌왕한 정부·도쿄전력과는 달리 JAL은 기민한 위기 대응 능력을 보여준다. 오니시 사장과 우에키 노선총괄본부장(현 사장)은 지진 당일에 곧바로 비상 체제를 가동, 다음 날부터 후쿠시마 인근 지역에 임시 항공편을 투입한다. 퇴역이나 매각을 앞둔 항공기까지 동원해 4개월간 피해 지역에 20만명을 실어 날랐다. 발 빠른 대처는 곧바로 실적으로 연결됐다. 그해 일본 국내 전체 항공 수요가 40% 줄었지만, JAL은 2012년 3월 결산에서 2049억엔(약 2조2000억원)이라는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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