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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하버드대 대학병원인 `베스 이스라엘 디코니스 메디컬센터(BIDMC)`의 이사회가 폴 레비(Paul Levy)를 CEO로 지명했을 때 병원의 재정상태는 절망적이었다. 1년에 5000만달러의 적자를 내는 바람에 병원을 빨리 매각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었다.
레비 CEO는 2002년 1월 부임 첫날 바로 병원 직원들에게 이메일로 장문의 편지를 썼다. 그는 세 가지 강력한 메시지를 직원들에게 전달했다. 첫째, 그는 BIDMC가 의료계에서 최고 명성을 가진 멋진 조직이라고 칭찬했다.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자 때문에 병원이 팔릴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셋째, 매각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막기 위해 그가 택한 전략은 인력 감축이라고 밝혔다. 회사가 위기에 처했을 때 대부분의 경영자들은 근거 없는 장밋빛 시나리오를 제시하며 직원들을 안심시킨다.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고 나서야 직원들의 비난을 뒤로한 채 강도 높은 생존 전략에 돌입한다. 레비 CEO는 정반대의 길을 택했다.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처음부터 반복해서 직원들에게 알렸다. 중간관리자의 보고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 직원들과 만났다. 구내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며 직원들과 얘기하고 복도에서 만난 직원들과도 즉흥적으로 대화를 나눴다. 사내 인트라넷에는 직원들이 모두 열람할 수 있도록 병원의 재정상황을 분석한 컨설팅사의 보고서를 올렸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남은 직원들의 무력감을 위로하는 이메일도 계속 보냈다. 결국 끈질긴 의사소통을 통해 레비 CEO는 병원의 향후 전략에 대한 직원들의 동의와 협동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2004년 BIDMC는 3740만달러의 흑자를 기록했고 직원들의 이직률도 2년 만에 15%에서 3%로 낮아졌다. 레비 CEO의 일화는 조직의 전략을 전파하기 위해 CEO가 직접 직원들과 만나 소통해야 함을 강조하는 사례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회사의 전략을 말단 직원들까지 전달하기 위해 여러 단계를 거친다. CEO가 임원에게, 임원은 중간관리자에게, 중간관리자는 직속 부하에게, 직속 부하는 말단 직원들에게 회사의 전략을 설명한다. CEO가 직접 직원들 앞에서 말하는 기회는 신년회 내지는 송년회에 정례적인 덕담을 하는 것 정도다. 이마저도 쌍방향 의사소통은 생략돼 있다. 그러나 찰스 갈루닉 인시아드 교수는 CEO가 직접 직원들에게 전략을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지 않는다면 직원들이 전략을 제대로 실천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CEO의 전략은 기업이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를 나타낸다. 직원들은 이를 현장에서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세세한 전술을 담당한다. 층층시하의 전달체계를 거쳐 듣는 메시지에서 직원들은 이미 맥이 빠져버린 전략을 접할 수밖에 없다. CEO로부터 직접 메시지를 전해들어야 조직의 일원임을 느끼고 신명나게 움직일 수 있다. 찰스 갈루닉 교수는 “기업의 CEO는 단순한 관리자가 아니라 회사의 전략을 직접 구성원들에게 알려주는 전달자 역할을 해야 한다”며 “CEO가 직원들이 있는 현장을 찾아 직접 소통할 때 회사의 전략은 힘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갈루닉 교수와 일문일답한 내용이다. -회사의 전략을 성공시키기 위해 CEO는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나. ▶기업의 CEO는 직원들에게 회사의 전략을 이해시키고 체화(embedded)시켜야 한다. 뛰어난 CEO는 조직의 전략을 직원들에게 뿌리내리게 해 조직원의 행동을 바꿀 수 있다. 직원들이 전략의 내용과 필요성을 충분히 이해하고 수용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직원들이 일상적인 업무를 할 때도 CEO의 전략에 맞춰 회사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지시사항을 일일이 듣지 않아도 알아서 전략 실천을 위한 자기 몫을 하는 것이다. 회사와 직원 간 혼연일체 상태를 말한다고 볼 수도 있다. 자기가 해야 할 바를 명확히 듣지 못한 상황에서도 회사 전략에 일치하는 의사결정을 하는 것은 요즘처럼 복잡하고 변화가 빠른 기업환경에 꼭 필요하다. -CEO가 직접 조직원들에게 전략을 전달하는 방식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 ▶타운홀미팅(townhall meeting)이 대표적인 방식이다. 몇몇 회사에서는 CEO가 수백여 명의 직원을 모아놓고 사원들에게 직접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러한 전체 회의에선 참석자들이 자유롭게 의사를 CEO에게 표현할 수 있다. CEO들은 이메일을 써서 전체 직원들에게 전달하기도 한다. 자신의 언어로 진심을 담은 이메일이라면 직원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사내 인트라넷의 게시판에 글을 올리고 직원들의 뜻을 확인하는 CEO들도 많다. 어렵지 않은 방법들이다. -구체적으로 어떠한 방법을 쓰면 전략을 잘 전달할 수 있는가.
▶세 가지 방식이 있다. 첫 번째는 CEO가 개인의 브랜드를 개발해 활용하는 것이다. 개인 브랜드는 기업이 지향하는 방향에 대한 메시지를 강력하게 전달할 수 있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대표적인 사례다. 스티브 잡스가 제품 디자인을 거의 종교처럼 숭배했다는 것은 세상 사람 모두가 안다. 이것이 그의 브랜드였기 때문에 그는 부하 직원들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고도 디자인의 중요성을 설파할 수 있었다. 이 방법을 활용하자면 CEO는 먼저 자신의 브랜드를 구축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두 번째는 시각 자료를 통해 전략을 명료하게 보이는 것이다. 전략을 그래프나 표로 알기 쉽게 보여주면 조직 구성원들간의 커뮤니케이션이 쉬워진다. 명쾌한 프레젠테이션 역시 효과적인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정보기술(IT)을 똑똑하게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기술 발달 덕분에 이제 많은 사람들에게 동시에 메시지를 전달하기가 쉬워졌다. -IT를 활용해 전략을 조직 구석구석까지 전파시킨 사례를 설명해달라. ▶IBM의 전 CEO 샘 팔미사노의 예를 들겠다. 2006년 당시 IBM의 CEO였던 샘 팔미사노는 3차원 가상공간인 세컨드 라이프(www.secondlife.com)에 구축한 `IBM 아일랜드`에서 수백 명의 직원과 온라인 타운홀 미팅을 개최했다. IBM 아일랜드에서는 미국ㆍ유럽ㆍ아시아 등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IBM 직원들이 공간을 초월해 팔미사노 당시 CEO와 직접 대면하면서 다양한 의견을 교환할 수 있었다. 이 자리에서 샘 팔미사노 CEO는 새로운 사업 육성에 대한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PC제조업체에서 IT서비스회사로 변신한 IBM의 기업 문화를 잘 보여주는 사례였다. 이를 통해 팔미사노는 CEO로서 IBM의 전략을 수천 명의 사람들에게 단시간에 전달할 수 있었다. -규모가 큰 조직에선 CEO가 구성원들과 직접 소통하기 어려워보인다. 중간 관리자가 CEO의 메시지를 정확히 전달하는 게 낫지 않나. ▶대부분의 기업에서는 CEO의 메시지가 조직 내 위계서열을 통해 말단 직원까지 전달된다. 여러 레벨의 중간관리자들은 전달자 역할을 맡는다. 직속상관-직속부하 간의 관계를 통해서 메시지가 차례로 전달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명하달식의 의사소통 방식을 폭포효과(cascade effect)라고 한다. 그러나 기업 직원들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 이 같은 폭포효과는 CEO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엔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직원들은 CEO로부터 직접 그가 생각하는 전략을 듣기를 원했다. 또한 전략에 대한 피드백을 CEO에게 주기를 원했다. 직원들은 CEO가 그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싶어했다. -폭포효과의 효과가 제한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수없이 많은 회사의 전략과 전술 중에서 어떤 전략에 큰 가중치를 둘지는 CEO만이 결정할 수 있다. 확신을 담아 기업이 당면한 가장 중요한 과제가 무엇인지를 선언하는 것도 CEO의 몫이다. 그리고 CEO만이 회사의 권력을 상징적으로 대변하고 정당성을 갖는다. 그렇기 때문에 CEO만이 전략에 무게를 더할 수 있는 것이다. 중간관리자들이 전달을 제대로 한다고 하더라도 여러 단계를 거치면 CEO의 메시지를 온전히 전달하기가 어렵다. 유명한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의사소통 한 단계를 거칠 때마다 잡음은 두 배로 늘고, 메시지는 절반으로 줄어든다고 말했다. 요즘처럼 대면접촉 대신 전화나 메신저와 같은 통신수단이 개입하는 경우에는 더 그렇다. -CEO의 역할은 조직의 문화에 따라 차이가 있지 않은가. ▶그렇다. 만일 조직원들끼리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면 조직의 전략이 재빨리 확산될 수 있다. 전략에 대한 배경과 정보에도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이런 곳이라면 오히려 직속 상관의 역할이 적어질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강한 조직문화를 갖춘 곳은 많지 않다. 이 때문에 조직 내 직급이나 부서에 따라서 전략의 이해도에 차이가 생기는 것이다. -당신이 말하는 CEO는 어느 범위를 말하나. ▶사업부문(business unit)에서 최고 경영자 역할을 맡은 CEO다. 반드시 기업(corporation) 전체의 회장이나 CEO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업부문의 직원들에겐 기업 전체의 전략은 그들 사업부의 전략만큼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전략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사업부문의 CEO는 어떠한 역량이 필요한가. ▶능력 있는 CEO가 되기 위해서는 전략 수립의 배경이 되는 다양한 정보를 수집해서 직원들에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개인적 스킬이나 친화력만으로는 CEO 역할을 하기에 부족하다. 지식, 네트워크, 조직운영에 대한 가치관이 모두 결합돼야 효과적이다. -CEO의 네트워크와 지식이 일반 직원들에게까지 영향을 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네트워크 같은 사회적 자본은 외부성(externalities)을 가지고 있다. 즉 조직 내 한 구성원이 가진 지식과 네트워크를 다른 구성원들도 함께 향유하는 스필오버(spill-over) 효과가 나타난다는 뜻이다. 그런데 사실 하위 직급에는 공유할 만한 네트워크가 그리 많지 않다. 인적 네트워크가 다른 구성원에게까지 확산되기 위해서는 CEO나 임원처럼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CEO가 전략 전달에 대한 특별한 교육 훈련을 받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 ▶CEO의 덕목이 훈련을 통해서 양성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전략을 전달하려는 노력이나 네트워크를 직원들과 공유하려는 생각은 모두 단순한 의지에서 시작될 수 있다. CEO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원이나 지식, 네트워크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조직 구성원 모두를 위한 것임을 이해해야 한다. ■ CEO 만족도 높을수록 전략 지지도 늘어난다 KFC의 창립자 커넬 샌더스는 “사람은 논리에 설득되고 감정과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인다”고 말했다. 논리적으로 타당한 전략이 직원들을 설득시킬 순 있어도 움직이기엔 부족하다는 뜻이다. CEO와 회사에 대한 만족도가 높은 상황에서 CEO의 진심어린 설득과 전달 노력이 병행돼야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회사의 전략을 행동으로 옮긴다. 가장 중요한 것은 CEO에 대한 직원들의 높은 만족도다. 갈루닉 교수가 지사 300개를 거느린 한 다국적 기업 직원 6만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CEO에 대한 만족도가 직원들이 회사의 전략을 수용하는 데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CEO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신뢰하는 직원들은 CEO가 제시한 전략을 지지하는 경향이 강했다. 회사에 대한 직원들의 긍정적인 관점도 중요했다. 직원들이 회사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가질수록 전략을 이해하고 찬성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직무 여건도 회사의 전략을 실행하는 데 중요한 요건으로 드러났다. 자신이 맡은 일에 대한 만족도가 높을수록, 회사로부터 주어지는 보상에 만족할수록 회사의 전략을 내면화하는 직원들이 많았다. 갈루닉 교수는 “연수 기회가 제공되고 경력개발 경로를 명확하게 제시하는 직장에서는 직원이 회사의 전략을 제대로 이해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직무 여건을 개선하는 데에는 중간관리자의 역할도 중요하다. 가루닉 교수는 “어떤 중간관리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직원들이 경험하는 팀워크나 직무 환경이 달라진다”며 “중간관리자들은 팀워크나 직무여건을 조직의 전략과 연계해 효율적으로 운용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갈루닉 교수는 “중간관리자가 조직 안에서 전략이 지지받는 데 직접적인 역할을 하지는 않지만 전략이 체화될 수 있도록 촉매제 역할을 한다”고 덧붙였다. 직원들의 직급도 전략 수용에 영향을 미쳤다. 높은 직급의 직원이 낮은 직급에 있는 직원보다 적극적으로 회사의 전략에 동의하고 실행에 옮기려고 했다. 그러나 의외로 장기근속자라고 해서 조직의 전략에 호의적인 것은 아니었다. 한 직장에 오래 있게 되면 회사 전략이 변화하는 것을 자주 목격하기 때문에 오히려 전략의 지속성에 대한 신뢰가 낮아지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