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 대신 여행의 추억 파는 회사 하버드가 주목한 ‘신칸센 7분 쇼’

일본 신칸센 청소회사 ‘텟세이’의 작은 기적

‘7분간의 기적’. 최근 미국 CNN방송이 일본 고속철 신칸센 청소회사를 극찬한 말이다. ‘우리는 어차피 청소부’라는 자조와 패배의식에 젖었던 회사. 그러나 정년퇴임 뒤 백의종군한 한 리더에 의해 지금은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과 중국 칭화(淸華)대 등 세계 각국에서 견학 올 정도로 이름난 토털서비스회사로 거듭났다. 신칸센이 도쿄역에 도착한 뒤 다시 출발하기 전까지 7분 안에 이뤄지는 청소 작업은 밖에서 연극처럼 관람할 수 있도록 해 ‘7분간의 신칸센 극장’이란 별명까지 붙었다. 기적의 현장을 찾아가봤다.

지난달 20일 오전 11시 정각. 도쿄역 20번 홈으로 신칸센 ‘나스노(なすの) 270호’가 들어온다. 플랫폼 바닥에 표시된 황색 안전선 밖으로 붉은 유니폼을 입은 스무 명 남짓 사람이 줄을 맞춰 신칸센을 맞이한다. 20대에서 5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이들은 열차가 다가오자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어깨엔 커다란 가방을 하나씩 둘러멨다. 이들이 쓴 모자는 계절에 어울리는 벚꽃 모양의 핀으로 치장돼 있다. 열차가 멈춰 서자 가방에서 큰 비닐을 꺼내 들고 승객들이 내리는 출구로 다가갔다. ‘오쓰카레 사마데시타(고생하셨습니다).’ 비닐을 쫙 편 채 승객들에게 인사를 하자 승객들은 손에 들고 있던 쓰레기를 비닐 속에 집어넣었다. 드디어 하차 완료, 이들은 열차에 오르더니 ‘승차 준비 중입니다’라는 팻말을 출입구에 내걸었다.

이들의 퍼포먼스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7분간의 신칸센 극장’으로 불리는 이들의 퍼포먼스는 다름아닌 신칸센 청소작업이다. 열차 안으로 뛰어든 이들은 JR동일본(동일본여객철도주식회사)의 청소담당 자회사인 ‘텟세이(TESSEI)’의 직원이다. 그런데 왜 7분인가. 통상 도쿄역에 들어온 신칸센이 플랫폼에 머무는 시간은 평균 12분이다. 오전 11시 정각에 도착한 나스노 270호도 11시12분 후쿠시마(福島)현 고리야마(郡山)를 향해 다시 출발한다. 12분 중 승객들이 내리는 2분과 승차 3분을 뺀 시간은 7분 안팎, 이 시간 안에 10량이나 16량의 신칸센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것이 이들의 미션이다.

취재팀도 20대 후반의 직원과 함께 7호차에 올라타 그가 벌이는 7분간의 청소 쇼를 직접 ‘관람’했다. ‘먼저 25m 길이의 객실 중간 통로를 걸으며 좌우 100개 좌석을 살핀다. 좌석 앞주머니와 의자에 남은 쓰레기를 바닥에 떨어뜨린다→자동 좌석 회전기로 좌석 전체를 출발 방향으로 돌린다→좌석 등받이 테이블을 펴 헝겊으로 오물을 닦아낸다→이때 닫혀 있는 창문 블라인드는 열어젖힌다→통로에 모아둔 쓰레기를 빗질로 모아 버린다. 오물이 있으면 물걸레로 닦는다→더러워진 좌석커버가 발견되면 교체한다→상급자의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면 작업이 끝난다’.

순식간에 이뤄진 작업을 휴대전화 스톱워치로 측정해 봤더니 6분30초 남짓. 청소를 완수한 7호차 담당자는 “상급자의 오케이 사인을 기다리는 시간을 제외하면 통상 5분30초 정도면 작업이 완료된다”며 “신칸센 배차가 늘고 손님이 크게 몰리는 휴가철에는 4분 안에 모든 작업을 마쳐야 한다”고 말했다. 11시20분발 이와테(岩手)현 모리오카(盛岡)행 신칸센 ‘하나부사(はなぶさ) 15호’에 따라 올라 시간을 재봤더니 이번엔 6분20초, 또 다른 신칸센도 6분40초로 비슷비슷했다.

10량으로 편성되는 통상의 신칸센은 1개팀 22명이 담당하고, 16량 신칸센엔 2개팀 44명이 달라붙기도 한다. 도쿄역에선 하루 2교대로 모두 11개 팀이 오전 6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청소작업을 책임진다. 청소해야 하는 신칸센은 하루 평균 110대, 신칸센이 추가 배치되는 성수기에는 160대를 넘기도 한다. 한 팀이 하루 평균 신칸센 20대를 처리해야 하는 고단한 업무다. 좌석수로는 하루 12만 석이니까 단순 계산해도 1년 4380만 석이지만 고객들의 항의는 연간 5~6건에 불과하다. 야베 데루오(矢部輝夫)부장은 “얼마 안 되는 승객의 항의 중 대부분은 열차가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JR동일본으로부터 ‘시간이 없으니 테이블 청소는 하지 마라’는 지시가 떨어졌을 경우”라며 “실제로 항의 비율은 제로에 가깝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22명이 톱니바퀴처럼 움직여야 하기에 담당 업무는 철저히 나뉘어져 있다. 보통실은 통상 한 사람이 맡지만 좌석 커버를 모두 교체하는 특실은 3명이 담당한다. 5개 정도 되는 화장실 청소 담당은 따로 뒀다. 한 팀엔 보통 ‘주임’ ‘주사’로 불리는 4명 안팎의 숙련된 상급자가 있어 전체 작업을 지휘하고 청소 상태를 최종 체크한다. 또 필요한 경우 서툰 청소원의 작업을 직접 돕기도 한다. 이렇게 22명이 똘똘 뭉친 팀워크야말로 ‘신칸센 극장’이라고 불리는 7분간의 작업 완수를 가능케 하는 원동력이다.

 사실 이 회사는 일본 국내보다 먼저 해외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80개국이 가입한 국제철도연합의 회의가 2008년 도쿄에서 열렸을 때 회의 참석자 10여 명이 이곳을 견학했다. 유럽에서 입소문이 퍼지기 시작하면서 독일을 비롯한 각국의 방송국에서 이 회사를 해부하는 특집 프로그램을 편성했다. 캘리포니아 주지사 시절의 아널드 슈워제네거와 마하티르 모하맛 전 말레이시아 총리 등 각계의 유명인사들도 노하우를 얻기 위해 이곳을 방문했다. 한국에서도 철도공사 직원들이 연수차 다녀갔다.

 직원들의 몸짓 하나하나는 모두 그들의 토론과 고민의 결과물이다. ‘하나부사 15호’에 함께 오른 기자의 대수롭지 않은 행동에 불호령이 떨어진 것도 그들의 룰을 어겼기 때문이다. 바쁘게 움직이는 직원의 뒤를 좇다 종이 파일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아차’ 싶어 얼른 주웠더니 기자를 지켜보던 상급자가 “안 돼요, 그건 다시 열차 바닥에 버리세요”라고 큰소리로 외쳤다. “청소 직원이 좌석에서 발견한 물건을 땅바닥에 버리지 않고 그냥 주워 들면, 열차 밖에서 내부를 지켜보는 손님들 입장에선 ‘뭐 좋은 것이라도 주웠나 보다’라고 오해를 할 수 있다. 그래서 좌석에 남아 있는 물건은 무조건 바닥에 일단 내려놓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또 한 가지, 오물을 닦기 위해 물 청소를 한다면서 양동이가 보이지 않았다. “양동이를 플랫폼에 들고 다니는 것은 미관상 좋지 않다”는 한 직원의 제안이 직원들 전체의 공감을 얻어 양동이 대신 작은 물통을 가방 속에 넣어 활용키로 한 것이다. 이후엔 청소기구들을 모두 가방 속에 집어넣어 밖에선 무엇이 들어있는 가방인지조차 알 수 없도록 만들었다. 가방에 작은 종을 매단 직원들도 있었다. 손님들의 분실물을 회수하고도 깜빡 하는 바람에 분실물 센터에 신고가 늦어지는 일이 생기자 이를 개선하기 위해 만든 노하우다. 분실물을 회수한 경우엔 작은 종을 반드시 가방에 매달아 청소가 끝난 뒤 종을 보며 ‘아! 분실물이 있었지!’라는 생각을 떠올릴 수 있도록 머리를 짜낸 것이다. 이 모두가 현장 직원들의 제안에 의한 것이라니 “현장의 숙제는 현장이 가장 잘 안다”는 야베 부장의 설명이 가슴에 와 닿았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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