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배운다 "이런 보고서는 그만 만드세요" 올해 기업의 화두는 '단순화'

[Weekly BIZ] “이런 보고서는 그만 만드세요” 올해 기업의 화두는 ‘단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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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카드·GE의 단순화 프로젝트
현대카드 “비효율 업무 제거”
결재 단계 8단계서 4단계로 간소화… 특정 부서 골라 ‘한달간 PT 금지’ 명령
쓸데없는 회의ㆍ보고ㆍ조직 등 줄여나가 “일이 줄면 집에 빨리 갈 수 있다” 강조
GE “단순화, 기업 문화로 뿌리내려야”
“간소화 필요한 주제 골라 개선하라” 매년 조직장ㆍCEO들 ‘단순화 달성’ 측정
직원 누구나 제안… 모범사례 꾸준히 알려… 양문형 냉장고 개발 등 성과로 이어져

세계 최대 기업 중 하나인 GE의 제프리 이멜트 회장은 지난 3월 주주들에게 보낸 연차 보고서에서 “GE의 진보는 단순화를 통해 더 강력해질 것”이라면서 올해 화두로 ‘단순화’를 내걸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조직이 커지면서 중요하지 않은 일을 너무 많이 하고 있다. 단순화는 직원들이 중요하지 않은 일에 맞서 정말 중요한 일을 함께 하도록 돕는 도구다. 조직을 더 날렵하게 만들고, 관료주의를 없애며, 시장에 완전히 집중하는 것을 뜻한다”고 말했다. 2012년 GE 자체 설문조사에서 직원들은 “업무 처리가 단순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33%), “단순화를 위한 노력이 미흡하다”(32%)는 등 복잡성 문제가 심각하다는 데 동의했다.

요즘 글로벌 컨설팅 회사들 대표 상품 중 하나도 ‘복잡성 관리(complexity management)’ 컨설팅이다. 기업 스스로 단순해지지 못하니 컨설팅 회사들이 도와주는 것이다. 베인앤컴퍼니 코리아 정지택 파트너는 “복잡성 관리는 목표 달성에 전력투구하는 ‘집중된 회사(focused company)’를 만들기 위해 전략과 제품, 내부 조직과 프로세스에 있어 복잡성을 줄이고 단순함을 늘리는 방법을 다루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워윅(Warwick)대 경영대학원 조사에 따르면 포천지 기준 세계 200대 기업이 매년 복잡성 문제로 허비하는 비용이 한 기업당 10억달러에 달했다. 사이먼 콜리슨 워윅대 교수는 “회사가 확장하는 과정에서 늘어나는 조직 계층, 새 생산라인, 새 시장이 어느 순간 너무 복잡해지는 임계점에 이르며 이익을 잠식하기 시작한다”고 말했다. 그는 복잡성을 줄이려면 우선 제품과 서비스, 시장 포트폴리오를 전면 재분석하는 게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복잡성이 심각한 조직은 아마 너무 많은 시장을 대상으로 너무 많은 제품을 생산하고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다음에는 업무 프로세스를 살펴봐야 한다. “너무 많은 이메일과 회의, 관료주의적 폐단과 중요하지 않은 관행적 업무가 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

국내에선 현대카드가 ‘단순화’를 기치로 내걸었다.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은 직원과 간담회에서 “‘이런 보고서가 필요하니 부탁합니다’란 소리보다 ‘이런 보고서는 이제 중요하지 않으니 그만 만들어 주세요’라는 소리를 듣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습관적으로 받아 볼 뿐인 몇 장의 보고서를 위해 이틀을 꼬박 일하는 직원이 있다면 곤란하다”고 덧붙였다. 현대카드는 올해 업무량의 15%를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전 직원으로부터 단순화를 달성하기 위한 아이디어 1400개를 취합, 이 중 660건을 완료했고 나머지도 실행 계획을 확정했다.

지난해까지 현대카드에선 콜센터에 접수된 고객 불만 사항 녹취 내용을 해당 부서에서 들어보려면 콜센터에 협조 공문을 보내야 했다. 1년 동안 회사 각 부서에서 이런 내용을 담아 콜센터에 보낸 공문이 1만5000여건에 달했다. 이제는 이런 불필요한 절차를 없애고 각 부서에서 정한 담당자에게 녹취를 언제든 들을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또 회사에 노트북 컴퓨터를 갖고 들어오거나 나가려면 사유를 문서로 인쇄해 기업문화 부서와 정보보안 담당 부서 확인을 거친 뒤 이를 다시 스캔해 제출하도록 하던 것을 온라인 등록 한 번으로 끝내도록 간소화했다. 전에는 해외 출장을 갔다 오면 어떤 업무를 처리하고 새로운 지식을 습득했는지 출장 보고서를 인트라넷에 올리도록 했으나 이 역시 폐지했다. “출장을 통해 습득한 업무 노하우를 직원 스스로 활용하면 되는 걸 굳이 보고서 작성하느라 불필요한 수고를 들일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 때문이다.

올 들어 이처럼 현대카드 내에서 ‘단순화(simplification)’라는 목표 아래 개선 대상이 된 업무는 1400개. 전 직원을 상대로 아이디어를 모집해 나온 것 중 추린 게 이 정도다. 이 중 660건은 현업 부서에 적용해 실행 중이고, 나머지도 실행 일정을 세워 하나씩 반영할 예정이다.

전사 공통 과제 중 구매나 비용 집행을 결정할 때 거치는 결재 단계를 8단계에서 4단계로 간소화하고, 40~50가지에 이르던 사내 문서 양식을 3분의 1로 줄이는 내용은 이미 시행 중이다. 또 무조건 문서나 프레젠테이션(PT)을 강요하는 문화를 바꾸기 위해 매달 특정 부서를 골라 ‘한 달 간 PT 금지’ 명령을 내리고 있다.

정태영 사장은 “‘단순화’는 누더기처럼 과도한 프로세스나 회의, 보고, 일의 방법, 조직 등을 다시 검토해 쓸데없는 일들을 줄여나가는 걸 목표로 삼고 있다”면서 “일이 줄어들면 직원들이 집에 빨리 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심플은 궁극의 품격(Simplicity is ultimate sophistication)’이란 켄 시걸씨 말과 일맥상통한다.

이 같은 현대카드의 움직임은 현대카드의 2대 주주(GE캐피탈이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 지분 43% 보유)이기도 한 GE의 단순화 운동에서 영향을 받았다.

지이 제프리 이멜트 회장
GE 제프리 이멜트 회장

GE는 제프리 이멜트 회장 주도 아래 ‘단순화’에 전력투구하고 있다.

2012년부터 매년 두 차례 모든 업무 분야를 대상으로 정성적 평가와 정량적 평가로 조직의 단순화 성과를 지수로 측정하는데, 이멜트 회장은 각 조직장과 세계 각국 현지 CEO들에게 매년 점수를 10%씩 향상할 것을 주문했다. 현지 CEO는 가장 간소화가 필요한 주제 하나를 직접 골라 스스로 개선해 나가도록 독려하고 있다. 성과급에도 단순화 달성 정도가 연동한다. 조직장이나 현지 CEO가 일정 인원 이상의 모임을 가질 때는 반드시 단순화 문제도 거론하도록 한다.

GE 계열사인 GE캐피탈의 경우, ‘단순화’ 운동을 통해 보고서 수를 대폭 줄였다. 위험 관리 보고서는 43%, 영업 보고서는 33%, 운영 보고서는 67%를 감축한 것이다.

GE는 또 임직원에게 단순화를 각인시키기 위해 스크린세이버, 포스터, 엘리베이터 내 동영상 등을 통해 단순화의 필요성과 모범 사례를 지속적으로 전파하는 중이다. 웹사이트에 직원 누구나 제안을 올릴 수 있게 하고, 우수 제안자의 얼굴과 이름을 게시한다.

이같은 노력은 실질적인 업무 개선 효과로 나타나 GE캐피탈의 경우 2013년에 측정한 업무 효율성 관련 7개 사내 임직원 설문조사 점수가 전년 대비 3~7점 개선됐다. 지난해 GE 가전부문에서 새로 개발한 양문형 냉장고 역시 단순화 운동의 산물이다. 의사 결정 단계를 줄여 통상 2년 이상 걸리던 신제품 개발 기간을 1년으로 단축했고, 고객이 진짜 바라는 것을 파악해 반영하면서도 제품을 최대한 단순화했다. 헬스케어 부문에서는 환자가 조직 검사가 필요할 때 용도에 따라 매번 새로 채취하던 관행을 한번 조직을 채취하면 여러 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 신기술을 개발했다. 단순화라는 사고에 천착하면서 나온 성과라는 설명이다.

GE는 단순화의 추진력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기업 문화로 뿌리 내려야 한다고 보고 있다. 직원들을 설득하기 위한 논리의 하나가 파레토 법칙이다. 20%의 투입(시간· 자원·노력)이 80%의 산출(결과·보상)을 낳는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전체 제품의 20%가 매출의 80%를 차지한다. 그만큼 중요한 것을 선택해 집중하는 단순화가 중요하다는 의미다.

GE는 단순화 운동을 효과적으로 실행하기 위해서는 위에서 아래로 전달하는 하향(top-down) 방식으로는 구호나 명령에 그칠 수밖에 없다고 보고, 아래로부터 임직원들 의견을 모아 세부 과제를 만들어 실행하는 상향(bottom-up) 방식을 함께 적용했다. 현대카드도 마찬가지다.

정태영 사장은 “단순화는 한번 하고 마는 구호나 정신운동이 아니라 회사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매우 중요한 사안”이라면서 “회사 구조, 의사 결정 과정, 조직 정비, 효과는 작은데 손이 많이 가는 롱테일(long tail) 업무 정리, 보고서와 협조 부서, 회의 숫자와 횟수 줄이기 등 일상적 사안을 총망라한다”고 말했다.

제품도 단순화 대상에 포함됐다. 신용카드 고객에게 제공되는 두 가지 핵심 혜택인 ‘포인트 적립’과 ‘캐시백’을 두 축으로 대대적인 포트폴리오 개편을 단행한 것이다. 카드 종류도 21개에서 7개로 줄였다. 단순화된 현대카드 ‘챕터2’는 10개월 만에 가입자 200만명을 돌파했고, 월 평균 이용금액이 업계 평균 2배를 웃돌고 있다.

정 사장은 “카드회사 직원 중에도 수많은 카드 혜택 내용의 3분의 1 이상 외우는 직원은 없을 것”이라며 “30초 안에 설명 못하는 혜택은 포기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정 사장이 어느 직원에게 “서비스를 줄이면 안되느냐”고 물었더니 직원은 “있어서 나쁠 것 없잖아요”라고 반문했다. 그러자 그는 “나쁘거든!”이라고 응수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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