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Cover Story]17년간 잡스와 일한 켄 시걸이 말하는 ‘단순화 전략’

단순함이 이긴다 전쟁하듯 줄여라
디자인만 아닌 조직·소통·철학까 지극도의 단순화가 잡스의 경영원칙
고객에 많은 선택지 주면 감흥 없어 단순화는 엄청나게 갈고 닦은 결과
켄 시걸이 말하는 ‘잡스의 단순화 5원칙’
① 조직: 모든 회의는 핵심 인력만, 층층이 쌓여있는 의사결정 체계 간소화
② 철학: 뚜렷한 핵심 가치, ‘다르게 생각’ 애플의 정신으로 자리잡아
③ 제품: 복잡한 제품群, 머리만 아파, 개인·전문가·노트북·데스크톱 단 4개로
④소통: 모든 제품 한 줄로 표현, 어려운 이야기 쉽게 하는게 진정한 고수
⑤디자인: 적은 게 많은 것, 올인원 컴퓨터 ‘아이맥’ 큰 매출 증가 안겨

심플리시티 문구

“그냥 광고를 보여주세요!”

스티브 잡스가 외쳤다. 광고회사 팀장 켄 시걸씨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는 3가지 광고 시안을 관례에 따라 뒤집어서 올려놓은 뒤 적당한 시점에 하나씩 보여줄 생각이었다. 그러나 채 몇 마디도 꺼내지 않았을 때 느닷없이 잡스가 끼어든 것이다.

잡스는 “아침에 월스트리트 저널에서나 읽을 만한 내용을 설명하려고 내 옆에 앉은 거냐”고 하더니 광고 안 3개를 한꺼번에 뒤집었다. 그는 잠시 광고를 보더니 내용을 금세 이해했다.

잡스는 형식적인 프레젠테이션을 원하지 않았다. 잡스는 이렇게 말했다. “제발 광고 회사 사람들 티 내지 말고 본론부터 그냥 얘기하세요.”

스티브 잡스

그 뒤에도 17년간 잡스와 함께 일했던 시걸씨는 “잡스가 거둔 최대의 업적은 맥이나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가 아니다. 그는 일찍이 누구도 생각지 못한 무언가를 성취했는데, 그건 바로 단순함(simplicity)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잡스에게 단순함은 종교였고, 그리고 무기였다”고 덧붙였다. 잡스는 제품 개발, 디자인, 그리고 조직 운영에 이르기까지 극도의 단순함을 지향했다.

잡스는 명확하지 않고 애매하게 둘러대는 사람을 참지 못했다. 그런 직원은 이른바 ‘심플 스틱(simple stick·모든 것에 지독하리만치 단순함을 적용했던 잡스의 경영 원칙을 애플 직원들이 일컫는 말)으로 얻어맞기 일쑤였다.

시걸씨는 지난 4월 국내 출간된 책 ‘미친 듯이 심플(Insanely Simple)’에서 잡스가 왜 그렇게 단순함에 집착했으며, 어떻게 복잡함과 싸웠는지 자신이 직접 보고 겪은 일화와 함께 생생히 전한다.

최근 방한한 시걸씨는 과거 잡스가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 즐겨 입었던 것처럼 청바지에 검은 셔츠를 받쳐 입은 심플한 차림새로 나타났다. 그는 한국어판 책 표지를 보고 “마음에 든다”고 했다. 자신이 디자인한 미국판 표지와 마찬가지로, 하얀색 바탕에 검은 글자체로 제목이 찍힌 심플한 디자인이었다. “일본에 갔더니 커버에 이런저런 장식을 덧붙여 놨더군요. ‘오, 이게 뭐람! 이건 심플이 아니잖아!’라고 생각했어요.”

“지금처럼 복잡함이 가득 차서 넘치는 세계에서는 누군가가 단순한 것을 제공할 경우, 확연하게 두드러지게 마련입니다. 애플이 전 세계 시가총액 1위 기업이 된 이유입니다.”

시걸씨는 “단순해지려면 사실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며 “이는 기업이 ‘단순해지자’고 선언하는 것만으로 결코 얻을 수 없고, 단순함을 향해 전부를 걸어야 겨우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시걸씨는 자동 변속기 차량을 예로 들어 부연 설명했다. “자동 변속기는 쉽고 단순합니다. 하지만 그걸 개발하기 위해서는 수동 변속기를 만드는 것보다 몇 배의 고민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소비자가 쉽고 단순하게 받아들이려면, 만드는 사람은 엄청나게 생각하고 정교하게 갈고 닦아야 합니다.”

기업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는 ‘다양한 고객의 니즈(needs)를 만족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고객에게 수많은 선택권을 주면, 고객은 “기업이 날 위해 많은 선택지를 주고 있구나”라고 감동할까? 켄 시걸씨의 답은 “아니요”다.

컴퓨터 회사 델은 소비자, 정부, 학교 등 판매처에 따라 상품을 41개 모델로 세분화했다. 이름 또한 길고 어려웠다. 인스피론, 보스트로, 엑스피에스, 옵티플렉스 등 전혀 다른 세상에서 온 것 같은 이름들은 고객에게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하지만 애플은 단 6개 모델만 내놨다. 이름은 맥북에어, 맥북프로, 맥북프로 레티나 단 세 가지였다. 나머지는 모니터 크기(11, 13인치 등)로 구별했다. 시걸씨는 “그럼에도 애플 매장에 와서 ‘선택권이 없었다’고 느끼고 간 고객은 없었을 것”이라며 “오히려 고객을 배려한 심플함에 만족하고 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애플은 제품을 표현할 때도 극도의 단순함을 추구했다. 제품에 적용된 기술은 매우 복잡하지만, 애플은 이를 단 두세 단어로 표현할 뿐이었다. 예를 들어 애플은 1세대 아이팟을 출시했을 때 ‘5기가바이트 드라이브에 파이어와이어(firewire) 포트 기술이 적용되어 있다’와 같은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단지 ‘당신 주머니 속의 노래 1000곡’이라고 했다.

켄 시걸

켄 시걸씨 인터뷰와 그가 현대카드에서 했던 강연 내용, 그의 책을 바탕으로 스티브 잡스가 추구했던 단순함을 다섯 가지 범주로 정리해 봤다. 시걸씨는 잡스가 1997년 애플에 복귀했을 때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 캠페인을 기획했고,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로 이어지는 아이(i) 시리즈의 시초 격인 ‘아이맥(iMac)’ 이름을 지은 인물이기도 하다.

①조직의 단순화

잡스는 2010년 한 콘퍼런스에서 애플 내부 구조의 한 단면을 소개했다. “애플에 위원회가 몇 개나 있는지 아십니까?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는 창업 회사처럼 조직돼 있습니다. 이 지구에서 가장 큰 창업 회사지요.”

잡스는 모든 회의를 주재할 때 빠져서는 안 될 핵심 인력만 불렀다. 시걸씨는 잡스가 ‘똑똑한 사람들만의 작은 집단’ 원칙의 신봉자였다고 전했다. 어느 날 시걸씨가 일하던 광고 회사와 애플의 마케팅 관계자 회의가 열렸다. 매주 한 번 열리던 이 회의에 예전에 참여한 적이 없는 로리라는 이름의 여성이 애플 측 인사로 참여했다. 잡스가 뭔가 이야기를 꺼내려다 그 여성을 가리키며 말했다. “당신은 누구죠?” 그녀가 참석한 이유를 설명했다. 잡스는 잠시 생각하더니 ‘심플스틱’으로 그녀를 후려쳤다. “이 회의에 당신이 필요한 것 같지는 않네요. 로리, 고마워요.”

시걸씨는 잡스가 관료주의를 혐오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잡스가 애플에 복귀한 1997년 당시, 애플은 덩치가 크고, 무디고, 썩 뛰어나지 않은 회사였습니다. 그 상황은 지금 많은 대기업의 CEO가 마주친 상황과 별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는 조직의 관료주의를 걷어내고, 층층이 쌓여 있는 의사 결정 체계를 간소화해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기업들은 조직 문화가 보수적이고 관료적인 곳이 많습니다.

“아시아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많은 회사가 어떤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보면 하급 의사 결정권자, 중간 의사 결정권자의 승인을 받고 여러 단계를 거치고 난 뒤에야 최종 의사 결정권자에게 아이디어가 올라갑니다. 그때까지 몇 달씩 걸리기도 하지요. 마침내 실무자가 최종 의사 결정권자에게 프레젠테이션을 하면 최종 의사 결정권자는 이렇게 말하기 일쑤입니다. ‘왜 그런 식으로 만들었지? 다시 하게.’ 대부분의 기업에선 최고 의사 결정권자에게 아이디어가 전달되기까지 얼마나 빙빙 둘러가는지 모릅니다. 그것은 직원들의 사기를 꺾어 놓고, 결국엔 조직 자체를 해칩니다.”

잡스는 반대로 아이디어를 늘 최우선에 두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잡스의 승인을 얻어 한창 광고를 제작하다가 촬영이나 편집 단계에서 더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합시다. 그때 우리는 얼마든지 그 아이디어를 들고 잡스에게 달려갈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그가 우리에게 그런 행동을 기대했습니다.”

②철학의 단순화

시걸씨가 광고 담당자로서 애플과 일하기가 어려우면서도 한편으로 쉬웠던 것은 애플이 광고를 통해 표현하려는 핵심 가치가 뚜렷했기 때문이다.

잡스는 애플에 복귀한 뒤 ‘다르게 생각하라’라는 마케팅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펼쳤는데, 이 말은 애플의 정신을 반영하는 모토나 마찬가지였다.

“‘다르게 생각하라’는 말은 나만이 만들 수 있는 독창적인 것을 만드는 것입니다. 애플을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말이죠.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이 차고에서 애플 컴퓨터를 처음 만들었던 당시부터 그것은 애플의 신념이었습니다.

다른 회사들은 반대로 광고 회사에 ‘우리가 무엇이 되고 싶어하지?’라고 묻습니다. 자신들이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고서 광고 회사 사람이 뭔가 그럴 듯한 것을 대신 만들어내 주길 원하는 겁니다.”

―애플의 단순한 경영은 잡스와 같은 독재자가 있었기에 가능하다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잡스가 복귀했을 당시 애플은 엉망진창이었고, 누군가가 나서서 조직의 느슨함을 정리해 줘야만 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의 목표에 집중하도록 말이죠. 하지만 단순함에 대한 철학이 조직 내부에 자리 잡은 회사라면 반드시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존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춘 다음 이렇게 덧붙였다. “하지만 알아둬야 할 것이 있습니다. 잡스는 독재적인 리더였지만, 자신의 생각을 남들이 그대로 따라 하도록 다른 사람 생각의 틀을 제한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뛰어나고 창의적인 사람들을 불러 모았고, 그들이 애플에서 창의적이고 뛰어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③제품의 단순화

애플 복귀 후 잡스는 중요 제품 전략 회의에서 외쳤다. “이대로는 안 됩니다! 정신 나간 짓들을 하고 있다고요.” 그는 매직펜을 들고 화이트보드 앞으로 다가가 가로선과 세로선을 그어 정사각형을 네 칸으로 나눈 표를 그렸다. “지금 애플이 해야 할 일이 바로 이겁니다.”

잡스는 애플의 복잡한 컴퓨터 모델군(群)을 단 네 가지로 줄이기를 원한 것이다. 즉 개인용과 전문가용, 그리고 노트북과 데스크톱이 그것이다. 기술 역사에서 제품군을 가장 극적으로 축소한 사례 중 하나였다. 그 직전까지 애플은 노트북, 스캐너, 프린터, 카메라 등 20종류 이상의 제품을 팔았고, 제품마다 모델도 다양했다.

“고객에게 과도한 선택권을 준다거나, 선택지들이 별로 차이가 나지 않을 경우엔 물건을 고르는 것이 즐거움이 아닌, 고민거리가 되어 버립니다. 애플은 단지 이런 식으로 단순하게 제시했습니다. ‘매우 얇은 초경량 스타일(맥북 에어)을 원하세요, 혹은 모든 기능이 다 갖춰진 스타일(맥북 프로)을 원하세요?’라고요.”

복잡한 기술을 기반으로 탄생했지만, 아이폰이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 역시 단순함에 있었다.

④커뮤니케이션(소통)의 단순화

쉬운 이야기를 어렵게 하기는 쉽다. 어려운 이야기를 어렵게 하는 것은 중간이다. 어려운 이야기를 쉽게 하는 것이 진정한 고수다. 잡스의 애플이 바로 그랬다. 최선의 소비자 커뮤니케이션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사람들이 매일 사용하는 인간다운 언어로 말하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 프레젠테이션’이란 책에 따르면 잡스는 거의 모든 제품에 대해 한 줄짜리 헤드라인을 만들었다. 이 헤드라인은 프레젠테이션, 보도자료, 마케팅 도구를 준비하기 훨씬 전에 기획 단계에서 만들어진다. 가장 중요한 점은 한 번 만들어진 헤드라인을 계속 활용한다는 것이다. 맥북 에어가 출시되고 나서 ‘세상에서 가장 얇은 노트북’이라는 헤드라인은 프레젠테이션, 홈페이지, 인터뷰, 광고, 옥외 광고, 포스터를 비롯한 모든 커뮤니케이션 채널에서 그대로 사용됐다.

잡스는 또 새로운 제품을 소개할 때 흔히 쓰이고 잘 알려진 대상에 비교하는 경우가 많았다. ‘애플 TV는 21세기의 DVD 플레이어와 같다.’ ‘아이팟 셔플은 껌 한 통보다 작고 가볍다.’ 같은 식이다.

복잡성 보존 원칙

⑤디자인의 단순화

잡스는 애플 초기부터 훌륭한 산업디자인이 회사와 제품을 차별화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믿었다. 잡스는 특히 바우하우스 운동이 주창한, ‘표현 정신을 담으면서도 단순한’ 디자인을 중시했다. ‘적은 게 많은 것(less is more)’이라는 금언의 가장 맹렬한 신봉자가 잡스였다.

“잡스가 애플 복귀 후 처음 출시한 컴퓨터 아이맥은 당시로선 혁신적인 올인원 컴퓨터(모니터와 본체가 일체형으로 통합된 컴퓨터)였어요. 복잡한 케이블을 연결할 필요 없이 간단하게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었죠. 매우 단순한 방식이었고, 이 아이맥 출시 이후 애플은 몇 년 만에 처음으로 큰 매출 증가를 기록했습니다.”

인터뷰 말미에 시걸씨에게 “잡스가 떠난 뒤 애플의 미래를 어떻게 보느냐”고 물었다. 시걸씨는 이렇게 답했다.

“잡스처럼 위대한 리더가 떠난 뒤 조직이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것은 부모가 아이를 키워서 떠나 보내는 것과 비슷합니다. 부모는 아이에게 훌륭한 교육을 베풀고 가치관을 심어줍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아무도 알 수 없는 거예요.

제 생각에 스티브는 애플에 자신의 가치를 대단히 성공적으로 주입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애플의 경영진에게 잡스가 주입한 가치는 그다지 훼손되지 않은 채 남아 있습니다.

디즈니도 한때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처음에 사람들은 월트가 없는 디즈니를 상상하지 못했죠. 하지만 얼마간 굴곡을 겪은 뒤 지금의 디즈니는 처음 디즈니의 철학대로 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물론 앞으로 애플은 과거와 완전히 같을 수는 없습니다. 스티브는 정말로 대단히 독특한 인물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애플의 미래를 낙관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도 애플의 주식을 팔지 않고 있습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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